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주유구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최근에 SUV승용차로 바꿨습니다. 생애 4번째 승용차입니다. 1991년 엑셀, 1996년 크레도스, 2016년 K5, 그리고 이번에는 소렌토SUV입니다. 현대, 기아, 기아, 기아입니다. 한 생애를 살면서 여러번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는것과 같습니다. 부모를 만나 50년을 살면 이별을 합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이 정말로 필요로 할 때 떠나십니다. 초중고 동창중에도 세상을 떠난 친구가 한반에 10명이 넘습니다. 인생은 수많은 것과의 만남이면서 이별의 현장이 되기도 합니다.

 

 

신차를 받아 가족 나들이로 시승을 하고 점심을 먹은 후 귀가하는 길에 알뜰주유소를 발견했습니다. 들어가서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후에 주유를 준비했습니다. 주유구를 열기위해 계기판을 살폈습니다. 쉽게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안경을 벗고 계기판에 20cm가까이 눈을 들이대고 촛점을 맞춰보았지만 주유구를 여는 아이콘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youtube를 열어 주유구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견하지 못하였습니다.

 

딸아이가 고민하다가 주유구를 누르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IT에 익숙한 청년들은 생각의 다양성이 있나봅니다. 그리고 곧바로 주유구를 열었고 주유를 마쳤습니다. 누르면 열리고 누르면 닫히는 주유구입니다. 아마도 스마트키가 있고 창문이 열려있을 때는 주유구가 열리고 주차장에 두거나 스마트키가 멀어지면 주유구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 상상하기로 했습니다.

 

1970년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새마을사업이 활성화된 시대에 농촌마을에 전원주택을 지은 농촌부인이 도시에 사는 지인을 초대했습다. 도시부인이 버스를 타고 4km시골길을 걸어서 전원주택 앞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도시부인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도시부인은 평소 집을 나설때 인사를 하고 퇴근하여 집에 들어갈때에도 인사를 합니다. 도시의 단독주택의 대문은 굳게 잠가두고 네모난 쪽문을 내고 드나들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쪽문에 익숙한 도시부인은 시골마을 지인의 전원주택앞에 도착해서 가장먼저 대문을 찾기로 했습니다. 밭 한다운데에 덩그라니 세워진 전원주택에는 울타리가 없습니다. 울리리가 없음은 물론 대문도 없습니다. 잔디밭을 지나가면 곧바로 현관문입니다. 하지만 도시부인은 고정관념으로 대문앞에서 쪽문에 인사하고 들어갈 요량이었습니다. 결국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시로 돌아갔답니다.

 

2024년에도 행정행사에서 사회자는 "시간 관계상 국민의례는 생략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단체장, 의장, 의원, 기관단체장을 장황하게 소개합니다. 행사 시간 60분 중에 20분 이상을 참석자 소개에 할애합니다. 하지만 애국가 1절을 부르는 시간은 없다고 사회자는 주장합니다. 고정관념에서 연유한 일입니다. 차량의 트렁크, 주유구는 버튼으로 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안경을 벗고 5분이상 계기판앞을 서성였던 것입니다.

 

우리사회에는 고정관념에 의한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행사에서 사회자는 "뒤늦게 오신 홍길동 시의원님을 소개"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우리 행사에 오신분으로 소개해도 부족할 것인데 왜 굳이 "뒤늦게"를 강조할까요. 습관성 관용어입니다. 국회의원들은 언쟁을 하면서도 "존경하는 홍길동 의원님"이라고 상대방을 칭합니다. 언쟁의 내용을 보면 전혀 존경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말은 존경한다고 합니다. 모순입니다. 못 뚫을 방패가 없고 못막을 창이 없다는데서 矛盾(모순)이 연유합니다.

 

야구의 고의사구는 인간진화의 꼬리뼈입니다. 투수와 포수가 강타자를 피하기위해 일부러 볼을 빼서 4개의 볼을 던지던 과거의 야구룰을 고의사구라 했습니다. 이를 본 관중들이 불편해하자 야구룰을 바꾸게 됩니다. 수비팀 감독이 심판에게 고의사구 싸인을 전하면 심판은 이를 받아들여 볼넷으로 판단하고 타자를 1루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타자주자가 1루베이스를 터치한 후 오른쪽으로 나가면 쎄입이지만 왼쪽으로 나가 베이스에서 발을 떼면 아웃이 됩니다. 2루 방면으로 나가서 베이스터치를 하지 않으면 아웃인 이유는 2루로의 주루플레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승용차 주유구를 여는 버튼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고 형식과 절차에 얽매여서 세월을 허비합니다. 최근에 시청모임을 의논하면서 공무원과 논의중인 사안이 있습니다. 공무원측에서는 의전상 시청 회의실에서 모이자 합니다. 주차장이 좁은 시청에 모여서 시정설명회를 듣고 다시 버스를 타고 식당가서 오찬하고 다시 돌아와서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는 번잡함을 피하기 위해 아예 주차장이 넓고 빈자리가 많은 식당에 11시경 모여 브리핑을 듣고 식사하고 귀가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현직 공무원은 아직도 의전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이 또한 그냥 열면 열리는 승용차 주유구를 여는 버튼을 추가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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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