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당시의 도청 기자실은 참 복잡한 미로였습니다. 중앙지 방, 지방지 방, 지방2진 방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방은 일단 문을 열면 작은 방이 있고 다시 문을 열면 본방이 나오는 구조였습니다. 언론인은 지금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중앙지와 지방사 1진방, 2진방에서 50여명이 취재를 하고 있었는데 도지사는 물론 부지사, 국장, 과장 등이 현안사항을 설명하려면 3번 동일한 설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즉 지방1진 방, 지방2진 방, 중앙지 방을 각각 돌면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어떤 경우는 기자회견 급인데도 3번 반복하기도 했고 여하튼 대화중에 나온 질문의 포인트가 다를 수 있으니 다음날 보도를 보면 서로 핵심과 주제가 약간 혼선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브리핑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많은 언론인들이 일괄 발표하는 별도의 방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자실은 그냥 넓게 쓰면서 브리핑룸이 설치되는 것은 누구나 찬성할 일이겠지만 현재의 공간에 브리핑룸을 만들고 기자실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앞에서 말한 대로 창고형태로 버려진 면적을 조상땅 찾듯이 찾아내는 것으로 일부 면적을 보충할 수는 있겠으나 최소한의
경기도청사가 새로 지어진 광교 청사에 입주했습니다. 1965년에 법이 제정되었고 이법을 바탕으로 수원 청사를 신축하여 경기도청 광화문 시대를 마감하였고 1967년에 수원청사에 입주하여 2022년 상반기까지 팔달산 시대 55년을 마감한 후 이제는 광교청사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최근에 퇴직한 공직자들이 팔달산 청사에 방문하니 청사의 썰렁한 분위기에 마음 둘 곳이 없다는 글을 사진과 함께 SNS에 올리기도 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팔달산 청사를 방문하였고 아직 남아있는 도청 사무실에 가서 업무를 보기도 하였습니다만 역시 공무원과 도민이 떠나간 팔달산 도청의 텅빈 주차장처럼 사무실도 썰렁할 것이라 예상해 보기도 합니다. 1984년부터 수십년간 근무한 사무실이니 어느 건물 몇층에 ##과 사무실이 자리했던 모습과 계 배치까지 성성하고 3년동안 차지했던 자리에는 워드프로세스 작업을 하느라 발가락에 힘을 주어 바닥이 닳아서 생겨난 흔적조차 사진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청춘을 거쳐 장년이 되기까지 일주일 내내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몰려나와 식사 후 다시 들어가고 외식하고 어두운 길을 통해 올라가서 일했던 각자의 추억이 남은 손길이 기억나고 눈길을 추억하는 경기도청의
시청 신규공무원을 위한 강의를 하면서 '시보'떡 이야기를 하였는데 3시간 후에 담당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다음번 강의에서는 '시보떡 이야기'를 하지 말아달라 당부를 합니다. 이날 강의에서 9급 공무원에 임용된 1977년에는 1년간 시보임용이 있었고 요즘에는 6개월로 단축이 되었는데, 이 시보기간중에는 임용권자가 역량이 미달하는 공직자는 공무원 자격을 회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 시보기간을 넘기면 공무원 자격문제는 한 단계 올라간 것이니, 지난 1년 또는 6개월간 자신이 수습받는 어려운 기간동안 도와주신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소속 과에 '시보떡'을 돌린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동시에 첫 월급을 받으면 반드시 어머니께는 붉은 내복을 사서 드리고 아버지, 형제자매에게도 적정한 선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 관행이라는 점을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인터넷 기사를 자세히 읽지 않았던 탓에 강의 일주일 전쯤에 발생한 '시보떡 사건'을 몰랐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지방자치단체 모든 기관에 시보떡 금지 공문서가 도착된 상황이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합니다. 서울시의 어느 9급공무원이 공무원에 합격하여 어려운 살림을 끌어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기자실은 행정기관과 언론인간의 밀고 당기는 공간 확보의 현장입니다. 기자실 확보는 출입 언론인의 자존심이고 기관의 입장에서는 민의를 대변하고 소통하는 현장이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공사를 하겠다며 잠시 기자실을 폐쇄한 후 장기간 신장개업하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기관에서는 늘 아주 넓은 기자를 위한 공간을 확보하려 노력합니다. 