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근처 실개천 암맷돌 숫맷돌 징검다리 놓여 있다 맷손은 사라지고 암쇠와 수쇠도 보이질 않는다 깊이 패인 홈은 모두 마모되어 민낯이다 한 평생 마주 앉은 두 사람 들숨 날숨 맞춰가며 서로 보듬고 의지 하며 볼 비비는 회전 마찰음 휑하니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몇 가마니 쌀과 보리쌀 몇 말의 콩이 산화되어 나의 빈속을 채워주었을까 자식들 손발에 물 묻히지 말라고 가시고기가 되어 버린 저 맷돌 흐르는 물속에 반쯤 묻힌 채 야윈 등 내밀며 어서 밟고 건너가라 하네. 정겸 시인 1957년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2003년 시사사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이사로 활동 -시작메모- 맷돌이 우리 주위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맷돌은 두 개의 넓적한 원형의 돌을 위 아래로 포개 놓은 형태로 되었으며, 마찰부분은 위아래 엽전모양의 쇠를 끼워 마모 방지와 회전을 원활하게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또한 윗돌 가장자리에 맷손이라는 손잡이를 만들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그 구멍 속으로 곡식을 서서히 넣으면서 맷손을 돌리면 곡식이 갈려나오는 오늘날
글을 열심히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틀린 글자가 없어야 한다. 과거 활자를 뽑아서 책과 신문을 만들던 시절에 大統領(대통령)의 大자 자리에 犬자가 들어가 언론사 전체가 어려움을 겪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과거 활자 신문에서 '문'자 자리에 '곰'자가 잘못 들어간 경우도 보았다. 워드초기에 한자변환에서도 실수가 잦았다. 初代(초대)대통령인데 招待(초대)로 잘못 워딩하여 도지사까지 보고한 아찔한 순간도 기억하고 있다. 요즘에는 한자를 쓰는 경우 반드시 포털사이트의 사전을 검색하여 漢字(한자)가 정확한가 확인해 본다. 하지만 급하게 글을 쓰고 이미 쓴 글을 원고지 5매, 9.5매에 맞추기 위해 한글프로그램으로 계량을 하면 40자 길거나 20자가 짧다.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 문장을 줄이거나 늘리다가 어색한 문장이 된다. 탈고를 하면서 다시 읽어도 자신이 쓴 글은 눈보다는 마음으로 읽어서인가 틀린 글자를 그냥 지나친다. 가끔 가족들에게 완성한 원고를 SNS로 보내서 교정을 보게 하지만 모바일 화면이 작으니 한글의 점과 ‘은’이나 ‘는’ 등 몇 가지 글씨의 경우 틀린 글자를 찾아내기 쉽지 않다. 현직에 근무할 때 어느 과의 자료를 바탕으로 보도자료를 만들어 보내
공직자이든 민간기업 임직원이든 ‘적어야 생존한다’는 말을 꾸준히 실천하고 퇴직한 공직자가 자신의 수필과 언론사에 게재된 기고문, 기행문 등을 모아 50권째 책을 출간했다. 주인공은 화성시청 9급, 경기도청 사무관을 거쳐 동두천·오산·남양주부시장으로 공직 42년을 마친 이강석(66) 전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이다. - 적어야 산다 - 적자생존 - 기고문집 등 50권 발간 지난해에 전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지패스, 경기도 우대용교통카드’를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2017년 6월 출간한 '공무원의 길 차마고도'를 시작으로 자신의 수필집과 시, 기고문을 편집하여 꾸준히 출간을 이어왔다. 특히 2024년 1월과 2월사이에 공직 기간은 물론 퇴직 후에 경기일보, 경인일보, 중부일보, 인천일보, 기호일보, 수원화성신문, 그리고 인터넷신문 뉴스폼에 올린 기고를 바탕으로 5권의 책을 출간했다. 2023년 2월 50번째로 출간한 책의 제목은 ‘향수병#직업병#난치병’이다. 출간제목을 향수병, 직업병, 난치병으로 정한 이유는 자신이 살았던 고향마을을 그리는 마음이 향수병이고, 아직도 공무원인양 행동하므로 직업병이며, 수원시의 각목버드나무 살리기, 화성시의 오도처에 대한 역사
100세 백선엽 장군이 타계했다. 백 장군의 장남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이나 대전이나 다 대한민국 땅이고 둘 다 현충원"이라며 "아버지가 지난해 건강했을 때 이미 대전에 안장되는 것으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백선엽 장군과 함께 낙동강 전선을 지켜낸 워커중장은 1950년 8월 1일 ‘워커라인’이라는 낙동강 방어선을 설치했다. 더 이상의 후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Stand or Die! 비장한 명령을 내렸다. 