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고위 관리가 임명될 무렵이 되면 각 언론에 하마평이 무성하게 오르내린다.
하마평이란 새롭게 관직에 오를 후보들에 대한 세간의 평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하마평의 기원이 재미있다.
예전에는 궁 앞에 모든 관리들이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 군주가 머무는 곳이니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관리들이 내려 궁으로 들어가고 나면 남은 마부들끼리 쑥덕공론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리가 판서가 된다네그려” “예끼 이 사람아! 이번에는 우리 나리 차례야” 등등.
이렇게 하마비 앞에서 이루어진 세평이라고 해서 하마평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 코너에서는 공무원 인사철을 앞두고 경기도에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동두천시, 오산시, 남양주시에서 부단체장을 역임한 이강석 전 부시장이 직접 겪은 인사철 에피소드 몇가지 조언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옛날 어르신 조크중에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큰소 자리를 대신한다"고 했고, "생선장수 광주리에서는 큰 생선만 나온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매년 해가 바뀌면 소가 나이를 먹고 일잘하는 소가 물러나면 옆에서 경력을 쌓은 소가 그 일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다수의 비슷한 생선이 담긴 광주리이지만 가는 집마다 생선장수는 광주리에서 제일 크게 보이는 생선을 집으들면서 흥정을 하게 된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1990년대 경기도청 각 부서의 6급 차석은 "차관"이라 불렀고 그 의미를 풀어보면 "차기에 사무관이 될 공무원"을 의미한다 했습니다. 당시 내무부에서는 시도에 공문을 보내서 함부로 "차관"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공식적으로 문서지시를 한 바가 있습니다. 실제로 전oo선배님은 6급 당시부터 품격이 중후한 분이었습니다. 7급 후배와 함께 내무부가 있었던 광화문 청사13층에서 업무를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중 인원이 늘어나 공간이 비좁아졌습니다. 이제 7급 후배가 말했습니다. "차관님! 이쪽으로 서시지요". 불편한 차석을 걱정하여 한 말인데 그 안에 함께 있었던 정부의 국가공무원 다수가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 자리를 피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일부 시청발 기사에서 실장, 국장, 과장 인사발령이 보입니다만 다수의 공무원들이 긴장하는 경기도 실국장과 시군의 부단체장 인사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선 상반기 정기인사에 대해 깜깜이 소식이고 경기도공무원노조의 인사발령게시판을 들어보니 4월경에 올라온 명단이 덩그라니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주간단위로 국장발령, 과장발령, 사무관 발령, 주무관 발령으로 이어져서 1개월동안 인사발령을 마무리한 사례가 있습니다만, 요즘 경기도인사는 행정안전부 승인을 받는 과정도 없으니 어느날 전격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더구나 요즘에는 에너지를 아낀다고 발령장을 주지 않고 공문시행으로 대체합니다만 이는 반대해도 좋을 일입니다. 공무원이 부서를 이동하고 조직개편으로 새롭게 일하는 분위기를 일신한다는 의미에서 승진이 아닌 일반 전보의 경우에도 도지사의 직인을 찍은 멋진 발령장을 대상 공무원에게 교부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타시도의 경우에는 조선시대 과거시험 합격자에게 주듯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들어서 발령을 합니다. 제작단가가 1두루마리당 2만원정도 들었을 것입니다만, 현재 경기도와 시군의 발령장 하드폰 원가는 3천원정도로 추정합니다. 발령대상자는
흔히 철부지란 계절의 변화를 모르는자를 지칭합니다. 한여름에 두터운 옷을 입고있다면 계절을 모르는 ‘철부지’인 것입니다. 9급 신규공무원을 지나서 이제 막 공무원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면사무소 직원이 도청 직원으로 가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가 조차도 잘 몰랐던 이야기입니다. 그날 팔탄면사무소에서 경기도청 소속의 사업소인 농민교육원으로 발령을 받는 상황을 회고해 봅니다. 동동주에 살짝취했다. 면사무소 회의실 장의자에서 널부러져 단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이가 있다. 발로 뻥 차는 느낌이 들었다. 발령이 났단다. 아 1년여 만에 나도 고향인 비봉면으로 가는구나 했다. 도청발령은 생각하지 않는 터였다. 그런데 도청소속의 농민교육원으로 발령이 났다. 도청으로 가기전에 군청에 들러 전출 발령장을 받았다. 요즘에도 가끔 연락하는 이00선배가 내무과에서 대기중인 나에게 다가와서는 큰 소리로 ‘이서기 축하해여!’한다. 이분이 팔탄면 출신인데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축하하는가 묻자 “몰랐나?, 팔탄 출신 이서기가 도청으로 간다네!”했다. 일어서서 수줍게 인사를 하였다. 비봉출신이고 팔탄면에서 1년6개월 근무했다. 경기도청은 팔달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
