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신문이 2002년 6월에 창간한 이후 2020년 5월에 지령 4,720호를 기록했다. 지난 18년간의 기록이니 매년 평균 270번 신문을 발행한 것이다. 이를 위해 수 많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다름박질을 하였고 사진 기자들은 무거운 장비를 메고 동분서주, 새벽과 밤을 달려 순간을 포착했다. 편집회의는 밤늦게 끝나고 다음날 취재를 걱정하면서 늦은 퇴근을 했다. ‘창룡문’이라는 코너는 경기신문이 수원 화성의 창룡문 인근에 자리하면서 조선시대 정조의 개혁정신과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그 기초에 깔고 시작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 경기도청 기자실 옆 대변인실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경기신문의 창간을 지켜보았다. 1988년 지방언론 창간 해에도 공보관실에서 기자실에 도정 홍보자료를 배포하는 일을 담당했었기에 언론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이후 사옥을 장안구청 건너편 지방행정동우회관 3, 4층으로 이전하였다. 아마도 창룡문(동문)과 장안문(북문)을 바라보는 각도는 대략 30도 정도로서 본 코너의 제목을 ‘장안문’으로 개칭해도 좋을 듯 싶다. 무취불귀 정조가 한양에서 화성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하고 축성 당시 행궁을 짓고 북쪽의 문은 당시 조선
경기도행정역사관은 경기도 인재개발원 안에 있다. 수원시 장안구 경수대로 1150번지 광교산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은 아니지만 1960년대 행정자료를 볼 수 있으므로 초중생 부모들에게 방문을 권고한다. 서울 광화문에 있었던 경기도청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볼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도지사 발령장은 마치 조선시대 경기도 관찰사에게 내리는 교지와도 같다. 1960년대 공무원들이 쓰던 책상과 서류, 타자기, 직인, 각종 공예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경기도와 해외 자매결연 도시에서 받은 기념품을 볼 수 있다. 경기도 기록관에서 수집하여 보관하고 있는 다양한 평태의 기록물을 활용하여 경기도의 역사를 반추해 볼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고 설명한다. 경기와 관련한 기록물중에 ‘경기도청’, ‘경기도의회’라는 동판을 보게 된다. 여기에 작은 정성과 공무원으로서의 스토리가 있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2006년 7월에 제32대 도지사에 취임했다. 인수위 기간중에 김문수 도지사는 도청주변의 철조망을 걷어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재임중인 2009년 3월에는 정문과 후문의 철문도 철거를 결정했다. 철거소식을 접하고 몇가지 의견을 도청 부서에 냈다. 문화재
등산로에서 700m 남았다는 안내판을 분명히 확인했는데 평지보다 산에서는 더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등산객들은 등산로 거리안내가 정확한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전문가 말씀이 산에서의 거리는 지상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란다. 그러니 가파른 산등성이를 오르고 내려가는 것은 온전히 등산객이 감당할 몫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걸어서 5분’은 지나친 주관적 표현이다. 남녀노소에게 차이가 있을 것인데 우리는 통상 자신의 기준으로 설명하게 된다. 등산길도 마찬가지로 본인에게는 멀고 남들에게는 가깝다. 정상이 얼마나 남았나 물으면 다녀온 등산객들은 ‘거의 다 왔다’고 답한다. 하지만 올라가는 등산객에게 정상은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등산로 거리표기 방식은 다양하다. 시군청에 따라 목표지점까지 남은 거리100m, 2㎞, 0.7㎞, 0.1㎞, 800m, 0.01㎞ 등 각양각색이다. 10㎞를 10,000m라고 쓰면 가늠이 어렵다. 초등학생 시절100m 달리기를 했다. 0.1㎞ 달리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짧은 거리는 m표기에 익숙하다. 그래서 거리표기 방식은 자동차 길을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의 법칙에 따랐으면 한다. 자동차가 출발하