낙동강 전선을 죽음으로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인 것이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백선엽 장군은 6.25전쟁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다부동을 사수하여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6.25 전쟁 영웅이다. 백선엽 장군을 대전현충원에 모셨다. 다부동 참전용사 4명과 육군 장병 4명이 칠곡 다부동 등 백 장군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8곳에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고 한다. 의미있는 일이다. 백 장군은 생전 "전사한 전우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유지와 함께 다부동, 문산 파평산, 파주 봉일천 등 이른바 8대 격전지의 지도를 그려 전쟁기념관 관계자 등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모든 이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사명이 있다고 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강제구 소령
공공의 장소에 가면 다양한 안내문을 보게되고 안내문의 홍수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이용한 깨끗한 화장실에서 '성인이용금지'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소변기가 작은 것으로 보아 '유아용'이다. 안내문에 성인이용금지가 아니라 '유아용'이라고 쓰면 될 것이다. "조금만 더 가까이, 신발이 울고 있어요"라는 안내문은 조금 강렬한 표현으로 많이 인구에 膾炙(회자)되는 글을 떠올리게 한다. 수년전 설명절에 농수산물도매시장 입장티켓을 뽑으려 하는데 '사용금지'안내문이 보였다. 오늘 쉬는 날인가 하면서 입장했다. 나중에 확인된 바는 설 연휴기간에 일부 가게만 문을 열기에 주차료를 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차량 입장티켓을 뽑지않고 들어가도 된다는 표현을 고작 '사용금지'라 한 것이다. 좀 길어도 이렇게 안내했으면 했다. "우리 시장을 애용해주시는 시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연휴기간 중에 주차장은 고객님께 무료입니다." 공원길을 산책하다가 이상한 문구의 안내문을 발견했다. "공원내 애완견 목줄 미착용 금지" 한참 만에 프랑카드 글의 내용을 이해했다. 공원에 애완견을 데려오실 때에는 반드시 목줄을 매어 주시라는 안내문이다. '미착용을 금지'한단다. 행정기관은
경기신문 지면에 송구한 마음으로 글을 쓰다보니 '어쩌다 공무원' 어공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지방자치시대 민선 단체장을 보좌하는 별정직, 계약직 공무원과 공직의 직위는 없지만 행정을 자문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사실상 공공업무에 영향을 끼치고 도움을 주는 공무원을 '어공'이라 칭한다. 어공은 단체장과 임기를 함께하면서 다양한 방법과 방식으로 업무에 힘을 보탠다. 반면, 언론사 편집부, 보도부는 사회부 정치부 기자를 거쳐서 데스크를 지키고 다시 현장에 나가면서 경력을 쌓아올린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언론사에는 기자가 있고 행정지원팀이 있는데 이분들도 호완성이 있으므로 기자가 경영을 하기도 하고 경영책임자가 편집책임자가 되기도 한다. 공직의 어공이 등장하던 초기에는 제한된 부서에만 배치됐다. 그래서 자신이 어공임을 알리고 업무를 의논하려 해도 늘공들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했다. 늘공끼리 긴 세월을 유지해온 행정기관 내부의 관행과 전통 때문이다. 이제는 늘공과 어공이 상호 활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두 직위가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윈윈하는 방법도 알아냈다. 어공은 기관장의 비서실에 많다. 비서실이란 늘공이 근무하던 1990년 중반 이전에도 주변과 외부의 비판을 받았다. 기
공자님은 노력파인가 생각한다. 공자님은 엄청난 독서가로도 유명하다. 주역을 3,000번 읽으시는 동안 책을 맨 소가죽 끈이 3번 끊어졌다고 한다. 배찬병 생명보험협회장님의 퇴임사에서 인용하는 말이다. 정말로 소가죽을 가늘게 잘라 끈으로 삼아 책을 묶었는데 책갈피를 넘길 때 끈이 닳아서 끊어지면 다시매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그래서 3번째 소가죽 끈이 끊어지자 뒷산의 대나무밭에서 봉황새가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혹시 공자님 시대에 인터넷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상상해 보았다. 