기자실 옆에는 늘 브리핑 룸이 있어서 각종 중요 현안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고 때로는 시민단체 등이 찾아와서 기자회견을 합니다. 경기도의회 기자실 브리핑룸에서는 지방선거 때마다 출마 기자회견이 줄을 이어가고 국회의원 출마선언의 장으로 활용합니다. 환경단체, 경제단체, 복지단체 등의 주장을 펼치는 장소로 도의회 브리핑 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기자단은 기자실에 출입하는 언론인들의 모임입니다. 기자단에는 간사라는 총무 겸 회장의 역할을 하는 중견 언론인이 있으며 2년씩 돌아가며 담당하기도 하고 어느 기자단 간사는 10년 넘게 이어 가기도 합니다. 안정된 기자단의 간사는 장기근속을 하게 되고 심히 유동적인 기자단의 간사는 수시로 바뀌고 합종연횡을 이어갑니다. 안정적인 기자단의 간사는 1년에 2번 정도 정기회의
글 소제목이 '악어와 악어새' 입니다.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말합니다. 언론이 악어인지 공무원이 악어새인지 구별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언론과 공직사이에는 여러가지 관계설정이 혼란한 듯 보이기는 합니다만 전체를 둘러보면 그래도 상호 도움을 주고받는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적 삶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사실 1999년경 인터넷 까페에 이 코너 "언론회고록"을 만들면서 이 글을 읽은 언론인 당사자가 고맙다는 말을 해주거나 과한 지적에 대해 항의성 댓글이 올라올 것을 예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목을 정하고 글을 쓰다보니 결정적인 상황을 쓰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의 관계자들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이 문장의 진도를 막았습니다. 특정인의 이야기를 서술하다보면 주변분들의 공감이 부족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항의가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론인은 특히 다른 분야의 인사들에 비하여 자존심이 높습니다. 매사에 비판적인 직업입니다. 그래서 일반인이 언론인을 말하고 그분들의 사례를 적어 공개하는 것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였습니다. 긍정적인 일들을 생각해 내고 좋은 사례를 모아서 정리했습니
경기도청의 인사는 규모와 과정이 크고 복잡하다보 봅니다. 인사부서에 근무한 바가 없으니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인사부서 경험자들로부터 듣고 기억하는 내용을 종합해 보면 6월말 하반기 인사를 발표하기 까지 5월, 6월은 준비와 진행, 협의와 조정의 기간이라 할 것입니다. 5급 사무관이 되어서 시군교류로 동두천시 생연4동장으로 2년간 근무한 후 경기도청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동두천에는 다른 자원을 보내기로 협의를 마쳤는데 당초 공보관실로 배정하려던 계획이 본청내 사무관 이동배치 조율이 늦어지는 바람에 무산되어서 급한대로 잠시 비어있던 소방재난본부 상황2담당으로 보임되었습니다. 소방본부에 행정직이 근무하게 된 이유는 도청의 3교대 상황실과 소방의 2교대 상황팀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 정원을 살려나가기 위해 합동 근무를 하게 되었던데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4개월간 소방재난본부에서 보람차게 일하고 소방의 역량과 근무스타일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소방 관련 시설투자 예산을 확보하는 로비스트 역할도 하였던 좋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방공무원의 희생정신과 일단은 출동하는 '국민새랑' 공직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1980년대 공무원 8급은 영화 '7급공무원'이 되기 직전의 애벌래와도 같은 입장이다. 한여름 10일정도 신명나게 울어대기 위해 8년을 물속에서 애벌래로 기다린다는 그 매미의 사연에 딱 맞는 설명이다. 8급공무원으로 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한번 힘차게 울어보기 위해 기다리는 하안거 스님의 심정일 것이다. 100일간 좁은 두평 방안에서 108배를 수없이 올리며 시간을 불살라가는 스님들의 동안거, 또는 하안거는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가장 차원높은 수련이라고 생각된다. 100일이면 한 계절이 지나가는 길이다. 그 긴 여정을 독방에서 무언, 장좌불와, 정진, 참선하는 일이라서 10년 이상 수도한 스님들만 입실한다고 들었다. 초보 스님들은 하루를 견디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밖에서 무쇠 자물통으로 잠그는 순간의 적막함, 고독, 폐쇄공포를 생각해 본다. 지나친 비유였다 생각이 드는바이지만 1980년대 공직사회의 8급이 만나는 고통은 스님의 번뇌 다음쯤 간다. 일단 7급 선배들은 6급들과 함께 한다. 답배도 같이 피우고 술을 마시면서 뭔 드리도 할 말이 많은가 할정도로 '토크어바우트'에 빠지는데 7급들은 8급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더구나 한 부서에 7급은 7-8명이
