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0일 발령동지회 선배님께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1981년 8월10일에 경기도청 사업소인 농민교육원에 전입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젊어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반복해서 쓸 이야기입니다.

공직의 전환점이 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아니고 이후에는 그러하다는 말은 아니고 공직 39년8개월은 1977년 5월 시작에서 2017년 1월까지 전 과정이 소중하고 귀중하다는 말씀을 미리 드리고 시작하고자 합니다.

 

 

1958년생이면 1981년에 23세 청년입니다. 어린 나이에 고향 비봉면의 인근에 소재한 팔탄면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했습니다. 6km를 걸어서, 자전거타고, 버스타고 3번 환승하면서 다녔습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가 없었고 버스 환승할인제도도 없었고 교통노선도 지금처럼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출퇴근이 어렵고 힘들었으며 출퇴근 비용도 적잖았습니다.

걸어서 한밤중에 집으로 오는 길 고개마루에서 여우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전설의 고향, 전설따라 삼천리 마을입니다.

 

그리하여 버스를 3번 갈아타고 가서 일주일 근무하고 토요일 오후에 집에 왔다가 다시 짐 챙겨 버스타고 일주일 근무하는 초임 공무원 생활이 어려워질 즈음에 도청 전입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냥 모르고 지나갈 일인데 그해 마지막 9급을 뽑는다는 공문서가 총무계 서무 오 주사에게 왔고 살펴보니 유일한 응시 가능자인 저에게 그 공문이 쥐어진 것입니다.

 

다만, 이곳까지 버스갈아타고 오는 어려움 없이 시골 집에서 버스타고 수원 세무서앞에 내려 팔달산 언덕에 조금 올라가면 된다는 지리적, 사무실 위치적 상황만을 파악하고 우편으로 원서를 보냈습니다.

경기도청 고시계 앞으로 보냈는데 나중에 보니 전입 시험은 인사계에서 관리했습니다. 수성고등학교 7년 선배 심재인 서기가 담당자였습니다.

후미 성적으로 합격은 했지만 전입발령은 나지 않았습니다. 요즘 영화 택시운전사가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만 1980년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와중에 전입시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1981년 8월까지 10개월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화성군청에서도 더 이상 전출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는데 관리가 소홀하였는가 몰라도 1981년 8월1일에 8급 지방행정서기로 승진발령을 내 주셨습니다.

하지만 화성군청 8급서기는 월급도 못받고 명함도 새기지 못한 채 8월10일자로 경기도청 전입발령이 났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군청으로 발령통지가 가자 '이 직원은 8급 승진했다'고 말했고 도청에서는 알아서 하라 했나봅니다. 동일자 취소된 인사기록카드 사본이 지금도 잘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981년 8월10일에 경기도청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시험 볼 당시에 생각한 바대로 수원세무서 앞에서 버스를 내려 팔달산으로 걸어가면 근무할 사무실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발령장에는 도 전입을 명하는데 근무지는 '농민교육원'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화성군 태안읍 기산리315번지에 소재한 경기도청 기관 중 하나 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화성군청 출신이라고 화성군 관내에 발령을 내주신 인사부서에 감사해야 하는 줄을 나중에 철들고서야 알았습니다.

이날 동일자 발령받은 분들은 자칭 '8·10'동지회라 했습니다. 8월10일자 발령 동지라는 뜻입니다.

출근 첫날에 택시기사님께 물으니 모르신다 하시므로 3번째인가 만난 택시기사님이 태안읍에 농업기술원과 함께있는 곳이라면서 태워주셨습니다.

그리고 3년1개월간이나 장기간 근무하게 될 줄은 전혀 모르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무수히 많은 선배들이 떠나가고 새로운 분들이 오셨습니다.

 

대략 30명을 송별식 해드리고 자신의 이별 밥상을 받고 1984년에 말로만 듣던 경기도청 새마을지도과로 발령을 받았던 것입니다.

1982년 2월1일에 화성에서 8일간 근무한 8급에 復位(복위)되어 경기도농민교육원내 새마을계에서 서무계로 내부 전근되었습니다. 서무계 2년7개월동안 소설책 한 권을 쓸 분량의 다양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추억도 많고 기억도 다양합니다. 한 일도 많고 할 일도 많았습니다.