다문화출신으로 보이는 청년이 화성특례시청 복도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본 동료 옴부즈만위원이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시청방문 목적을 물었습니다. 자동차세 납부를 위해 시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이 안내를 위하여 옴부즈만실과 같은 1층 세정과로 갔습니다. "이 분이 자동차세를 납부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침 입구에 서있던 주무관 2명 중 한사람이 신속하게 안내했습니다. "주소가 어디이신가요?" 남양읍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향남읍에 있는 만세구청 관할이었습니다. 대답은 간명했습니다. "만세구청으로 가세요!" 만세구청은 향남읍에 있습니다. 20km쯤 떨어진 곳입니다. 이 대목에서 민원처리는 완벽하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뒷편에서 팀장이 걸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일행을 건너편 징수과로 안내했습니다. 우리 두명의 옴부즈만은 이쯤에서 안내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팀장의 민원안내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자동차세는 그 구조와 내용이 간명합니다. 세금이 부과되었는데 납부시기를 놓쳤을 것입니다. 고지서가 집으로 배달되었는데 수령하지 못하였거나 인터넷을 통해 모바일로 전송된 것을 아직 납부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동차세는 세금을 관리하는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차를 좋아해서 호를 다산(茶山)이라 하였고 한강을 의미하는 열수(洌水)라고도 했다. 혁신군주 정조(1752~1800)는 10살 후배 정약용을 중용했다. 다산은 정조를 보좌하면서 한강에 배 다리를 건설하고 1793년 31세 나이에 화성을 설계했다. 현재의 경기도청이 자리한 팔달산에 화성을 축성하는 공사를 총괄했다. 거중기라는 과학적 장비를 활용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모두가 잘 아는 이야기다. 다산은 평생동안 저술에도 힘을 기울여 492권을 집필했다. 이중 ‘일표이서’라 불리는 경세유표, 흠흠신서, 목민심서를 통해 군주권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내용으로 하는 왕권강화론을 제시했다고 한다. 경세유표(1817년)는 행정기구의 개편을 비롯한 관제, 토지제도 등 모든 제도의 개혁원리를 제시한 정책서이다. 흠흠신서(1819년)는 저술한 형법서다. 죄수에 대해 신중히 심의하는 欽恤(흠휼) 사상에 입각해 재판하라는 뜻으로 관리들이 참고 할 수 있도록 지은 책이다. 목민심서는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해배(解配)되던 해인 1818년에 완성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해 치민(治民)과 관련된 자료를 뽑아 수록함으로써 지방관리들의 폐해를 제
사다리는 사람의 키를 넘는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도구로서 긴 세로막대 2개에 짧은 가로막대를 여러개 연결하여 지붕이나 높은 다락장에 걸치고 손과 발로 올라가는 도구입니다. 우리는 공사장에서 사다리를 이용하고 고급주택의 2층 다락방에 올라가고 멋지고 기능성 있는 사다리를 지인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직장생활에서는 종이 위에 사다리를 그리고 간식을 먹는데 요긴하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종이 사다리 위에 이름을 적고 그 아래에는 금액을 적은 후에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서 부서원들이 각자 내야 할 금액을 결정하게 됩니다. 대부분 부서에서 가장 젊은 직원이 빨강펜으로 사다리를 타고내려가서 도착한 금액을 발표하면서 즐거워하고 돈을 다 거출한 후 즉시 구내매점으로 달려갑니다. 부서장이 이 같은 사다리 간식을 즐기고 동참하는 부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아마도 업무능률이 오르고 소통도 원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반면 오로지 일하는데만 집중하라는 부서장은 사다리를 타서 돈을 모으고 간식을 사 먹는 시간에 일을 더하라면서 다그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느 부서가 더 효율적인 곳일까요. 그런데 사다리는 저녁 회식장에서는 더 요긴한 소통의 도구가 됩니다. 정말로 높은
대략 100년간 목재를 모아야 새로운 궁궐공사를 착공할 수 있었다. 지방에 근무하는 관리들은 궁궐을 짓는데 쓰일 목재를 마련해 한양으로 보냈다. 숭례문을 복원할 때에도 나무를 베기 전에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언론에서 본 기억이 있다. 충분한 목재가 모이면 궁궐공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공사를 시작한 대목장이 급하게 집으로 돌아와서 머리를 싸매고 누워버렸다. 큰 일을 하던 집안의 기둥이 병석에 누웠으므로 온가족이 크게 놀라고 걱정을 했다. 가족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픈 이유를 말하지 않았지만 나이어린 막내 며느리가 지속적으로 재롱을 부리면서 시아버지가 아픈 연유를 물었고 이에 시아버지는 네가 알아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만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그 이유를 말했다. 그 사연은 100년 동안 역대 왕과 관리들이 모아온 목재중 갯수가 가장 많은 석가래의 길이에 착오가 생겨서 설계보다 짧게 잘랐다는 것. 그래서 3족이 죽게되는 멸문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시아버지의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크게 놀랐다. 하지만 막내 며느리는 태연하게 말했다. 짧게 잘랐다면 다시 연결하면 될 일라 말했다. 대목장은 공감가는 말로 받아들이고 급하게 현장으로
