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관선시절의 인사발령 징후는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가장 확실한 경우는 인사계차석이 서류봉투를 들고 서울 광화문으로 출장을 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도청 과장은 국비공무원이어서 내무부(행정안전부)장관의 승인을 받았고 인사내용이 관보에 게재하던 시절입니다.
요즘에는 도지사가 발령하고 곧바로 인터넷 기사에 오르고 연이어 청내 인터넷망에 인사발령사항이 올라와서 대략 10분안에 전 직원이 인사발령사실을 인지하고 그 내용을 소상하게 파악하게 됩니다만 인터넷 이전 세대에게 인사발령 정보는 참으로 귀하여 접하기 어려운 보석과도 같은 첩보수준의 정보였습니다.
첩보란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못하거나 말하기 어려운 곳으로부터 받은 자료이고 정보는 인사과나 국장실을 통해 전해받은 공공연한 자료를 말합니다. 그래서 간부에게 보고할때 첩보인가 정보인가를 사전에 전제하고 보고를 시작해야 합니다. 첩보를 말하는데 누구한데 들은 이야기인가 질문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인사발령 징후로는 어느날부터 국장님, 과장님의 호쾌한 결재가 다소 지연되고 느슨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결재판을 가져가면 즉시 결재하시던 국장님이 자꾸만 내용을 검토하면서 사소한 이유를 들어 재검토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일주일 안에 부서를 이동할 것이 예견되므로 결재를 보류하거나 이 건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 인사발령 임박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세번째,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문서발송 건수입니다. 요즘에는 전자망으로 각 과에서 전산으로 문서를 발송하고 수신합니다만 1980년 당시에는 청사 1층에 문서계라는 부서가 있어서 도지사 직인과 통제인을 틀어쥐고 대단한 권세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도지사 직인을 관리하는 6급 차석은 청내 젊은 공무원들에게는 하늘처럼 높은 권위주의자였습니다. 급하게 도지사 직인을 날인해야 하는데 손님과 대화중이라는 이유로 20분 이상 지체하는 경우를 목도한 바입니다. 직인날인은 업무이고 의무인데 권한이고 권리로 생각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 문서계의 문서 발송량이 전주, 2주전보다 줄었다는 통계를 바탕으로 경기도청 인사발령이 임박해 오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지진, 스나미를 가장 먼저 감지한 코끼리가 언덕위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인간이 따라서 재난을 피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문서량이 줄어들면 인사발령이 나고 인사발령후 일주일에 문서량이 최고조에 달합니다.
공보실에서 홍보자료를 정리하여 기자실에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담당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해내는 문서량의 사이클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바입니다. 인사발령이 나서 공무원들이 자리를 이동하면 밀린 일, 전임자가 보류하였던 업무가 진행되면서 문서 발송량이 크게 늘어나는 사례를 여러번 경험하였습니다.
세계적으로 길다는 중국 양자강 하류에 사는 사람들은 어느 날 강물이 크게 불어나는 것을 보고 2개월전 상류지역에 큰 비가 왔음을 안다고 말한다는 조크가 있습니다만 공직의 문서흐름도 인사발령 전후에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서 공직행태의 일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6월6일 현충일에는 아마도 간부들이 모여서 6월말 인사안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도지사 집무실에 불이켜지면 여지없이 인사과장과 자치행정국장이 두툼한 바인더를 들고 대기할 것입니다. 인사발령 대상자 모두가 6월말 정기인사에서 승진하시고 원하는 보직에 다가서기를 바랍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경기도민회장학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