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3. 불록체인과 암호 경제학 김문수 주임교수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23세에 창업한 18년차 기업인입니다. 26세에 정진학원을 인수하였고 역사 강의로 유명해진 설민석 강사를 발굴하였습니다. 오늘은 4차산업에 대한 관심,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구축, 환경에 대한 기대충족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통해 전통적인 주식회사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드릴 강의의 요약입니다. 1. 블록체인은 암호화폐를 통해 전통적인 주식회사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다. 2. 고객은 기업이 발행한 토큰을 소유하여 소비-생산을 함께 하는 조합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3. 기업은 고객의 능동적인 조합원 참여 플랫폼을 설계하여 주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4. 기업은 열정적인 고객의 참여를 가속화하여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 5. 기업이 보유하는 토큰은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있다. 6. 기업의 토큰 발행이 점점 쉬워진다. 7. 발행한 토큰의 유동화(상장)역시 쉬워진다. 8. 신규 창업자의 ICO보다 기존 기업의 Reverse ICO가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암호경제의 현상들에 대한 기사내용 발췌입니다. 전세계 10억명의
2.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을 찾아서 모네상스 강신장 대표 기술과 인문학이 만나야 합니다. 르네상스는 부활과 재생입니다. 2500년 전에 부활과 재생이 있었습니다. 46개의 기둥으로 구성된 파르테논 신전은 기둥 중간이 조금 볼록하게 만들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중간이 좁아 보인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기둥들은 지상 2.4km지점에서 만납니다. 안으로 쏠려있습니다. 2500년 전에 건물이 왜곡되어 보이지 않고 똑바로 보이게 하기 위해 건물을 비뚤어지게 건설했습니다. 다른 이의 시선을 이처럼 중요하게 생각한 태도를 보인 시대는 다시 없습니다. 이런 태도 속에서 4차 산업이 출발합니다. 내 기준이 아니라 철저히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보는 지점이 중요합니다. 내 기준이 아니라 철저히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서 나를 보고, 내가 하는 일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 지하철 당산역 환승역은 48m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승객들이 들어오는 기차를 타려고 달리다가 사고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포스터를 설치했습니다. “지금 들어오는 저 열차!! 여기서 뛰어도 못 탑니다. 제가 해봤어요.” 이후에는 사고가 줄었습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전략 창조경제연구회 이민화 이사장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ioT+빅데이터+바이오텍과 같은 첨단 기술의 융합? 4차산업을 디지털 트랜스폼인가? 4차 산업혁명은 한국민이 주로 사용하는가? 초연결, 초지능의 4차 산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그 속도, 범위, 그리고 강도를 고려할 때 과거 인류가 겪었던 그 무엇과도 다릅니다. (클라우드 슈밥) 4차 산업 혁명은 인류이 종말로 완성될 것이다. (유발 하리라) 4차 산업 혁명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3차 산업혁명의 연장일 뿐이다. (제리 메리프킨) 산업은 생산+소비가 순환해야 합니다. 기술과 욕망의 공진화가 산업혁명입니다. 생산이 주된 것이 아닙니다. 1700년대 1차 산업혁명은 기계혁명으로서 생존욕구를 충족합니다. 이때에는 인구 증가율과 GDP증가율이 일치하였습니다. 1900년대 2차 산업혁명은 전기혁명으로서 안정욕구를 충족하였고 GDP 증가율이 인구증가율보다 높았습니다. 그리고 1964년경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은 정보혁명으로서 사회 연결욕구를 충족하게 되었으며 인구증가율이 감소하고 GDP는 증가하였습니다. 4차 산업은 인간의 요구가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으로 갑니다. 허기를 메우는 식당에서
