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서울 숙대역 6번 출구로 나와서 좌측 골목에 유명 식당 남영돈이라는 고기집에 도착했습니다. 지난해까지 회의에 참석했던 분들의 모임입니다. 퇴직, 이직, 전출 등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참으로 맛집입니다. 저녁 6시까지 예약을 받는다 했습니다. 7시로 예약을 하면 영업시간에 손해를 본다는 논리인듯 보이는데 정말로 손님이 많습니다. 수원 매탄권선역에서 탑승하여 수원역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여 금정역에서 갈아타고 사당을 지나 서울역 직전의 숙명여자대학교 역에서 하차하여 6번 출구로 나왔습니다. 그 길가에 구둣방이 있으므로 불쑥 들어가서 구두를 닦았습니다. 구둣방 사장님이 구두수선을 탓하기 시작합니다. ‘뒷축을 성의없이 붙였다, 바닥 본드칠이 미진하다’고 지적하십니다. 전문가들은 같은 계열의 전문가를 비판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나라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축구 해설을 들어보면 자신이 감독이고 선수이면 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선수교체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하고 선발 출전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교체선수가 들어가서 패스를 잘해 골을 넣으면 크게 칭찬하지 않습니다. 교체된 선수가 잘한 것인지 기존의 선수가 셋트풀레이를 잘한
인생사 세상일 모든 것들이 지나고 나면 윤회의 한 틀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만 지금 당장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사건, 이 일이 힘이 듭니다. 인생사 일장춘몽, 남가일몽이라 했습니다. 봄날에 잠깐 졸아서 하늘 나라가서 신명나게 잘 살고 돌아와보니 잠깐의 졸음속 순간이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그렇게 휙 하고 바람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이 어느 공간을 지나간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삼라만상이 생겨난 후 인간을 비롯하여 수많은 동물 생물이 이 세상에 나타났다가 다시 무기물로 사라지고 다시 유기물이 되어 생명체라 뽐내다가 어느 세월이 지나서는 사라지고 다시 그 자신으로 이어가기를 수억 수십억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인류중에 인간이 기억하는 인물은 예수, 석가, 모하메드, 공자, 맹자, 단군 등 몇분이 있습니다. 나머지 훌륭한 학자, 정치인, 교육자가 있었지만 모두 기억하지 못합니다. 음악으로 베토벤, 모짜르트, 그림은 피카고, 종합적인 미켈란젤로 등 중세와 그 이전에는 한사람이 그의 신격화되어 못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시험으로 글한수 잘 지어내면 장원, 차상 차하 참방을 받고 이호예형병공 여러 부서에 배치되었던 것입니다. 해서
방송도 그러하고 신문을 보면 언론사마다의 무게중심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과거 어느 시대에는 국가정책 중 어려운 문제를 발표하는 경우마다 간첩단 사건을 그 앞에 보도하는 묘한 정무적 상황이 있었습니다. 반공이니 북풍이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이 댐을 터트려 수몰작전을 펼칠 것이라면서 평화의 댐을 건설하는데 온 국민이 성금을 모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방송을 보면서 몇가지 방송의 강도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제주도 남편 살해사건입니다. 배타고 시신을 버렸다고도 하고 가게에서 살인에 쓰인 도구를 구매하는 CCTV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다른 사건에 비해 크게 보도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번째는 베트남 아내를 폭행한 사건입니다. 2살 아들 앞에서 엄마를 폭행한 나쁜 아빠입니다. 참으로 발생하면 안 되는 사건입니다. 하지만 언론에 반복적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특히 종편방송이 그러합니다. 축구선수 출신 박항서 감독이 수년동안 이룩한 한-베트남간 우호의 분위기가 권투를 배운 나쁜 아빠의 아내, 엄마 폭행으로 인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는 참으로 어렵고 분위기를 부수는 일은 쉽게 발생합니다. 안타까운 일
