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 필요하면 찾게 됩니다. 화성군 팔탄면 사무소에서 회계업무를 보다가 경기도농민교육원으로 전근되어 또다시 서무회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이런저런 구매가 있고 강사님 수당을 드리기 위해서는 경기은행에서 공금수표를 현금으로 찾아와야 합니다. 철물점도 가야하고 약국에서 구매할 것도 있습니다. 식품은 매일매일 배달차가 와서 신선한 야채와 곡식, 육류, 생선 등을 가져옵니다. 매일 오전에 한번 시장과 은행에 가야하고 가끔은 경기도청 총무과 회계과 지방과를 들러야 하는데 차량은 4대, 운전하시는 분은 3명으로서 통근버스 운전자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임무를 받지 않았으니 매번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공무원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지만 서무 회계와 달리 운전업무는 늘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 우리 공직의 업무구조상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참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과거보다 현재에는 불필요한 책임소재로 인해 조직의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더 많아 보입니다. 농기계 교관들은 운전면허가 있으므로 급할 때 부탁을 하였지만 이 또한 3년1개월을 근무한 사업소 생활
### 오늘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안 되는 날이 있습니다. 글을 쓰려하나 키보드가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더욱 그런 느낌이 들어서 걱정입니다. 깊은 생각에 잠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붓으로 책을 집필하고 해방 전후에 잉크를 찍어 펜촉으로 원고지를 메워갔다고 하는데 요즘 작가들 중에는 키보드를 이용하여 빠르게 글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들어보면 아직도 만년필로 12,000장의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는 맛으로 글을 쓰시는 김홍신 작가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과학계가 조금 노력하시면 키보드를 이용하여 마구 생성되는 글과 문장을 빠르게 정리하시는 기술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눌러쓰는 글씨에서 오는 문장의 깊은 소고기 국물 같은 무게감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키보드는 펜글씨보다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더 나가면 우리의 생각을 읽어 타자해 주는 첨단 기기와 스마트폰 어풀이 개발되어 시장에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혹시 작가님의 머릿속에는 이미 여러 권의 책이 들어있는데 이를 연도에 맞추고 주변의 상황을 보아가면서 내어 놓으시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평소에 나기 보다는 키보드를 잡고
### 1985년경에 수원에서도 신식 공중 목욕탕이 유행했습니다. 퇴근 후 7시에 장안문 인근 '황실장'으로 모이라는 전갈이 옵니다. 장급 여관이 유행하면서 목욕탕이 좋아야 공무원의 여관작업(?) 공간으로 활용성이 높았습니다. 여관작업이란 시군공무원들이 모여서 세입, 세외수입, 각종 결산자료를 집계하는 합산작업을 말합니다. 당시 7급 선배들이 주축이 되어서 남문 인근 송산목욕탕에 모이기도 합니다. 일단은 목욕을 하고나서 저녁을 먹고 소주한잔 한 후에 퇴근하여 집으로 갔습니다. 8급 직원으로서 장안문 주변 皇室莊(황실장/신식 목욕탕 간판)에서 옷을 입고도 만나기 어려웠던 당시 도청 기획관리실장님을 벌거벗은 알몸으로 친히 謁見(알현)하는 황송한 일이 더러 있었습니다. 수원 팔달문(남문)인근 송산탕에는 당시 oo과장님과 oo계장님이 저녁시간에 피로를 푸는 곳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분 모두 술을 드시지 못합니다.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분 어르신은 목욕탕을 자주 가십니다. 또 한분 국장님은 목욕탕에서 4시간을 버티신다고 합니다. 이마에 수건을 두르시고 청산리 벽계수가 상류에서 흘러 하류까지 가도록 자리를 잡고 땀을 빼십니다. 참 대단
### 아침에 일어나면서 감사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은 전방을 지켜준 국군아저씨께 감사, 다음으로 범죄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경찰관에게 감사, 화재와 여러가지 위난으로부터 지켜준 소방관에게 감사, 가스를 보내준 가스공사, 전기를 보내준 한국전력, 인터넷 통신을 보내준 회사, 케이블방송 사장님과 임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아파트에 물을 보내주신 시청 상수도사업소장, 밤새워 아파트를 지켜낸 경비아저씨, 신문배달 아줌마, 우유와 요구르트를 신선하게 문 앞에 놓아주신 분등 참으로 감사할 분들이 많습니다. 가족에게도 감사합니다. 