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마을에 태어나서 세상을 보는 눈을 뜰 즈음 보이는 것은 산과 논밭, 하늘이 전부였다. 온통 초가집이다. 아랫마을 1층 건물위에 원두막 만한 건물을 올렸다 해서 구경을 갔다. 세상에 집이 2층이라니. 집은 단층이고 아궁이와 방고래와 굴뚝이 있어야 했다. 낙엽과 나무를 넣고 성냥불을 붙이면 활활 타오르기 불기운은 방고래를 덥히고 남은 연기는 윗목까지 돌고 돌아 굴뚝이 뻐근하게 빠져나와 하늘로 퍼졌다. 동산에서 놀던 아이들은 연기색이 흰색에서 옅은 회색으로 바뀔 즈음 무쇠솥의 밥이 뜸 들고 있음을 안다. 배꼽시계, 해시계, ‘연기시계’로 족했다. 가끔 오정 싸이렝을 들을 수 있다. 1975년경 시골동네는 ‘그린벨트’가 되었다. 땅 값이 오르지 않고 마을 진입로가 외통수인 것만 빼면 공기, 물, 신록, 여유, 삶의 만족도가 높다. 50년 전 동네가 그대로인데 몇 집은 개축을 해서 초가에서 기와가 되었고 더러는 2층 슬라브에 붉은 벽돌이 멋지다. 집터는 그 자리를 지킨다. 집터에 업이라는 동물이 재산과 건강을 지켜준다고 믿는다. 어려서 40대이던 어르신들이 90세다. 고향에서나 타향에서나 공평하게 50년이 흘렀다. 2020-50=1970년,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큰 바람이 가라해서 가는 것이 아니고 오라해서 온 것도 아닌 줄 알지만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제 태풍을 보내고 오늘아침 가을스러운 새벽의 하늘을 맞이하고 있으니 바람을 보내고 하늘을 얻은 격입니다. 그래서 아침 절하기의 자세가 더욱 더 자신감이 넘치는 것입니다. 절을 하면 아침이 오고 절을 마치면 오전이 시작됩니다. 스스로 그리 정한 것입니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 절하지 않으면 계속 새벽인 것입니다. 세상은 천상천하유아독존입니다. 그 뜻이 아닌 줄 알지만 천상천하에서 참으로 소중한 삶을 살고 있으니 살아가는 동안은 우주와 삼라만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고 하늘이 보이지 않으며 낮과 밤의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존재하므로 세상이 있고 비가 내리고 구름이 오고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말을 걸기위해 구름이 날아왔다가 대화가 끝나면 비가 되어 바닥으로 내려와 초목을 적시고 그 농사로 냉장고를 채우고 팬에 볶아서, 나물을 양념해서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우주 삼라만상이 모두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으니 내가 있어서 이 우주가 여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절하기의 화두입니
하나의 목표를 정하고 구체적인 방향성을 추구하는 글을 쓰다보니 어느정도의 틀이 형성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자님 말씀에 독서백편의자현이라고 책을 100번 읽으면 그 뜻을 알게 된다 하시고, 시 300편을 읽어보니 思無邪(사무사)라, 생각함에 사특함이 없다고 하십니다. 시라는 글은 모두가 순수하고 행복한 내용이지 시를 통해 남을 비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정말로 글로써 촌철살인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시를 통해 남을 아프게 하는 일은 거의 본 일이 없습니다. 시는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이거나 사랑, 이별, 슬픔, 행복을 이야기합니다. 짧은 글을 쓰면서 느끼는 바는 起承轉結(기승전결)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중간의 올라감으로 가다가 후반부에 앞뒤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요점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어렵더라는 말입니다. 그런 상황을 풀어나가는 전략을 최근에서야 개발했습니다. 우선은 초벌 막사발로 글을 써두는 것입니다. 제가 올리는 글을 보는이는 다음까페에서 10명 미만이므로 큰 문제는 없습니다. 그냥 개인의 놀이터지요. 여기에 올린 글을 새벽에 일어나 다시 되새김질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틀전에 쓴 생각과 이틀 후의 마음이 달라지고 글
