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수도권 낮 최고기온도 40도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역대급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에어컨이 없는 거리를 한가로인 거닐 낭만도 여유를 찾기에는 너무 버거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문득 스마트폰이나 뉴스에서 이야기하는 온도를 보고 있자니 왜 저 숫자일까?라는 쌩뚱맞은 생각과 동시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한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당신이 어린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에게 대해 말하면 어른들은 절대로 중요한 것은 묻지 않는다. ‘그 친구의 목소리는 어떠니? 어떤 놀이를 좋아해? 그 친구는 나비를 모이니? 같은 질문들 말이다. 대신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친구는 몇 살이니? 형제는 몇 명이나 있어? 몸무게는 얼마니? 그 친구의 아버지는 얼마나 버시니?’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나면 그 친구를 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만약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해보자. ’붉은 벽돌의 아름다운 집을 보았어요. 창문에는 제라늄 화분이 있고 지붕 위에는 비둘기들이 있었어요’ 그러면 어른들은 어떤 집인지 절대로 머릿속에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어요.’그러면 그제
공무원의 직업병에는 치료약이 없고 발병되면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직업병이 도져서 하는 말이다. 이 병은 관공서를 찾아가서 이야기하기 보다는 글로 적어서 주변에 알리는 것이 효율적인 치유방법이라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사연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남양주시에서 '다산 마케팅'을 해야 하다는 주장을 펼친 바가 있다. 다산선생님이 유배지 강진 다산초당에서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이야기다. 이 편지를 자자손손 보존하면서 분실, 훼손위기를 여러 번 넘긴다. 아내의 색바랜 치마폭에 편지를 적었다해서 '하피첩'이라 불리는 편지 묶음은 총 4편으로 구성되었는데 아쉽게도 네번째 편이 분실되었다. 그래서 남양주시에서 이 시대 어른들의 말씀으로 채워넣는 백일장 행사를 제안하였던 것이다. 이와함께 조선 태조의 건원릉,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홍유릉등 조선왕 27분의 왕릉 미니어처를 남양주시에 만들어 초중고생을 위한 역사공부의 메카로 조성하자는 제안도 글로 올린 바가 있다. 하지만 남양주시 공무원들이 이 의견을 듣지 못한 것 같다. 세월지난 퇴직 공무원의 직업병 증세정도로 평가받는 아쉬움도 있다. 온고이지신. 지난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움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요즘 출근하는 시청이 있는 남양을 지나 비봉면 양노3리, 이른바 '늘무니'를 지나서 '국개장터' 비봉면소재지를 지나 수원역을 거쳐서 장안문 밖으로 달리는 마이크로버스를 시골 어르신들은 합승이라 불렀습니다. 같은 길을 달려 비봉에서 안산을 거쳐 서울로 가는 머리에 붉은 색을 칠한 대형버스를 그냥 '버스', '뻐스'라 호칭했습니다. 1968년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을 한 초여름 어느날에 아버지, 어머니, 둘째형과 4명이 합승에 올랐고 급히 출발하자 깜짝 놀라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부모님 두분은 막내아들의 당황하는 모습에 크게 놀라기도 하면서 동시에 창피하고 쑥스러웠다고 회고하십니다. 고모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랬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로서는 버스가 출발하니 안전하게 바닥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골에서도 마치를 타면 바닥에 앉고 리어카 역시 편안하게 앉아서 갑니다. 그러니 더 비싼 고급의 마이크로 합승버스 바닥에 앉는 것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합승에는 의자가 있습니다. 구멍이 뚫린 비닐의자가 여러개 있고 승객이 많아도 뒤로가면 빈자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승차한 합승이 출발하자 옆에 서있는 전봇대가 뒤로 밀려가기 시작했습니다
