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경 경기도내 모든 소방서는 도 민방위국 소방행정과(4급 과장)에서 종합관리하는 도의 기관이었습니다. 조직, 인사, 예산을 소방행정과에서 지원했습니다. 30년이 지난 2019년에는 1급 소방본부장에 3급 간부가 5~6명정도 되고 소방관 정원이 일반직 도청 공무원보다 많습니다.
소방관은 시군지역에 근무해도 경기도청 소속 공무원입니다. 현재 경기도내 소방서 근무 소방관은 8,900명이며 2019년에 911명을 추가 채용한다고 합니다. 119를 연상하게 하는 911명도 홍보전략이 가미된 듯 보입니다.
과거에는 119 불자동차라 해서 화재가 나면 싸이렌을 울리면서 달려가는 것이 소방서 기능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요즘에는 그 분야가 확장되어서 모든 사건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가는 소방관이 되었습니다. 화재현장에 소방관이 달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교통사고, 건물 붕괴, 수해, 한해, 산불 등 자연재해, 재난 등 모든 사건사고의 현장에 소방관이 출동합니다.
소방과 防護(방호)를 설명하는 참 좋은 강의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소방은 불이 났을때 달려가서 진화를 하는 것입니다. 반면 방호는 불이 나지 않도록 사전에 취약지를 점검하고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왱왱거리는 소방차가 오갈때 소방공무원의 존재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태양이 만물의 근원이고 지구 에너지의 원천인 것을 잊고 살듯이 화재가 나지 않는데 왜 소방관을 증원하는가 반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소방관의 중요성은 늘 알아야 합니다. 불이 나도 필요하고 화재가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데도 소방행정은 중요합니다.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을 잡고 그 불속으로 뛰어들어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는 소방관들을 보면 우리는 감동을 합니다. 소방관은 어린이들의 미래직업 5순위입니다.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공보실에 근무하던 7급 공무원 시절에 소방과에 들러서 눈썹 진한 차석으로부터 소방관서 신설계획이 담긴 자료를 받았습니다. 우연히 다른 루트로 알게 된 소방관서 신설 계획은 그 날까지도 대외비였나 봅니다.
곧 국장님 결재가 나면 공식적인 보도자료로 제공하겠다고 하시므로 미리 보도자료를 써두면 좋겠으니 사본을 달라 했습니다. 복사본을 가져와 사무실에서 보도자료를 작성하여 타자를 부탁하였는데 타자를 담당하는 직원이 타자 후에 곧바로 기자실에 배포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조간과 석간신문에 당시 표현대로 '대문짝, 신문짝'만하게 기사가 났습니다. 지방지에 난 것은 물론이고 중앙지, 중앙 경제지, 방송 자막뉴스에도 경기도의 소방관서 신설계획이 말 그대로 '大書特筆'된 것입니다. 소방과에는 불이 나지도 않았고 재난이 발생한 것도 아닌데 화재발생 이상의 긴급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 사실을 국장님이 아시고 怒發大發(노발대발)이랍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화내실 일이 아닙니다. 칭찬을 하고 점심에 자장면과 탕수육을 사주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간부들은 자존심이 높았습니다.
자신이 결재를 하기도 전에 언론에 나갔으니 화가 나는 것입니다. 담당자가 급히 만나자 해서 소방과로 달려갔습니다. 담당자로서 공보실 직원을 믿고 자료를 준 것이 잘못이고 공보실 직원은 약속을 어겼으니 미안한 일입니다. 이 정도 선에서 대처방안을 조율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이른바 취재원과 언론인이 엠바고를 깬 것과 비슷한 결과입니다.
엠바고(embargo)의 본래 뜻은 '선박의 억류 혹은 통상금지'이나, 언론에서는 '어떤 뉴스 기사를 일정 시간까지 그 보도를 유보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습니다. 엠바고란 '보도시점'을 정하고 자료를 미리 배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언론인 중에는 '엠바고는 깨라고 있는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하고 그래서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약속을 어긴 잘못이 있으므로 소방과 차석의 요청에 흔쾌히 응하기로 했습니다. 공보실 직원이 어깨너머로 보고 기사를 쓴 것이라고 변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국장님이 부르시면 가서 사과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당시 국장님은 성격이 급해서 화가나면 등짝을 때릴 수도 있으니 한 대는 맞아주고 계속 때리려 하면 책상 아래로 숨으라는 위험대비 수칙도 알려주었습니다. 역시 안전제일 소방행정가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마음 조렸지만 무사하게 지나갔습니다. 아마도 국장님은 좋은 기사가 난 것에 대해 담당자를 비난할 일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신 것 같습니다. 훗날 고위직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쉰 기억이 있습니다.
