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1988년 경기도청에 주재하는 중앙사 기자들은 수시로 수원역에 갑니다. 사무실에서 100자 또는 200자 원고지에 기사를 써서 기사 관련 사진과 함께 봉투에 담아 본사 지방부 기자 앞으로 보냅니다. 팩스 전송도 용이하지 않은 시절이므로 인편에 원고와 사진을 직접 보내는 것입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기관사는 부산에서 대구 대전 천안을 거쳐 수원역까지 올라오는 동안 정차역마다 수집한 언론사 원고를 서울역사 안 각 언론사 사서함에 넣어 줍니다. 본사의 역송 담당자는 오전에는 2시간에 한번 서울역에 사송을 다녀옵니다. 석간 신문사는 오후에 신문을 내놓아야 하므로 점심을 먹고 나면 더더욱 바빠져서 매시간 단위로 서울역 사서함을 열고 자료를 받아와서 해당부 기자에게 전합니다. 그리해서 그날 저녁에 기사로 나가거나 늦으면 다음날에야 신문에 빛을 보는 것입니다. 물론 팩스라는 기계가 있어서 원고를 보내기도 하고 기계실에 가면 둥근 통에 사진을 감고 기계를 돌려서 긴 선으로 사진을 보내면 본사 기계실에서 지진계 돌아가듯이 사진을 이른 바 주사선으로 돌려받으므로 오차가 나면 톱니바퀴체 잘린 듯 촛점 흐린 사진이 신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보면 과거의 추억이겠지만
1989년 어느날. 중앙사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입니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난로가에서, 소파에서 머리 속으로만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플러스 펜으로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습니다. 잠시 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 여부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끝입니다. 다른 중앙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아침 10시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 반에 미리 달라 하십니다. 자료를 받으시면 즉시 기사작성을 시작합니다. 우선 제공된 보도자료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봅니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 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첨삭합니다. 또다시 수정하는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 듯 복잡합니다. 글씨를 쓰시는데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참으로 바쁘고 치열합니다.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석간이므로 오후 1시경 지방판이 마감됩니다. 점심을 제때에 맞추지 못하고 늘 바쁘십니다. 수차례 수정과 加筆(가필)을 거듭한 끝
경기도청 최초의 아웃소싱 공무원으로 말하자면 잠사계장과 잠업특장과장을 역임하시고 퇴직 하신 후 수원시 문화원장, 민선 수원시장, 국회의원을 역임하신 심재덕 전 수원시장님을 들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비단을 생산하는 누에고치를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 산업경제의 기반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를 적극 추진하기 위해 당시 고등학교 교사인 심재덕 시장을 특채하여 파격적으로 사무관에 임명하고 이후에는 과장에 승진보직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웃소싱의 원조가 되셨습니다. 이후 심 시장님은 특히 세계 화장실협회 초대회장을 하셨으며 수원시는 물론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의 선진화에 크게 기여하셧습니다. 이후 경기도청에 외부 전문가가 자리한 직위는 비서실장, 여성국장, 공보관이었으며 1999년 홍보기획팀장으로 발령받았고 J공보관을 만난 다음 날 기존의 업무가 바뀌면서 새로운 홍보기획이라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그 자리는 언론인과 접촉하는 자리로서 발령소식에 동료들이 술 많이 먹게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해 주었지만 정작 근무 내용은 서면접촉을 할 뿐 언론인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습니다. 술을 마실 기회도 없습니다. 부서의 역할을 바꾸신 J공보관은 부임 초부터 새로
