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돌이나 쇠붙이로 만든 농기구에 부착된 나무로 만든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처구니가 없는 말을 "참으로 황당하다'는 의미에 쓰이니 그 사연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일상에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관공서 시무식에서 사회자가 '국기에대한 경례!!!'라 멘트를 하였는데 단상에 태극기가 준비되지 않은 경우를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다른 일들이 다 준비되었지만 아주 사소하거나 간단한 부분에서 실수가 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海外旅行(해외여행)을 위해 1달 이상을 준비하고 점검하고 항공권, 숙박, 여행지 방문 등을 예약하였는데 당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旅券(여권)을 집 화장대 위에 두고 왔거나 유효기간이 부족한 경우도 어처구니가 없다고 합니다. 상가에 들렀다가 다시 예식장에 혼사를 축하하러 갔는데 상가의 검정 넥타이를 그대로 매고 간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느 행사장 뉴스를 보니 자신의 정당 명칭이 새겨진 스카프를 목에 매었는데 거꾸로 글씨가 보이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사냥꾼이 사냥개 한 마리를 구해서 강가로 사냥을 나갔는데 총을 쏘면 손살같이 물오리를 물어온다. 그 과정이 어찌나 빠른지 물 위로 달려갔다가 다시 물위로 뛰어온다. 아주 신기한 일이므로 사냥꾼은 친구를 불러놓고 다시 사냥을 하면서 사냥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참 빠른 모습을 자랑하자 친구가 말했다. " 응, 저 개는 수영을 못하는군!!!" 우리는 살면서 자신이 만들었거나 속해있는 조직의 틀을 가지고 세상의 모든일을 보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오리를 사냥할 때 사냥개는 반드시 헤엄쳐서 다녀와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만 가지고 보면 물 위를 나르듯이 뛰어 다니는 사냥개를 수영도 못하는 수준 떨어지는 강아지로 평가하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린이들의 대화 내용을 하나 더 소개한다. 첫 번째 아이의 삼촌은 해군을 다녀왔는데 풀장에서도 수영을 못한다며 불평이었다. 두 번째 아이가 말했다. “우리 삼촌은 공군인데 전혀 날지를 못해!!!”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60 노인이 밤마다 꿈마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고승을 찾아가 하소연을 합니다. 스님, 저는 밤마다 꿈속에서 도깨비가 찾아와 온몸을 때리므로 소스라체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면 식은땀이 흥건하고 잠을 잔것 같지가 않아 많이 힘이 듭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스님은 생년생시를 짚어 보시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십니다. 늘 누구나 그러하듯이 찾아간 노인은 한무릎 더 다가가서 그 연유와 해결방안을 일러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신 후 몇가지 處方(처방)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선 집에 내려가서 주변의 모든 나뭇가지며 빗자루며 부지깽이 등을 치우라 하십니다. 그리고 산 중턱 억새밭에 가서 아주 가늘고 긴 억새 속가지를 108개 모아서 꽁꽁 묶은 것을 10개 정도 준비하여 대문이며 방문 근처 방안 등에 세워두라 일렀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라 하십니다. 노인은 스님의 당부대로 준비하고 잠자리에 들었고 그날 밤 꿈속에도 역시나 도깨비가 나타나 이리저리 몽둥이 될 만한 것을 찾아다니다가 전에 쓰던 막대가 없으므로 스님의 말씀대로 만들어 둔 억새풀 속가지 묶음을 몽둥이 삼아 또다시 노인을 수차례 때리고 사라졌습니다.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두 번 사표를 썻습니다. 