▩ 운문사 사리암
오래전에 계획한 국내 장거리급 여행입니다. 소싸움으로 유명한 청도군에 소재한 운문사와 사리암에 가는 날입니다. 좀 거리가 있으므로 다른 일정은 넣지않고 사리암 96계단을 오르고 운문사의 웅장한 현장을 보고 국내 최대의 소나무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여행 후기를 결론지으면 청도군은 시골의 군지역이 아니라 풍부한 자원을 가진 깔끔하고 정돈된 준비된 동네입니다.
산과 구름이 어우러진 곳이고 들판이 여유로우며 산줄기가 범상하지 아니하여 가는 곳마다 겹겹 싸이는 산줄기의 감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늘 그러하듯 일행은 아침 7시에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달려가서 안성국밥을 먹었습니다.
앞으로 여행을 다닌 수 있는 30년동안 매번 경부고속도로를 달린다면 반드시 달려와서 먹을 수 있는 식사입니다. 안성국밥은 늘 여행에 있어서 안성마춤입니다. 다시 고속도로를 여러 번 바꾸어 달려서 청도군에 입성하였고 운문사 입구의 맛집을 예약하여 닭곰탕을 풍미지게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리탕으로 주문했는데 재료가 부족하므로 닭 대신 꿩이라고 오리 대신 닭으로 메뉴를 정했습니다.
일행은 4명인데 닭다리는 2개인 것이 늘 불만입니다만 이 집 이 식당의 요리는 어떤 기술이 들어갔나 몰라도 닭다리, 닭가슴살 모두가 부드러운 보양식입니다. 주차비 2,000원을 내고 사리암이 자리한 산기슭으로 들어갔습니다. 전국의 사찰 입장료를 국가가 부담하기로 한 획기적인 결정이 있었지만 사리암은 주차비 2,000원을 현금으로 받습니다.
하루 1,000대가 온다면 200만원이니 징수 인건비와 기타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다행입니다. 지하철 몰래 타는 사람을 단속하지 않는 이유는 인건비만큼 단속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네 분 모두 인터넷 검색에서 사리암 1,000계단을 오르려면 온몸에서 사리가 나올 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이므로 입구에 비치된 지팡이를 하나씩 들고 서두르지 않고 계단을 올랐습니다.
조금 힘들다 싶을 즈음에 300이라는 숫자가 나오고 못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순간에 600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허벅지와 고관절 사이에서 경련이 일 즈음 900에 이르니 결국 1,000계단은 계단을 밟아 오르는 것이지 한 발짝에 100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음을 깨닫습니다.
신기하게도 다리가 힘들다 하여 관세음보살을 연호하는 순간에 허벅지에 심한 통증이 왔고 5분정도 쉬어서 그 위기를 넘기자 온몸 온 다리의 근육이 풀리면서 아주 쉽게 계단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1,000계단이라 말하는 이유는 960계단을 오른 후에도 암자의 1층, 2층, 3층을 올라가는 계단이 추가로 있고 화장실을 가는 계단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계단이기 전체를 합하면 1,000계단이 넘을 것이라 계산해 봅니다.
특히, 화장실은 압권입니다. 산 중턱에 세워진 화장실의 앞창문이 대문짝입니다. 그 발아래로 펼쳐지는 대형 산수화는 잠시 신의 경지에 이른 듯 마음과 몸을 가볍게 해 줍니다. 그래서 사찰에서 화장실을 해우소라 하는가 봅니다. 세상의 근심을 다 풀어내는 공간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재판소에 간다"고도 하는데 하룻동안 먹고 소화시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밝혀서 다시 밖으로 내보내어 광명을 찾아주는 과정이 마치 재판정에서 그사람의 하루를 판사님이 판결을 하는 것과 같다는 데서 출발한 말인가 생각합니다.
법문이 이어지는데 스님의 마이크 방송이 잠시 쉬는 순간에 스트레오로 들려오는 여신도 4분의 암송이 흔들림 없이 음율을 이어갑니다. 불경 속 빼곡한 한자음을 한자도 빼지않고 암송하는 신도와 스님의 염력에 크게 놀랐습니다. 핸드폰 번호 11자리, 통장번호 12자리를 기억해서 10초내에 옮기지 못해 반드시 메모를 해야하는 부족한 기억력의 해당자로서는 크게 놀라는 바입니다.
[인터넷 설명] 호거산 운문사 사리암은 이 산자락의 사리굴(邪離窟)은 운문산에 있는 네 곳의 굴 중 하나이다.
즉 동쪽은 사리굴(邪離窟), 남쪽은 호암굴(虎巖窟), 서쪽은 화방굴(火防窟), 북쪽은 묵방굴(墨房窟)로서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는데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틈의 쌀이,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 몫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는 공양주 스님이 더 많은 쌀을 얻으려고 욕심을 내어 구멍을 넓히고 부터 쌀이 나오지 아니하고 물이 나오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장소는 나반존자(那般尊者)상이 모셔진 바로 아래다. 아래에서 보면 왼쪽굴이 그곳이고 지나쳐보면 어딘지 분간이 가지 않을 곳으로 특별히 굴 같지는 않다. 운문사 사적에는 사리암은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가 930년에 초창하였고 조선 헌종 11년(1845)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으며 1924년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리암의 천태각(天台閣)은 일명 독성각(獨聖閣)이라고도 하며 조선 헌종 11년(1845)에 신파대사(新派大師)가 초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다. 이 나반존자상의 후면에는 조선 철종 2년(1851)에 봉안한 독성탱화(獨聖撑畵)와 1965년에 경봉(鏡峰)화상이 점안한 산신탱화가 함께 봉안되어 있다.
