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事郵便(군사우편)이라는 고무도장이 찍혀있는 노랑색 편지봉투를 접고 접어서 종이 갈피에서 먼지가 나는 편지를 들고 오신 할머니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그 편지를 세 번인가 읽어드린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어머님 전상서. 不肖(불초)소생은 이곳 부대에서 몸성히 잘 있으며 열심히 군복무에 임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저는 조금도 걱정 마시고 어머님 몸 건강히 계십시오.”라는 말도 있었다. 철부지 4학년 학생은 국어책 읽듯이 편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을 뿐 이웃집 할머니께서 이내 고개를 뒤로 돌리시고 눈물을 감추시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접어 돌려 드리면 흰색 거즈 손수건에 정성스럽게 말아서는 고쟁이 주머니에 넣으시고는 잰거름에 집으로 가시곤 했다. 군사우편은 자식과 부모를 이어주던 메신져였다. 전화도 없고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 눈에 익은 자식의 편지지 위 글씨를 보는 것은 부모님의 행복이었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가슴이 저리고 등이 시릴 때 어머니 장농속 한쪽구석에 밀어넣어 두었던 군대간 자식의 편지는 만병을 고치고 온갖 시름을 녹여주는 처방전이었고 그 편지를 읽어드린 초등학생은 잠시 행복을 담아내는 메신
軍事郵便(군사우편)이라는 고무도장이 찍혀있는 노랑색 편지봉투를 접고 접어서 종이 갈피에서 먼지가 나는 편지를 들고 오신 할머니가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 그 편지를 세 번인가 읽어드린 기억이 난다. 아마도 “어머님 전상서. 不肖(불초)소생은 이곳 부대에서 몸성히 잘 있으며 열심히 군복무에 임하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고 “저는 조금도 걱정 마시고 어머님 몸 건강히 계십시오.”라는 말도 있었다. 철부지 4학년 학생은 국어책 읽듯이 편지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을 뿐 이웃집 할머니께서 이내 고개를 뒤로 돌리시고 눈물을 감추시던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편지를 다시 접어 돌려 드리면 흰색 거즈 손수건에 정성스럽게 말아서는 고쟁이 주머니에 넣으시고는 잰거름에 집으로 가시곤 했다. 군사우편은 자식과 부모를 이어주던 메신져였다. 전화도 없고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 눈에 익은 자식의 편지지 위 글씨를 보는 것은 부모님의 행복이었다. 층층시하 시집살이에 가슴이 저리고 등이 시릴 때 어머니 장농속 한쪽구석에 밀어넣어 두었던 군대간 자식의 편지는 만병을 고치고 온갖 시름을 녹여주는 처방전이었고 그 편지를 읽어드린 초등학생은 잠시 행복을 담아내는 메신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불효자가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 늘 마음만 있고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이 허락하지 않으니 안타깝습니다. 파도를 헤치고 바다를 넘나드는 수 만톤급 배가 아니라 차 20여대와 사람 수십명을 태워서는 갈매기와 함께 5분이면 건너가 주름진 어머님 손을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으련만. 강화도 석모도. 보문사로도 유명한 석모도 중간 허리에 서해바다 점점이 작은 섬이 내다보이는 그곳에 사시는 어머님은 오늘도 막내아들 생각을 하시며 갈매기에게 소식을 물으시고 한줄기 작은 바람에게도 손자손녀 작은 손망울이 얼마나 컷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경기미의 백미로 치는 강화 쌀, 한여름 더위를 시원히 씻어내는 花紋席(화문석), 모든 이의 건강을 도와주는 인삼,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물, 맑은 공기와 함께 영혼의 아픈 상처를 씻어줄 것만 같은 마니산. 강화는 경기도 역사의 현장이었다고 합니다. 단군께서 하늘에 제사를 올렸던 마니산 참성단과 단군의 세아들이 쌓았다는 삼랑성을 비롯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곳곳에 있습니다. 고려시대 대몽항쟁 39년간 도읍지인 고려궁지와 팔만대장경 판각지, 국보 제133호로 지정된 고려청자가 출토된 지역이며, 조선시대를 거쳐 구한말 서구열강의
