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에게 신은 평등하여 매일 24시간을 주면서 잠자고 식사하고 쉬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사색하라 합니다. 노숙자의 저녁은 골판지를 모으는 고민의 시각이고 평범한 가정의 밤 11시는 각자의 방에서 나만의 하루를 정리하고 희망찬 내일 아침을 상상하는 행복의 시간입니다. 이제 아침을 맞으면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고 다시 하루를 시작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갈구한 하루라고도 하고 나에게 주어진 하루는 신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24시간 하루를 받으면서 어찌 쓸 것인가 고민을 크게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하루하루를 수많은 사람들이 그 숫자만큼 다른 방식으로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하루는 인생에서 가장 멋진 하루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병상에서 요양원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시는 어르신들의 하루는 길거나 짧을 것입니다. 외롭게 시간을 보내는 하루는 길겠지만 반복되는 일상은 짧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처럼 각각의 시간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홍승표 부시장님 페이스북에서 빌려왔습니다.] 술 마시는 것도 酒道가 있다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에 관한 전설이나 떠도는 이야기는 많
성철스님을 만날 수 있는 겁외사를 화면을 통해서 봅니다. 스님의 생가는 평야지대에 있고 뒷편에 큰 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뒷편에 고가도로가 지나갑니다. 생가 앞에는 사찰을 지었습니다. 성철스님을 기념하고 이어가는 의미의 사찰로 생각합니다. 스님은 무소유였습니다. 동판으로 만들어진 봇짐과 신발, 지팡이가 비석처럼 자리하고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처럼 성철스님도 무소유입니다. 불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소유를 이야기하다 보면 이번에는 성인들의 삶의 모습과 과정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소유한 분들이 후세에 남는 경우는 적습니다. 나를 낮추고 양보한 분들이 후세의 존경을 받습니다. 그런 자세로 절하기를 이어갑니다. 절을 하면 나를 낮추게 됩니다. 자신을 알리려 하면 할수록 감춰지고 숨기려 하면 알려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참으로 참으로 그러합니다. 알리려고 하지 않는데 널리 퍼지고 소문을 내려 해도 알려지지 않는 것이 인간의 향기입니다. 인향만리 주향천리. 술의 맛은 천리를 갈지 몰라도 인향은 이미 만리를 퍼져나가더라는 말입니다. 오늘 그런 마음으로 절을 하고 일을 하고 새벽을 즐겁게 보냈습니다. 두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 주장하지만 가장 행복한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자신이 불행한 줄 알거나 그러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임을 강조하는 바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자신을 불편해하지 말고 강점과 장점을 살려나가면서 스스로 행복의 길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나 행복한 사람들이 행복한 줄 모르고 저렇게 불행의 길로 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늘 아침 절을 하였다는 사실이 행복입니다. 숨을 쉬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 코고는 소리가 행복입니다. 부부가 언쟁을 하고 삐치고 토라지는 것은 부부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니 행복입니다. 도대체 부부싸움을 할 수 있는 부부가 행복한 부부입니다. 남남간에는 버스안에서 발을 밟아야 싸울 수 있습니다. 옷깃을 스쳐야 인연이라 말할 수 있지만 옷이 닿았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아들이 논산 훈련소 들어가는 날에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는 행복합니다. 아기를 낳았으니 행복하고 아들을 낳았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딸을 낳아도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았으므로 논산훈련소에 동행한 것입니다. 딸들은 본인이 원해야 입대할 수 있지요. 그러니 눈물을 흘릴 일이 아니라 자랑스러워할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왜 눈물
