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에 쓴 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지금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퇴직 증후군이거나 후유증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감에 대한 고민을 해온 바 있습니다. 실제로 직장에서 또는 이 사회에서 함께 생활하던 어떤 동료들이 어느 날 떠난 후 소식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재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새벽에 중국 여행지에서 심장마미로 돌아가시거나 자신의 집 목욕탕에서 혈압으로 쓰러져 절명한 분이 이후 모임에도 안 나오고 어느 집 결혼식이나 상가에서 만날 수 없다는 것만으로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완성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혹시 어디에 존재하는데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다는 假定(가정)도 세울 수 있습니다.

중병으로 침상에서 10년 넘게 투병 중인 분이 있을 것인데 이분이 존재하는 것인지 부존재인지에 대한 확신도 없다는 말입니다. 가족과 의사, 간호사에게는 존재하는 분이지만 이분을 병문안 가는 일가 친적은 그분의 존재를 알지만 그 이외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많은이가 각자의 집에서 직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존재라는 것은 그 본인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존재는 만나고 대화하고 함께 식사하고 단체로 등산을 하면서 한 방향을 바라볼 때 확실해진다고 봅니다.

이것을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움직임을 보여야 하고 그 움직임 중에 함께 같은 목표와 방향으로 이동하며 교류하면 상호간에 있어서 존재는 더욱 더 확실해 집니다.

紐帶(유대), 連帶(연대), 信賴(신뢰)속에 자신의 존재는 물론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상호간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사회라 하고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무인도에서 평생을 혼자 살다가 스스로 만든 돌무덤 속으로 떠나갔다면 이 인생은 정말 존재감 없어 보입니다. 존재는 사회적 활동이고 부모와 배우자와 자녀에 의해서 존재가 이어집니다. 이어지는 존재는 문화를 이어가고 발전시키게 됩니다.

앞날을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귀양생활 속에서 茶山(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많은 걱정을 하였습니다. 존재에 대해 고민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저술하고 자식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부모자식간 연대의 방법중 하나로서 편지를 쓰고 보냈습니다. 자식에게 보내는 편지를 3년동안 여러가지 필체로 쓴 것이 하피첩이라는 서간문입니다.

 

丁若鏞 筆蹟 霞帔帖 (정약용 필적 하피첩)

보물 지정일 : 2010년 10월 25일

소 장 : 국립민속박물관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로 30 (탄현면, 국립민속박물관 개방형수장고)

크 기 : 제1첩 가로 14.2cm, 세로 24cm, 제2·3첩 가로 15.6cm, 세로 24.6cm

 

유배지에서 고생하시는 남편에게 아내의 정성을 담은 정표로 보낸 색바랜 치마하나. 이를 받아본 남편 정약용 선생은 아내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그 치마를 작게 잘라 그 위에 편지를 쓰기 시작하여 3년만에 하피첩을 완성합니다.

그 하피첩 4편중 3편이 존재합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명인사의 저술이 모두다 존재하는 것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하피첩의 존재 운명은 한강물위 浮萍草(부평초)만큼 위태아슬하였습니다.

乙丑(을축, 1925) 대홍수 때는 宗孫(종손)이 목숨을 걸고 하피첩을 구했습니다. 6.25전쟁 중에 분실되고 수원의 어느 넝마 할머니 손수레에서 다행스럽게 존재의 힘을 받아 4편중 3편이 돌아온 것입니다.

 

이 3편의 하피첩도 압류, 경매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소유하게 되고 남양주시 다산박물관에서 그 사본을 입수하여 관리하고 있으므로 참으로 소중한 존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존재의 묘미라 할까요. 그냥 평범한 돌은 많아서 존재감이 떨어집니다. 둥근 돌에 수정이 박혔거나 국화문양이 새겨진 수석이래야 존재감이 높아집니다.

평범한 이에게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만 범상하지 않다하여 모두가 존재감 갑은 아닌 줄 생각합니다.

직장에서는 차라리 존재감 없는 이가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됩니다. 꼭 없으면 존재감 높아지는 직원이 있습니다.

 

평소 저 혼자만 일하거나 대충하기에 동료 상사가 그 일을 모르다가 이 사람이 출장가거나 연가중에 어떤 일이 벌어지면 주변에서 대신할 사람이 없기에 존재감만 커지는 것입니다. 이 경우라면 부의 존재감, 마이너스 존재감입니다.

반면에 있는 듯 없는 듯 한데 그 직원이 없는 날은 무엇인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고 그 사람이 있는 날은 아무 일 없이 부서 업무가 돌아가는 것을 뒤늦게 느끼게 됩니다.

