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깔 영롱한 이름도 없는 새 날갯짓 거두고 은사시나무위에 함초롬 앉아 있다 뒤돌아보니 밤새 날아 온 흔적은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 숨을 돌리는 사이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고 나뭇가지는 고요히 앉아 있는 새를 흔들고 있다 숲속은 어느새 소란해지고 새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삶은 비와 바람과 햇볕과 달빛 그리고 별빛과 몸 비비며 사는 것이라지만 스산했던 숲은 모르는 사이 잡초 우거진 늪이 되었다 아무런 생각 없이 홀로 있고 싶은 새 오늘도 이 골짜기에는 풍향을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 왔다 기도를 위해 두 손 다소곳이 포개는 새 한 마리 눈부시다. 김재자 시인 경기화성 출생, 시집 『말 못하는 새』가 있으며 문예지 및 일간지에 작품발표, 글샘동인, 현재 용인병원유지재단 이사 시평(詩評) 새는 우리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날개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은 인간을 새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시인은 이러한 시적 비유법을 응용하여 본인이 겪었던 일상적 일화를 우회적으로 시로 승화시켰을지도 모른다. 오직 일에 열중한 새 한 마리는 평생을 앞만 보며 수만리를 날아 왔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날아왔던 흔적, 즉 공적(功績)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1960년대 농촌에는 머슴제도가 있었다. 봄부터 시작된 머슴의 농사일은 가을 서리가 내릴 즈음 추수를 마치면 근무가 끝난다. 그리고 다음 해 이른 봄에 다시 구두계약을 할 때까지는 휴가기간을 갖는다. 머슴살이는 오늘날 일부 기업과 행정기관에서 볼 수 있는 연봉제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다. 당시 일을 잘하는 일꾼을 상머슴이라 해서 쌀 12가마니를 받았다. 4가마는 선불로 받고 나머지 8가마는 가을 추수를 끝내고 받았다. 머슴 다음으로 중요한 농사일꾼은 소였다. 8살 전후의 소가 가장 일을 잘하고 주인이나 머슴과 호흡도 잘 맞았다. 요즘 코미디 버전으로 말해 소가 10년정도 묶을라 치면 주인집 논밭의 위치를 모두 알게 된다. 머슴이 바뀌어도 주인은 논밭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농담을 한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농사일은 두엄(퇴비)을 논밭에 나르는 일인데 소등에 싣고 고삐만 쥐고 있으면 10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온 소는 주인집 논의 가장 깊은 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는다. 두엄 실은 망태의 막대기만 당기면 되는 일이다.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면 짐승도 기억하게 되는가 보다. 이 소는 주인집 제삿날도 안다고 시골 노인들은 말했다. 제사를 지
음주운전은 근절되어야 한다. 음주운전은 자신을 버리는 행위이며 불특정 이웃을 다치게 하거나 사망하게 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지난해 어느날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음주측정을 받았다. 다행히 기준 이하 음주상태였다. 그런데 음주운전 측정후 생각이 달라졌다. 음주운전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평소 다니지 않던 길로 가던 중 음주측정을 받았는데 때마침 먹자골목이어서 단골 장소였던 것이다. 앞사람을 기다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조금 먹은 상태임에도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까지 들리는 것 같고 숨을 쉬기가 거북할 정도의 긴장상태가 되었다. 이러다가 심장병이라도 걸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측정후 측정기의 숫자가 올라가는 순간 혈압도 상승하는 것 같았고 어둠속에서 본 숫자는 영영 구속되는 것 같았다. 다행스러워 하는 경찰관의 표정에서 조금 덜한가보다 하는 기대를 하는 순간. 그 경찰관이 “이 대롱은 다시는 음주운전을 하지 마시라는 기념으로 드린다”며 하얀 물체를 내민다. 운전을 할까말까 망설이면서 소주 한 두잔 마시는 것도 스트레스요 음주단속하나 살피고 피해가야 하는 부담도 스트레스이며 다음 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왜 술을 마시고 차를