독립기념관에 가보면 / 1982년 일본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여 국민의 성금을 보태서 1987년8월15일 개관한 독립기념관이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로 1번지에 있다. 해가 지는 왼쪽, 서편 언덕으로 올라가면 의미있는 야외 전시물을 만나게 된다. 1995년 철거된 조선총독부 청사, 즉 중앙청 건물의 첨탑과 석재의 일부를 전시해 놓은 전시공원이다. 독립기념관 방문시 필답코스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시 인근을 여행하는 경우 3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방문하시기를 권한다. 관전 포인트가 있다. 전시공원의 설계와 기획의도를 진중한 마음으로 살펴보기 바란다. 반지하를 파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석재의 일부를 원형경기장처럼 배치하고 그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첨탑을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원형의 경기장 형태의 언덕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관람한다. 조선총독부건물은 ‘일제36년’의 상징이다. 일제는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터에 건축을 진행하면서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냈고 광화문을 강제로 이전하였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광화문과 경복궁을 하늘에서 바라보면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터를 이곳에 잡은 이유를 알게 된다. 1945년 9월 9일부터 조선총독부 건물은 미국 육군이 미군정
3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은 18만년을 살았다. 3,000갑자×60=18만년이다. 회갑을 3,000번 드신 분이다. 지인의 아버지를 椿府丈(춘부장)이라 존칭한다. 참죽나무처럼 오래 사시라는 염원이다. 椿府丈(춘부장)의 椿(춘)은 참죽나무를 말하는데 이 나무는 봄으로 8,000년을 삼고 다시 8,000년을 가을로 삼는다고 한다. 봄과 가을을 합하면 16,000년이니 동방삭의 18만년은 아니어도 장수의 의미로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누구의 부모님도 필연적으로 돌아가신다. 대부분 자녀의 이름으로 친척과 지인들에게 訃音(부음)을 알리게 된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부부 중 한 분이 돌아가시면 아직 어리고 사회적으로 자리잡기 전인 자녀의 이름으로 부음을 내기가 어려운 경우 배우자 명의로 부음을 알린다. ooo사장 喪配(상배)라 하면 남편 또는 부인인 배우자가 돌아가심을 알리는 것이다. 先親(선친)이란 돌아가신 자기의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다. 부친이란 자신의 아버지를 말한다. 엄친이란 ‘아버지’를 달리 이르는 말이고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아버지를 높이는 말이기도 하다. 어머니는 어찌 부르는가. 남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 慈堂(자당)이다. 정중하게 모친이라 부
동두천시 생연4동에 근무할때 자주 매일 뵙던 사모님께서 67세에 영면하셨습니다. oo인쇄소 ooo 사장님의 사모님이시고 경기도청 지인의 처형이십니다. 지인께서 전부터 동두천시 생연4동 근무에 대해 잘 아시기에 부음을 가정 먼저 알려주셨고 이날 자신의 차로 4명 2집 부부가 동행해서 요양병원 영안실로 달려갔습니다. 지난번 지인의 모친상에서 마스크를 쓰고 조문을 할 것인가 고민을 하였는데 이제는 코로나19-2.5단계의 위중한 상황이고 부의 안내문에도 마스크를 쓰고 와서 쓴 채로 조문을 하라 합니다. 아예 조문을 사절한다는 문구도 올렸습니다. 참으로 힘든 시기입니다. 고인은 수년전에 큰 수술을 하시고 회복하셔서 콩밭, 고구마, 깨밭에서 일을 하시면서 건강을 챙기셨습니다. 수술 후에 적정한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처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차 회복하시는 줄 알았는데 수개월전에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 코로나상황이 위중해지면서 면회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대부분의 요양병원은 면회를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위중하시다는 전갈을 받고 5분만에 달려갔지만 달려가는 동안에 운명하셨답니다. 의료진에게 크게 어필을 하고 딸이 울고불고 하였지만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고
가을이 시작되면서 덮고자는 이불의 무게가 가벼워집니다. 그리하여 한겨울 소한, 대한에 이르면 두터운 솜이불이 전혀 무겁다는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이를 적응이라 합니다. 여러가지 여건에 스스로 맞춰가는 감각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추울때는 두터운 옷이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고 한여름 무더위에서는 갸날픈 옷자락조차 무겁다는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초감각을 육감이라고 합니다. 육체의 감각이라 하고 6번째 느낌이라 생각합니다. 가끔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게 됩니다. 처음 2011년경에 음식물쓰레게 수집기기를 보면서 각 가정에서 내어놓는 음식물의 양을 어찌 계측할 것인가에 대한 나홀로 고민을 했습니다. 한번 버리면 계측을 하고 어떤 막대로 밀어서 떨어트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설치된 것을 보니 전체 통에 무게를 측정하는 장치를 설치하고 다음 가구에서 투하하는 양으로 늘어난 만큼을 그 세대의 음식물쓰레기 배출량으로 누적 계산하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면 600g단위로 파는데 그 무게감이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5근 3kg을 사게 되면 어느 정도 무게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요즘 음식물 쓰레기를 들고가는 10
