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집필중
흑인마을 청년들이 아침 일찍 일터로 가는 길에 물살이 빠른 여울목을 건너야 했다. 이때 강둑에 던져진 검은 돌을 하나씩 안고 가는 게 아닌가. 그 이유가 궁금했던 선교사들이 묻자 청년들은 체중을 늘려 물살을 이겨내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물살을 견디기 위해 체중을 늘려야 하는데, 마침 주변에 둥근 돌이 많아 잘 활용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청년들이 가슴에 안고 가는 돌은 그 사람의 체중에 반비례했다. 즉, 체중이 가벼운 청년은 무거운 돌을 들어야 하고, 체중이 좀 나가는 경우에는 가벼운 돌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살펴본 결과 자신의 체중이 50kg 나가는 청년은 30kg 정도 나가는 돌을 선택하고, 60kg의 체중이라면 20kg의 돌을 안고 강을 건너고 있었다. 대략 80kg의 무게를 확보하고 강을 건너는 셈이다. 흑인청년들이 강을 건널 때 검은 돌을 안고 가는 모습에서 인생사에 누구나 걱정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맞지 않는 상사를 만나기도 하고 불편한 부하 직원을 모시고(?)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가정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모두 어려운 일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재율 부지사님이 퇴임하신단다. 그냥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었다. 이 부지사님은 퇴임하지 않을 줄 믿었다. 늘 경기도정의 중심에서 일할 줄로만 생각했다. 축구 경기로 말하면 풀백과 링커였다. 행정이 어려우면 풀백이 되고 도정이 느슨하면 센터포워드로 뛰었다. 숱한 기자들의 표현대로 ‘뼛속까지 경기맨’ 이재율 부지사가 퇴임을 한단다. 5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재율 ‘데자뷰’처럼 어린 9살 소년의 마음속에 그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흰 브라우스에 검은 스커트를 입은 우리의 여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동네 누나들과는 다른 의상이었고 얼굴도 달랐다. 그래서 여자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선생님은 매운 고추장, 시큼한 된장을 먹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설악산 사슴이 이슬만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선생님은 그냥 흰 쌀밥, 시금치나물, 순두부 등 예쁘고 흰 음식만 먹을거라 상상했었다. 그래서 이재율 부지사도 어려서 만난 초등학교 ‘사슴 여선생님’처럼 절대로 나이 들지 않고 퇴직하지 않고 경기도청에서 아주 오래도록 일할 줄 알았다. 하루하루를 1년처럼 일해 온 분이
다문화출신으로 보이는 청년이 화성특례시청 복도에서 서성이는 모습을 본 동료 옴부즈만위원이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시청방문 목적을 물었습니다. 자동차세 납부를 위해 시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둘이 안내를 위하여 옴부즈만실과 같은 1층 세정과로 갔습니다. "이 분이 자동차세를 납부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마침 입구에 서있던 주무관 2명 중 한사람이 신속하게 안내했습니다. "주소가 어디이신가요?" 남양읍에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향남읍에 있는 만세구청 관할이었습니다. 대답은 간명했습니다. "만세구청으로 가세요!" 만세구청은 향남읍에 있습니다. 20km쯤 떨어진 곳입니다. 이 대목에서 민원처리는 완벽하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뒷편에서 팀장이 걸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일행을 건너편 징수과로 안내했습니다. 우리 두명의 옴부즈만은 이쯤에서 안내를 마치고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팀장의 민원안내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자동차세는 그 구조와 내용이 간명합니다. 세금이 부과되었는데 납부시기를 놓쳤을 것입니다. 고지서가 집으로 배달되었는데 수령하지 못하였거나 인터넷을 통해 모바일로 전송된 것을 아직 납부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동차세는 세금을 관리하는