고부간의 갈등에서 중심역할을 하는 것이 쇳대다. 요즘말로 하면 열쇠요 신세대로 말하면 키(key)다. 창고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곧바로 안살림의 상징이며 고부간의 갈등은 늘상 이것에서 시작되었으며 이 열쇠가 이동함으로써 그 집안은 시어머니 시대가 지나가고 며느리의 시대를 맞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을 무수히 많은 집안에서 고부간에 권력이동으로 나타났다. 그것이 역성(易姓)혁명이든 쿠테타이든 아니면 콩가루 집안처럼 갈라지든 분가를 하든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권한의 의미를 지녔던 열쇠는 금고로 바뀌고 요즘 금고에는 키 이외에 번호판이 달려있다. 열쇠 이외에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금고를 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PC를 쓰려면 최소한 2번의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한다. 그리고 메일을 쓰는데도 패스워드가 필요하다. 패스워드는 여러 곳에서 필요하다. 한집안의 살림살이를 꾸려가는데 열쇠 한 두개면 되던 것이 이제는 개인에게 그 이상의 키가 필요하다. 패스워드가 모든 생활을 지배하는 시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문사 기사검색에도 패스워드, 인물을 찾는데도 패스워드, 패스워드를 찾는 패스워드가 필요한 실정이다. 그런데 요즘 패스워드는 전보다 조건
2001년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살아있었다. 준공 전 밤10시경 수원월드컵 경기장을 방문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6월8일 저녁 8시. 프랑스와 브라질의 대륙간컵 준결승전 경기를 보기 위해 가는 행렬은 가히 외신에서 가끔 보는 토네이도를 등진 그것과 같았다. 차량과 인파가 같은 속도로 월드컵 경기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걸었나. 막히는 길에 정처없이 서있는 버스를 미리 내려서 걸었기 때문에 거리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차량속도가 사람의 속도보다 느린 경우 또한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우리의 젊은 축구팬, 붉은 악마의 친구들은 다급한 발 거름을 옮기거나 경보를 하거나 일부는 뛰어가고 있었다. 경기시작 시간 8시가 이미 수분은 지났으니 말이다. 얼마나 큰지 넓은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경기장 밖을 반바퀴 돌아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등산코스로 치면 하산길의 심정이었다. 경기장은 이미 도자기 가마처럼 달구어져 있었다. 군집한 인파의 움직임을 '열광의 도가니'라고 하던가. 이 거대한 경기장은 바로 열광의 용광로였다. 모두 귀한 사람들이지만 축구공에 쏠린 움직임은 서로가 발산하는 열을 받아 단단해지고 하나가 되어간다. 금방이라도 녹아 내릴 듯
[ 2001의 글입니다 ] 수원월드컵 수원경기장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에 부지 12만8천평위에 4만4천석 축구전용경기장과 보조연습장, 연습구장이 건설된다. 오늘 4월이면 완공되어 본격적인 경기장 다지기에 들어간다고 한다. 옛날에 시골집을 지어도 터 다지기를 했다. 건물이 튼튼하고 오래 가라는 의미에서 그랬다. 월드컵 경기장은 7천6백명의 고용창출, 2천9백억원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 약 30만명 국내외 관광객 방문이 예상되며 960억원의 관광수입이 예상된다. 관광분야에서도 2천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다. 월드컵 수원경기장 건설은 한·일공동개최가 확정되면서 삼성에서 수원에 경기장 건설을 약속해 자신있게 출발하였지만 경제난이 겹치면서 계획이 무산되었고 수원시 자력으로는 도저히 경기장 건설이 불가능했다. 이때 경기도가 전격적으로 나섬으로써 월드컵 수원경기에 새 불씨를 지폈고 힘을 발휘해 이제 경기장 90%의 공정을 보게 된 것이다. 사실 삼성이 경기장 건설에서 손을 뗄 그 당시는 수원시는 물론 경기도가 국내외적인 신인도에 큰 상처를 입을 위기의 상황이었다. 외국인 투자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상황이었고 도민적인 상실감을 더더욱
신문 한구석에 작은 기사지만 큰 이야기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山蔘(산삼)을 얻었다는 소식이다. 측량기사가 산삼을 캣다고도 하고 학술연구팀의 한사람이 심 봤다고도 하고 등산 갔다가 우연히 산삼을 발견하기도 한다.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백성이 보내온 산삼을 부인을 위해 쓰지 않고 적장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의 병을 고치는데 쓰고 결국 그를 투항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견훤에 사람을 풀어 여러 산을 더듬어서 500년 묶은 산삼을 찾아내지만 아자개에게 먼저 도착한 왕건의 1,000년 산삼을 이기지는 못하였나보다. 산삼은 신성스러운 것이어서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더구나 마음씨 나쁜 이에게는 더더욱 보여주기를 꺼린다고 한다. 그 많은 산삼이야기 중에 아주 오래 전 어린시절에 어느 잡지에서 본 산삼이야기가 떠오른다. 산삼을 캔 사람은 늘상 자주 다니던 오솔길에서 산삼을 여러뿌리 캤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끔 지나는 산길은 아주 좁지만 곱게 다져진 오솔길이 생긴다. 