옛 구전 이야기에 ‘시아버지 죽었다고 좋아했더니 돗자리가 떨어지니 생각이 나고, 시어머니 죽었다고 좋아했는데 무명등걸이 뚫어지니 생각이 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무명등걸은 목화로 실을 뽑아 만든 옷을 말합니다. 이 세상이 잘 되고 존재하기 위해서는 글 읽는 소리, 길쌈하는 소리, 아이 우는 소리가 필수라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를 위해 필요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인가 봅니다. 더 큰 세상을 보기 위해 글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고 옷감을 마련해야 하고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東西古今(동서고금)에 존재를 위한 필수품목입니다.

자동차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만 개의 부품과 함께 최종적으로는 윤활유와 휘발유와 핸들과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만 요즘에는 추가 장비로 네비양이 중요합니다.

다 아시는 바이지만 남자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세 여자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첫째는 어머니 말씀, 다음은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세 번째는 네비양의 안내 멘트를 잘 듣고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 네비양도 참으로 바쁘다고 합니다. 주인님이 자동차 시동을 걸고 네비양의 얼굴에 목적지를 설정하는 동시에 네비양은 엔진에게는 오늘 출력 예상치를 전하고 바퀴에는 거리를 알리고 브레이크에게는 활동영역을 전달합니다.

 

네비양에게 부여된 여행지의 거리, 도로사정, 오늘의 날씨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다는 말입니다.

우선 수원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고석정을 간다고 하면 의정부까지는 고속도로, 이후에는 국도, 그리고 차량이 적은 강원도 구간을 달리는 것이니 엔진이 전반부 고속도로는 막힐 것이 예상되지만 연천을 지날 즈음에는 고속도로가 아니지만 차량은 감소하여 편하게 주행할 수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브레이크는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바쁘겠지만 연천 철원으로 가면 쉬면서 대략 운행할 수 있음을 예감합니다.

연료통과 게지는 후반부에 주유소가 적으므로 미리 급유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주인님에게 연료게지가 잘 보이도록 색상을 강조하게 될 것입니다. 전방 연천 고성에는 상대적으로 주유소가 적으니 말입니다.

 

물론 수도권제1순환선 수원-의정부 구간에는 주유소가 구리휴게소 한곳 뿐임을 연료통과 그 일행들은 이미 간파하고 있습니다.

2002년경에 언론을 통해 ‘원웨이’로 改名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수년전에는 ‘수도권외곽순환도로’라 했는데 명칭개선을 요구하는 주장이 빗발쳤습니다. 경기도가 수도권의 外廓(외곽)이라는 표현에 공무원과 도민이 분노하였습니다.

긴 시간을 기다려서, 수많은 주장과 요구를 반복한 결과 수도권외곽순환도로라는 명칭은 수도권제1순환선으로 순화되었고 지금은 수도권제2순환선의 일부가 개통되었습니다.

 

<2015년의 기록>

201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2018년에 오산시 승격 30년 타임캡슐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오산시의 새를 까마귀로 바꾸는 것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송탄에 있는 오산비행장의 유래는 오뫼장터 인근에 헬기장이 있었던 데서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후 전투기 비행장을 만들고자 하니 좀더 남쪽의 송탄지역이 입지에 유리하여 평택지역에 비행장을 건립하면서, 송탄이라는 발음, 그 지역 명칭의 영어발음이 어렵고 기존의 오산이라는 영어발음이 편해서 오산비행장이라 명명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관련과에서 미군측에 자료를 요청할 것입니다. 과거에 선배 공무원들이 오산비행장을 송탄-평택비행장으로 개칭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당시 미국측 답변이 우선은 개칭이 어렵고, 만약에 바꾼다 해도 그 비용이 당시의 오산시 1년 예산을 넘을 것(1조원 추정)이라 답했다고 합니다.

현재,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 서울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곳은 성남시일 것입니다. 서울공항이 성남에 있고 김포공항도 서울시로 편입되었습니다.

과거 화성군청이 오산시에, 양주군청이 의정부시에 있었고 옹진군청은 여건상 인천광역시에서 일을 보고 있습니다.

 

제가 수도권 외곽고속도로를 원웨이로 바꾸자고 주장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둥근 도로 원웨이, 영어로는 하나로 통합하는 ‘원웨이’라 생각했습니다.

세마대 누각을 건립하는데 시민들이 참여한 사실이 있다고 하고, 1955년에 초전비를 건립할때 서랑마을 주민들이 참여했다는 지역 원로의 증언이 있습니다. 1955년부터 7년간 7월 초전비 추모행사를 주관하셨다고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