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 행복한 제주도 #한라산 <2007. 11. 12- 11. 14> 삼다도 제주에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고 했는데 바람은 심했고 돌은 많았다. 여자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산은 원만한 곡선을 그리는 것이 여성스럽고 들은 11월인지라 억새풀이 무성하다. 갈대와 다른 억새풀의 흰 꽃이 때마침 풍부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 평화스럽게 일렁이고 있다. 아들딸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 했지만, 뉴질랜드 양처럼 제주도 말이 흔하게 보이지는 않고 한번 차창으로 몇 마리의 방목된 말을 보았을 뿐이다. 경마장도 있다하고 승마시설은 내눈에도 보인다. 길가에 검은색 돌로 쌓인 성곽안의 감귤이 풍성하다. 감귤의 계절은 모르되 수확이 안 되는 것인지. 듣기로는 감귤이 과잉 생산되어 수확하는 인건비도 건지지 못할 상황이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인지. 그래도 길가를 장식한 풍성한 결실이 보기에 좋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고 우리도 교육의 마무리를 위해 제주도에 온 것 아닌가. 제주시 연동의 황가네 뚝배기(064-713-8887)의 오븐자기뚝배기는 풍성한 주방장의 정성이 가득담긴 별미였다. 뜨거운 국물이 시원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패류의 맛을 즐겼다. 성게
▧ 제천·안동 탐방기 #무작정 집 나서기 20대초 청운의 뜻을 품었던 그 시절에 왜 그 건물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다시 말해 면사무소 건물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가슴속 앙금으로 남아있는데 오늘 또다시 지난날에 대한 회한에 젖는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본 그 건물은 참으로 오래된 초라한 건물인 뿐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면사무소 건물에서 근무한 것이 오늘이 있게 한 원천이고 뿌리의 일부이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동시에 27년이 지난 지금 그 건물보다 조금 큰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머물러 있는 자신을 돌이켜 보면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새장 안에 장시간 머무는 것만 같아서 오늘 무계획으로 일상을 탈피하여 세상속으로 나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족들에게도 무전여행 비슷하게 어딘가를 훌적 다녀오겠다 전하고 출발한 나만의 여행이다. #수원역과 청량리역을 지나 제천으로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설 명절을 맞은 수원역에 무작정 들어서니 귀성객의 파도가 넘실대고 저마다 고향에 대한 소망을 담고 열차를 기다리고 아직도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 말 그대로 ‘장사진(長蛇陣)’이다. 긴 뱀이 꼬리를 물고 늘어선 모습이다. 하지만 남행열차는 모두 매진이다
보여주기 위해 신경쓰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전시(戰時)행정이라면 을지연습 같은 전쟁상황을 가상한 행정훈련이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시(展示)행정이다. 사실 전시는 많은 이들이 미술품을 비롯한 작품을 보기에 편리하게 분류하고 눈높이에 맞추어 벽이나 공간에 걸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보기에만 좋게 자신들이 한일을 장황하게 자랑하기 위한 일들을 보고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전시(展示)행정의 표본은 참으로 많다. 언론에서도 수없이 지적하는 시민회관, 공설운동장을 비롯한 각종의 회관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들 시설도 시민과 군민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늘 재정을 이야기할 때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투자재원이 없다고 하면서 2-3년 내에 준공식 테이프를 자를 수 있는 시설들에 대한 투자는 선호의 대상이다. 2-3년이라는 기간과 단체장의 임기(4년)는 묘한 연관성을 갖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전시행정은 작은 시설에서도 볼 수 있다. 등산로 비탈길을 가노라면 나무모양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그런데 무늬는 나무인데 실제로는 시멘트와 모래, 자갈의 덩어리다. 나무는 쉽게 썩기 때문에 튼