그 길가에 뿌리를 내린 산삼은 가끔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에 채이고 5일장을 오가는 소 발굽에 밟혀서 뿌리와 줄기부분이 빙빙 꼬이고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수많은 사람이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말이 있다. 속이 꽉찬 깡통은 깡통 값보다 비싸고 중요한 내용물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바닥에 굴러도 소리가 묵직하고 중심을 잡고 있게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검도나 태권도 고수는 절대로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상대편의 급소를 알기 때문에 함부로 주먹을 쥐거나 발길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의 생활에서도 이 같은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좁은 골목길에 수차례 전진과 후진을 해서 차를 주차한 초보운전자는 사이드브레이크만은 아주 빠르게 당긴다. 또, 컴퓨터 키보드가 손에 익지 않은 초보자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엔터키를 힘차게 치는 일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보면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이 있다. 일하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게 된다. 일의 중간 과정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책을 입안하고 검토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나 시행착오는 간과하고 결과만 놓고 공과를 따진다는 말이다. 이것은 바른 일이 아니다.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63빌딩을 지을 때 당시의 회장님의 연세가 63세였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4월22일 제31회 지구의 날을 맞아 21세기 수원만들기협의회가 주최하고 수원환경운동센터, 수원YMCA, 수원KYC가 주관한 ‘푸른지구 녹색 수원을 향한 자전거 대행진에 참여했다. 지구의 가치를 진하게 느끼게 하는 전형적인 봄날의 오후의 날씨. 참가자 대부분이 이 지구 위 대한민국에서 꿈을 펼치며 살아갈 초등학생이었다. 어쩌면 이 행사를 준비한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을 전하는 현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아주 담백하고 간단한 의식에 이어 시청앞 88올림픽공원을 출발한 일행은 8차선 산업도로를 시원스레 달려 200년 역사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성의 남쪽 출입구 팔달문을 지나 북쪽 장안문을 거쳐서 만석공원에 도착했다. 대략 거리는 8㎞ 정도. 참가자 모두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히고 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행복하게 보인다. 이들 500여명의 긴 자전거 행렬은 도로를 막았다. 횡단보도 앞에 아주 많은 시민들이 모여서 일행이 빨리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고 사거리에서는 차량이 아예 시동을 끈채 초록불 신호등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안한 생각은 많지 않다. 자전거 대행진은 지구를 살리자는데 그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며 자동차로 인한 매연은 지구를
2001년 말에 신문에 보도된 동두천시 만리향 강준기 사장의 선행에 대해 蛇足(사족)같은 添酌(첨작)을 하고자 한다. 강 사장을 만난 것은 1997년 3월경 동두천시 생연4동에 근무때다. 체육회 위원으로 참여하시면서 동시에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1998년에 동두천시에 큰 수해가 발생하였고 많은 주민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가재도구 정리와 수해복구에 나서고 있을 때 강 사장은 수재민을 위해 하루 벌어 하루 무료급식을 하기 시작했다. 강사장 내외가 의견이 맞아 열심히 이웃을 돕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서 당시에 어느 월간지에 소개를 해서 기사가 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선행이 기사로 나기까지 취재기자의 어려움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월간지 섭외를 위해 여러 차례 방문을 하였고 사진을 찍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4년여의 시간을 보낸 후에 강사장의 근황을 신문에서 보게 되어 참으로 반가웠다. 더구나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좋은 일을 해오고 있다는 보도이기에 더욱 반가웠다. 강사장이 자장면 한 그릇마다 50원을 적립해 이웃을 돕는다. 쉬운 일이 아니다. 50원을 쌓아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이 같은 보도가 나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