▩ 後孫(후손) 100년을 이어가지 못하는 종이와 서류는 보통의 가정에서 제대로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조선시대 왕실의 문서는 별도의 사고를 4개 지어서 보관했다고 합니다만 벼슬을 지낸 영의정 등 관료나 당대의 학자들이 남긴 책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데는 집과 토지, 농지가 함께할 때 더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자자손손 집을 이어 살고 농지를 경작해 먹고 살면서 집안에서 관리하는 고문서를 잘 보존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소중한 자산임을 며느리와 아들, 손자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중국 명의 화타의 부인은 남편이 죽자 소중한 의서를 아궁이에 불태웠고, 이를 예견한 제자가 달려와서 반쯤 불타고 있는 문서를 아궁이에서 꺼내어 급하게 불을 꺼서 구해낸 것이 오늘날 중국의 한의학 수준이라고 합니다. 화타의 아내가 의서를 불태우지 않았다면 지금 의술의 3배 이상 높은 수준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겠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대부 집안에서도 놋그릇을 내다 팔고 스텐레스 그릇으로 제기를 바꾼 며느리가 많았습니다. 옛날 돈을 모아서 부자가 된 국민학교 선생님도 있다 들었습니다. 조선말 우표를 모아서 큰 돈에 내다 판 경우도 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비교평가는 더욱더 어렵습니다. 부분적인 일부를 보고 그 사람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신경을 써서 해야하는 업무입니다. 평가자는 금방 잊어버리겠지만 평가를 받은 사람은 그 결과에 따라서 큰 차이를 겪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 결과가 기대 이하로 나오면 마음이 아플 것입니다. 판사님도 틀린 판결을 내려서 3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기도 합니다. 외국에서 30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9억원 상한선 기준으로 인해 더 받아야 할 보상을 밪지 못한 뉴스를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는 면접관으로 임하는 자세는 가히 무거워야 합니다. 편안하게 필기시험 잘 받은 후보자를 합격시키는 나름 마음 편안한 방법이 있기도 합니다만 실제로 면접관을 해보면 필기시험 성적 이상으로 대인관계나 민원인을 잘 모시는 자세를 갖춘 젊은이를 판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필기시험 2등을 합격시키고 1등을 탈락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최근에 강의를 다녀 와서 평가를 받았습니다. 아주 낮게 나왔습니다. 40여명이 2시간 강의를 듣고 자신의 기준을 바탕으로 내린 결과이지만 받아들입니다. 대신에 지방자
어제 강의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복기를 합니다. 바둑에서 지난 판을 다시한번 수순을 정리하면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보는 것처럼 강의결과에 대하여 수강생들의 평가가 나오기 전에 혼자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잘한 것을 자랑하고, 못한 것과 기대에 올라가지 못한 부분, 미리 준비했지만 실전에서 활용하지 못한 강의 소재들을 돌아보고 다음에는 좀더 큰 글씨로 워딩을 준비해서 교단에 올리고 살펴보면서 여유를 가지고 시간조절도 하고 반응을 보면서 소재활용 시간을 맞춰나가고자 합니다. 나름 열정으로 준비한 소재를 이야기해도 듣는 공무원들의 반응이 약하면 즉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야 하는데 일단 시작한 말을 중간에 정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스킬이 부족한 것 같고 경험도 貧寒(빈한)하고, 특히 수도권, 경기도 강의에서는 비대면, 인터넷, 노트북 강의였기에 반응을 피드백하는데 한계가 있었는데 비수도권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면 강의를 하기에 반응을 살필 수 있습니다. 중간에 수강하는 공무원들의 움직임을 의식하면서 강의를 진행하였지만 역시 대면강의는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비대면에서는 강의를 듣는 반응을 살피는데 한계가 있었지만 실전에서는 반응이 곧바로 나오니 어렵다는
전남 구례 여행을 하였습니다. 화엄사, 사성암, 천은사를 방문하고 구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자연 친화적인 경치와 마을을 구경하였습니다. 아마도 이처럼 자연스럽게 내려앉은 산맥의 공시선이 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강원도의 치열함이 없고 경상도의 광활함과는 다른 평온한 들판의 경치와 풍광이 한 자락 깔고 있는 여유스런 경치입니다. 화엄사, 천은사는 고찰로서 정말로 오래된 목재로 지어진 사찰의 여러 건물이 잘 보존되어 검은 집으로 자리하고 있고 빼곡하게 들어선 사찰의 배치가 다른 지역에서 확인할 수 없는 사찰의 멋짐입니다. 이처럼 건물배치가 바쁘게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호남지방의 특징인가 생각합니다. 화엄사는 544년 緣起(연기) 조사님께서 창건하였습니다. 연기 조사는 화엄경과 비구니 스님인 어머니를 모시고 지리산 자락 황전골에 전각 두 채의 작은 절을 지었습니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를 기록한 경전이니 화엄사가 곧 부처님의 세계이고 깨달음의 성지라는 뜻입니다. 고택 쌍산재는 TV프로 윤스테이에 나온 이후 더 유명해졌습니다. 후손들이 이어 살다가 어느 날 방송국 피디의 제안으로 아마도 한국식 호텔을 운영하였고 방송에서 인기가 높아
