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화성궐리사지(華城闕里祠誌) 연혁에 보면 오산시 궐동에 소재한 ‘화성궐리사’는 정조 16년 (1792년) 칙령으로 창건된 공자의 사당입니다. 정조가 왕권강화책으로 신도시를 화성에 추진하는 시기에 수원지역의 고적을 탐사하던 중 중종대에 경기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한 공서린 선생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서원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같은 역사를 확인한 정조는 수원부사에게 명하여 사당을 건립하게 하고 공자의 유상을 보내 봉안하도록 하였으며 ‘궐리사(闕里祠)’라는 이름을 하사하였습니다. 봄가을에는 국왕의 이름으로 제사를 올리고 국왕이 친히 축문과 이름을 써서 지방관에게 주어 초헌하도록 명하였고 공씨 후손 중에 행실이 높은 자를 아헌, 종헌으로 삼았습니다. 궐리사는 書院(서원)입니다. 闕(궐)이란 중국 곡부(산둥성)의 지명으로 공자의 고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일반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궐리사는 왕립(국립)학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요즈음의 공립 중고등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십수년 전부터 궐리사에서는 교육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예, 경전, 민요, 다도, 우리 춤, 사군자, 대금반이 요일별로 운영됩니다. 학생교육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60명
2007년과 2012년에 지방행정연수원에서 장기과정 교육을 받은 바 있어 연수원과 친숙한데 연수원이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시대를 마감하고 전라북도 완주군으로 이전한 이후 새로운 건물에 입주한 강의실에서 교육을 받아보고 싶었던 차에 교육 수료생을 대상으로 하는 토론식 1박2일 교육일정이 개설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즉시 교육신청을 하였습니다. 연수원 담당 사무관께서 2012년 교육시 후반기 총무를 담당한 것을 아시고 관리하고 있는 교육수료생 전화번호를 이용하여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달라 하시므로 카피하여 올리면서 총무 아무개가 보낸다고 첨언까지 하였지만 늘 그러하듯 50대 교육동기들은 전혀 리엑션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서너명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연수원에서 보내온 전자문서를 열어보니 아는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두 바쁘게 일하시거나 나이가 좀 들어 교육받으시기가 즉각 수락하는 분위기가 아닌 줄 생각하였습니다. 경기도 교육생도 많은 편인데 2명이 신청하였습니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교육받기가 힘들었던 것이었나요. 오산시는 평생학습을 위한 여러 가지 시책을 추진하여 정부기관의 상을 받고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에 부
2년 전 그리도 평온하게 다니던 길인데 오늘은 참으로 거칠게 다가옵니다. 아들의 두 번째 제안으로 광교산에 갔습니다. 인재개발원으로 차를 몰아가서 주차하고 찬찬히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위로 나르는 듯 건너는 육교를 지나 아랫길로 차분히 걷다보면 오르고 또 내려가야 하는 광교산 길을 만납니다. 약수터 가는 길도 보이고 헬기장 가는 코스도 나옵니다. 광교산 헬기장은 2곳이 있으며 오늘 단거리로 가는 헬기장은 중간급 작은 시설입니다. 사실 헬기가 내렸는지 일지가 없어서 확인하지 못하였지만 산불, 등반객 조난 등 경우의 수는 있으니 필요한 시설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등산객들의 이정표가 되고 목적지가 됩니다. 우리 부자도 이 헬기장을 목적지로 하여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산길이라는 것이 이리 구불 저리 구불 거리면서 인생의 한나절 축소판 처럼 여러가지 경우와 상황을 만납니다. 페이스북 글에서 보니 유학생 경험으로 여행을 떠날 때 준비물을 적어내는 그룹스터디에서 교수님의 기대치에 부응한 팀의 준비 잘한 상은 "그냥 출발한다"라는 답을 적어낸 팀에게 주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산행도 그러할까 생각해 보았는데 답은 ‘아니오’ 입니다. 즉 산을 오르면 문명에서 멀