발령 받은지 1개월만에 서무에서 '축산&양정'으로 부서가 변경된 것에 대해 요즘 말로 左遷(좌천)된 것이라는 생각에 사표를 내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은 출근하지 않았고 그 다음날 출근해서 몸이 아파 못나왔다 말씀드리고 새로운 부서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처음 공무원에 발령을 받아 면사무소 총무계 서무담당이 되었는데요, 당시에는 주변의 선배들이 업무를 가르쳐 주려 하지 않았으며 그냥 초임 발령나는 날부터 자신들의 수준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염소새끼는 태어나자마자 우리 안을 마구 뛰어다니고 젖을 먹고 성장을 합니다만 공무원 초임자가 무슨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를 모르는데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총무계장님이나 회계주사님은 어렵기만 합니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습니다. 행정전화 하나가 있는데 2번 울리면 매송, 3번 찌르릉하면 비봉, 4번 찌릉찌릉하면 남양, 5번 소리를 치면 마도입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떠들어 대면 매송, 비봉, 남양, 마도에서 전화를 들고 이름을 댄 후 기다립니다. 일괄 전언통신문을 보내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서무가 하는 일이 무엇
[2016년 1호봉 신규] 청량리 학원 영등포 학원에서 컵밥을 먹으며 밤을 지새워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3修(수)만에 남양주시 지방공무원에 합격하였고 아슬아슬한 면접이라는 밧줄을 타고 이 자리에 도착하였습니다. 발령을 받는 것입니다. 합격 한 후 5개월을 꿈같이 보내고 오늘 발령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래서 행복하고 신이 납니다. [1977년시보 1호봉] 1977년5월16일 오전에 화성군청 내무과에서 줄을 섭니다. 14명이 군대식으로 열병을 한 것 같습니다. 군대는 가보지도 않은 까까머리 밤송이 신규 공무원에게 제식을 가르치려 하는 듯 여겨집니다. 내무과장이 캔트지 발랑거리는 종이짱을 들고 행정계장은 어깨를 수구리고 엄청난 교지를 읽는 都承旨(도승지)의 심정으로 발령장을 읽어 냅니다. 임용장 이강석 지방행정서기보에 임함. 1978년 5월15일까지 시보근무를 명함. 1호봉을 급함. 비봉면 근무를 명함. 1977년 5월16일 화성군수. 한글로 적힌 것을 한 글자도 빼지 않고 쫄깃하게 읽어줍니다. 내무과장은 낭송을 기다렸다가 어깨를 크게 움직이며 얇은 종이짱을 신규 공무원에게 넘겨줍니다. 근엄하고 엄숙하고 긴장감이 극에 달하니 숨을 쉴수 조차 없습니다.
1977년 흑백TV 자바라 문을 열다 고등학생 시절 명화극장, 토요명화 시간에 ‘빰빠빠바 빰빠바바’하면서 사자가 나타나고 별로 그려진 원을 따라 한번 울부짓고 나면 영화가 시작되고 에베레스트 산 정상의 사진이 원형으로 나타난 후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첫 장면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2년 먼저 TV를 구입하시고 안테나를 설치하신 이웃집 아주머니께서는 밤 10시경에 마치는 연속극만 보시고 TV를 끄십니다. 관객들은 눈치껏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말로 보고 싶었던 명화의 예고편만 잘 알고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잘 모르고 있는 이유가 설명되는 것입니다. 1977년 두 달치 월급을 모으니 흑백 TV 한 대를 살 수 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늦게 안테나를 세운 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1978년에도 1979년에도 토요명화, 명화극장은 계속되었습니다. 일요일 낮에는 어김없이 미국에서 撮影(촬영)된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타잔, 600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등 20대 청년이 보아야 하는,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늘 공급되었습니다. 그리고 형사콜롬보의 코트와 집요하게 범죄를 是認(시인), 自認(자인)하라는 언저리 질문에 진이 빠지기도 했습니다.
