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내려놓고 받아들이기

법정스님께서 비움의 미학이라 할 수 있는 무소유를 말씀하시고 실천하셨듯이 최근에 사소한 증세로 입원 후 퇴원하면서 그간 병실에서 나홀로 생각해 두었던 버림의 미학을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청년시절에 모아둔 개인의 명함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지인으로부터 받은 인사용 편지 등 자료도 모조리 아파트 재활용방에 보냈습니다. 제지공장에서 새로운 종이로 재탄생하기를 바랍니다.

 

 

전에 20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한 크레도스 차량 6085를 폐차하면서 포항 철강소에 가서 어떤 금속제품이 되어서 다시 만나자는 운명스러운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최근에 배출한 종이들이 출판사 BOOKK를 통해서 책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는 생각도 잠시 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만은 인간사 살다보면 별별의 인연이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요즘 쓰는 글 여기저기에서 버리고 얻는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다 보니 아까운 자료가 보이고 몇장을 모아서 관련성이 있는 자료의 파일에 집대성하는 맛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하면 두터운 한권이 바인더 10페이지 안에 모아지는 효과가 있고 남아있는 자료의 가치가 올라가는 기분이 듭니다.

 

마치 모래더미를 물에 거르고 동그란 판에 올려서 물 위에 흔들어 최종적으로 검은 돌가루, 반짝이는 아마도 금조각을 정제해 내듯이 무계획으로 축적해온 자료더미를 압축해서 10권을 반권으로 줄여주니 그 가치는 줄인만큼 크게 배가되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책장 아래 여러 줄 차지한 자료중에서 최근에 필요한 것이 있었나 생각해 봅니다. 없었습니다. 근무하면서 혹시 훗날에 참고가 될까하여 바인더에 소중하게 넣은 바이지만 이제보니 그냥 종이일 뿐 딱히 중요자료 목록에 들어가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우표나 명찰 등 작고 소중한 것은 몇 점 건지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자료를 저장할 때에는 5년후에 필요한 것인가를 스스로 가치판단을 해보고 훗날에 활용가치가 있으면 보관하고 아닌 것은 과감하게 폐기처분하는 단호함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한때는 기관장 결재를 받은 서류가 소중해서 그 전문을 보관하곤 했는데 세월이 지나고 민선 이인재, 임창열,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이재명 도지사로 이어지면서 다시 당대 도지사의 결재문서가 이제와서 쓰임이 없더라는 말입니다.

 

공직에 들어와 8급때 기안해서 생애 최초로 이해구 도지사님의 결재를 받고 복사본을 보관한 바가 있고 손학규 도지사의 결재문서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 서류정리 과정에서 폐지가 되어 내 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힘들고 소중한 일에 대한 가치판단의 방법 또한 다양하다 할 것입니다. 사무실 주무관이 승진을 기대했는데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5분정도 서글펐는데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남편의 전화를 받았고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급 상사가 별세했다는 연락에 승진하지 못한 일은 일도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는 말에 공감했던 바입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사고를 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접촉사고로 10만원선에서 해결 가능하다면 보험을 쓰지않고 지갑의 돈으로 처리하고 끝내게 됩니다. 팔을 다친 경우 두 발로 걸어다닐 수 있어 다행이고 다리를 다쳤지만 허리는 성하니 목발이나 휠체어를 타고 움직여서 다행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더 심한 부상을 입은 경우에도 평생 장애는 면했으니 다행이고 더 심한 경우에는 사망사고에 이르기 직전에 구사일생 살아남은 것이 신의 가호, 부처님의 가피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접촉사고가 나지 말았어야 한다며 안타까워해도 이미 사고는 난 것이고 팔을 다쳐 속상해해도 되돌이키지는 못하는 법입니다. 그러니 무소유의 심정, 모든 것을 내려놓고 버린다는 자세야 말로 길고 힘들게 살아가는 생노병사의 과정에서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좌우명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나이가 되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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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