잘 자고 일찍 일어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도 새벽에 일어나 부엌살림을 정리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 세상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말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리고 모든 것을 낮추는 그런 삶을 살고자 합니다. 내려놓을 것이 더 없을 때까지 내려놓고 가는 자세를 유지하겠습니다. 아마도 내려놓을수록 무게중심이 아래로 내려가니 더더욱 안정적인 인생이라는 빌딩을 잘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머리와 어깨위에 두면 몸이 무겁고 허리에 부담이
### 2017. 10. 11에 경기도인재개발원 역랑개발지원과를 방문했습니다. 인재개발원이 3과였다가 2과로 축소되어서 과장님 인사발령이 있습니다. 아는 분들을 만나서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고 차 한 잔 하고 돌아왔습니다. 1991년4월24일에 6급으로 근무하고 5년만인 1996년4월3일에 5급 요원으로 다시 발령받은 저로서는 승진의 현장입니다. 이후에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2007년에 1년간 지금 경기도인재개발원이 자리한 건물에 있었던 행정자치부 지방혁신인력개발원에서 1년 장기교육을 받았고 이후 연수중에 배운 골프연습을 위해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두천시청에 근무한 후 2012년에 이곳에서 조금 다른 장기교육 1년을 연수했습니다. 자료집 2권을 내고 국내여행, 해외여행, 그룹 활동 등 공직 후반에 보람찬 일들이 많았던 장기교육을 받은 곳이어서 늘 이곳에 오면 기분 좋은 추억들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사르르 피어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추억도 있지만 오셔서 보시는 분은 누구나 공감하시겠지만 이곳 경기도인재개발원 주변은 ‘가을전어’처럼 가을경치가 특히나 아름답습니다. 이제 막 시작한 단풍의 초입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채색화를 보이는데 10월말 경 제대
### 40대 나이에는 그냥 키보드를 잡으면 되든 말든 활자의 조합이 이어졌습니다만 얼마 전 부터인가 그냥 백지상태의 화면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도 없고 하늘의 흰 구름도 보이지 않으며 가을 깊은 산속 형형색색 단풍잎도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혹시 그것이 이 세상에 함부로 글을 내놓는 것은 송구한 일이라는 자각에서 그리된 것이라면 조금은 다행스럽다 하겠으니 젊은 치매 초기증상이라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라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얼마전 TV에서 본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 중에 머리가 깨기 시작하고 응용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과정을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런 발전적 상황이라면 반길 일이겠으나 그 반대로 매일 하루를 지내면 수만개의 뇌세포가 사라지고 다시 일부는 보충되지만 늘 부족한 상황이므로 어제 써둔 글에 오늘아침, 감동하는 어처구니 없는 자기만족의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우려를 합니다. 2만장 원고지를 만년필로 채웠다는 작가 김홍신 선생님을 생각해 봅니다. 젊은 시절의 경험으로 '인간시장'이라는 책으로 100만권 셀러가 되신 분입니다. 이분 김 작가님이 키보드를 쓰신다면 책은 더 자주 더 많이 아주 두껍게 나올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것
### 장편이나 긴 수필을 쓰는 것은 아니니 그리 힘든 작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글쓰기에 앞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껴보곤 합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에 글을 함부로 쓰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는 말입니다. 다만 생각나는 좋은 글귀를 인터넷 까페에 적어두고 나중에 첨삭을 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것을 보면서도 저처럼 큰 차이를 느끼게 하는 전문가들의 표현에 감탄을 하곤 하면서 이제는 모방도 창조라는 자기 모순을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단 까페에 올린 글을 다시 불러내어 읽고 추가하고 삭제하고 수정하면서 글을 키워갑니다. 어느 정도 글이 차오르면 이번에는 150개정도를 한 개의 아래한글 파일에 내려받기를 합니다. 혹시 중복되어 다운받으면 큰 결례가 되므로 검색기능을 활용합니다. 즉, 아래한글 F2키를 누르고 그 글에서만 특정하게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단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칩니다. 