화성시청 시민옴부즈만사무실에서 잠시 저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민간출신 옴부즈만 2인, 육아에 신경을 쓰는 현직 공무원 2명의 토론내용을 요약해 본다. 발제 : 출산율이 0.7명에서 0.6명대로 내려갔다는 이야기. 외국에서조차 대한민국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쓰고 있음. 반만년 역사를 통해 어렵고 힘들지만 꾸준한 버팀의 DNA로 지켜온 한반도 대한민국. 6.25직후인 1958년에 100만 베이비가 태어났다고 한다. 특히 ‘58 개띠’라는 말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밤중에 아기가 울면 강아지가 짖어대고 개가 짖으니 아이가 깨어서 응애응애 울었다는 데서 시작되었다. 이후 1959년생도 100만을 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정부와 민간단체는 산아제한, 가족계획을 추진했다. 가족계획 정책에 참여하면 예비군 훈련을 감해주었다. 각종 표어를 만들었다. 당시 표어 중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내용.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그런데 2024년의 대한민국 출산율은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록적인 저출산 현상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출생아 수와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 기록을 또 갈아 치웠다.’는 기사를 보게된다. 2023
자가용을 타는 사모님이 주차비를 주지 않으니 운전기사는 시내를 빙빙 돌다가 쇼핑을 마치면 달려갑니다. 차량의 내구연수가 짧아지는 것은 물론 교통체증, 환경오염에도 영향을 줍니다. 小貪大失(소탐대실)이고 矯角殺牛(교각살우)입니다. 땡초 회장님중에는 기사에게 자장면 한그릇 사주는 것에조차 인색한 분이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주차비를 주지 않는 사모님이나 자장면값조차 아까워하는 회장님은 자린고비입니다. 자린고비는 제사상에서 조상님을 표현하는 글속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를 지방이라 하는데 그 내용중 顯考學生府君神位(현고학생부군신위)는 아버지이고 顯妣孺人羅州鄭氏神位(현비유인나주정씨신위)는 어머니입니다. 두 번째 글자를 하나씩 따서 '考妣(고비)라 하고 이를 쓴 창호지에 콩기름을 발라서 여러해 동안 쓰고 또 쓴다 해서 '자린고비'라는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어려서 들은 다른 이야기 중에 조기 한 마리를 사서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밥 한술 떠먹고 한번 쳐다보고 두 번 먹고 두번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아들이 맨밥 먹기 힘들다며 조기를 떼어내어 먹자고 떼를 쓰자 아버지는 '두 번 쳐다보면 밥이 짜다'면서 오히려 아들을 야단쳤습니다. 이번에는 며느리 이야기입니다. 새우젓
공직중에 소방재난본부 상황실에 근무한 경력이 있다. 2년간 경기북부 동두천시청 동장으로 근무하여 주말부부로 살았는데 수원시소재 집근처의 경기도소방재난본부로 발령을 받으니 격일부부가 되었다. 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집에 있다가 다시 출근했다. 이전에는 3교대 근무여서 하루근무하고 이틀을 집에서 쉬었으므로 상황실에 근무한 어떤 선배는 이웃으로부터 조기퇴직을 한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평일에도 운동복을 입고 집 근처를 산책하는 모습을 보고 아직 나이가 젊으신듯 생각되는데 어찌하여 공무원을 퇴직하였는가 하는 질문을 받은것이다. 하지만 2교대로 풀근무를 하다보니 일요일도 토요일도 모르겠고 그냥 하루 근무하고 부족한 잠을 자고나면 다시 출근해서 상황근무를 했다. 하지만 공무원으로서의 보람이 컸다. 공직 초기에 만나뵌 임명직 도지사님중에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받으신 임사빈 도지사님은 훈시말씀을 통해 "선진국일수록 소방관이 존경을 받고 어린이들의 미래 꿈이 소방관이 되는 것"이라 말했다. 정말로 소방조직에 근무해보니 여러직종, 직열의 공무원중에 소방관이야 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일하고 있다. 김원효 개그맨이 대중에 알려
짧은 장마가 지나고 열대야가 극성입니다. 열대야는 열대 지역과 같이 야간에도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정도의 고온 상태가 유지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기상청에서는 야간 일최저기온이 25℃ 이상인 경우를 열대야라고 합니다. 벌써 올해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7.1일로 1994년 6.5일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무더위에 온열질환자는 물론 폭염 사망자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나기가 내려 폭염을 식혀줄까 기대고 하지만, 기상청에서는 소나기가 내린 뒤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다시 기온이 올라가 무더위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보합니다. 폭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낮 시간대 외부 활동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열대야 때문에 야간에도 간단한 산책도 자제하고 집에서 에어컨을 튼 채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80~90년대 열대야’라는 게시물에는 길거리에 이불을 깔고 잠을 자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인도며 주차장에서 이불을 깔고 자는 모습이 쌩뚱맞기도 하지만, 댓글에는 공감하는 내용과 다소 과장됐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그 시절 열대야에는 ‘우리’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더운 건 마찬가지일