천태각 밑에 있는 비석은 금호당화상(金虎堂和尙)이 세운 중수비이다. 1977년 비구니 혜은(慧隱)스님이 원주로 부임하여 1978년 전기불사를 시작으로 1980년에 전 부산 거림회 회장 이인희 거사의 후원으로 3층의 요사를 신축하였고 1983년 현재의 관음전, 자인실, 정랑 등을 개축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운문사는 호거산 자락 아늑하고 정갈한 운문사 도량은 신라 원광국사, 고려 원응국사 일연스님 등 역대 걸출한 스님들이 주석하셨던 역사적인 도량이다. 1950년대 불교정화이후 비구니 도량으로 혁신되었으며,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로 2천여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현재 운문사는 승가대학과 한문불전대학원, 그리고 선원 등을 갖춘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 비구니 교육 도량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다.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한 신승이 창건하였다.
608년(진평왕 30)에 원광 국사가 제1차 중창하였다. 원광국사는 만년에 가슬갑사에 머물며 일생 좌우명을 묻는 귀산과 추항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었다고 한다. 제2차 중창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오갑사(五岬寺)를 중창하였다. 943년 고려 태조 왕건은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운문선사(雲門禪寺)라 사액하고 전지(田地) 500결을 하사하였다.
제3차 중창은 1105년(고려 숙종 10) 원응국사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을 배운뒤 귀국하여 운문사에 들어와 중창하고 전국 제2의 선찰로 삼았다.
[이어쓰기] 낮은 산자락에 자연스럽게 입지한 운문사는 그 위용이 조선시대 궁궐과도 같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의 큼직한 배치가 시원하고 수백년 나이든 나무가 건물사이에서 역사를 이끌고 있습니다. 계곡을 지나가는 시내는 강원도 백담사에 다다르기 전에 만나는 흰돌 하천과 흡사합니다. 운문사 흰 조약돌과 백담사의 하얀 둥근 돌은 마치 같은 바위에서 내려온 잘잘한 돌인가도 보입니다.
운문사에 가시면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 할 곳은 500년 나이의 소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 180호 ‘처진소나무’입니다. 운문사 경내로 들어서면 사찰보다 더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처진소나무'입니다. 가지가 밑으로 축 처진 희귀한 모습이 생물학적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되었으며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됩니다. 처진 가지들이 마치 우산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주 독특하고 멋스럽습니다.
더 긴 시간을 머물고 싶은 산사입니다. 가는 곳마다 새로움을 주고 푸근하게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신라의 역사와 고려, 조선의 시대 흐름을 묶어서 적절히 배치한 듯한 느낌을 주는 현대식 사찰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스러운 건물의 배치고 일부 개인적 사찰에서 느끼는 옹색함은 없고 따박따박 적정한 자리에 배치된 건물의 자연스러운 배분이 멋진 사찰입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각입니다만 고속도로에서 퇴근시간을 조우할 이유가 없습니다. 청소의 소싸움, 운문사, 사리암만큼 유명한 미나리를 재료로 하는 식당을 검색하여 찾아갔습니다. 소나무굽은 미나리식당은 소나무는 멋진데 문을 닫았습니다. 200미터 움직여서 주차장이 길고 넓은 식당에서 삼겹살, 오리고기, 미나리를 주문했습니다. 삼겹살과 오리고기의 기름이 철판으로 흐를 즈음에 길고 가늘고 부드럽게 자란 미나리를 삼등분하여 살짝 온김을 섞은 후에 초콜릿 색상으로 잘 익은 삼겹살을 싸서 먹었습니다.
파란 미나리의 향이 입안에 퍼지고 부드럽게 익은 삼겹살, 기름지게 반짝이는 오리불고기를 맛지게 먹었습니다. 추가에 추가를 더한 후에 미나리비빔밥을 나눠먹습니다. 느끼하지 않고 담백하고 향이 부드러운 미나리 비빔밥으로 저녁을 마무리하고 둥글게 돌아다니는 청도군의 지방도와 국도를 거쳐서 고속도로를 타고 속리산 휴게소에서 잠시 속세를 떠나보내고 어느 휴게소에서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따스한 차 한 잔을 마신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5시반에 저녁을 먹고 6시반에 출발하였는데 11:30분에 집에 도착하여 아파트 뒷편의 화단에 조성된 마지막 주차장에 차를 올리고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왕복 600km쯤이 넘는 길을 하루에 다녀왔지만 맛진 음식, 격렬한 계단, 그리고 풍미진 대화를 통해 피로를 내보내고 즐거움과 보람을 한가득 마음에 담아왔습니다.
숙면을 하고나면 또 다른 내일이 나타날 것입니다. 사리암에서 내려다본 구름처럼 다음날의 일정도 평온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운문암에서 만난 여유를 마음속에 가득 담고서 희망찬 내일을 설계할 것입니다. 참으로 보람찬 사리암 계단 1,000층을 다녀왔습니다. 부처님의 가피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