2016년 8월에 손예진, 라미란, 박해일 등 유명배우가 출연한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했다. 남양주시 공무원들이 덕혜옹주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덕혜옹주의 묘가 남양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영친왕의 부인인 이방자 여사와 덕혜옹주는 1989년 같은 해에 별세했다. 덕혜옹주는 4월 21일, 이방자 여사는 4월 30일에 별세해 남양주 금곡에 영면했다. 남양주시 공무원들은 영화 ‘덕혜옹주’를 관람한 뒤 소감문을 모아 자료집을 내고 이를 영화사와 문화단체 등에 배포했다. ‘슬프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 역사인 만큼 덕혜옹주를 기억하고 덕혜옹주의 묘가 남양주에 있는 것을 알리고자’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고 영화사와 출연 배우들에게도 보냈던 것이다. 영화 상영 이후 남양주시는 덕혜옹주 묘역 진입로에 홍보물을 세웠다. 문화재청 왕릉관리사무소는 덕혜옹주묘역~영친왕 묘역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 조선 27대 왕릉 사진과 연혁이 적힌 판넬을 전시했다. 시 공보실에서는 이후에도 지속적인 홍보활동을 이어갔다. 언론의 보도를 보고 수도권에서 청소년, 어른할 것 없이 관광객들이 찾아왔다. 왕릉관리사무소에서 별도의 문화해설사를 배치해 주었다. 1년이 지난 2017년 5월에 문화재관
공직 정년후 신규 공무원을 위한 강연에 나설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대차이가 나겠지만 공직의 기초, 기본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강의에 나선 바이었습니다. 공직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대 공무원이 60넘은 40년 세대차이가 나는 강사의 “나때커피”같은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은 바입니다. 그런데 강의를 마치고 집에왔을 때 담당 인재양성팀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늘 강의에서 말한 내용중 이른바 ‘시보떡’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신규공무원이 되어서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 내복을 사드리는 전통이 있음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치에 맞는 이야기의 전개였는데 그 다음 강의의 소재는 1년 또는 6개월 공무원생활을 하면 ‘시보해제’가 되고 그리되면 부서의 선배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한 후에는 언론에 신경을 덜 쓰게되었고 그래서 현안중 예민한 ‘시보떡 사건’을 인지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 즈음 서울시의 어느 구청에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공무원에 합격하여 받는 월급으로 와병중이신 두분 부모님을 봉양하는 젊은 주무
‘판장모’란 써레질한 논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설정하고 그 안에 모짐을 넣은 후 한 명씩 들어가 모내기를 하는 농사일을 말한다. 아주 고달픈 방식이다. 좁은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홀로 다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모내기 초보자에게는 이중고의 부담을 주는 일이다. 반면 작업속도가 느린 초보자는 못짐이 모자라면 여러 발짝 후진해 가져와야 하고 남아도는 경우에는 일일이 뒤편으로 이동시키면서 모내기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판장모 이야기를 현대 행정기관의 어느 부서에서 견줘 보고자 한다. 어느 기관이나 과 단위 부서에는 과장과 4명의 팀장이 있고 각 팀에는 대략 6명씩의 팀원이 근무한다. 각 팀의 하는 일이 다른 듯 보이지만 과장으로 올라가면 모두가 ‘우리 과’의 일이다. 그러니 과장은 판장모 작업을 위해 4개의 줄을 그어 놓고 4개의 팀에 각자의 업무를 부여하고 진행을 관리하게 된다. 그러니 과장이 일 잘하는 부서만 격려하는 것은 맞지 않고 일을 못 하는 부서를 질책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과장은 4개팀 전체의 고른 운영을 통해 과 전체의 원활한 진행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앞서 나가는 팀은 격려하되 이보다 늦은 부서가 있으면
“정부의 동두천 지원은 의무이자 책무, 동두천시를 응원합니다.” 최근 동두천시의 경제적 어려움을 알리는 언론 보도를 보면서 동두천시와의 인연을 회고해 봤다. 1997년 2월13일 동두천시청에 발령받았고 당시 방제환 시장으로부터 생연4동장에 보임됐다. 처음에는 빈자리 공보실장을 채우는 평범한 인사가 예정됐는데 당시 인사 담당 과장의 지인인 도청의 선배 사무관이 “이 사람은 과장보다는 동장에 어울린다”는 전언을 듣고 시장과 협의해 생연4동장에 보임한 것으로 안다. 1998년 경기 북부에 큰 수해가 발생했고 동두천시민들도 폭우 피해를 입었지만 군, 학생, 전국 단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극복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낸 감사편지가 국방일보에 실린 바 있다. “국토방위를 위해 연일 바쁘신 와중에서도 이번 수해복구를 위해 헌신적으로 도와주신 국방부장관님 이하 장병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경기도 동두천시청 생연4동장 이강석입니다....병사들은 시민에게 희망의 불빛이었습니다”로 마무리됐다. 다른 언론 기고문에는 걸산마을에 대한 글도 있다. ‘시간마저 멈춘 듯 평화로운 걸산마을’이라는 제목으로 동두천의 특별한 마을을 소개했다. “동두천시 보산동에는