이것은 아니다라는 일도 있고 이렇게 하는 것이 행정이구나 하는 경험도 쌓았습니다. 어쩌면 이후의 공직에서 행할 각종 사태에 대응하는 역량을 키운 기간인가 생각합니다.

 

선배를 존중하고 동료를 아끼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조직내 불편함이 있으면 조율하고 절충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정말로 모시고 근무한 계장님의 지도편달은 어쩌면 평생을 통해 金科玉條(금과옥조)입니다. 꿈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자네는 크게 될 사람이니 이런 상황에서는 이리해야 하고 저리하면 안된다고 직설화법으로 훈육해 주셨습니다. 1928년생이시니 89세에 이르셨을 것입니다. 2022년으로 계산하면 93세이십니다. 유재연 계장님이십니다.

 

잘해야 할 일보다 이렇게 하면 아니된다는 교육이 많은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니면 잘하여야 하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지는 법이고 해서 안 될 일은 뻐근하게 다가오기에 조심해야 할 사안에 대한 기억이 더 생생할 것이라고 봅니다. 여러가지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차량관련, 관사관련, 업무추진비 관련, 법인카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근신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요즘에 논란의 뉴스에 나오는 公館兵(공관병)도 마찬가지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1982년 당시에 들은 갑을 이야기 하나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경기도청 간부 어르신이 심야에 자가운전으로 귀가하시는데 문 여는 속도가 느렸다는 지적을 간부회의에서 전달 받았습니다. 이에 총무팀이 빌라 경비실에 가서 항의를 했습니다.

“이보시오, 그분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데 정문을 늦게 열어서 화가 나시게 하였오?”

하지만 간부 관사가 있는 빌라의 경비 아저씨들은 당당했습니다.

“그 분이 당신들의 원장이지요. 우리에게는 입주민 중 한사람입니다.”

 

공직자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경비원의 답변을 들은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수 공무원들은 업무추진비로 사과 한 상자 사 들고 가서 잘 부탁했어야 할 사안이라 결론지었습니다.

8·10동지회 멤버중 또 다른 선배님은 剛直(강직)의 대표주자였습니다. 구내식당에서 제가 원장님 식판을 치우려 하자 제지를 하셨지만 나중에 보니 당신도 원장님께 잘 보이시려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식판치우기는 아니었지만 당시 개인적 판단으로 저리까지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 것으로 보아 過恭(과공)은 缺禮(결례)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봅니다.

그래서 달리 해석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 윗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려 애쓰는 모습이 안스러워 말리신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權威(권위)와 權威主義(권위주의)가 켭켭 쌓인 官僚制(관료제) 조직에서 살아왔고 그렇게 근무한 후에 원장님, 과장님, 팀장님, 주무관이 함께 비슷한 시기에 퇴직할 것이지만 앞길 창창한 23세 시골청년 공무원에게는 그런 권위주의적 공직 분위기를 물려줄 수 없다는 憂國衷情(우국충정)에서 나온 행동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결국 윗분에게 입안의 혀처럼 잘 보이기 하는 것은 포기하였고, 아예 태생이 그런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하고 일에 열중하였다고 자부합니다.

여하튼 사감실 개설, 물탱크 청소, 운전면허 취득, 타자학원 개인수강 등 다양한 업무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모습을 보시고 원장님께서 크게 칭찬을 하신 바는 있습니다.

 

그 칭찬을 그냥 그 사람에게만 한정하는 내용으로 하시면 참 좋을 것인데 다른 선배들과 비교하니 참 송구한 일입니다.

어느날 회의에서 6급 간부와 7급 차석들에게 '면서기 8급(이강석)만도 못하다'고 질책을 하신 것이지요. 그리하여 장 선배님이 회의 후에 '이주사(서기도 주사로 호칭), 일좀 대충하시게'로 마감된 해프닝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선배들은 모두 퇴직하고 농민교육원 후배는 누구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다만 당시의 선배들이 각별히 이끌어 주신데 대해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이고 지난번 모임에서 생태찌게 대접하면서 당시의 추억을 마음속에 녹여보았습니다.

오늘은 8월9일이고 내일이 8월10일입니다만, 1981년 도청 전입으로 치면 36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그날의 작은 소망과 기억들을 추억하고자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선배님!!!  △ 2024-1981= 43년전 이야기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