요즘 공직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문제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갑질로 인한 피해는 당장 필드에서 갑질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고통이었고, 이를 지적하는 감사부서의 조사와 징계위원회의 논의 과정의 안타까움, 그리고 당사자가 조직으로부터 징계조치를 받은 이후의 긴 시간을 징계의 굴레를 쓰고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갑질에 대한 언론보도는 천인공노할 내용이어서 갑질의 피해가 크다는 생각에 공감을 하곤 했습니다만 조직내에서 논쟁이 되고 위원회에서 검토, 논의되는 갑질의 경우에는 갑질인가 아닌가의 경계선이 참으로 모호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일이 갑질이 되는구나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1980년대 공직사회라면 이같은 경우의 일들은 평범한 일상이었습니다. 과거 군대에서 밤 12시까지 몽둥이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은 더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지요. 사실 과거 공직사회의 모든 사무실에는 한두명 잔소리, 악담을 해대는 사무관 계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공무원들은 마음속으로 "저양반 또 시작이군!!!" 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데 게딱지 후펴파듯이 소속의 해당 공무원의 업무행태를 비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1960년대에 농촌에서는 ‘하다 못해 면서기라도 하라'는 말이 유행했다. 붓글씨는 아니어도 펜글씨를 잘 쓰면 면서기로 일하는 시절이었다. 지역의 유지가 면장을 하던 시절에 면장에게 부탁을 하면 글씨를 잘 쓰는가에 큰 비중을 두어 임시로 뽑아 쓰다가 잘 적응하면 이른바 정직원으로 채용했다. 당시 글씨가 중요한 이유는 타자기 보급전이었고 복사기는 물론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행정을 펜글씨로 쓰고 호적등본,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에는 '기재생략'이라는 고무도장이 가득했다. 또한 당시의 호적부에는 할아버지부터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가 바글바글했다. 아들이 분가를 신청해야 호적에 분리되었던 시절이다. 호적등본상 가족이 15명이나 되니 손자손녀 취업서류를 구비하려면 3일전에 예약을 해야했다. 신청을 받은 호적주임이 토요일, 일요일 여유시간에 따로 호적등본을 필사했다. 먹지를 대고 2부를 더 복제했다. 모든 일을 글씨로하니 글씨를 잘쓰면 보다 나은 보직으로 진급했다. 군청 시청과 도청의 공직에서 필체는 중요한 업무능력이었다. 인사계, 기획계, 예산계에는 명필 직원들이 발탁되고 수직승진을 거듭하여 간부가 되고 1992년 지방자치 이전까지 시장군수에 발탁 되었다. 그리고 정
화성군 비봉면사무소에 처음 발령을 받고 만난 분은 안 선배입니다. 선배는 당시 회계담당자로서 이강석과 김OO 서기보가 발령을 받고 온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군청에서 읍면에 발령대상자를 2~3일 전에 미리 공문으로 알린다는 사실을 당시에 신규공무원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군수님 발령장을 들고가서 인사하면 그제서야 발령사실을 아시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군청 공문이 면사무소에 왔을 것이고 남자 한명과 여성공무원 한 사람이 비봉면사무소에 발령된 것을 알았고 이름도 확인되었으며, 특히 이강석은 비봉면 자안1리 출신이라는 것도 파악되었던 것입니다. 이른바 본면 직원이 대부분이던 시절이니 이번에는 어느 동네에서 공무원이 오는가 하는 것도 궁금한 일이었습니다. 대략 비봉면사무소에는 25명이 근무했는데 23명은 본면 출신이고 인근의 면에서 잠시 발령받고 와서 근무하는 직원은 2명이내였습니다. 얼마후에는 다른 면에서 근무하던 본면 출신 공무원이 복귀하기도 하고 근무 중에 군대를 가거나 타 기관으로 전근을 가기도 했습니다. 안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발령 후 사무실에 출근을 하였고, 훗날 교사로 전공을 찾아간 강 선배의 후임으로 서무담당이 되었습니다. 저는 서무담당이
어느 기관이나 회사나 인사발령은 큰 관심사다. 드라마에서 보면 회사의 인사발령은 로비에 종이 몇 장 붙이는 것으로 발표된다. 사원들이 삼삼오오 기웃거리며 인사발령 A4 용지를 보면서 의외의 인물이 발탁되거나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의 영을 어긴 일로 해서 좌천되는 발령에 직원들이 호들갑을 떠는 장면도 볼 수 있다. 1980년대 공직사회의 인사발령은 하나의 커다란 잔치였다. 인사발령이 나면 잘된 사람 신나서 한잔, 오리알 된 직원 격려하느라 두잔. 그래서 관가 주변은 인사발령으로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하며 당시에 근무중인 강원도청에서 모 직원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200명 인사발령은 7억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주장한 바도 있었다. 인사작업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많은 나날을 지낸 후 어느 날 오후 사무실의 차임벨이 울리면서 인사발령은 시작된다. 그 당시 인사 담당자가 수없이 바뀌어도 인사발령 멘트는 변하지 않았다. “1987년 5월 30일자 인사발령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방송을 타는 순간 사무실은 물론 복도에 있던 직원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방송이 끝나는 순간부터 사무실은 분주해진다. 인사발령 나발을 부는 것이다. 인사발령지가 팩스를
