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정년후 신규 공무원을 위한 강연에 나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대차이가 나겠지만 공직의 기초, 기본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강의에 나선 바이었습니다.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대 공무원이 60넘은 40년 세대차이가 나는 강사의 “나때커피”같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은 바입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고 집에왔을 때 담당 인재양성팀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늘 강의에서 말한 내용중 이른바 ‘시보떡’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신규공무원이 되어서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 내복을 사드리는 전통이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치에 맞는 이야기의 전개였는데 그 다음 강의의 소재는 1년 또는 6개월 공무원생활을 하면 ‘시보해제’가 되고 그리되면 부서의 선배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후에는 언론에 신경을 덜 쓰게되었고 그래서 현안중 예민한 ‘시보떡 사건’을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즈음 서울시의 어느 구청에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공무원에 합격하여 받는 월급으로 와병중이신 두분 부모님을 봉양하는 젊은 주무관의 이야기입니다. 동료, 동기들은 시보가 끝나면 떡이 아니라 고급의 피자와 음료수를 돌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박봉에 경제사정이 어려웠던 이 주무관은 관행대로 ‘시보떡’을 돌렸다고 합니다. 피자보다는 저렴한 비용을 부담했을 것입니다.
그날 저녁에 사무실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는 중에 바로 옆팀의 팀장 쓰레기통에 자신이 낮에 돌린 시보떡이 비닐에 싸인채 버려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주무관은 자신이 피자를 돌리지 않아서 옆팀 계장이 이 떡을 쓰레기통에 버린것이라 생각하며 엉엉 울었습니다.
이 사건이 정보망을 타고 서울출신 어느 여성국회의원에게 전해졌고 국회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행정안전부장관에게 ‘시보떡 사건과 문제점’에 대한 질의를 하였습니다. 결국 내무부시절부터 즉응, 대처의 전문인 행정안전부에서는 즉시 전국 시도, 시군구에 ‘시보떡금지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같은 시대상황을 간파하지 못한 강사는 전통적으로 자랑스러운 공직사회의 미풍양속이라면서 이를 장황하게 소개하였던 것이고 이를 모니터링한 담당팀장은 아연실색하여 퇴근한 강사에게 전화를 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하지만 농촌에서 된장, 고추장은 늘 담그고 파리를 피하기 위해서 항아리 위에 모기장을 설치합니다. 자동차 교통사고로 사람이 다치고 사망하지만 차를 그만 생산하라는 국가정책은 없습니다. 과속을 막고 학교주변은 교통안전지대로 설정하는 등의 대비책을 강구하는 것이 정부의 교통안전정책입니다.
마찬가지로 공직사회의 미풍양속중 하나인 부모님 내복사드리기, 선배에게 시보떡, 시보해제떡 한턱내기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후 화성시청에서 시민옴부즈만으로 민원상담을 하면서 공무원의 시민을 위한 봉사정신과 시민의 공무원 사랑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면서 근무하는 중 참 좋은 공직사회의 또하나의 전통을 마주하면서 흐믓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부모님 내복, 시보떡에 이어서 전보떡을 먹고 있습니다. 8급, 7급 주무관이 우리부서로 전근오면 전에 근무하던 부서의 동료들이 떡을 보내줍니다. 과자를 보내주기도 하고 달콤한 에크타르트, 샤인머스켓 포도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35명 내외의 직원 모두에게 한 개씩 전달되는 비스켓, 떡, 과일 등 맛있는 먹거리를 받아보는 보람이 있습니다. ‘코밑에 진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을 것을 받아서 보람차기도 하지만 후배 공무원들의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습니다.
아마도 전임지 부서의 동료들이 정성을 담아서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더러는 읍면동의 단체에서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일선에서 대민관계에서 열정적으로 일했다는 증거물이라는 생각에 큰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공직초임시절 발령을 받으면 2천명이 넘는 각 부서를 이틀동안 발령장 들고 인사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발령장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나랏님의 기를 받는 간부공무원이 여렷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는 사라진 ‘후행’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임지로 이동하는 동료, 후배의 짐을 들고 함께 따라가는 아름다운 전통입니다.
동시에 너댓명이 발령난 경우에는 후행순서를 조정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서류를 들고가서 책상위에 올려주고 과장석에서 차를 한잔 나눴습니다. 아마도 그 차가 오늘날 떡, 비스켓, 과일, 에그타르트로 멋지게 변형된 것인가 생각합니다.
제도와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긍정의 방향으로 발전하면서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발령인사, 시보떡, 전보떡이 더 인간적으로 변모되어 각박해져가는 공직사회에 새로운 윤활유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바도 큽니다. 공무원이 시민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시민은 공무원을 형제자매로 대해달라는 옴주즈만의 주문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성특례시청 감사관실 주무관중에는 전임지 동료, 선배, 기관단체에서 3번이나 떡과 과일을 받아 현재의 부서에 돌린 사례가 있으니 이는 감동떡, 격려떡이며 선배 공무원으로서 크게 감동받는 '사랑떡'임을 주변의 시민과 공직자, 그리고 공직 선배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