한 가지에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인한 생각의 겹침과 共鳴(공명)으로 인해서 나중에는 없던 사실이 진실처럼 생각되고 그래서 어떤 사건사고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遠因(원인)이 있고 原因(원인)도 있을 것입니다만 우리의 생각은 다원화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그 공명과 진동을 이겨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恐慌(공황)장애라는 것도 그러한 것 같고 고소공포증도 본인 스스로 만들어 낸 걱정꺼리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리 높아도 롯데타워 100층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것이 무섭지 않습니다. 비행기는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데 비행기 타는 것으로 고소공포증을 감당하지 못하여 해외여행을 못가거나 수개월을 배를 타고 영국에 가야할까요. 뚝딱 마음 먹기에 따라서 우리의 현실은 바꿀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힘든 상황을 이겨내겠다는 정신적인 다짐이 필요할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불편함도 해소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지금 처한 아픔보다 더 큰 사건을 감당해야 한다면 그 이전의 작은 일들은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작은 장애물 경기의 허들정도로 보일 수 있습니다. 뉴스를 보니 술에 취해 운전하다 큰 사고를 내고 집에서 술먹고
광교 호수공원에 다녀왔습니다. 1시간30분정도 산책을 하였습니다. 대략 거리는 13km라고 스마트폰 어풀이 알리고 있습니다만 대략 10km정도로 추정합니다. 여름에 가까워지면서 원천천 兩岸(양안)에는 억새와 갈대와 여러가지 야생초가 群落(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속에는 작은 고기도 보이지만 큰 잉어가 철석거립니다. 그 물고기를 먹고자 다리가 긴 흰 새와 잿빛 물오리가 서성거립니다. 인공이 만들어준 야생의 삶의 현장입니다. 조물주는 이 땅에 생물과 무생물을 가져다 놓으시고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분류하시고 식물은 풀과 나무, 이끼 등 수생식물까지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물은 땅속과 지표, 지상, 수생으로 구분하여 다양한 동물들이 먹이사슬을 형성하면서 循環(순환)과 還流(환류)와 輪廻(윤회)의 길을 만드셨습니다. 식물에서 동물, 연체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식물에서 동물로 이동하는 진화의 과정은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만 동물 중에는 식물 생태계에 적응하면서 진화한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진흙속에 사는 동물은 시력이 퇴화하고 촉각이 높아진 듯 보입니다. 야생의 동물들은 청각으로 천적을 피하며 생존했습니다. 후각으로 먹이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부서를 떠나는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다가 조직을 떠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다시 읽어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일이니 안타까움이 큽니다. 하지만 지난날에 적어올린 글을 다시 꺼내어 읽을 수 있으니 행복이 배가됩니다. 아마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게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둔 들을 꺼내어 첨삭하고 수정하다보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에 행복합니다. 작업의 시간동안은 시공을 초월하여 과거의 멋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즐겁습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 자신의 글을 마음대로 수정하는 키보드 손맛이 있습니다. 나의 생각이 손가락과 연결된 키보드를 통해 화면에 글자로 나타나고 이를 마무리하면 활자가 종이에 찍혀 나올 것이라는 기분좋은 과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소중한 오전시간을 할애하여 글쓰기와 수정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성원해 주시는 모든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21번째 책을 마무리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2021년 9월 30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이강석의 방에서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
▩ 빠진 원고가 더 있을 것 같지만 퇴색한 노트와 공무원 수첩 갈피에서 가끔 발견되는 낙서와도 같은 글들을 모아 1개의 파일로 정리하고 나니 어린 시절 초등학생들이 가을 들판에 떨어진 이삭을 모은 것이 벼 10가마니는 족히 된다며 보람을 느끼게 해주셨던 선생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노트에서 플로피디스크로 정리하고 근무부서를 옮길 때마다 늘 복사해서 다시 하드디스크에 넣고 디스켓을 흰 봉투에 담아 탄탄한 상자속에 보관했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이제는 파일이 지워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은 덜게 된 것이 큰 기쁨입니다. 걱정을 덜어주신 도움 주신 모든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이 작은 책을 끝까지 읽어줄 사람은 몇 분 안 되겠지만 그래도 표지와 목차까지만 보아 주시면 저에게는 아주 큰 행복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을 ‘말 많은 소년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였습니다만 마지막에 ‘말많던 그 소년은 어디로 갔나’로 변경했습니다. 비봉중학교 다닐때의 노트를 보면서 그 시절이 있었지 생각하였고 수성고등학교 ’야생초‘일원으로 선배들과 함께 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0년, 고졸 그해 공직에 들어 온지도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