공무원과 언론인의 끝없는 말싸움은 자료를 달라하고 못준다 하는 것입니다. 자료를 주라는 법이 없으니 심한 경우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합니다. 대외비가 아닌 문서라면 달라하고 내가 처리한 문서를 기자에게 줄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이는 닭과 계란의 문제이고 부산까지 달려도 늘 평행선인 좌측 철길과 우측 레일입니다. 숫자 2는 곱해도 4, 더해도 4이듯이 언론인과 공무원의 대화는 늘 평행선입니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모든 보도 자료는 공보실을 통해서 주고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각 부서는 공보관실이 요구한 자료를 공보관실 직원에게 전달하고 공보관실은 그 자료를 기자에게 전하니 각각의 책임부담을 조금씩 분담하는 것입니다. 공보관실 직원도 공무원이니 자료의 내용을 파악하고 나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판단하라는 것입니다. 사업부서에서도 자료를 제공하면서 기자에게 나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 마음속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기자들도 무턱대고 행정기관의 자료를 보도하기에는 나름 규율이 있을 것입니다. 언론이 폭로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언론보도의 수위가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공익적 책임이 있습니다.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을
방송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카메라감독 입니다. TV에 보도되는 내용은 화면으로 설명하는 작업이기에 좋은 화면을 찍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이는 마이크를 쥔 기자가 아니라 앵글을 맞추는 카메라 감독입니다. 그래서 TV인터뷰 전에 반드시 우리 편 대장님을 카메라 감독에게 인사를 하시도록 주선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카메라 감독은 신바람이 나서 4번 5번 다시 다시 촬영을 합니다. 삼각대에서 찍고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이지저리 촬영합니다. 방송에 나갈때에는 2-3초마다 화면이 바뀌어야 한답니다. 같은 화면이 길게 나가면 시청자가 지루하다 하고 자주 바뀌면 어지럽다 합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화면이 바뀌면서 기자의 리포터가 없어도 무슨 내용을 보도하는가를 시청자가 알아챌 정도로 화면을 구성해야 합니다. 시청자들이 정말로 보고 싶어 하는 장면을 만들어내야 하고 리포터의 핵심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방송기자들에게 아이템을 주면 화면이 있느냐, 현장에서 示演(시연)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느냐를 묻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화면 구성이 안 되는 경우에는 카메라 배정이 안됩니다. 실제로 S 도지사님의 사모님은 아침 뉴스가 끝나면 관내 여러 기관
신문기사의 마무리는 편집부의 몫입니다. 취재기자의 송고는 리드문(첫문장)부터 시작되며 데스크를 거쳐 편집부로 넘어오면 평소 신문 편집에 정통한 편집 전문 기자들이 제목을 정하고 기사를 배치합니다. 물론 1면 톱이나 두 번째 기사, 면 톱의 경우에는 편집회의에서 정하지만 그 외의 잘잘한 기사는 편집부 기자의 제목 작명과 적정한 위치에 배치에 의해 기사의 경중이 결정됩니다. 세로쓰기 신문시절에는 정말로 세로쓰기는 지적이나 비판기사이고 가로쓰기는 홍보성으로 보이는 듯한 시기도 있었고 홍보기사 제목의 바탕에는 비단 무늬가 있지만 지적 비판기사 제목은 그냥 흑백으로 처리하여 강한 인상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강력한 비판의 경우는 검은 판에 흰 글씨가 나오는데 이는 기사제목의 글씨는 흰 종이 원단으로 처리하고 나머지 공간을 온통 검정 잉크로 인쇄를 하니 이를 일러 신문에 도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문을 펼쳐 보아도 웬만한 대문짝보다 크지 않을 것인데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났다고 하는 것은 그만큼 신문기사의 전파성과 기사제목의 위용을 평가하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때로는 취재기자의 기사 논조보다는 편집기자의 제목의 강도, 기사배치 등이 언론사의 의지,