정갈한 사진마다 웃음꽃 활짝 피었다 안개 속에 감추어진 희망의 노래 지난번 선거에서는 주인님이 원하신다면 달도 별도 따다 준다 했다 이번에는 태양까지 따다 준다고 번호 밑에 붉은 도장을 꾹꾹 눌러 써 놓았다 파랑꽃 빨강꽃 노랑꽃 보라꽃 연분홍꽃 만화방창이다 꿀벌과 나비는 보이질 않는다 지나가던 중학생들이 한참을 쳐다 보다 키득거리며 웃는다 궁금해서 왜 웃냐고 물었다 저 사람들 당선되면 겁나요 그리고는 저희들끼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잽을 날리며 주먹질과 욕을 하는 퍼포먼스 한창이다 나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답이 없는 세상 이제 지구의 수명은 다 되었다 다시 백아기 쥬라기시대가 그리워진다. 정겸 시인 경기 화성출생(본명 정승렬), 경희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전공 격월간 시사사로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시조부문 행정안전부장관상수상. 현재 경기시인협회 이사와 칼럼니스트로 활동. -시작메모-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 총선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후보들은 앞 다투어 선심성 공약과 온 국민의 머슴이라며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우리나라 통치구조상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의원들이 모여 국민들로부터 위임된
김문수 경기도지사님이 재야운동을 함께 하시던 동지의 요양원을 방문했을 때 소방서의 최신형 앰블런스를 알아보기 위해 119에 전화를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직접 119에 전화를 하니 소방관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나, 도지사 김문숩니다."라며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러자 소방관은 메뉴얼에 따른 듯 동문서답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도지사라 말하면 '네 도지사님, 소방관 아무개입니다'라고 답하면 '앰블런스를 이용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질문 할 순서였습니다. 하지만 소방관은 '도지사 김문수'라는 말을 흔하게 접하는 장난전화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나중에 진짜 도지사임을 파악한 소방당국이 소방관 교육용으로 만든 녹음파일이 언론에서 취재하였고 인터넷으로 퍼져나가서 여러번 당시의 대화상황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반복 청취를 해 보았지만 어느 구석에도 "나 도지사" 라며 "갑질"을 한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친절하게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소방관의 응대를 기다립니다. 결국 대화가 길어지고 애당초 앰블런스를 알아보려던 의도는 사라지고 그냥 소방서에 장난 전화를 한 도지사 목소리를 흉내 낸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
1980년 5월10일에 팔탄면에 발령되었습니다. 軍 복무를 마치고 복직을 신청하였으나 당시에는 이른바 빽 있는 공무원은 교통이 편리한 곳이나 근무에 유리한 부서로 배치하였고 별로 빽이 없는 공무원은 奧地(오지)로 보내는 시절이었습니다. 郡廳(군청) 행정계의 권한이 하늘을 찌르고 날아가는 새의 가는 길을 바꿔버릴 정도의 세도를 부리던 시절입니다. 그리하여 복직원을 냈고 비봉면에 빈자리가 있다하고 인근 매송, 반월, 남양으로 발령받으면 집에서 버스타고 비봉 내려서 다시 갈아타면 되는 것이고 매송면은 5정거장 더가면 면사무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같이 여건 좋은 곳은 예를 들면 도청 계장빽, 군청 과장의 인척 등이 있는 것인지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그림의 떡, 畵中之餠(화중지병)의 자리였나봅니다. 군청 선배 지인에게 동향을 물으니 양감이나 팔탄 등 비봉 집에서 먼 곳으로 보낼 것 같다면서 지금 홀딩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 하십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전화를 하였더니 아직도 검토 중이랍니다. 그리하여 그냥 아무 곳에나 군청 행정계가 편안한 곳으로 발령을 내달라 했습니다. 어디를 가나 공무원 9급 3호봉은 다 같을 것이니까요. 당시의 이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