2015. 11. 22일 일요일 00:20에 YS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새벽부터 특보기사가 나오더니 오전까지는 과거 자료화면을 바탕으로 뉴스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자 언제 만들어 두었는지 다큐멘터리급의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시작합니다. 정치, 사회 등 다양한 분야 인사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편집한 프로그램이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방송국 편집국에서 특별한 팀이 있어서 미리미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방송국에는 기본적으로 언론관련 자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관련 자료를 꺼내어 방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아침에 준비한 자료화면이 아닌듯 생각됩니다. 그러면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이라며 사전에 프로그램을 준비하는가 봅니다. 이번 방송의 키워드는 높은 지지율과 IMF로 인한 낮은 대통령 지지율입니다. 금융실명제 등 굵직한 현안들을 통해 큰 정치를 펼쳤지만 마지막으로 IMF로 인해 지지율이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보면서 방송국 프로그램 제작에서 이미 정치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마도 방송국에서는 다른 대통령이나 원로 정치인에 대한 사전 자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밤에 성실하지 못한 공무원이 술을 먹다가 돈이 떨어지자 비상금을 가지러 사무실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국장님이 퇴근하시다가 불켜진 사무실에 들어오셨습니다. 직원이 황급하게 국장에게 인사했습니다. "국장님, 늦게 퇴근하십니다!" 국장님이 답했습니다. “김 주무관! 열심히 일하는군!” 다음번 인사에서 이 직원이 승진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몇 번은 승진에서 밀린 직원일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날 국장님 눈에 들어와서 그나마 승진하였고 이후에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옛날이야기'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 시절의 공직 이야기입니다만 가끔 더러는 '어부지리'로 승진하기도 합니다. 8급에서 7급 승진자 1명을 빨리 정해달라는 인사부서의 연락을 받은 국장이 주무과 주무계에 전화를 했습니다. "A, B중 누가 빠른가?" 국장은 인사부서에서 긴급하게 승진대상자를 정해달라 하므로 8급 승진이 오래된 직원을 물었습니다. 주무계 주무관은 자료에 적힌대로 8급에 승진한 순서로 B가 빠르다고 답했습니다. 주무계장은 다음번 7급 승진대상자 순서를 A 다음에 B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B는 최근에 다른 부서에서 전입하였고 A는 B에
[강의 시나리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공직을 정년퇴직한 강사 이강석입니다. 공직 내내 갑질 문제와 공정한 공무수행을 위해 고민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새롭게 공직을 시작하시는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네이버, 다음에 검색하면 제 이름과 경력이 나옵니다. 제가 올려달라고 신청해서 포털에 나오는 것입니다. 공직은 스스로가 창출하는 아름다운 인생의 동반자라 생각합니다. 공직자는 내부 동료, 선후배는 물론 민원인이 원하시는 바를 잘 파악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하 고 업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44년전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한 퇴직공무원의 이야기를 오늘의 시점에서 들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1978년 20살, 43년전에 8주 동안 신규 공무원교육을 받을 때 50대 선배의 강의를 들으면서 이분은 우리 젊은이의 입장을 이해할까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他山之石(타산지석),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입니다. 三人行必有我師(삼인행필유아사)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장황하게 들리시겠습니다만 그중에 공감가는 이야기는 취하시고 마음에 닿지 않는 이야기는 하나의 학습효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가 논어,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