만약에 기존의 아래한글 문서속에 그런 단어나 문장이 있으면 아주 빠르게 찾아갑니다. 계속 엔터를 치면 그 단어가 끝날 때까지 다음, 다음의 단어에 커서를 보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일괄 수정하는데도
갑질이란 조금 우위에 있거나 고용관계 사주의 불공정한 근로관계를 지적하는 말로 시작된 듯한데요, 그 상황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업무 추진과정에서의 작은 갈등과 논쟁조차 갑질이라는 무대에 올려놓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사회적인 처벌을 하기도 합니다. 기업체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인격적인 모멸감을 준 것이 端初(단초)가 되어서 사과를 하고 공직자가 업무 처리과정에서 좀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하고자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언어폭력이라며 갑질로 분류되어 처벌을 받은 사례도 많습니다. 더구나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수입원으로 하는 탤런트, 영화배우, 정치인은 ‘공인’이라 해서 사회통념에서 조금 벗어난 행동으로 공분을 사고 결국 공개 사과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자는 이것도 사회적으로 공격을 받을 일인가 하는 정도의 언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고 언론이 그처럼 끌고 가는 경우 돌이킬 방법이 없습니다. 물이 허리위까지 차오르면 스스로 몸을 가누기 어려운 것처럼 사회적으로 비난을 하고 언론에서 반복하여 보도하면 이른바 대세에 밀리게 됩니다. 갑질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갑질이란 이일을 이렇게 했으면 한다고 할 것을 ‘이렇게 밖에 못 하나’해도 갑질로 지적받
경기도청이 『이건희 미술관』입니다!!! 게이츠헤드는 영국 잉글랜드 북부 타인위어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1854년 대폭발과 화재로 중세 유산 대부분이 사라졌습니다. 산업혁명 때 인구가 급격히 늘었으며 세계 최초로 전구가 발명됐습니다. 도시를 상징하는 '북방의 천사' 조각상이 유명한데 시의회에서 제안하여 이 조각상을 만들었고 이제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북부 항구도시 빌바오는 1997년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개관을 시작으로 대대적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도시로 거듭나면서 성공적인 도시재생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습니다. 이후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는 문화가 한 도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뜻하는 용어가 됐습니다. 미술관 근처 주민들이 사색하고 걷고 뛰는 강변의 산책로와 그 속에서 빚어진 풍부한 문화적 소양, 예술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지자체의 깊은 고민이 한몫 했다는 평가입니다. 삼성에서 2만3,000점의 미술품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유치 노력이 광역·기초자치단체별로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해보니 최근에도 전국의 자치단체가 유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에 건립추
초등학교때 담임 선생님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끝나면 대청소를 하라 하셨다.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은 배가 고프지만 열심히 청소를 하였고 선생님의 청소검사 해달라 말씀드릴 학생을 정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냥 당시에는 선생님이 어려웠다. 그래서 교무실에 가는 것은 도살장 가는 소처럼 생각했다. 왜 그랬는가 모르겠다. 선생님 가정방문날에는 사는 집, 부모님 보이기 싫다며 온동네 아이들이 산으로 도망을 쳤다. 청소검사를 하러 오신 선생님은 학생수가 반쯤 남은 것을 보고 배고픈 아이들 앞에서 일장 훈시를 하셨다. 훗날 교장선생님이 되셔서는 더 긴 조회의 말씀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주된 내용은 "오늘 청소를 하지 않고 도망간 학생들은 나쁘다"는 말씀이었다. 훗날 돌이켜보니 청소 않하고 요령있게 도망친 학생들은 사업을 해서 큰 돈을 벌었고 청소하고 검사받은 아이들은 월급장이가 되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청소하고 배고프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이들이 훗날 사업에 성공할 학생대신 야단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들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청소 안하고 도망간 아이들은 나쁜 학생이다. 벌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