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현직 공무원으로 일할 때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바둑판을 보고 훈수하는 것이 쉽다는 말처럼 퇴직해서 보니 할 말이 많아졌습니다. 실천하지 못한 일들이 많습니다. 정부, 지자체의 행사에서 사회자는 국민의례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 후에 ‘이하 의식은 생략한다’라고 말합니다. 국민의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에 대한 묵념 등이 있습니다만 길게 잡아도 10분 이내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중요한 내용이지만 사회자는 시간 관계상의 이유를 들어 국민으로서 당연한 의식을 건너뛰고 급한 듯 행사를 진행합니다만 이후 참석자 소개에서는 10~20분을 소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 제안을 해 봅니다. 먼저 ‘이하 의식은 생략한다’라는 사회자의 멘트를 ‘생략’하자는 제안입니다. 송구한 마음으로 이하 중요한 국민으로서의 의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으로서의 의전을 갖추지 못함을 애석하게 여기는 마음은 다 같을 것입니다. 그러니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한 것으로 의식을 다한 것이라 생각하기로 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입니
회장님댁 사모님을 모시는 운전직원이 2~3시간 백화점 주변을 빙빙 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가용 유류비는 회사 법인카드로 처리하면 되는데 주차비는 별도로 지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운전직원은 차량을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쇼핑시간 내내 시내를 천천히 돌다가 여유로운 곳에 잠시 주정차합니다. 교통경찰이 나타나면 다시 출발하여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사모님 쇼핑이 끝나서 전화로 부르면 백화점 현관에서 모시고 집으로 갔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모님은 주차비를 아끼려다가 수배에 달하는 유류비가 낭비되고 환경도 오염도 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모님과 운전직원은 회사 차이든 개인승용 차이든 그 차량의 내구연수가 짧아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전혀 없는 듯 보입니다. 小貪大失(소탐대실)이라고도 하고 비약하면 矯角殺牛(교각살우)일 수도 있겠습니다. 주차비를 피하려다가 보이지 않는 유류비의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였고 대기오염에도 영향을 주었으니 하는 말입니다. 이 같은 사례는 사모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땡초 회장님 중에도 기사에게 자장면 한 그릇 사주는 것조차 인색한 분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자린고비입니다. 자린고비
요즘 공직사회에서 갑질이라는 문제가 더 크게 부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갑질로 인한 피해는 당장 필드에서 갑질로 어려움을 겪은 이들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를 지적하는 감사부서의 조사와 징계위원회의 논의, 그리고 당사자가 조직으로부터 징계조치를 받은 이후의 긴 시간을 징계의 굴레를 쓰고 감내해야 하는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갑질은 시대적으로 그 느낌이 다르다고 봅니다. 1980년대 공직사회라면 평범한 일상이었을 일이 오늘날에는 갑질이 되고 더러는 큰 잘못으로 확정이 됩니다. 과거 군대에서 밤 12시까지 몽둥이 구타를 당하지 않은 날은 더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 했다지요. 사실 과거 도청의 공직사회 모든 사무실에는 한두 명 잔소리, 험담을 해대는 사무관 계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공무원들은 이들이 잔소리를 시작하면 ‘저 양반 또 시작이군’ 하면서 귀를 닫았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면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닌데 게딱지 후벼 파듯이 소속 공무원의 업무행태를 비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난 갑질을 한 그 당시의 간부들은 평온하게 승진하여 서기관에 이르고 더러 몇 명은 국장급 3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업무에서 갑질을 하고 문서를