[297] 초보운전 승용차 운전은 나 홀로 출연하는 무대가 아니라 서로 일면식도 없는 수많은 배우의 틈새에서 각자의 역할을 공연하는 종합연극이다. NG나면 다시 촬영하는 영화가 아니고 실수하고 관객에게 사과하거나 재치있는 재롱으로 덮어갈 수 있는 연극도 아니다. 운전 중에 사고가 나면 양측이 수십만원, 100만원 이상의 수리비를 부담하게 되고 4주, 8주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 중상의 경우도 있고 사망하는 운전자도 많다. 그래서 자동차보험은 필수인데 사고가 나면 보상을 하고 보험료를 할증한다. 사고를 대비하여 보험금을 낸 것인데 물어준 후에 할증보험료를 부과하므로 작은 사고는 자부담한다. 가입자도 보험사도 자동차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매한가지인데 사고 나지 않았다고 환급해 주지는 않는다. 스스로 사고를 줄이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우리는 운전을 하면서 양보하는 행복을 모른다. 차선을 바꾸겠다고 방향지시등을 켜면 천천히 운행하던 차가 속도를 낸다. 내 앞으로 끼어들지 말고 다음 차에게 양보를 받으라는 메시지다. 그러니 등을 켜지 않고 그냥 밀고 가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초보운전자에게는 여러운 용기다.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양보가 필수다. 앞
[293] 목걸이 신분증 시대 올림픽, 월드컵 등 국제경기장에서 각국의 선수와 임원들은 자랑스럽게 ID(identity card)카드를 체육관과 운동장, 숙소를 활보하는 참으로 부러운 모습을 보게 된다. 공직 초기에 동그랑 디지인의 공무원 뱃지를 달라 했다. 대부분의 젊은 직원들은 서랍 속에 간직했다. 군청에 회의 가는 날에는 공무원 내부의 암행어사인 행정계 직원들이 검문을 받게 되므로 뱃지를 빌려서 달고 출발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청사 내부에서, 또는 민원으로 출장갈 때 공무원임을 표시하기 위해 공무원증을 가슴에 달았다. 이제는 어느 회사에 다닌다고 자랑하기 보다는 신분증이 건물 출입가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거나 매점을 이용할 때 목에 건 사원증과 신용카드로 간단히 거래를 할 수 있으니 요즘 젊은이들은 스마트한 전화기와 5~6개의 신용카드, 신분등으로 무장한 IT 戰士(전사)라 할 것이다. 식당, 약국, 커피점, 옷가게 등 거래처마다 쓰는 카드가 다르다. 스마트폰에서 QR코드를 열어 출입관리 직원의 폰에 마주치면 내 인적사항이 전송된다. QR은 'Quick Response', 빠른 응답의 약자이다. 1994년에 일본기업
[288] 쓰레기 봉투 신문을 통해 쓰레기 종량제 봉투의 무게를 줄여서 배출하는 시민이나 이를 처리하는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있어서 무게의 편리함을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봉투에 쓰레기가 담기고 묶여서 배출되는 과정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수원시청 홈피에 게시된 소각용 종량제 봉투가격(2017년 기준)은 5ℓ150원, 10ℓ300원, 20ℓ600원, 50ℓ1,500원, 100ℓ3,000원이다. ℓ당 30원이다. 통상 가정용 봉투는 5ℓ인데 생활쓰레기를 가득 채워 버리면서 150원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이 용역계약을 한 업체가 수집해서 소각장이나 매립장으로 운송하여 처리하는 과정에 드는 비용에 비교한다면 지극히 저렴한 부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가 제시한 쓰레기봉투 묶음 부분을 지키는 분들이 적은 것 같다. 시내를 지나다 보면 가로수 뿌리 옆에 누워있는 종량제 봉투는 의도하는 크기의 1.5배, 누에고치 형상이다. 쓰레기를 매듭 이상으로 올리고 다른 비닐을 덮은 후에 누렁 테잎으로 둘둘 말아 붙인 영화의 한 장면을 자주 본다. 아마도 봉투에 가득 채워야 한다는 절약 정신이 만들어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작은 고민이 있다.