공무원 초기인 1978년경이면 정부의 추곡수매가 전략적으로 추진되던 시기입니다. 즉 정부가 벼를 수매한 후 양곡가격 안정을 위해 성수기에 방아를 찧어서 출하를 하는 이중곡가제가 실시되던 때였습니다. 요즘 2014년 현재에는 오히려 추곡수매를 더 받아달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정에 있습니다. 양정과는 이제 아주 작은 계로 축소되었고 많은 부분 민간에 위임된 듯 보입니다. 그런데 그당시에 아마도 양곡특별회계에 자금이 부족하였나 봅니다. 외상수매라는 제도가 생겨나서 군청에 불려가서 회의를 하고 수매를 시작하였는데 지나친 개인적 생각으로 일에 큰 시행착오가 발생하였습니다. 정부당국은 10월에 받은 벼(추곡수매) 20가마 중 10가마는 현금, 나머지 10가마는 외상으로 처리하였는데 이 외상의 정확한 시점에 대한 저의 이해가 부족하였습니다. 합리적인 생각으로 독자적 판단한 저는 10월수매분중 외상은 11월에 현금을 지급하고, 11월 외상수매분은 12월에 현금을 준다고 하고 수매를 하고 이른바 백지수표를 발행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군청에서는 10월, 11월, 12월 수매중 외상분은 무조건 다음해 1월에 현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군청 방침이
1984년경 행정기관 사무실중 발간실은 기계음과 종이 돌아가는 소리가 겹쳐 나오는 한편의 오케스트라 또는 오페라 공연장이었다. 하지만 요즘 발간실은 대부분이 기계화되었고 장비도 발전해서인지 클래식 연주처럼 조용, 고요하다. 그래서 36년 전 발간실의 모습을 청사진 실루엣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발간실의 주 기능은 갱지에 공문서를 인쇄하는 일과 각종 회의 자료를 만드는 것이었다. 우선 각 부서에 보낼 문서를 인쇄하여야 하는데 공문서 표지는 각 부서의 문서시행 담당자가 청색의 원단에 타자를 쳐서 가져온다. 그리고 첨부될 문서는 발간실에서 인쇄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초기에는 가리방과 타자가 공존했는데 일본어인 듯 한 가리방은 말미에 언급한다. 우선 청색 타자 원단에는 미세한 그물망 같은 것이 있고 양초 성분의 막이 있는데 여기에 타자를 하면 글씨가 새겨지고 인쇄 잉크를 문지르면 갱지위에 검정색 글씨가 새겨지는 것이다. 요즘 말하면 실크인쇄 원리와 비슷하다. 그리고 첨부되는 지침서, 회의서류 등은 발간실에서 청타를 찍어 교정을 본 후 인쇄를 거친다. 청타는 앞의 공문서 작성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데 글씨체가 打字(타자)체와 다르다. 인쇄활자를 찾아서 신문처럼 찍
▣ 아재 조크 어느 사장님이 컴퓨터를 열심히 치다가 비서를 불렀다. 사장 : 김 비서!!! 당신 알고 있는 새 이름을 말해 보아라. 비서 : 예 사장님, 비둘기, 까치, 참새가 있습니다. 사장 : 야 그것들 말고 흔하지 않은 새 이름을 알아봐라. 비서 : 왜 그러십니까? 사장님. 사장 : 글쎄 내가 새로운 문서를 저장할 때마다 '새 이름'으로 저장하라고 하는데 내가 아는 새 이름은 다 쓰고 없다. 어찌하면 좋은가?
▣ 공(○)치는 날 외상을 긋는다는 말은 1900년대에 선술집에서 잔술을 외상으로 거래하면서 생겨난 외상장부를 지칭한다고 했습니다. 글을 모르는 선술집 주모는 외상으로 잔술을 마시고 모아서 갚아주는 신용있는 거래자의 특징을 벽에 그렸습니다. 코가 큰 사람, 얼굴에 점이 있는이, 키가 큰 작업반장 등 각각의 특징을 벽에 그리고 그 옆에 외상술 숫자를 막대로 그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상을 긋는다고 표현합니다. 요즘에는 신용카드가 외상을 대신하고 있으니 산골마을 가게가 아니라면 외상은 없을 것입니다. 외상장부를 대신한 것은 대형 벽걸이 달력이었습니다. 1960년대 공사장의 함바집에서는 이 달력에 급식인원수를 기록하였습니다. 글자와 숫자를 쓰는 함바집 주인은 달력 여백에 아침, 점심, 저녁에 급식 숫자를 기록하고 열흘 한달 단위로 외상급식 대금을 정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비가 오면 공사장에서 일을 못하므로 함바집 급식도 없으니 달력의 그날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렸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博物(박물)장수들도 글을 몰라서 거래처 시골집 대문 문설주에 자신만의 祕標(비표)로 외상 금액과 다음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