사무실에서 아파트로 걸어가는 길에 사회자가 "국기에 대하여 경례!!!" 멘트가 들립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배운대로 잠시 멈춰서서 국기에 대하여 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함께 불렀습니다. 이어서 사회자는 독립선언서 낭독을 시작합니다.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을 합니다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자치회의 주관행사에서 이 같은 모습은 처음이어서 반갑기도 하고 새롭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리어 인류 평등의 큰 도의를 분명 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의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가지게 하는 바이다.' 여기까지 사회자가 낭독하고 다음 순서 순서로 다음 분이 읽어 나갔습니다.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을 하였습니다. 만세삼창은 아파트 자치회 회장님, 부녀회장님, 노인회장님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자께서 선창하십니다. 참으로 오랬만에 만세삼창에 동참하니 기분이 업되고 가슴속 뜨거운 감성이 솟아납니다. 이런 감흥에 오르는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청년시절에는 그냥 주변사람을 의식하여 태극기를 바라고보 애국
▨ 남북평화통일의 試金石(시금석) ▨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으면서 파주시 점동면에서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까지 248㎞를 군사분계선으로 정하고 각각 2㎞씩 물러나면서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을 그어 놓았지만 아마도 통일의 밀알처럼 정전협정 부칙에 의해 2개의 마을을 비무장지대 안에 뒀다. 최근 개성공단 근로자들의 숙소로 이용되는 기정동 마을과 대성동마을이 ‘자유의 마을’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기정동마을은 레이건 대통령 방문 시 ‘촬영장 영화세트 같다’는 말을 들었으나 2003년으로 마무리되고 이제는 실생활에 이용되는가 보다. 그런데 70년의 세월이 이렇게 속절없이 흐르고 보니 국토를 가로 지른 DMZ(Demilitarized Zone)는 없어져야 할 대상이면서 또 지켜내야 할 대상이 됐다. 살아있는 냉전사의 현장이자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이곳이 미국 타임지에서 ‘아시아에서 가 볼 만한 곳 25개소’로 선정돼 세계인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Joint Security Area)로도 유명한 현장도 이곳에 있다. 하지만 이곳에 북한 도발의 현장인 제3땅굴이 있다. 휴전 이후 북한의 도발이 제4땅굴까지 이어지고 남침용 땅굴이
직장동료들과 회식을 가면 서로서로 마주보며 머뭇거린다. 자리를 잡는데 1분이상이 걸린다. 내 자리가 어디쯤이면 적정할까 빠른 속도로 CD를 돌려 선곡을 하듯이 자리를 스캔하고 참석자를 분석한 후 자신의 서열을 4-5번쯤으로 정한 후 그 자리를 잡는다. 이어서 오늘의 좌장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나서 서로서로 상석을 권하며 한 자리씩 물러났다가 다시 빈자리가 생기면 우두머리의 측근 자리로 한 발짝씩 다가선다. 그리하여 과장이 자리하고 앞에는 주무계장, 과장 좌우에 2,3번 계장이 착석하고 그 언저리는 차석의 차지이니 말석은 문 앞이나 방구석 끝자리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단히 불합리한 좌석배치다. 더구나 삼겹살을 먹는 경우 2번 계장은 연신 고기를 굽고 가위로 잘라가며 후배들의 소주잔을 받고 다시 권하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오늘 모임의 취지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술에 취하고 만다. 업무보다 더 고민해서 자리를 잡았다 해도 서너잔 지나가면 네 자리 내자리가 없고 숫가락, 젓가락 수만 늘어난다. 자리를 이동할 때 수저를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장과 주무계장 자리에 서무담당을 배치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급별로 배치되는 경우 대화의 내용은 4그룹
참 오래전의 약육강식과 수렵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지구에서 눈과 진눈개비가 구분된 이후정도의 일일 것입니다. 아니면 메뚜기와 여치가 색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생태계의 고전적인 시대에 부족국가 이전의 시대일 것입니다. 한반도로 말하면 단군할아버지의 오래전 조상이 사시던 시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석가모니 왕자님이 출가하시기 이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든 지상과 지하 세계이든 생명체가 존재하던 아주 오래전의 일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여러 가지 형태의 식물과 동물이 존재하고 그 동물들이 약육강식으로 살아가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 마을은 아주 작은 곳이었지만 몇 명 안되는 사람들이 몇가지 제한된 가축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30여호의 집이 있었고 가구마다 평균 9명정도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 부부, 아버지 부부, 삼촌과 고모들, 그리고 손자들을 합하면 13식구가 되는 집도 있고 1자리수 가정도 있었습니다. 가축의 대표는 무론 소이고 검은 돼지와 붉은 닭, 아무에게나 짖어대는 개, 염소와 양이 전부였습니다. 말을 본 것은 15살이 넘어서입니다. 하늘에 주인없이 날아다니는 새는 10여종입니다. 까치, 비둘기, 참새,