공직 간부에 실장이 있고 공조직 책임자로는 본부장이 있다. 경기도청에 근무하면서 받은 느낌은 기획관리실장, 기획조정실장이라는 부서가 소속 공무원에게는 참으로 귀찮은 조직이었다. 기획팀은 잘난척하는 직원만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 퇴직 후에 돌아보니 반드시 필요한 조직이었다는 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이른바 기획부서, 기업의 비서팀이 공조직이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중요한 이유는 늘 조직 전체를 놓고 기관 전체를 넓게 보면서 고민하고 검토한다는 점에 있다 할 것이다. 공직의 예로 팀이나 과에서는 자신들이 담당하는 분야에는 정통하지만 타 부서와의 접점이나 융합력은 떨어질 것이다. 다시 과장이 정한 정책이 국장실에서는 또 다른 검토사항과 만난다.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과에서 결정한 정책의 추진 과정에 걸림돌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미 다른 조직에서 유사한 사업을 추진 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직 내내 수많은 사업을 재검토하고 다른 부서, 기관의 상황을 접목해 수정하곤 했다. 공공기관에서 추진하는 사업의 경우에도 담당자에게 임무와 의무는 쌓이는데 이를 처결할 권리, 권한, 예산은 부족하다. 공직에서도 늘 하는 말로 예산, 인력을 주면 무슨 일이든 한다고 항변
동영상에 바둑 강의와 해설이 나온다. 실전을 두어본 일은 없지만 바둑에 대해서는 ‘관전 10급’이라 자부하는데 오늘 동영상에서는 반짝거리는 아이디어를 확인하였다. 바둑돌 양면에 흑백을 배치하여 바둑 경기를 해설할 때 한 개씩 쓰이고 있었다. 바둑돌은 흰색과 검은색으로 구성되어서 시간이 경과되면 반상의 돌의 개수가 늘어난다. 반면 장기판은 반상의 군사 수가 줄어드는 전쟁이다. 바둑은 공격자와 수비자가 늘어가는 전투인데 더러는 상대 군사를 잡아서 바둑돌을 가져가기도 한다. 나중에 그 바둑돌로 상대방의 방을 채우는데 이를 ‘계가’라 한다. 집의 수를 계산한다는 말이다. 계산 결과 집이 많은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반드시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 흑선, 5호반을 공제한다. 그래서 반집승, 반집패가 나온다. 이를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바둑돌의 양면에 흑백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그동안에 해설자는 흑돌과 백돌이 담긴 2개의 통에서 번갈아 바둑돌을 꺼내어 벽면 자석에 붙이면서 해설을 했다. 검은 돌이 놓인 자리에 흰 돌이 올라가는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검은 돌을 치우고 흰 돌을 집어 들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서 돌을 180도 뒤집으면 흑백이 바뀌게 된다. 이렇게 간명하고
"경기도청 · 경기도의회 현판 및 측백나무 광교신청사로 옮겨야" - 김동연 경기도지사에 건의 경기도청이 광교신청사 이전에 따라 ‘경기도의 보물이라 평가할 수 있는 구 경기도청(팔달구 매산로 소재)에 있던 도청과 도의회 현판을 광교신청사 현관에 배치하고, 서울 광화문 구 경기도청 터에서 가져온 측백나무 역시 광교신청사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서가 경기도에 제출됐다. 경기도에서 40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퇴직한 경기도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강석 전 남양주 부시장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출한 건의서에서 “1967년에 현재의 자리에서 출범한 경기도청 정문에는 두 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를 새긴 동판 문패가 있었고, 서울 광화문 경기도청 자리에 있던 측백나무가 지금 광교 역사공원에 이식되어 광교신청사 제자리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도청(박정희 대통령 글씨), 경기도의회(김영삼 대통령 글씨) 동판이 고철로 사라질 위기에서 자신이 구해냈다”면서 “도청, 의회 현판으로 쓰인 동판은 광교신청사 현관에 설치하고, 1910년부터 서울 광화문 도청을 지키다가 2017년 남경필 도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협의로 광교 역사박물관에 이식된 측백나무는 경
[국민]학교라 했습니다. [국민학교]라고 워딩을 하면 스스로 [초등학교]라고 교정을 해 줍니다. 그래서 [국민 학교]라고 [OOOO]라고 울타리를 쳐서 워딩하였습니다. 프로그램에 그렇게 수정하도록 입력되어 있나 봅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作名(작명)된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이 60세 전후 세대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를 다녔으므로 요즘 아이들, 손자·손녀들에게 [국민]학교라 말하면 초등학교라고 교정지도를 받습니다. 그 시절에 봄, 가을 소풍을 갑니다. 학교에 모여서 반별로 인원파악을 하고 9시에 출발하여 11시반에 소풍장소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습니다. 어머니, 할머니, 가족들이 함께 보따리를 이고 동행합니다. 도시락에 밥을 퍼담고 반찬으로는 계란전, 멸치볶음, 김치를 준비했습니다. 반장, 부반장은 담임선생님 도시락을 준비하였고 5, 6학년 반장과 부반장은 교감, 교장선생님 점심 도시락을 가져오는 영광을 얻습니다. 요즘에는 말 많은 시대이다 보니 교사들은 따로 식당을 정해서 점심을 먹는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소풍지 인근에 식당이 없었습니다. 시골 학교 소풍가는 장소는 사찰인근, 교회인근, 사적지 등이 대
