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고위 관리가 임명될 무렵이 되면 각 언론에 하마평이 무성하게 오르내린다.
하마평이란 새롭게 관직에 오를 후보들에 대한 세간의 평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하마평의 기원이 재미있다.
예전에는 궁 앞에 모든 관리들이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하마비(下馬碑)가 있었다. 군주가 머무는 곳이니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에서 관리들이 내려 궁으로 들어가고 나면 남은 마부들끼리 쑥덕공론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리가 판서가 된다네그려” “예끼 이 사람아! 이번에는 우리 나리 차례야” 등등.
이렇게 하마비 앞에서 이루어진 세평이라고 해서 하마평이란 말이 생겨났다.
이 코너에서는 공무원 인사철을 앞두고 경기도에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동두천시, 오산시, 남양주시에서 부단체장을 역임한 이강석 전 부시장이 직접 겪은 인사철 에피소드 몇가지 조언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도지사와 시장군수의 인사발령은 단체장의 권력중 가장 큰 힘을 가진 행정행위라고 봅니다. 인사발령을 거부하면 공직을 그만두고 집으로 가야 합니다. 인사발령은 논산훈련소에서 이발병, 목공, 석공 주특기를 데려가고 남은 자원을 보병으로 보내는 군대식이 아니라 100명을 100자리에 보내야 하는데 행정, 보건, 토목, 건축, 위생, 환경 등 다양한 직열이 있고 9급부터 4급까지 직급이 있는 공무원을 개개인에게 맞춰서 자리에 보내야 하는 고도의 과학과 수학적 고충을 내포한 사람배치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6급은 많은데 주사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마평 인사는 많은데 정작 발령은 쉽게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6월중에 상방기 부시장 인사를 해야하고 그 속에서 실국장이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연말인사는 더더욱 힘들어서 교육을 마치고 온 간부와 현재 근무중인 공무원중에 그만큼의 인원을 교육대상자로 지정해야 하는 더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사발령이 나거든 그대로 수용하고 잘된 인사라고 평가해야 합니다. 누구도 이만한 인사배치를 잘 할 수 없으니까요. 더구나 그 와중에 챙겨야 할 인물이 몇 명 있다면 더더욱 힘든 인사과정이라 할 것입니다. 인
1980년대 관선시절의 인사발령 징후는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경우는 인사계차석이 서류봉투를 들고 서울 광화문으로 출장을 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도청 과장은 국비공무원이어서 내무부(행정안전부)장관의 승인을 받았고 인사내용이 관보에 게재하던 시절입니다. 요즘에는 도지사가 발령하고 곧바로 인터넷 기사에 오르고 연이어 청내 인터넷망에 인사발령사항이 올라와서 대략 10분안에 전 직원이 인사발령사실을 인지하고 그 내용을 소상하게 파악하게 됩니다만 인터넷 이전 세대에게 인사발령 정보는 참으로 귀하여 접하기 어려운 보석과도 같은 첩보수준의 정보였습니다. 첩보란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못하거나 말하기 어려운 곳으로부터 받은 자료이고 정보는 인사과나 국장실을 통해 전해받은 공공연한 자료를 말합니다. 그래서 간부에게 보고할때 첩보인가 정보인가를 사전에 전제하고 보고를 시작해야 합니다. 첩보를 말하는데 누구한데 들은 이야기인가 질문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인사발령 징후로는 어느날부터 국장님, 과장님의 호쾌한 결재가 다소 지연되고 느슨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결재판을 가져가면 즉시 결재하시던 국장님이 자꾸만 내용을 검토하면서 사소한 이유를 들어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경기도청사가 새로 지어진 광교 청사에 입주했습니다. 1965년에 법이 제정되었고 이법을 바탕으로 수원 청사를 신축하여 경기도청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였고 1967년에 수원청사에 입주하여 2022년 상반기까지 팔달산 시대 55년을 마감한 후 이제는 광교청사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최근에 퇴직한 공직자들이 팔달산 청사에 방문하니 청사의 썰렁한 분위기에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팔달산 청사를 방문하였고 아직 남아있는 도청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역시 공무원과 도민이 떠나간 팔달산 도청의 텅빈 주차장처럼 사무실도 썰렁할 것이라 예상해 보기도 합니다. 1984년부터 수십년간 근무한 사무실이니 어느 건물 몇층에 ##과 사무실이 자리했던 모습과 계 배치까지 성성하고 3년동안 차지했던 자리에는 워드프로세스 작업을 하느라 발가락에 힘을 주어 바닥이 닳아서 생겨난 흔적조차 사진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춘을 거쳐 장년이 되기까지 일주일 내내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몰려나와 식사 후 다시 들어가고 외식하고 어두운 길을 통해 올라가서 일했던 각자의 추억이 남은 손길이 기억나고 눈길을 추억하는 경기도청의
