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면접과 반성 ▤
같은 시대를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서 질문하고 사람을 평가해서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 참으로 송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장점을 살리기 보다는 단점을 찾아서 점수를 낮게 매기는데 집중하는 자신의 모습도 서글픈 광경입니다.
사람은 각자의 능력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사회 어느 분야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인데, 자리는 적고 취업을 하려는 이는 많으니 그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더러는 임의로 지정해서 벼슬을 내리면 공정하지 못하다 하니 공평하게 공고를 해서 응모한 사람중에서 평가를 통해 선발했다는 이른바 객관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니 이 또한 완벽하게 객관적인가 공정한가 돌아보게 됩니다.
完璧(완벽)이라는 말은 구슬을 빌려간 이가 며칠 후에 그 갯수와 欠缺(흠결)없는 상태로 반환했다는 데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 벽이 구슬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완전한 상태, 흠결이 없는 모습을 완벽하다고 합니다.
完璧(완벽) 完 완전할 완 璧 구슬 벽 :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으로, 결함(缺陷)이 없이 완전(完全)함을 이르는 말. 출전 : 사기(史記)의 상여전(相如傳)/ 유래 = 조나라(趙--)의 혜문왕(惠文王)은 세상(世上)에도 드문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고귀(高貴)한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신하(臣下) 목현(木賢)의 애장품(愛藏品)이었는데 강제(強制)로 빼앗은 것이다.
그런데, 강대국(強大國) 진나라(秦--)의 소양왕(昭襄王)이 이 소문(所聞)을 듣고 욕심(欲心ㆍ慾心)이 생겼다. 그래서 조나라(趙--)에 사신(使臣)을 보내어 15성(城)과 화씨지벽(和氏之璧)과 바꾸자고 청(請)했다. 혜문왕(惠文王)은 걱정이 생겼다.
내주자니 소양왕(昭陽王)이 받고도 15성(城)의 약속(約束)을 모르는 척 할지도 모르고, 거절(拒絕)하자니 이를 구실 삼아 진나라가 쳐들어올지도 모르고. 왕(王)은 중신(衆臣) 회의(會議)를 열었다. 이 때, 목현(木賢)이 나와서 식객(食客) 중 인상여(藺相如)가 지모(會議)와 용기(勇氣)가 있으니, 그를 사자(使者)로 보내면 능히 난국(難局)을 타개(打開)할 수 있으리라 하고 천거(薦擧)했다.
인상여(藺相如)는 즉시 진나라로 가 지니고 갔던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일단(一旦) 소왕(昭王)에게 바쳤다. 구슬을 받아 쥔 왕(王)은 「과연 훌륭하구나!」 하면서 감탄(感歎ㆍ感嘆)하면서 좋아할 뿐, 15성(城) 이야기는 조금도 비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예상(豫想)했던 인상여(藺相如)는 「그 구슬에 한 군데 조그만 흠집이 있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고 속여 말하니 무심코 내주었다. 인상여(藺相如)는 즉시 「우리는 신의(信義)를 지키느라 구슬을 지참(持參)했으나, 왕(王)은 15성(城)의 약속(約束)을 지킬 듯 싶지 않으니, 이 구슬은 일단(一旦) 소생(小生)이 지니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생(小生)의 머리와 더불어 이 구슬을 부숴 버리겠습니다.」 하고는 구슬을 빼내어 조나라(趙--)로 돌려보냈다. 진나라(秦--)의 소양왕(昭陽王)은 할 수 없이 인상여(藺相如)를 정중(鄭重)하게 놓아 보냈다.
완벽하게 객관적이지 못하다면 차라리 주관식보다는 객관식 문제를 맞추는 요즘의 대입학력고사가 더더욱 공정하다 생각할 것입니다. 5지선다형, 4지선다형으로 답을 예시해놓고 이를 숫자로 답안을 적어서 컴퓨터로 채점하여 순위를 정하면 누구도 불만이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5년전에 4번 공공기관에 응모하여 탈락하면서 한 번도 후회를 하지 않은 이유는 이미 정해진 바가 있을 것이라는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합격을 전제로 도전하기 보다는 도전하는 자신이 대견하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시간을 내서 교통비 정도만 들이고 심사비 10,000원을 입금하면 참으로 좋은 분들과 15분~20분 세상사에 대해 대화 할 기회를 얻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도전할 가치가 있고 가서 면접관을 만나서 완벽하게 자신을 보이고 자평을 받을 기회를 얻는 결과에 이른다는 자부심을 갖습니다.
