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무원으로서 시청과 군청, 구청의 공보실에 근무한다면 일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입니다. 공보실이라는 부서가 일 못하는 사람도 근무하기 좋고 부지런하고 일 잘하는 공무원도 할 일이 있는 곳입니다. 다시말해 열심히 하면 표가 나지만 대충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 기관에 대략 90명 내외의 언론인이 출입을 합니다. 중앙 신문사, 중앙방송사, 통신사, 지방 일간지, 주간지, 인터넷 매체 등 다양한 언론 네트워크 속에서 공존하는 언론시스템은 그 전체를 파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공보실에 근무하는 공무원의 역량이 언론환경에 큰 변화를 주거나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공보실 역량에 관계없이 방송 뉴스는 늘 그 분량만큼 나가고 신문은 16면 또는 32면을 가득 채워 발행됩니다.
그리고 언론사 인터넷에는 각종 기사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공보실 공무원이 열심히 뛰면 좋은 기사가 올라갑니다. 놀고 있어도 기사는 보도됩니다. 어찌보면 공보실은 일을 해도 되고 안해도 무사안일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언론은 자신들이 원하는 기사를 키웁니다. 공무원이 크게 보도해 주기를 바라는 기사를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매일 출입하는 기관에 대한 예의상 기사를 올려줍니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평소에 출입기자와 깊은 유대를 가져야 합니다. 부처님 살찌우기는 石工(석공)의 마음에 달렸듯이 행정기사가 4단으로 나가느냐 1단으로 처리되느냐는 기자의 기분에 좌우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공직의 간부들에게 있어서 평소 기자와의 유대가 중요한 이유를 나쁜기사, 사건발생시에 切感(절감)합니다. 생면부지인 부서장이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을 경우에는 기사가 크게 잡힙니다. 반면 평소에 출입기자와 접촉(?)이 있었던 부서장의 사건은 기사 크기가 조율 됩니다.
흔히 언론인과 공보실 짬밥을 조금 먹은 공직자들 사이에서는 이를 일러 '行間의 의미'라고 평가 합니다. 평소 우리가 느끼는 기사의 수위에서 현저히 높거나 크게 낮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를 일러 농담으로는 '기술이 들어갔다'고도 합니다.
기사의 수위조절의 가장 큰 예는 서울 광화문에서 초저녁에 펼쳐졌던 '가판신문'입니다. 2000년 전후에 신문 초판을 광화문 길가에서 팔았습니다. 신문값이 중요한게 아니라 내일 조간으로 나갈 기사를 미리 보고 공급자와 수요자간에 '수위조절'을 했습니다.
'소주 반병뿐!'이라는 표현과 '맥주 반병이나~'라는 표현을 가지고 취재기자와 밀당을 했었습니다. 그날 저녁 언론과의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방송기사, 신문기사, 인터넷 기사 어디에도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보실은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한 부서입니다. 1970년대에 6급 공무원이 5급 사무관 직무대리 발령을 받으면 시청이나 군청의 공보실에 배치되었습니다. 발령 첫날 기자실에 가서 신임 공보실장이라 인사를 드린 후 다음날부터 산속에 들어가서 3~4개월 공부를 합니다.
그리고 5급 사무관 승진시험에 합격하면 2개월 정도 근무하다가 다른 부서로 이동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공보실은 늘상 6급 공보계장이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구렁이 6급 공보계장은 근무시간 내내 기자실에 살고 있습니다.
1960년대 정부의 경제기획원이라는 지금의 부총리급 부서가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정부 정책의 중요 포인트가 언론에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무실에 기자실을 설치했습니다. 기자실에 눈이 빠르고(시력이 좋고) 눈치가 남다른 직원을 배치하여 경제지 기자들의 기사 원고를 맨눈으로 스캔하여 해당 부서에 전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기자실의 嚆矢입니다. 어깨너머로 본 원고지 기사를 기억했다가 관련 부서에 전하여 미리 대처하도록 한 것입니다. 도청과 시청 군청 기자실을 들락거리는 공무원들의 역할입니다. 그 눈이 빠른 공무원의 역할이 바로 공보계장의 기능입니다.
그래서 공보실장이 있으나 없으나 공보계장이 일정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공보실은 잘 돌아가더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1970년대의 이야기를 오늘에 접목하면 안됩니다. 1999년 공보실에서 4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40명이 분담하고 있습니다.
보도자료 2장을 뿌리던 방식에서 방송사별 동영상 CD를 제공합니다. 카메라 감독이 원한다면 현장 시연도 합니다. 기자가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제공하는 '자가발전' 방식입니다.
공보실 근무는 이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혁신을 넘어 치열한 머리 싸움을 벌일 수 있는 공무원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이른바 종이로 건네는 보도자료가 아니라 공무원 스스로가 방송국 PD처럼 생각하고 카메라 감독의 시선으로 홍보아이템을 검토해야 합니다.
큰비가 오거나 정부의 대형 프로젝트가 발표되는 날에는 우리 기관의 홍보를 피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 우리의 행사 시간이나 날짜를 공보계장이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공보부서에 기획기능, 비서기능을 일부 주어야 하고 때로는 정무적 판단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부터 공보실 근무자는 기관장을 모시는 또 하나의 비서실장이라 자임해야 합니다. 5급 사무관 승진시험을 준비하는 공보실이 아니라 5급 공무원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는 부서가 되어야 합니다. 불꽃놀이 메인 불꽃 봉우리 위에 서서 밤낮없이 조직을 지휘하고 열심히 일하는 부서가 오늘의 공보실인 것입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경기도민회장학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