자동 세차기에 라디오를 켠채 들어갔던 관계로 라디오 안테나가 부러진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생명이라는 평소의 신조를 잘 지킨 탓인지 아직도 새 안테나를 달지 않아 라디오를 듣는데 다소 불편이 있다. 관심 있는 기사나 토크쇼를 듣는 중 방송이 잘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고 지인과 함께 차를 탈 때 안테나가 부러진 것을 보고는 게으름을 꼬집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는 날 아침 출근길에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자동차 윈도우 브러쉬가 올라올 때는 라디오가 잘 나오고 내려가면 칙칙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브러쉬를 고속으로 작동하였더니 라디오는 아주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윈도우 부러쉬가 라디오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비가 와서 물에 젖어있는 브러쉬와 차량 외부가 도체가 되어서 전파를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예민한 전류로 생각되는 전파가 윈도우 브러쉬를 타고 들어와 자동차 라디오 음질을 아주 맑게 해주고 있다는 가정도 가능한 것이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처럼 보이지 않는 미미한 전파를 발산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상대방의 주파수에 맞는 초단파 전류를 보내 짜릿한 기쁨을 주는 이들이
<힘든 공무원 시절> 1960년대 신참 공무원의 9시전 임무는 철끈 40개를 마는 일이었다고 한다. 미농지를 잘게 썰은 후 손가락으로 비벼서 서류를 꿰매는데 쓸 철끈을 만들에 계장 책상에 10개, 차석과 고참의 책상위에도 각각 10개를 상납(?)해야 하는 것이다. 업무가 시작되면 기안지에 기안을 하고 관련서류를 첨부해 철해야 하는데 이때 문서 왼쪽 위를 송곳으로 뚫고 신참이 준비해준 끈으로 서류를 꿰매는 것이다. 그리고 서류철에 쓰이는 송곳의 손잡이는 6.25이후 이곳저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탄피였으며 기관총 탄피기 제격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행정기관에 스태플러(세칭 : 호치키스)가 보급되면서 신참의 ‘끈말이’ 사역은 사라지게 된다. 그후 또다시 문명의 기기인 계산기가 주판의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사과 상자만한 크기의 계산기가 있었지만 희소해서 한번 빌려 쓰려면 밤늦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하는 회계부서와 당시로서는 중요부서인 양정부서(쌀 관리)에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행정사무의 혁신적 기기는 복사기였다. 1970년대 후반에 읍면동에 목사기가 배치되면서 ‘인간복사기’를 대신하는 혁명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호적부
광교산은 넓은 가슴으로 우리 모두를 기다린다. 아침 버스를 타고 상광교에 도착하여 주변을 살필 것도없이 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른 산행으로 가슴이 뻐근해지고 이내 등줄기에 온기가 불면서 등산의 즐거움이 시작된다. 지난주 눈이 많이 내린 후 일요일 산행을 거슬러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것은 또다른 묘미가 있다. 우선 절터를 올라 약수터에서 사람들은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 모두 같은 마음일 것 같은 중년층 남녀들의 다채로운 등산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서로 양보하며 줄서있는 그들만의 질서가 흐믓하다. 패트병 8개에 약수를 받아가는 이가 있어도 기다림이 편안하다. 많은 양의 물을 받기 위해 함께 보내는 휴식시간이 줄을 선 모든 이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좀 늦어면 어쩔 것인가. 빨리 간다고 해서 감독관이 체크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광교산이 좋고 산행이 즐겁고 등산이 필요해서 온 사람들 아닌가. 그러는 중에도 줄 뒤에 선 ‘작은 병 들고온 청년’에게 패트병 2개짜리가 순서를 양보해 주고 시청에서 준비해 둔 현대식 표주박(스텐레스)에 물을 떠서 처음 본 나에게 주는 내 또래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 아니겠는가. 심장의 박동이 정상으로 돌아올 즈음 다시 산행은
(금강산에 다녀와서, 1999. 7. 20) 금강산은 금강산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수 천년 이어져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산봉우리 40곳을 보아야 금강산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는데 겨우 두 곳을 일별하고 감히 금강산을 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심정이기에 글로 남겨보고자 하는 것이다. 1. 금강호 우리의 금강호는 동해바다 동해시 해안가에 선미를 남으로 하고 선수를 북으로 하여 금강산으로 통하는 동해바다 해안가를 조용히 열고 있었다. 50여년을 막았던 철조망은 푸른 파도속에 숨기고 10층보다 높은 거함은 뱃고동도 없이 북동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향한 곳이 남쪽인지 북쪽인지 동쪽인지를 알수는 없지만 우리는 지금 북으로 향하고 있다. 파도는 잔잔하고 하늘의 달은 뭍에서 본 그 모습이었지만 오늘은 화사하게 웃고 있다. 하늘이 맑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국토 삼천리 금수강산을 조용한 밤에만 내려다 보는 저 달도 어느 날부터 북으로 가서 3,4일 머물고 돌아오는 금강호와 그 형제들을 관심있게 보면서 좀더 많은 달빛을 쪼이고 있었을 것이다. 달은 인자하여 남에도, 북에도, 비무장지대에도 비추고 저 넓은 동해바다에도 미소를 보