『옴부즈만(Ombudsman)』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민원을 접하고 이를 풀어내기 위해 공무원 조직의 여러부서를 방문하거나 합동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우선 옴부즈만은 스웨덴어로 남의 일을 대신해서 해주는 대리인(Agent)이라는 뜻입니다. 옴부즈만은 시민의 대리인으로 행정에 대한 시민의 고충을 접수하여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를 조사하여 필요한 경우 시정조치 및 의견 표명함으로써 시민과 행정기관 양자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간이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임명된 사람 또는 비사법적 시민권익 보호제도를 말합니다. 중요역할은 시민권리 구제 기능을 수행하는데 △행정의 민주적 통제 기능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 기능 △행정개혁 기능 △갈등해결을 위한 조정 기능입니다. 고충민원이란 △위법·부당한 처분으로 인한 민원 △소극적인 처분으로 인한 민원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주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민원불합리한 행정제도로 불편 또는 부담을 주는 사항에 관한 민원 등입니다. 106만 시민을 모시는 화성특례시는 시청 4층에 옴부즈만 사무실을 설치하고 공직에서 일한 경력자 5명을 위원으로 위촉받아 근무하고 있습니다. 민원을 상담하고자 하는 시민을 직접 방문하거나 화성시홈페이지 시민참여→시민옴부즈
<외 밭에서 신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고쳐 쓰지 말라>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는 글이 있다. 풀이를 보니 의심받기 쉬운 혐의를 말하며 “외 밭에서 신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 관을 바로잡지 않는다”로 풀이된다. 지난주에 지인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고향 조상님 묘역에 들러 보살피고 비탈길을 내려오니 밭 뚝에 사과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에 사과나무가 없었는데 50년이 지나니 풍성하게 붉은 사과를 매단 나무가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탐스러운 사과를 직접 볼 기회가 없었으므로 밀착해서 사진을 3컷 찍고 몇 발짝 걸어가서 선채로 인터넷 카페에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오비이락(烏飛梨落)이랄까. 사과밭 주인인 초등 1년 후배가 트럭을 운전해 눈앞에 정차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했다. 정말로 일부러 시간을 맞춰도 이렇게 정확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차 안에서 빼꼼 내다보므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안부를 묻고 차는 떠났다. 그런데 묘하게도 ‘사과나무를 잘 키웠다’는 인사말을 했다. 차를 운전해 후배가 떠난 후에 머쓱한 상황이 찾아왔다. 사과나무 아래에 경고문을
요즘 젊은이들은 늘 핸드폰을 손에들고 눈앞 30cm를 유지합니다. 초등학생때 선생님은 교과서를 눈앞 30cm에 두고 읽으라 하셨지 스마트폰을 그리하라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1965년 초등학고 1학년때에는 스마트폰이 없었고 가정전화도 없었고 학교의 교장선생님 교무실에도 전화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 학교앞을 지나가는 군인들중에 몇명이 무전기를 들고 가거나 등에 안테나가 달린 등짐을 지고 행군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늘 가방을 메고 앞을 보면서 걸었고 더러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은 교과서를 들고 읽으면서 걷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들어선 전철안에서 책을 읽거나 통학버스 안에서 교과서를 보고 시험공부를 하는 중고생을 보는 것이 보통의 젊은이, 학생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해 어느날부터 어른들이 폴더형 핸드폰을 들고다니고 얼마지나서는 모두가 납짝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들고 그 안에 비춰지는 글과 그림을 보고 있습니다. 버스와 전철안 승객들의 손에 들려있던 책은 스마트폰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 작은 폰을 두손으로 부여잡고 두눈을 가까이 대고 내용을 읽고 있습니다. 손가락이 참으로 빠르게 움직이면서 그림을 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