신문사 편집국 간부들은 독자에게 관심을 둡니다. 공무원의 잘못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장님은 당시 대략 15곳 언론사에 도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소방관서를 신설한다는 언론기사를 보시고 마음 포근한 마음을 간직하셨을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국장님 결재가 나면서 특정 언론사에만 특종으로 제공했다면 다른 언론사의 제목이 작아지고 4단기사가 1단으로 축소되었을 것입니다. 언론사의 비난이 국장에게 쏠렸을 것이고 그러면 담당자는 반죽음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언론은 늘 독자를 의식하여 기사를 취재하고 편집하여 보도합니다.
예를들어 성남 판교지역의 공원 조성계획이 중앙지 수도권판에 보도됩니다. 지방지에서는 다른 도시계획에 포함하여 보도하는데 중앙지가 특정 공원을 도면까지 그려 넣으며 크게 보도하는데 대한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파악한 바는 그 지역에 중앙지의 수도권판이 많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중앙지 구독자가 원하는 기사는 비싼 아파트 주변에 공원 등 토지이용계획, 도로개설 등 민생현안이 가장 중요한 기사였던 것입니다. 중앙지가 도지사, 시장군수의 동정을 보도할 입장이 아니라는 점을 공보실 공무원이라면 파악해야 합니다. 이는 공보, 홍보부서 근무자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홍보 담당자는 늘 '선택과 집중'이라는 고민을 합니다. 기관장의 인사말이 나가야 완벽한 보도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언론이 원하는 것은 독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언론사 하나에 집중해서 4단기사로 나갈 것인가, 다수의 언론에 2단기사로 보도할 것인가의 고민은 홍보부서의 정책적 결정인 것이지 중앙지 기자의 고민은 아닙니다.
우리는 늘 이 같은 고민해야 합니다. 답은 없지만 보편타당한 방법은 다수의 언론사에 동시에 풀기사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특정사와 거래를 시작하면 더 많은 타사의 견제를 받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번 크게 보도하고 4일을 밋밋하게 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홍보성 기사는 그렇다 하고 우리는 항상 비판기사에 신경이 쓰입니다. 그러니 좋은 기사를 한 매체에 크게 보도한 것은 차가운 얼음물 한잔 마시고 시원함을 느끼는 것일 뿐 이후 언론홍보에 대한 목마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지근한 물을 수시로 마시는 것이 갈증을 풀어내는 보편타당한 방법인 것입니다.
더구나 A기자의 취재를 막았다고 끝난 것이 아니고 그와 친한 C기자가 조금 다른 각도로 취재를 합니다. 결국 언론인의 눈 코 귀를 막지는 못하며 예민한 촉각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합니다. 결국 언론인과의 소통속 화두는 정직함입니다.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숨기고 싶으면 사실을 말하고 'off the record'를 요청해야 합니다.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만 'off the record'는 상대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있을 때 써야 합니다. 어떤 언론인은 'off the record' 역시 엠바고처럼 깨는 맛에 기자를 한다고도 하니까요.
당시에 소방관서 신설에 대한 기사와 관련한 사건으로 비온뒤의 땅처럼 마음이 조금 굳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새 가슴에서 돌 가슴으로 마음을 바꾸려 노력했습니다. 자신감있는 공보실 직원이 되고자 했습니다. 언론이라는 무대는 늘 경매사처럼 부침이 있고 복싱장 4각의 링처럼 승패가 갈리는 사건사고의 현장 리얼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훗날 국회의원을 하신 혁신적인 2003년도 경기도청 차명진 공보관께서 사건사고가 없으면 '금단현상'이 느껴진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20년전 좋은 기사를 언론에 팡팡 터트리고도 국장님의 진노로 마음 졸였던 제 자신의 약한 모습을 회고하면서 이제서야 작은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저자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경기도민회장학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