19번째 책에는 산과 섬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2008년경 경기도의회사무처 근무 때 그동안 이리저리 출장 다니면서 만난 현장 이야기를 파일에 정리해 두었던 것을 이제야 출간합니다. 평소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책을 내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었었는데 드디어 부크크(BOOKK)사가 꿈을 이룩해 주셨습니다. 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제목을 가지고 이런저런 행정적인 이야기를 모아보았습니다. 공무원의 1970년대 모습과 1980년 이후 실제로 겪으면서 만난 상황을 가볍게 정리했습니다. 이런 작업이 훗날에는 작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후반부에 올라있는 편지 몇편도 인터넷과 에스엔에스로 우표가 팔리지 않는 이시대의 젊은이에게 작은 종소리를 울려주고 싶습니다. 편지지에 적어서 봉투에 담아 정성스럽게 보내고 받는 편지의 시대를 다시 열었으면 합니다. 모든 분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21년 9월 1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강석 서재에서 드림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사람이 일흔 살까지 산다는 것은 예로부터 드문 일이라 해서 칠십세 생신 잔치를 古稀宴(고희연)이라한다. 당나라의 시성 두보(杜甫)의 곡강시에 '인생 칠십은 고래로 드물도다(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이 나온다. 어려서 본 기억으로 61세 회갑을 맞으신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흰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많았다. 회갑 잔치상을 받은 분들은 나이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로 느꼈다. 하지만 요즘에는 69세에도 할머니라 하면 싫어하신다. 사모님, 여사님으로 호칭되기를 원하신다. 아마도 1990년대까지 회갑잔치가 있었고 10년을 기다려서 칠순잔치를 여는 분도 많았다. 회갑잔치에는 부조금을 가져갔다. 그런데 칠십 고희를 맞은 잔치에서는 봉투를 받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 결혼해서 살아오는 동안 신세를 진 분들에게 70세 장수를 하였으니 감사의 잔치를 베푼다는 해석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의 신세대 어르신들은 회갑을 부부여행으로, 칠순은 집안잔치로 치룬다. 그래서 칠순잔치에서 신명나게 노래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팔순잔치를 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르신의 나이를 표현하는 한자가 재미있다. 傘壽(산수)는 80세다. 傘자를
글을 쓰고 교정보고 신문사에 보내는 일도 매주 건수가 늘어나니 일이 되고 부담이 됩니다만 그래도 다른이의 글을 보고 부러워할뿐 시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것이 고맙습니다.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보고 고치고 첨삭해 보아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림으로 말하면 덫칠이고 결국 호랑이도 고양이도 떠나간 텅 빈 캔버스가 남습니다. 글은 어느 순간 포인트가 잡힐 때 훅 써 내려가는 경우에 秀作(수작)이 나옵니다. 의무감으로 쓰려하면 의무는 책임을 지라하고 책임지기 싫으니 의무없는 이야기만 나열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각자 돌아다니는 월남 안남미 밥처럼 빙빙돌아 가니 융합이나 조화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최소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시작은 창대하고 결과는 미미한 용두사미가 됩니다. 용의 머리를 그렸으나 꼬리는 뱀이 되었다는 말이니 출발점에서의 큰 포부는 사라지고 아주 조악한 결론을 맺고 마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다가 뱀의 그림에 다리를 그리는 사족이 늘어납니다. 정해진 원고맷수가 있으니 부족한 생각으로 한두장 부족하게 되므로 문장 중간을 다니면서 부연달 생각을 합니다. 부연이란 며느리의 창의적인 생각에 포인트를 두어야 하는 것인데 요즘 사람들은 불필요한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