오늘 인터넷에 들어가서 당근마켓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습니다. 5,000원, 10,000원짜리 소품은 물론 수만원대의 제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립니다. 당근마켓이라는 네이밍의 어원이 궁금했습니다.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는 중고거래, 동네업체, 알바, 부동산직거래, 중고차직거래 등이 나옵니다. 정말로 당근 10개를 사고파는 구멍가게가 아니었습니다. 30대 딸아이가 가끔 당근거래를 합니다. 주로 깔끔하게 보존된 책을 올려서 3,000원, 5,000원에 판매를 합니다. 수원시청역에서 만나기도 하고 효원고 인근에서 당근거래를 한다며 저녁시간에 잠시 나갔다 돌아오곤 합니다. 그러다가 멀리나가있는 상황에서 당근거래가 성사되었다면서 집에있는 책 5권을 효원고 앞으로 저녁7시까지 들고나가서 당근거래를 대행해 달라는 전화가 왔습니다. 얼결에 일러준대로 책 5권을 봉투에 담아들고 학교 앞으로 나갔습니다. 분단위로 진행상황이 전해집니다. 그레이색의 00노1234번 차량을 타고 온답니다. 오는 사람에 대한 정보는 없습니다. 그냥 당근거래를 하는 분입니다. 10분정도를 서성대고 있습니다. 저만치에 차가한대 정차하므로 다가갔으니 아닙니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서
2017년 5월16일은 공무원 초임 9급 서기보시보 발령을 받은 지 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초임 발령일이 1977년 5월16일이고 '58년개띠'이니 弱冠(약관) 1년전인 19세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된 날이어서 초임 발령장 사진과 함께 소감문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동기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습니다. 40년 전 19살 까까머리에 면바지, T-셔츠를 입고 발령받으러 가서 복장불량으로 화성군청 최관조 행정계장님의 면박을 받고 웃옷을 빌려 입고 군수님 발령장을 받아 시작한 公職(공직)의 시작은 硬直(경직)스러운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발령장 43장을 받으면서 임용장을 받는 상황실에서 긴장을 푼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발령대상자 인원에 관계없이 줄을 세우고 늦게 오면 야단맞고 일찍 온 공무원 모두에게도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인사계 군기’는 어느 기관에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별로는 10초 안에 끝나는 발령장 받기 의전을 위해 30분, 50분을 긴장한 채 대기하였으므로 결재판처럼 뻣뻣한 발령장을 들고 회의실을 나서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1990년경까지는 오전에 발령받고 오후까지 이 과(課) 저 부서(部署)
2024년5월25일에 사찰 부부투어를 갑니다. 오늘은 경남 고성군 문수암에 갑니다. 문수암은 산 중턱에 외롭게 매달린 암자입니다. 스님 한 분을 뵈었고 보살님은 문을 닫으러 내려오시다가 부부를 맞이합니다. 신라시대에 이처럼 높은 지대에 자리한 것으로 보아 고승이 용맹정진, 수도하는데 전심전력하신 법당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의 풍광이 보통을 넘는 상황이고 나무의 방향이 한쪽으로 향한 것을 보면서 큰 바람이 지속적으로 불어오는가 하는 상상도 해 보았습니다. 나무와 산준령과 암자가 어우러지는 수도도량입니다. 신도가 적어서 대웅전의 단청을 다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사찰로서의 명성을 더 높게 한다는 생각조차 하게 됩니다. 점심식사후 1시경에 출발하여 저녁 6시 도착하였으므로 오늘은 수원에서 문수암까지를 달려온 것으로 일정을 다하고 숙소에 들기로 하였습니다. 고성군은 농촌지역이니 식당이 쉽게 보이지 않고 자리한 식당은 불을 켜지 않습니다. 돌고 돌다가 저녁을 먹기위해 인근의 통영시로 달려갔습니다. 전통시장에 가면 매운탕이나 지역의 명품음식을 먹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닷가 시장에 횟집이나 매운탕집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는 일단 큰 목적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