'하마평'이라면서 공무원 승진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고 승진의 길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됩니다. 공무원 승진은 임박한 발령사항을 미리 염탐해보는 정도의 과정인 것이고 정작 중요한 일은 자신이 공직에서 어떤 태도로 일하느냐가 향후, 장차에 승진의 길이 빨리 열리는가 아닌가를 가늠한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시절, "라떼시절"을 소개해 봅니다. 이 시대의 공직환경에 걸맞은 것은 아닐지라도 기본의 틀은 동서고금에 틀림이 없는 고전읽기처럼 참고하시면 뼈가되고 살이되는 '된장찌개'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세정과에 근무하면서 조성범 지적계장님과 이화수 평가계 선배님 등 3명이 매일아침에 사무실 청소를 하고 구내식당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면서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명감, 종교의식처럼 아침마다 넓은 사무실 전체를 청소하고 차마시고 돌아오면 한분 두분 출근을 하십니다. 새벽을 서두르는 부지런한 새를 당할 수 없습니다. 부지런한 공무원을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사는 이치와 좌우명은 근면성실인데 여기에 더 보탬은 바로 부지런함입니다. 이후에도 공직생활을 하면서 늘 일찍 나갔습니다. 행사장에도 일찍 가고 사무실에도 서둘러 가고 약속장소에도 즈금 일찍 갔습니다. 도지사
대화기법을 제시한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금이 오르내린다 ▲훌륭한 말은 훌륭한 무기다 ▲오늘 생각하고 내일 말하라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길은 갈 탓이고 말은 할 탓이라 ▲유쾌한 대화, 유쾌한 말 ▲한 번 던진 말은 어디든지 날아간다. 舌禍(설화)의 의미를 사전에서 보면 연설이나 강연 따위의 내용이 법률에 저촉되거나 타인을 노하게 하여 받는 재난, 타인에 대한 중상이나 비방 따위로 받는 재난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세상사에서 말로 풀어낼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말로 인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더 많은 듯 보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의 빚을 갚는다는 말이 현대의 실생활에서 통하고 있습니다. 불협화음이 있을 때 일방이 먼저 진솔하게 신속하게 사과를 하면 해결되고 이전보다 敦篤(돈독)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인데, 서로 자존심을 앞세워 사과를 하지 않아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사례를 보았습니다. 공직에서 말을 잘해서 승진하고 출세를 한 경우가 있고, 말로 인한 舌禍(설화)를 입어서 공직발전에 후진기어로 밀려난 경우도 보았습니다. 한마디만 참고, 말의 강도를 조금만 낮췄다면 발생하지 않을 일인데 말을 과하게 해서 징계위에 올라가는 경우가
갑질이란 조금 우위에 있거나 고용관계 사주의 불공정한 근로관계를 지적하는 말로 시작된 듯 한데요, 그 상황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업무 추진과정에서의 작은 갈등과 논쟁조차 갑질이라는 무대에 올려놓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사회적인 처벌을 하기도 합니다. 기업체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인격적인 모멸감을 준 것이 단초가 되어서 사과를 하고 공직자가 업무 처리과정에서 좀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하고자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언어폭력이라며 갑질로 분류되어 처벌을 받은 사례도 많습니다. 더구나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수입원으로 하는 탤런트, 영화배우, 정치인은 ‘공인’이라 해서 사회통념에서 조금 벗어난 행동으로 공분을 사고 결국 공개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도 사회적으로 공격을 받을 일인가 하는 정도의 언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언론이 그처럼 끌고가는 경우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물이 허리위까지 차오르면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것처럼 사회적으로 비난을 하고 언론에서 반복하여 보도하면 이른바 대세에 밀리게 됩니다. 그러니 갑질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갑질이란 이 일을 이렇게 했으면 한다고 할 것을 ‘이렇게 밖에 못하나?’라고 해도 갑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