시청 신규공무원을 위한 강의를 하면서 '시보'떡 이야기를 하였는데 3시간 후에 담당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다음번 강의에서는 '시보떡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 당부를 합니다. 이날 강의에서 9급 공무원에 임용된 1977년에는 1년간 시보임용이 있었고 요즘에는 6개월로 단축이 되었는데, 이 시보기간중에는 임용권자가 역량이 미달하는 공직자는 공무원 자격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시보기간을 넘기면 공무원 자격문제는 한 단계 올라간 것이니, 지난 1년 또는 6개월간 자신이 수습받는 어려운 기간동안 도와주신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소속 과에 '시보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시에 첫 월급을 받으면 반드시 어머니께는 붉은 내복을 사서 드리고 아버지, 형제자매에게도 적정한 선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관행이라는 점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인터넷 기사를 자세히 읽지 않았던 탓에 강의 일주일 전쯤에 발생한 '시보떡 사건'을 몰랐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자치단체 모든 기관에 시보떡 금지 공문서가 도착된 상황이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서울시의 어느 9급공무원이 공무원에 합격하여 어려운 살림을 끌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경기도청의 인사는 규모와 과정이 크고 복잡하다보 봅니다. 인사부서에 근무한 바가 없으니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인사부서 경험자들로부터 듣고 기억하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6월말 하반기 인사를 발표하기 까지 5월, 6월은 준비와 진행, 협의와 조정의 기간이라 할 것입니다. 5급 사무관이 되어서 시군교류로 동두천시 생연4동장으로 2년간 근무한 후 경기도청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동두천에는 다른 자원을 보내기로 협의를 마쳤는데 당초 공보관실로 배정하려던 계획이 본청내 사무관 이동배치 조율이 늦어지는 바람에 무산되어서 급한대로 잠시 비어있던 소방재난본부 상황2담당으로 보임되었습니다. 소방본부에 행정직이 근무하게 된 이유는 도청의 3교대 상황실과 소방의 2교대 상황팀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 정원을 살려나가기 위해 합동 근무를 하게 되었던데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4개월간 소방재난본부에서 보람차게 일하고 소방의 역량과 근무스타일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소방 관련 시설투자 예산을 확보하는 로비스트 역할도 하였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방공무원의 희생정신과 일단은 출동하는 '국민새랑' 공직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1980년대 공무원 8급은 영화 '7급공무원'이 되기 직전의 애벌래와도 같은 입장이다. 한여름 10일정도 신명나게 울어대기 위해 8년을 물속에서 애벌래로 기다린다는 그 매미의 사연에 딱 맞는 설명이다. 8급공무원으로 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한번 힘차게 울어보기 위해 기다리는 하안거 스님의 심정일 것이다. 100일간 좁은 두평 방안에서 108배를 수없이 올리며 시간을 불살라가는 스님들의 동안거, 또는 하안거는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가장 차원높은 수련이라고 생각된다. 100일이면 한 계절이 지나가는 길이다. 그 긴 여정을 독방에서 무언, 장좌불와, 정진, 참선하는 일이라서 10년 이상 수도한 스님들만 입실한다고 들었다. 초보 스님들은 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밖에서 무쇠 자물통으로 잠그는 순간의 적막함, 고독, 폐쇄공포를 생각해 본다. 지나친 비유였다 생각이 드는바이지만 1980년대 공직사회의 8급이 만나는 고통은 스님의 번뇌 다음쯤 간다. 일단 7급 선배들은 6급들과 함께 한다. 답배도 같이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뭔 드리도 할 말이 많은가 할정도로 '토크어바우트'에 빠지는데 7급들은 8급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더구나 한 부서에 7급은 7-8명이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밤에 성실하지 못한 공무원이 술을 먹다가 돈이 떨어지자 비상금을 가지러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국장님이 퇴근하시다가 불켜진 사무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직원이 황급하게 국장에게 인사했습니다. "국장님, 늦게 퇴근하십니다!" 국장님이 답했습니다. “김 주무관! 열심히 일하는군!” 