▨ 존경하는 하동원 원장님 ▨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경기도의회사무처 이강석입니다. 공직에 투신하시어 중요보직에서 많은 성과를 올리신 후 이제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경영기획본부장의 중책을 담당하신 원장님께 늦은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원장님께서 미리 마련해 주신 참으로 멋진 감사패를 2008년 12월 30일에 전달받았습니다. 요 며칠 전부터 실무자들이 원장님께서 이 감사패를 친수하시고자 하시었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으셨다는 전갈과 함께 빨리 전하고자 하시는 마음이시라고 하여 아침 출근시간에 연수원에 가서 오전 9시에 받았습니다. 참으로 멋진 패입니다. 제 생에 이처럼 행복한 날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더더욱 기쁘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송구합니다만 제가 올해 공직 30년을 맞이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공직 30년이 되면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보냅니다. 그리고 오늘 30일 지사님께서 직접 30년 장기근속 공무원상을 주시고 시상금도 50만원을 주었습니다. 원장님께서 현재 공단에서 하시는 업무에 참고가 되실까요? 오늘 저는 원장님께서 마련해 주신 감사패를 저희 처장님께 보여드리고 자랑을 하였습니다. 아마도 지방행정연수원 창설이래 도 공
존경하는 선배님, 후배님 그리고 동료여러분! 저는 오늘 25년가까운 공직을 떠나면서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몇글자 남기고자 합니다. 사실 그동안 신문을 통해 몇 번인가 공무원으로서의 의견을 올린 바 있어 생소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40대 중반에 이 자리를 떠나는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20세에 공무원에 들어올 당시에는 공직에 입문하면 60세까지는 정년이 보장되니 그냥저냥 일하다보면 60세까지는 갈 것이고 그러면 공무원 40년을 했다고 자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하다 보니 저의 초심처럼 공무원 생활이 쉬운 것 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늘 이처럼 허망한 상황을 맞고 보니 그동안 조직원으로서 일했던 세월이 아쉽고 자신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저는 학교때 배운대로 최선을 다하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며 네 자신이 안다는 신념하나로 일했습니다. 때로는 유혹도 있었지만 공무원이라는 자긍심하나로 뿌리치면서 나름대로 공직관을 지키며 일해왔고 앞으로도 그리하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것이 60세까지 계속되지 못한 것은 저의 부덕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깊이 반성하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새로운 제
▨ 동두천 생연4동 주민여러분께 -시를 떠나면서.... 1999년- 제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동두천시에 발령받아 생연4동장으로 근무를 시작한지도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끌어 주시고 깨우쳐 주시면서 우리 시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일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어르신께 감사드립니다. 그 동안의 사랑과 격려 속에 일하다가 다음번에 다시 뵈올 날을 기대하며 잠시 근무지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길지는 않은 2년여의 시간이지만 그간 저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크게 성장하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르신께서 부족한 저를 이끌어 주시고 가르침을 주신 덕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앞으로 제 인생이나 공직생활에서 평생 간직할 소중한 교훈이 되었습니다. 시청에서는 많은 공무원들이 동사무소에서 통 담당, 시청 여러 부서에서 다양한 조직에서 근무하다 자리를 옮기게 되고, 시군을 달리하여 인사이동이 있습니다만 저의 이동도 늘 있을 수 있는 우리 시 부서내의 전보로 생각하고 언젠가 다시 시 발전을 위해 마음으로부터 노력할 것을 감히 다짐드립니다. 특히, 1998년 8월 수해피해와 그 복구과정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행정적 단련의 기회였습니다. 송구스럽게도 우리시 시민들은 물질적, 정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