7,310미터와 18줄, 105개 기둥의 예술 서해대교는 거대한 設置(설치) 藝術品(예술품)이었다. 평택시 포승면 희곡리와 충남 당진군 송악면 복운리를 연결하는 국내 최대길이의 교량이다. 흔히 대교라는 말로 긴 다리를 표현하는데 서해대교는 차라리 서해 큰 다리라고 해야겠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도착한 곳은 서평택IC. 프랑카드 글귀가 마음에 든다. “평생에 단한번 마음것 다리위를 걸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서해대교 준공을 기념하는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 멀찌감치 차를 세우고 웅장한 다리 밑은 걸어서 행사장 입구에 도착하니 수천, 수만의 인파가 다리위를 지나고 있다. 먼 발치로 다리 위를 바라보니 작은 개미 머리같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머리만 보이는데 빨리 움직이는 몇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니 마라톤 경기가 시작되었나 보다. 다리 위의 모습은 달랐다. 인파속을 비집고 다리위에 올라가니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그것은 인간만이 바다 위 창공에 설치할 수 있는 상상의 비경이다. 대리석 덩어리속에 숨어있는 모나리자 상을 볼 수 있는 조각가가 있어서 우리는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고 흰색 캠퍼스 위에 바다를 만들고 거대한 산을 만들고
KBS드라마 태조왕건을 보면 술상이 나온다. 반찬그릇, 술병, 술잔이 모두 토기다. 후삼국시대의 그릇은 대부분 토기였을 것이다. 색을 넣은 무늬가 없는 투박한 그릇이었나 보다. 그리고 왕건으로 이어지는 고려시대에 세계적인 수준의 청자문화를 발전시켰다. 맥이 끊긴 도자기 문화는 조선시대 백자로 다시 피어났다. 오늘 흔히 골동품을 연상하는 도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져온 도자문화가 밀레니엄을 뚸어넘은 2001년에 새롭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2001년 8월10일부터 80일 간 열리는 세계도자기 EXPO2001 경기도는 우리 도자문화의 제3세대라고 불러주고 싶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비취보다 더 고운 비색의 고려청자, 백옥보다 우아한 조선백자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도자기를 생산하면서도 이러한 전통을 계승하여 작업하고 있는 도예가들의 근황과 그들의 작품을 세계적으로 소개하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이었다. 임창열 경기도지사가 “한국의 도자기 가마 100선”을 발행하면서 역사를 향해 던진 말이다. 김종민 세계도자기에스포 조직위원회 김종민 위원장은 지난 1만년 역사를 빛내 온 우리 도자기가 새천년에도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는 뜻 깊은 전기가
축제에 있어 불꽃놀이와 폭죽이 메인이벤트라면 올림픽에서의 클라이맥스는 마라톤일 것이다. 행사가 절정에 달하면 사회자의 목소리도 격앙되고 올림픽의 금메달 소식이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다 보면 마라톤 경기가 열린다. 그리고 4년마다 한 번씩 인류는 마라톤을 통해 영웅을 맞이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선수는 마라톤에서 우승을 하고 안익태 선생과 손기정선수 등 조선인 4명이 애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베를린올림픽은 당초 스페인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스페인에 내란이 발생하여 베를린으로 개최지가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는 마라톤에서 우승하여 몬주익의 영웅이 되었다. 특히, 양궁의 여갑순 선수가 첫 번째 금메달을 명중시켰고 황영조 선수는 마지막 몬주익 언덕을 내달려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영조 선수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영광이 온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한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경기도와 스페인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의 조형물 건립이 추진되었다. 스페인을 포함한 외국 도심에 외국인, 특히 생존 인물의 조형물이 세워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바로셀로나시에 가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는 하늘나라 가는 기도를 하였다 그의 기도는 천국으로 매일 다가가게 하였다 그는 하늘나라 향한 마음뿐이었다 회개하지도 않았다 남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첨탑의 종소리보다 빠르게 그는 승천을 하였다 그곳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이었다 천국으로 간 사람들은 없었다 풀 한 포기 없는 곳이었다 천년을 그곳에서 그는 살아가고 있다 이종만 시인 1949년 경남 통영 사랑도에서 태어났다. 1992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늘은 이 산이 고향이다』, 『찰나의 꽃』이 있다.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에 『찰나의 꽃』 선정, 2021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지원금과 제24회 천상병시문학상을 받았다. -시작메모- 이종만 시인은 자연과 함께하는 시인이다. 어쩌면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이 건네주는 선물로 살아가는 양봉시인이기도 하다. 40여 년간 양봉을 생업으로 종사했으며 평생 꽃과 벌을 벗 삼아 살아왔다. 그의 시속에는 자연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 그가 엮어 낸 시집에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만 하는 법과 원칙이 담겨 있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시의 행간 속에 숨겨 놓았다. 「천년」이라는 시를 보자, 천년이라는 긴 세월은 자연의 순리를 거