그런 면접의 경험이 나중에 정말로 면접관이 되어서 다른 이들을 면접할때 참고가 된단 말입니다. 면접을 하는 입장과 면접을 받는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그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면접장의 수험생이 되기도 하고 다른 이를 면접하는 위원이 되기도 하는 경우를 경험하는 이가 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강원도 감사담당관, 수원시 제2부시장,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 경기도청 대변인에 응모하여 낙방을 경험하면서도 단 10원어치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도전의 과정을 통해서 배운바가 여비, 기타 자료를 준비하는 비용보다 더 크다는 이른바 손익분석을 마쳤기 때문입니다. 비용보다는 면접을 준비하면서, 실제 면접장에서 두손 모으고 좁은 의자에 앉아서 면접관을 응시하면서 느끼는 긴장감이 자신에게 큰 힘을 준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7명이 이미 준비된 질문을 던질때 각도를 맞춰서 무릎에 올린 두 주면이 면접관을 향해 부채꼴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내용이어도 자신있게 명쾌하게 답하고 끊어나가는 화법을 보임이으로서 면접관의 점수를 얻어내겠다는 의지에 불타는 자신의 열정을 느끼는 순간을 상상해 보십시오.
마치 높이뛰기 우상혁 선수가 1cm를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두손으로 박수를 치며 관중의 호응을 유도하고 개구리 옆으로 뛰듯이 몸을 움추리고 펼치기를 반복하면서 일순간 몸을 뒤집어서 오로지 나를 향해 막아서는 바를 내 몸 아래로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과 면접관을 향해 일념으로 외치는 자부심의 목소리를 비교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상혁 선수 1996. 4. 23생 신체188cm, 75kg. 수상2022년 제18회 오리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은메달2018년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높이뛰기 은메달2017년 제22회 아시아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높이뛰기 금메달/ 경력 2021 제32회 도쿄 올림픽 육상 국가대표2018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육상 국가대표
知人(지인) 고 김원기 선수의 강의에서 상대방을 넘기기 위해 마지막 최선을 다하는 힘은 평소에 흘린 땀방울을 모으고 모아낸 데서 나온다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늘 에너지 넘치는 김원기 레슬링 선수가 세상사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강조하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좀더 레슬링 발전을 위해, 사회발전을 위해, 후배들 사랑을 위해 할 일이 많은 분인데 일찍 우리의 곁을 떠나 이대 목동병원에서 이별의 인사를 나눈 기억이 가슴 시리게 올라옵니다. 아마도 저승에서도 후배, 동료, 선배들과 재담을 나누고 남을 위한 봉사, 자장면 봉사를 이야기 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1989년 정부가 관리하던 골프장 허가업무가 과중해지니 도지사에게 위임하였던 것인데 언론에서는 임사빈 경기도지사가 허가를 濫發(남발)한다 기사를 쓰자 이를 막기 위해 온몸으로 나서다가 순직한 고 박갑순 계장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7급 지방행정주사보의 모습에 보인 지방행정사무관의 활동은 차원이 높은 것이었지만 그 속에서 어느 정도는 서기관 승진의 기대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골프장 허가 보도가 없었다면 서기관에 승진하여 멋진 공무원으로 일했을 선배님을 추억하고 추모합니다.
많은 선배 동료 공무원들의 순직을 추모하고 도청장에 함께하였고 성남 공무원묘원에도 일부 참여했습니다. 그날저녁에 발생한 사건으로 7급 공무원은 일약 스타가 되었고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책에서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도 사람이 인정머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하고 그날의 돌발행동에 후회 없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폭발하고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1988년경 박 선배와 언론의 충돌 직전의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의 언론인이 과도한 권위의식과 갑질 자세에서 비롯된 일이니 그날의 사건이 정말 사건으로 확산되었다면 당시의 사무관 한분은 또 다른 운명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언론과 공무원의 사건을 이야기하다 보면 당사자 언론인 이름 앞에는 '고'자를 붙이게 됩니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나야 공무원의 재직중 사건을 세상에 말하고 인터넷 글로 올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른바 공소시효를 넘겨야 한다 생각합니다.
공무원 7급당시인 1988년에는 이런 사건사고를 언급하거나 입에 올리는 것조차 금기사항이었으니 사회적 분위기, 언론의 파워, 공직의 위계에 대해서 요즘의 젊은 공무원들은 어찌 생각할까 상상해 봅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던 시대의 홍길동이가 무술을 연마하고 세상으로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7급이라는 공무원, 1988년이라는 시대적 울타리에서 일했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아무도 읽지 않는 이곳 인터넷 방에서 소심하게 당시의 사건 顚末(전말)을 '까발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씁쓸한 미소를 지어봅니다.
오늘은 누군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쉽지 않고 어렵고 그리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일발 잊혀질까 걱정해서 일부의 이야기를 여기에 조심스럽게 적어두고 얼른 덮어버릴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이에게 불편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의 기둥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