2016년 8월에 손예진, 라미란, 박해일 등 유명배우가 출연한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했다. 남양주시 공무원들이 덕혜옹주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덕혜옹주의 묘가 남양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는 1989년 같은 해에 별세했다. 덕혜옹주는 4월 21일, 이방자 여사는 4월 30일에 별세해 남양주 금곡에 영면했다. 남양주시 공무원들은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한 뒤 소감문을 모아 자료집을 내고 이를 영화사와 문화단체 등에 배포했다. ‘슬프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인 만큼 덕혜옹주를 기억하고 덕혜옹주의 묘가 남양주에 있는 것을 알리고자’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영화사와 출연 배우들에게도 보냈던 것이다. 영화 상영 이후 남양주시는 덕혜옹주 묘역 진입로에 홍보물을 세웠다. 문화재청 왕릉관리사무소는 덕혜옹주묘역~영친왕 묘역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조선 27대 왕릉 사진과 연혁이 적힌 판넬을 전시했다. 시 공보실에서는 이후에도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이어갔다. 언론의 보도를 보고 수도권에서 청소년, 어른할 것 없이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왕릉관리사무소에서 별도의 문화해설사를 배치해 주었다. 1년이 지난 2017년 5월에 문화재관
일기를 쓰고 계신가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아뇨”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기를 안 써본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학창 시절 방학 숙제로 일기쓰기가 있었으니까요. 방학하고 하루, 이틀 정도까지는 쓰다가 안 쓰고, 개학 2~3일 전에 몰아쓰기했던 기억이 있는 분들 많으실겁니다. 지금이야 인터넷으로 날씨를 찾아서 기록하면 되지만, 그 시절에는 정확하지도 않은 자신과 부모님의 기억을 더듬어 날씨를 기록하곤 했습니다.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가 일기 숙제를 받으면 아마도 비슷할 것 같습니다만… 사전에서 일기를 찾아보면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소재로 가볍게 쓴 글(나무위키)’이라고 설명합니다. 한자로 풀어도 하루의 기록이니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 그리고 당시 느꼈던 감정 등을 적어두는게 보통입니다. 일기까지는 아니어도 그날 만났던 사람에 대한 특징 그리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그리고 특별한 일 등을 간단하게 메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일기에는 어떤 일을 기록하고 싶으신가요? 며칠전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은 과거 교통사고로 인해 사고 이후 잠을 자고 나면 하루의 기억이 모두
최근까지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언론기고, 여행기고문을 내용으로 꾸준히 수필집을 출간해온 남양주시 이강석 (전)부시장이 71번째로 수필집 ‘왕과 사는 백성들’을 출간했다. 이 수필집은 최근에 개봉된 영화 “왕과사는 남자”를 보고 느낀바를 적은 후 곧바로 영화의 배경이 된 영월군의 청령포와 장능을 방문한 소감을 합쳐서 출간했다. 그는 영화에서 백성과 단종임금 사이를 오가는 밥상은 조선의 정치와 이 시대의 정치에서 공감할 수 있는 왕과 정치인의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그릇이라 평가했다. 동시에 왕의 통치는 백성에 기초하고 현대정치 역시 국민을 기초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씨는 영화를 보면서 촌장 엄흥도가 왕의 목에 건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에서 큰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고 섬세한 배우들의 연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bookk.co.kr 출간 184쪽 8,000원> https://bookk.co.kr/bookStore/699eaf39d81a1af19e8f8fad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