[284] 걸어서 100리 길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전국은 1일 생활권이 되었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부산이나 목포를 다녀오는 것은 1박2일 코스이고 장거리 구불구불 고개를 넘고 비포장 도로 먼지속을 달려야 하는 고행길이었다. 그래서 산촌 처녀들은 평생 동안 80리길, 32km를 벗어나지 못했다. 태어나 학교 다니고 성장하여 가사를 돕다가 3개월에 한번 지나간다는 보부상, 박물장수를 통해 세상 소식을 들었고, 이들이 중매하여 한 달 후에 신랑이 신부집에 와서 선을 보고 결혼해 평생을 살았다. 조선시대 27명의 왕릉이 모두 온전하게 이어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왕릉은 도읍지의 4대문 10~80리안에 위치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다고 한다. 궁궐에서 출발한 임금의 참배 행렬이 하루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오늘날 10리는 4km이지만 당시의 10리는 5.2km였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왕릉은 한양 주변의 구리시, 남양주시, 서울시 등 수도권의 동남쪽, 서북쪽에 자리했다. 하지만 조선 제4대 세종대왕 영릉(英陵)과 제17대 효종의 영릉(寧陵)은 경기도 여주에, 6대왕 단종의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 장조(사도세자)와 정조
[280] SNS SNS는 ‘Social Network Service’ 의 약자로,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생각이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빠르게 정보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기에 올린 개인 정보가 범죄에 이용될 수 있고, 거짓 정보나 근거 없는 소문이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해질 수 있다는 단점도 있다. 정치인, 연예인들이 번잡한 기자회견을 열지 않고 SNS에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 반성의 글을 올리면 언론이 이를 받아서 기사자료로 활용한다. 소극적, 간접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공식적인 '기자회견 대체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가끔은 SNS를 통해 치열하게 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변에 자랑하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한다. 그래서인가 1년 만에 지인을 만나도 낯설지 않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으므로 안부 인사를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이처럼 현재는 SNS를 정치인, 연예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편리하게 활용하게 되었지만 20년 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경기도가
喪配(상배) 3,000갑자 東方朔(동방삭)은 3,000년을 살았다. 3,000갑자×60 = 18만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회갑을 3,000번 드신 분이다. 지인의 아버지를 椿府丈(춘부장)이라 존칭한다. 참죽나무처럼 오래 사시라는 염원이다. 椿府丈(춘부장)의 椿(춘)은 참죽나무를 말하는데 이 나무는 봄으로 8,000년을 삼고 다시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봄과 가을을 합하면 16,000년이니 동방삭의 18만년은 아니어도 장수의 의미로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누구의 부모님도 필연적으로 돌아가신다. 대부분 자녀의 이름으로 친척과 지인들에게 訃音(부음)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부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아직 어리고 사회적으로 자리 잡기 전인 자녀의 이름으로 부음을 내기가 어렵다. 이 경우 배우자 명의로 부음을 알린다. ooo사장 喪配(상배)라 하면 남편 또는 부인인 배우자가 돌아가심을 알리는 것이다. 先親(선친)이란 돌아가신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 부친이란 자신의 아버지를 말한다. 엄친이란 ‘아버지’를 달리 이르는 말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높이는 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어찌 부르는가.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
독립기념관에 가보자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여 국민의 성금을 보태서 1987년8월15일 개관한 독립기념관이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번지에 있다. 해가 지는 왼쪽, 서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의미있는 야외 전시물을 만나게 된다. 1995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 즉 중앙청 건물의 첨탑과 석재의 일부를 전시해 놓은 전시공원이다. 독립기념관 방문시 필답코스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시 인근을 여행하는 경우 3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방문하시기를 권한다. 관전 포인트가 있다. 전시공원의 설계와 기획의도를 진중한 마음으로 살펴보기 바란다. 반지하를 파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석재의 일부를 원형경기장처럼 배치하고 그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첨탑을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원형의 경기장 형태의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관람한다. 스페인의 투우장이 연상된다. 조선총독부건물은 ‘일제36년’ 압제의 상징이다. 일제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터에 건축을 진행하면서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냈고 광화문을 강제로 이전했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터를 이곳에 잡은 이유를 알게 된다. 1945년 9월 9일부터 조선총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