2012. 4. 15(일). 오전에는 천국이요 오후는 인간 세상이었다고 평가해야 할까보다. 보름 전에 예약한 KTX표를 들고 수원역에 가니 아직 30분은 족히 여유가 있다. 지난번 경북 방문때도 그러하였던 것처럼 수원역 오픈식 서점에 들러 15,000원짜리 책 한권을 집어 들었다. 남자의 물건.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학심리학. 김정운 저, 21세기북스. 독일 유학파인 저자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 만년필을 소개하고 이어령 선생의 책상, 소주병 상표 ‘처음처럼’을 쓰신 신영복 선생의 벼루를 소개한다. 그리고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수첩’과 차범근 선수의 ‘계란 받침대’도 나온다. 모두가 본인들을 만나 장시간 인터뷰하고 쓴 글이다. 앞부분 저자의 글에서는 깊이 있고 공감가는 평가가 나오고 유명인의 인생사에 함께하는 물건 편에서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한다. KTX 예약석에 앉아 커피한잔과 함께 좀 비싼 도너츠를 사 함께 먹으며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면서 아주아주 편안하게 동대구를 거쳐 부산역에 내렸다. 30대 여자들은 머리를 묶을 때 그 머리 묶는 고무줄을 꼭 입에 물고 시작을 할까? 전에도 여러 번 사용한 고무줄인 것 같은데. 저러다가 할
존경하는 곽상욱 시장님과 사랑하는 600명 동료 공무원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함께 일한 것이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1년 일곱 달이 지나갔습니다. 공직에서 1년은 참으로 귀중한 근무단위라고 생각합니다. 1년 7개월이면 결코 짧지 않은 소중한 나날이라 할 것 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우리 시에서의 공직 기간은 불과 수개월처럼 참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제 좀 다른 곳에서 색다른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우리시 오산시에 근무하면서 만난 모든 분들은 제 평생 내내 행복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젊은 도시, 교육도시, 활기찬 변화 행복도시 오산에서 제 마음이 젊어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행동까지 어려진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근무하면서 작은 변화를 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을 해 보았습니다. 회의실을 편리하게 개선하고 주차장에 지름길 동선을 만들고 여러분이 근무하시는 사무실에 가서 함께 대화를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現答(현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으로 쓰여 집니다. 사무실에서 페이퍼만 보아서는 현장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지도상으로 본 ‘서울대병원부지’는 그냥 땅으로 보였습니다만, 현장에 가본 ‘외삼미동 시유지’는 참으
참으로 오랜만에 돌집풍경을 보았습니다. 요즘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었고 사진을 인화지에 뽑지 않고 파일로 관리하면서 영상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보여줍니다. 물론 돌잔치 장소인 뷔페장 주변에 아기의 사진과 소품을 별도로 진열하였더라구요. 참 부러웠습니다. 아기의 1년 동영상을 보고 한번 더 행복했습니다. 우리 부부의 젊은 시절이 떠올라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된 아이들 어려서 목욕시키고 재우고 옷 갈아입히던 기억이 새록 새록합니다. 정말 그때가 행복한 시절이었음을 미리 알았으면 더더욱 행복스럽게 그 순간들을 만끽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숲에 가서 이 공기가 몸에 더 좋다는 것을 알기에 여러 번의 심호흡을 합니다. 어느 순간이 나에게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순간임을 그때 바로바로 알아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아! 그때가 행복이었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에 약간 김이 빠진 듯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는 것은 참 야속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이 나에게도 있었다고 느끼는 것 또한 행복한 일입니다. 그전의 힘들었던 기억을 씻은 듯이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식사 중에 옷에 물방울이 튀어서 마음이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