만년필, 볼펜, 싸인펜. 잉크를 넣으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다 해서 萬年筆(만년필)이라 이름 지었을 것이다. 펜촉에 잉크를 찍어서 글을 쓰다고 잉크를 담아서 편리하게 쓸 수 있게 한 발명가로서는 만년을 쓸 수 있다는 과대포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싸인펜이 나왔다. 검정, 빨강, 파랑 등 7색 펜인데 빨강과 검정이 많이 쓰였다. 검정색은 결재를 하거나 지시사항을 적을 때 쓰였다. 이름 석자를 흘려쓰기로 붙여서 쓰면 싸인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연습을 했다. 정작 결재라인에 승진하니 마우스 크릭으로 결재방식이 바뀌었다. 부하는 상사의 휘갈기는 결재소리에서 힘을 얻는다고 하는데 마우스 결재는 소리나지 않고 하루가 지나면 국장까지 온라인으로 결재가 끝났다. 문방사우(文房四友)란 문인들이 서재에서 쓰는 붓(筆) ·먹(墨)·종이(紙)·벼루(硯)의 네 가지 도구를 말하는데 이제는 싸인펜 하나가 붓, 먹, 벼루의 역할을 통합해서 행한다. 가볍고 작은 싸인펜에 종이만 있으면 시를 짓고 편지를 쓸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괴나리봇짐 속에는 반드시 문방사우가 있었을 것인데 아무리 작아도 돌을 깎아 만든 벼루이고 먹도 제법 무게가 나갔을 것이다. 그 불편함을 만년필 하나, 싸인펜
공직에 근무하는 동안 어느 곳에서 상수도가 단수되어 물탱크로 골목길에서 급수작업을 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여름 광복절 폭염속 저녁 6시 단수가 되는 흔하지 않은 상황이어서 지역구 도의원, 시의원께 보고드리고 부시장 혼자서 회사직원들과 물탱크차를 타고 현장에 나갔습니다. 골목길에 급수차를 타고 나갔다가 그 차가 고장나서 용역사 직원 승용차를 타고 동사무소로 돌아와서 새벽에 아파트 관리소 현장에 갔습니다. 젊은 청년이 “도대체 시청에서는 누가 나와 있는 것이냐?” 물었습니다. 관리소장이 “저 분이 부시장이다”라고 말하니 그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3년 전에 쓴 글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에게 감동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공직을 나오면서 쓴 글을 보니 당시에는 현직에 대한 미련이 한가득했고 공직을 떠나야 하는 아쉬움이 한가득이었음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열정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습니다. 단기필마로 현장에 나가서 급수를 하겠다고 도전한 것 자체가 잘한 일입니다. 다른 지휘나 역할의 부족함은 반성할 일이지만 이 시대 어디에서 탑다운(top-down)이 먹히는 것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을 해도 당시의 상황을 돌아볼 분이 거의 없으니 편하게 어디
같아서 좋은 것이 있고 비슷해서 싫은 것이 있다. 같은 옷을 입은 친구를 만나면 유니폼 같아서 기분이 좋은데 때로는 교복 같아서 싫은 상황도 있다. 모처럼 옷 한 벌 마련했는데 백화점 현관에서 같거나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나면 덜컥 화가 날 수 있다. 왜 저 사람이 거기에서 나와! 옷가게에서 방금 구매한 디자인, 색상, 분위기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딱한 일이다. 갑자기 새 옷이 싫어지고 “택도 떼지 않고” 면허증처럼 장롱에 들어가 긴 세월을 기다리거나 새로운 입양자를 만나야하는 처지가 된다. 옷으로서의 기능과 함께 멋을 창출하기는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는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가치나 멋스러움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도 부부 단체여행을 가보면 옷의 중요성이 커진다. 첫날에는 평범하고 검소한 옷차림이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과감해지고 공격적인 옷의 향연을 볼 수 있다. 여행 일정 후반부에 가면 부인들은 마치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양 화려한 옷으로 경합을 벌인다. 같은 옷을 연이어 입는 것은 단체여행에서 금해야 하는 에티켓인가 싶다. 여행 가방은 빵빵하고 아침 출발시간은 지연된다. 아침까지 입고 나갈 옷을 결정하는 고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