제주 목사 이약동(李約東, 1416~1493)선생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인 하로촌(賀老村)에서 금오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절개가 곧았으며 김종직, 조위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1441년 진사가 되었으며 36세가 되던 1451년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사헌부감찰을 거쳐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면서 청백리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약동 선생은 1470년에 제주목사가 되었습니다. 부임하여 행정을 살피던 중 백록담 산신제를 지내는 산천단이 한라산 정상부근에 있으므로 추운 겨울에 제기와 제물을 짊어진 백성들이 어렵게 산을 오르다가 미끄러져서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약동 목사는 한라산 중턱 이라동으로 제사장소를 이동하였고 그 자리에 지금도 백성을 사랑하는 목사님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선생이 청백리로 불리우는 여러 가지 요소중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궤편암과 투갑연입니다. 먼저 궤편암(掛鞭岩)은 말재칙을 반납한 바위위에 새겨진 이야기입니다. 1474년에 경상좌도군절도사가 되어 제주도 근무지를 떠날 때 평소 착용하던 의복과 기물을 그대로 관아에 두는
가장 짧은 건배사 한 말씀!!!‘ ‘판장모’란 써레질한 논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설정하고 그 안에 모짐을 넣은 후 한 명씩 들어가서 모내기를 하는 농사일을 말한다. 아주 고달픈 방식이다. 좁은 공간에서 주어진 일을 홀로 다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모내기 초보자에게는 이중고의 부담을 주는 일이다. 반면 작업속도가 느린 초보자는 못짐이 모자라면 여러 발짝 후진해서 가져와야 하고 남아 도는 경우에는 일일이 뒤편으로 이동시키면서 모내기 작업을 해야 한다. 그래서 판장모 이야기를 현대 행정기관의 어느 부서에서 견주어 보고자 한다. 어느 기관이나 과단위 부서에는 과장과 4명의 팀장이 있고 각 팀에는 대략 6명씩의 팀원이 근무한다. 각 팀의 하는 일이 다른 듯 보이지만 과장으로 올가가면 모두가 ‘우리 과’의 일이다. 그러니 과장은 판장모 작업을 위해 4개의 줄을 그어 놓고 4개의 팀에게 각자의 업무를 부여하고 진행을 관리하게 된다. 그러니 과장이 일 잘하는 부서만 격려하는 것은 맞지 않고 일을 못 하는 부서를 질책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다. 과장은 4개 팀 전체의 고른 운영을 통해서 과 전체의 원활한 진행을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앞서 나
인터넷 뉴스를 보니 전보가 사라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보는 1885년에 서울과 인천사이에 전신시설이 최초로 개통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제전보는 2018년에 종료되었고 이제 2023년말에는 국내전보가 마무리된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긴세월을 버틴 바이기는 하지만 전화기 보급이 활성화되고 개인전화, 핸드폰, 스마트폰이 초등생에게까지 보급되는 전화 전성기에도 잘 버텨온 바인데 드디어 선진국의 추세에 따라 우리도 폐지수순에 들어간 것입니다. 미국은 2007년에 전보가 중단되었고 독일은 2023년 1월에 전보를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전보는 우체국에서 보내면 받는이의 우체국에서 수신하여 타자를 치거나 글로 적어서 주소지로 자전거를 타고가서 전하는 첨단과 전통이 융합되는 통신수단입니다. 그래서 전보는 조부모가 별세하신 경우 도시에 사는 손자들에게 부음수단으로 많이 활용되었습니다. 한글자마다 전보요금을 계산하므로 단문으로 적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이버공간에서 단문을 많이 쓰는 이유는 손가락 타자를 최소화하기위한 전략인 것에 비해 당시에는 요금을 아끼기위한 노력이었으니 단문의 의미에는 나름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보는 짧은 글로 요약해서 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