바쁜 시대를 사는 우리는 고유한 전통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조상의 묘를 돌보는 벌초가 그 일이다. 處暑(처서)가 지나면서 종손들은 벌초를 걱정한다. 고향 떠난 자식들의 입장으로 보면 고향가는 길도 막히고 직장생활에 얽매여 살면서 하루 시간내기가 어렵고 고향을 지키는 맏형이나 아버지 입장도 고향 떠나 도시에 살고있는 30대 동생, 아들, 조카들을 불러 내리기 어려운 것도 매한가지이다. 젊은이들의 심정도 비슷하다. 어린시절 都會地(도회지)로 유학 나온 젊은이들의 고향에 대한 기억이라야 논두렁콩 건너 다니던 학교길과 사계절 바뀌던 뒷동산의 경치가 전부일 것이다. 도무지, 조상을 모시는 일이라야 명절에 두 번과 조부모 제삿날을 시골에서 걸려온 부모님 전화를 받고서야 마지못해 내려가는 실정이 아니던가. 핵가족 시대인 요즈음은 조상님 모시는 일에 관하여 신세대 아내를 설득하는데도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제사를 지낸다고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 무엇이냐고 따지면 대답이 궁해진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렇게 맥을 이어 왔으니 나도 그리한다는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매년, 매번 아내를 달래는 일이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속마음 감추고 시골길을 먼지 날리며 내려와
설에 가지 못한 성묘를 뒤늦게 다녀왔다. 흩어져 사는 집안 어른들과 일찍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나 늦은 성묘에 지각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출발하느라 행장꾸리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쌍둥이 남매중 아들은 어제저녁에는 가겠노라 호언을 하였으나 늦잠에 취해 포기 직전까지 갔다가 아빠의 성화에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제부터 엄마의 응원 아닌 응원으로 동참 의사가 약했던 딸아이는 아들이 가기로 했다고 하자 잠을 털어내고는 스피디하게 준비를 한다. 딸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아들과 똑같이 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바지만 입는다. 어쩌다 여자아이들이 많이 입는 옷을 사면 엄마와 실갱이를 하곤 한다. 바로 이점이 강점으로 활용된다. 쌍둥이지만 1분 누나인 관계로 아들이 간다고 하자 일어선 것이다. 세 식구는 베란다에서 아이들을 배웅하는 아내의 인사를 받고 출발하여 시골길을 달렸다. 30년을 오가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를 연발하는 길이다. 초등학교 시절 도시를 처음 구경 올 때 비포장 길을 달리는 붉은색 버스를 타고 관절 마디마디를 뒤흔들며 지나던 길인데 이제는 포장이 잘 되어서 30분 거리로 가까워졌다. 전에는 1시간 반은 걸리던 길이다. 신작로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시
“수제지건에 대하여”라는 말이 있었다고 한다. 수제지건(首題之件)은 공문서의 제목의 건에 대하여 결재를 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 공무 출장 후 그 결과를 보고할 때는 “의명 현지에 출장하여”라고 시작한다. “명에 의하여” 출장 다녀온 결과를 보고한다는 말이다. 공무원은 물론 모든 조직에는 보고와 결재가 있다. 보고는 자신이 추진한 업무에 대한 결과나 일어난 상황을 윗사람이나 동료들에게 알리는 일이다. 결재는 어느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추진하고자 하는 업무내용을 글로 적어서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조직의 업무방향을 정하는 일이다. 결재에는 전결이 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 과장이 최종결재하거나 국장이 결재하는 것이다. 공무원에게 있어서 결재는 더더욱 중요하다. 10여년 전에는 결재판을 집어 던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실무자가 올린 문서에 대해 결재권자가 의견을 달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공무원 20년 정도면 한 두번은 겪었을 일이다. 결재방법도 다양하다. 집무실 책상앞에 일어서서 실무자를 마주보며 결재하는 스탠드형, 자신은 소파에 앉고 실무자는 부동자세로 세워놓고 서류를 넘기는 히틀러형, 국장, 과장 전결로 결재를 올려도 자꾸 위선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