출입기자나 특별히 언론인을 만나는 경우 우리 공무원은 늘 '先言後公'의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이 먼저요 공무원은 그 다음이라는 뜻으로서 일단 이 세상사 어디에나 적용될 말입니다. 즉 모든 일에 언론이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고 공무원은 독자 또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언론의 비판과 指導鞭撻(지도편달)을 따르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언론에 항상 저자세를 취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업무에 자신이 있다면 언론인과 당당하게 맞서면 될 일입니다. 그런데 男性(남성)은 아버지이고 女性(여성)은 어머니이듯이 언론은 評價(평가)이고 행정은 執行(집행)입니다. 행정은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고 인가와 허가를 결정하여야 하는 아주 많은 가지 수의 일을 하여야 한다. 반면 언론은 자신들이 하는 사업은 적은 편이고 늘 기사를 통해 행정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공무원을 계도합니다. 그래서 언론인은 일종의 직업병이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가 오면 짚신 장사 아들이 걱정이요 날씨가 청명 쾌청하면 나막신 장사아들 장사가 안 되니 걱정인 것은 부모마음이나 공무원 생각이나 같을 것입니다. 그런데 언론인은 비 오는 날 만난 아들이 나막신이냐 짚신이냐
시인 조지훈은 당대의 '주선'이라 자처하며 주도의 18단계를 밝혀 놓았다.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은 높아지지 않는다. 주도에도 엄연히 단이 있다는 말이다. 첫째, 술을 마신 연륜이 문제. 둘째,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문제, 셋째는 마신 친구가 문제, 넷째, 술을 마신 동기, 다섯째 술버릇 이런 것을 종합해 보면 그 단의 높이가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음주는 무릇 18의 계단이 있다. 1. 부주(不酒,9급)=술을 아주 못 먹진 안으나, 안먹는 사람 2. 외주(畏酒,8급)=술을 마시긴 마시나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7급)=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 은주(隱酒,6급)=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서 마시는 사람 5. 상주(商酒,5급)=마실 줄도 알고,좋아도 하면서, 무슨 이익이 있을 때만 술을 내는 사람 6. 색주(色酒,4급)=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3급)=잠이
어려서 어머니 술 담그시는 작업을 도왔습니다. 어머니 살림을 거드는 일입니다. 우선 쌀로 밥을 쪄내야 하는데 이른바 "꼬두밥"이어야 합니다. 밥알갱이가 탱글탱글하게 살아 있어야 누룩이 잘 달라 붙습니다. 누룩은 통밀을 갈아 물에 반죽한 후 메주덩어리처럼 각지게 만진 후 쑥으로 쌓아 서늘한 곳에 두어 누룩곰팡이를 불러들여 만든 효소입니다. 촉매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시루에 쩌낸 밥은 멍석에 풀어 식힌 후 누룩가루를 뿌려 고르게 비벼줍니다. 누룩곰팡이가 밥알에 달라붙으면 발효가 되는 것입니다. 알콜은 CH3COOH인가요? 녹말이 주성분인 밥알의 영양분이 누룩곰팡이의 화학작용을 거치면 알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알콜은 에칠알콜과 메칠알콜이 있다고 합니다. 메칠은 화학용으로 쓰이며 먹을 수 없습니다. 에칠알콜은 동그라미가 있으니 동그란 입으로 먹을 수 있다고 초등학교 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학실험실에서 학생들이 에칠알콜을 물에 희석하여 소주파티를 한다고 하네요. 위험한 일입니다. 시중에서 파는 소주도 많이 마시면 취하는데 말입니다. 더구나 메칠알콜을 먹고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할 수도 있다고 하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일단 누룩에 비벼준 쌀
1984년 6월 공무원 30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에는 대략 10개의 떨이가 있습니다. 과장님 자리에 2개(책상에 1, 소파에 1) 계장님 4분 자리에 4개, 차석과 고참 3석 자리에 비치된 재떨이를 합하면 7개 정도이므로 대략 11개가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출근과 동시에 시작된 담배연기는 점심시간 전까지 이어지고 전화 벨소리와 떠들어대는 소리가 뽀얀 연기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전 내내 나타났다가 점심시간에 잠시 사라지고 다시 오후 1시경에 나타납니다. 당시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이가 눈총을 받을 정도로 끽연가가 많았고 다른 이의 책상 위 담배 곽에서 2-3개피 꺼내가는 것은 如反掌(여반장), 茶飯事(다반사), 兵家常事(병가상사)였습니다. 그냥 그렇게 담배는 볼펜이나 타자기처럼 일상 사무용품 중 하나인 듯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자 공무원과 여성공무원 모두가 다수당인 끽연당에게 밀려서 현실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신입들은 담배심부름을 당연히 생각하였고 오히려 담배심부름 잔돈을 챙기는 것을 재미로 삼기도 하였습니다. 젊은 공무원들은 과장님, 계장님, 차석님 책상위 유리 재떨이를 비우고 티슈를 가로세로 깔아준 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