책 한 권을 3,000번 읽으시는 공자님과 인터넷의 제목만 보거나 내용 중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읽고, 문장을 그림 보듯 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과 비교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전철에서 거리에서 모바일 액정에 빠져있는 젊은이를 보신다면 공자님은 정말로 "孔子(공자)曰(왈), 독서란, 정보란, 한 말씀..."하실 것이다. 하지만 정보의 바다를 서핑하는 오늘날과 공자님 시대를 비교하기는 어렵다. 走馬看山(주마간산)이라 한다. 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경치를 보는 것이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후에 임금의 명으로 일본에 가셨는데 도요토미가 사명당이 지나오는 10리 길에 진나라의 귀중한 책의 내
공무원 9급 도전은 블루오션이었고 자동차운전면허는 필요한 도전이었으며 타자학원 등록도 필요에 의한 용기였다. 특히 23세에 타자학원에 등록을 하니 학원생들은 중고생, 특히 여중생이었고 그 틈새에서 더듬거리며 2달 가까이 학원을 다닌 기간은 스님의 冬安居(동안거) 같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아시는 바대로 검지는 3~4개의 키를 담당해야 하고 그 좁은 간격안에서 발 빠르게 보다 손가락이 신속하게 찾아내어 콕콕 찍어주어야 한다. 노트북을 쓰는 경우에는 손가락의 감을 지켜주기 위해 불편해도 애완견머리처럼 가방위로 고개를 내미는 긴 키보드를 메고 다닌다. 자판이 76+6+5+3+17=107개이고 전체를 하나로 치면 108개이니 키보드 또한 108번뇌라 하겠다. 골프공이 들어가야 하는 홀컵의 지름이 108mm라는 사실도 꼭 언급해야겠다.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인천시 소재 시험장에 갔다. 경기도내 용인, 의정부, 안산 면허시험장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사무실 차량이 3대인데 운전직은 2명이므로 면허증을 가져오면 운전을 시켜준대서 도전했다. 면허취득 1년 만에 과천청사 앞에서 경미한 사고를 당하고 운전을 접었다가 쌍둥이 아이들 병원에 가기 위해 마이카를 구매했다. 어쩌다
공무원 6급때 처음으로 명함名銜이 나왔다. 1991년 인재개발원 6급 교관요원으로 근무하게 되면서 강사섭외나 외부인사를 접견할때 자신을 소개하고 연락처를 드려야 하므로 이 부서의 오랜 전통이라며 명함 3갑을 새겨준 것이다. 이후 명함을 만들때에는 부서 발령일을 명함 제작일로 새겨넣었다. 최근에 꺼내보니 당시의 지역번호 0331이 나오고 삐삐번호가 있다. 그리고 삐삐라는 것이 신기한 물건이었다. 전화를 걸고 삐삐가 울리면 연락받을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면 상대편 기기에 이 번호가 뜨는 것이다. 그럼 나에게 긴급히 연락을 하라는 메시지로 알고 인근의 공중전화에서 통화했다. 양방향은 아니지만 급할 때 요긴하게 쓰이던 통신 수단이었다. 그 시절 ‘삐삐 받고 전화하였는데 통화 중’이라는 조크가 생겨났다. 전화를 걸라하고 다른 이와 통화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 삐삐는 3년 정도 번성하다 사라지고 시티폰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이 전화기도 일방향이다. 회사 동료나 가족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기만 하는 일종의 족쇄라 비난했다. 삐삐보다 훨씬 발전한 시스템이었지만 PCS가 나오면서 이 또한 세 돌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011, 019, 017, 018 등 번호가 나
어느 장터에서 장사꾼이 장사를 시작했다. 이 창으로 뚫지 못할 방패가 없다. 잠시 후에 둥근 방패를 들고 나왔다. 이 방패로 막지 못할 무기가 없다. 창이든 칼이든 다 막아내는 튼튼한 방패라는 것이다. 그러자 구경꾼 중 한 명이 그럼 세상에 뚫지 못할 것이 없는 이 창으로 세상에서 막지 못할, 도저히 뚫을 수 없는 방패와 겨뤄보면 어떠하겠는가 제안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듣고 보니 말하고 보니 참으로 모순된 일이기 때문이다. 矛盾(모순)이다. 矛(창모)盾(방패순). 어처구니가 없다.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집안이 망했다. 당시 6세였던 김익순의 손자 김병연은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조부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고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공무원이 일을 열심히 해야 할 부서가 있고 적절하게 근무할 부서가 있는 것 같다. 기획부서, 예산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