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작성 스타일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89년 어느날. 중앙사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입니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난로가에서, 소파에서 머리 속으로만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플러스 펜으로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습니다.

 

잠시 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 여부만 확인하면 끝입니다.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끝입니다.

 

 

다른 중앙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아침 10시에 보도 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 반에 미리 달라 하십니다. 자료를 받으시면 즉시 기사작성을 시작합니다. 우선 제공된 보도자료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봅니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 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첨삭합니다. 또다시 수정하는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 듯 복잡합니다. 글씨를 쓰시는데 심혈을 기울이십니다. 참으로 바쁘고 치열합니다.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습니다. 당시에는 석간이므로 오후 1시경 지방판이 마감됩니다. 점심을 제때에 맞추지 못하고 늘 바쁘십니다. 수차례 수정과 加筆(가필)을 거듭한 끝에 또다시 정서한 원고에 수정을 한 후 팩스기로 뛰어갑니다.

 

송고하러 가면 늘 팩스기는 만원입니다. 소리소리 고래고래가 따로 없습니다. 전쟁이라도 터진 듯한 분위기입니다. 왜 바쁜 판에 팩스를 쓰느냐 고함을 치십니다.

 

기존에 보내던 자료를 빼내고 자신의 원고를 서울 본사로 보냅니다. 왜 이리도 팩스는 느리게 갈까요. 나오는 원고를 손으로 잡아 뽑습니다. 그리고 본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팩스 보냈다고 하고 있지만 지금도 마지막 페이지는 송고 중입니다. 데스크에서 그래도 잘 받아주나 봅니다. 평소 한달에 한두번 소주한잔은 하시는 사이일 것입니다.

 

원고를 보내고 또 전화해서 기사를 수정합니다. 오후 석간 지방판에 2단기사가 나옵니다. 어느 날은 멋진 기사가 눈에 쏙 들어오게 나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신문은 보면 제목은 2단이지만 기사내용은 4단 분량이니 지면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기사를 읽어야 한다. 마감시간이 지나서 들어온 기사를 지방판에 밀어 넣다보면 그리 된다고 합니다.

 

고인이 된 L기자를 선배님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아니 그냥 '선배'라고 불러야 극존칭이라 했으니 '선배'라 부르고 싶다. 언론인간에는 나이와 무관하게 언론에 입직 入職(입직)한 연식에 의해 선후배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비록 언론인은 아니고 전직 공무원으로서 지금도 그 언론인을 선배라 호칭하고 싶습니다.

 

고인이 된 그 선배가 그립습니다. 다른 기관 간부들과 언론인들이 만찬을 하던 중 상호간에 언쟁이 벌어지자 후배기자들을 질책하며 '너희들을 야단치느니 내가 벽을 차버리겠다'고 액션을 하다 발가락이 골절됐습니다.

 

당시 50대 초반이었습니다. 뼈가 아무는데 한달 반 이상 걸렸습니다. 사무실 차로 출퇴근 시켜드린 기억이 납니다. 훗날 상가에서 만난 H사의 B기자가 당시 현장에 함께 하였고 사건을 생생히 기억한다며 반가워했습니다.

 

품앗이 기사도 있습니다. 좋은 기사를 작성하면 동료 기자에게 선물을 합니다. 워딩한 자료를 받아 부분 수정을 가미한 후 말미에 기사작성 기자의 이름을 올리면 됩니다. 다음날 아침에 4단기사로 보도 됩니다.

 

언론인들의 기사작성 방식은 언론사 수 이상으로 다양합니다. 기사작성에 전심전력하여 점심을 거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간단하게 다른 기자의 기사를 참고하여 다른 사람 밥상에 숟가락 올리고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인이 된 두 분 선배가 그립습니다. 기사작성에 5분이면 되는 K선배가 그립고 2단 기사에 5시간이 필요한 L선배가 보고 싶습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