다음번 인사에서 이 직원이 승진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몇 번은 승진에서 밀린 직원일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날 국장님 눈에 들어와서 그나마 승진하였고 이후에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 시절의 공직 이야기입니다만 가끔 더러는 '어부지리'로 승진하기도 합니다. 8급에서 7급 승진자 1명을 빨리 정해달라는 인사부서의 연락을 받은 국장이 주무과 주무계에 전화를 했습니다. "A, B중 누가 빠른가?" 국장은 인사부서에서 긴급하게 승진대상자를 정해달라 하므로 8급 승진이 오래된 직원을 물었습니다. 주무계 주무관은 자료에 적힌대로 8급에 승진한 순서로 B가 빠르다고 답했습니다. 주무계장은 다음번 7급 승진대상자 순서를 A 다음에 B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B는 최근에 다른 부서에서 전입하였고 A는 B에
1970년대 행정기관의 공문서를 보면 '할 것'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중앙부처, 도, 군청과 시청에서 읍면동에 보내는 문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어떤 지시사항을 하달(?)하면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행정적인 업무지시를 하면서 기한내에 보고할 것을 지시합니다. 매 문장의 마무리는 '조치할 것', '보고할 것'이라고 하니 이른바 '상명하복'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각 기관에 전달하면서 '하달'한다고 합니다. 아래로 내려보낸다는 의미일 것입이다. 상의하달, 하의상달에서 나온 용어인가 생각합니다. 상급기관이라 해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 공무원이 근무하는데 도청은 시청과 군청으로 하대를 하고 시군청은 읍면동에 하대를 하면서 읍면동 공무원은 시민, 군민, 주민, 리민에게 존칭을 쓰고 하늘처럼 모시라 하는 것은 큰 모순인 것입니다. 그래서 1988년 전후로 기억되는 어느 시기부터 도청에서 시군청으로 가는 문서에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경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공문서에 기관의 주소와 담당자 이름을 쓰고 결재자의 싸인까지 보내던 시절과 비슷한 시기로 기업합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행정용어중에
올해로 서기관 5년을 근무하고 정년까지 3년이 남았다면 이제 부시장에 도전해야 합니다. 경기도의 경우 과천시, 동두천시, 가평군, 연천군은 4급 부단체장이 근무하면서 다음번 인사에서 3급 부시장이나 부이사관(3급) 국장자리를 찿아보는 중일 것이라서 늘 이동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그 자리에서 점프하여 3급 국장이나 부단체장에 보임되면 錦上添花(금상첨화)이겠습니다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계단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순리입니다. 더구나 서기관으로서 좀 늦은 감이 있다는 자평을 하신다면 전략적으로 4급 부단체장으로 가서 1년후에 3급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전략이 연착륙 수순입니다. 사실 4급 과장이 4급 부단체장으로 보임되는 것은 수학적으로는 승진이지만 공직규정으로 보면 4급 수평이동입니다. 하지만 4급 부단체장은 별도의 사무실, 차량, 운전기사, 법인카드 등 군대로 말하면 대령이 별을 달은 것 만큼이나 달라지는 것이 많습니다. 흔히 대령이 별을 달면 20가지 정도의 의전이 달라진다 합니다만 부단체장이 되면 그 위상이 군인 스타만큼이나 올라가게 됩니다. 공직에 들어와 실무 주무관을 거쳐서 5급 사무관이 되고 4급 간부에 이른 이후 아주 짧은 기간동안 수시로
1996년까지 공무원들은 인사발령장을 받는 즉시 청내 모든 사무실로 인사를 다녔습니다. 1960년대 시골마을 어르신들이 동네 청년과 아이들의 세배를 받기 위해 집에서 한복 곱게 차려입고 기다렸던 것처럼 청내 과장, 계장님들은 사무실에서 인사발령자의 방문인사를 기다렸습니다. 승진, 전보자들이 인사를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최우선적으로 맞이했으며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고 축하의 말을 전했습니다. 승진, 전보자들은 과단위로 방문을 하면 우선 그 사무실의 책임자, 부서장인 과장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과장님은 환하게 인사를 받고 축하인사를 건넵니다. 승진, 전보자가 보이는 발령장을 두 손으로 정중하게 받아본 다음에 이를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바닥으로 발령장 위를 쓰다듬은 후에 돌려줍니다. 인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선배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제가 인사 갔을때 과장님이 발령장을 건네 받아 오른손으로 쓰다듬은 후 돌려주시던데요. 왜 그리 하시는 것인가요?” 선배가 답했습니다. “그 과장님 마음속에 조만간 군수 승진을 생각하시는 것이지요. 도지사의 직인이 찍힌 발령장을 쓰다듬어서 그 기를 받으려는 것이랍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재미있는 답입니다. 그러니까 승진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