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남양읍 신남안길 189-10에 소재한 신화목장을 소개합니다. 이 식당에서 지인의 초청으로 오후 5시에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화성시청을 출발하여 네비게이션을 따라 좁은 넓은 포장로와 좁은 골목과 고속도로 아래를 건너는 박스형 터널을 지나서 차를 운행하였습니다. 대략 1km안에 다다르니 사장님께서 큰 돈을 들여서 1.5×1m의 가로세로 철판 안내문을 세워주셨습니다.
그 판의 화살표가 가르키는대로 운전대를 돌려서 좁은 골목을 한번 더 지나 입구에 이르니 약간의 언덕으로 올라오라 합니다. 12월초의 대략 오후 5시가 지나자 태양은 저녁노을 뒷편으로 숨으려 하고 이식한지 3년정도 된듯 보이는 소나무가 그 자태을 동양화 화폭에 담기 시작합니다.
낮에는 찬바람이 흔드는 대로 움직였지만 바람이 잦아드는 시간에는 차분히 소나무로서 하루를 지낸 생각을 하나 둘 껍질과 솔잎 사이에 저장, 기록하다가 이내 건너 서편 하늘에 노을이 피어나는 순간부터 감성으로 가득한 새로운 에너지를 그 몸속, 뿌리속에 저장하는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 소나무에게는 기록장치가 있습니다. 오신 손님의 배고픈 표정을 기록하고 식사후 행복한 모습을 적어두기도 합니다. 술에 취해 동료들과 나누는 이야기조차 기록하고 있지만 과묵한 소나무들은 절대로 다른 이에게 전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푸른 잎새의 진동으로 녹음된 취객의 허황된 말들조차도 소나무 줄기를 타고 지하 저장고의 녹색 칩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 칩은 재생기능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주 긴 세월이 흘러서 인간의 과학이 발전하면 언젠가는 소나무가 듣고 기록해 둔 손님들의 이야기를 시의회 속기록처럼 다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소나무들은 손님방 30실이 만석이어도 각자가 담당 호실을 정해놓고 주문한 음식의 양, 마신 술, 소주와 맥주를 기록합니다.
더러 중소기업 사장님이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10,000원을 주는 모습도 기분좋게 기록합니다. 요즘에는 10,000원이 20,000원으로 인상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죽은 소나무는 식당의 객실 천정에서 식사장면을 녹화중입니다. 기본찬이 들어오고 용광로 같은 불이 들어오면 종업원이 호주산 고기덩이를 올립니다.
서양에서는 스테이크라 해서 전체를 낮은 열에 서서히 익혀서 내옵니다만 성격급한 대한민국에서는 이글이들 불에 직화구이를 합니다.
불맛이 들어가야 제맛이라면서 살짝 검게 탄 고기를 양념장에 깊이 찍어서 먹습니다. 소주 한 잔 하고 먹고 맥주 한컵 마시고 고기를 먹습니다. 주방장이 정성들여 준비한 채소는 익은 고기를 잠시 관리하는 깔판이 될뿐 음식으로 격이 오르기가 어렵습니다.
고기는 태워서 먹고 야채는 고기 기름을 섞은 후 배출합니다. 야채를 많이 먹고 고기의 양은 줄이라는 주치의 당부말씀은 집에서만 해당하는 교훈인가 봅니다. 밖으로 나오면 각자가 스스로 의사가 되고 영양사가 되어서 마구마구 기름이 가득한 음식을 먹어대는 것이 요즘 50대 청춘들의 특권인 양 누리고 있습니다.
나름 50대에는 저녁식사는 고기와 소주였습니다. 시작하면서 부드럽게 한다고 맥주와 소주를 말아 3잔을 마신 후부터는 알잔이라 해서 소주잔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60대를 넘기자 소주없이 먹는 저녁 식사가 늘었습니다.
퇴직후 소주없는 저녁이 참 심심하더니 요즘에는 작은 공기밥의 절반만 먹어도 섭섭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몸매가 나고 숨쉬기가 편안하고 벨트가 할일이 줄었습니다.
전에는 가죽벨트가 배꼽을 잡아두느라 열일을 했지만 요즘 허리띠는 그 부근이 허리라고 존재할 뿐 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맛있는 고기가 적당히 타오른 숯불에서 익어갑니다. 그것은 마치 조금전 식당에 들어올 때 바라본 저녁노을과 그 동양화를 완성하는 畵龍點睛(화룡점정), 소나무의 그림을 방안으로 이동시킨 느낌이 듭니다. 소나무숯은 아니겠지만 참나무 숲이 어느정도 사그러지면 초기의 맹위가 사라지고 숯불도 어느정도 현실에 적응하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석쇠에 올린 고기가 급하지 않게 여유를 가지고 익어갑니다. 가끔 한번 기름이 떨어지만 파시식 하고 숯불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빼면 저녁노을이 깊어가는 모습처럼 석쇠와 숯불은 그 위에 올려진 고기을 차분히 잘 관리해 줍니다.
연세 높으신 회장님은 젊은 조카에게 고기 많이 먹어라 하고 젊은이들은 이미 많이 먹었다면서 어르신들 드시라 합니다. 젊은이는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면서 양보를 합니다. 그 틈새에서 중간 연령대는 포식을 했습니다. 고기를 많이 먹었습니다.
고기를 많이 먹은 만큼 주문한 누룽지탕을 더 먹게 됩니다. 즐거운 대화, 상대를 존중하는 말솜씨를 발휘하시는 분들이 종교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5대 적멸보궁을 이야기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적멸보궁 5대 사찰을 발표했습니다.
인제 설악산 봉정암, 평창 오대산 상원사,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정선 태백산 정암사, 양산 영축산 통도사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다녀온 양주 오봉산 석굴암에서도 적멸보궁을 준비 중입니다.
대웅전을 마련하고 그 안의 큰 창문 뒷편에는 대리석으로 벽을 채운 후 석공이 매일매일 수도하는 심정으로 부조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입니다.
[사전] 적멸보궁 寂滅寶宮 :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 가운데 하나. 이 불전에는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佛壇)만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인 부부와 4명이 3년동안 시간을 내어 사찰을 탐방하였고 적멸보궁 5대사찰을 방문하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다녀온 통도사 자료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통도사 소개자료>
통도사는 낙동강과 동해를 끼고 하늘 높이 치솟은 해발 1,081m의 영축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선덕여왕 15년(646)에 창건된 천년고찰로서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부처님 법을 공부하던 중에 모셔 온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 및 경책을, 금강계단을 쌓은 뒤 봉안하고 사명(寺名)을 통도사라 했다.
이는 승려가 되려는 사람은 모두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와 모든 진리를 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큰 뜻을 함축한다.
통도사는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가사를 금강계단에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대웅전에 따로 불상을 모시고 있지 않다.
불지종가 국지대찰 통도사는 강원·율원·선원의 수행체계를 갖춘 영축총림으로서 한국불교 최고의 종합수행도량이며, 개산대재· 화엄산림법회·템플스테이 등 다양한 포교 문화활동을 통해 한국불교의 맥을 굳건히 잇고 있다.
통도사는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山地僧院)'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명실공히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임을 후대에까지 천명하게 되었다.
[상로전] 上爐殿
대웅전과 금강계단 | 국보 제290호
통도사의 상징인 금강계단은 일주문(一柱門) 천왕문(天王門) 불이문(不二門)의 세 문을 통과하면 만나게 된다.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인조 23) 우운(友雲)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정면인 남쪽에는 금강계단(金剛戒壇),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 이라는 각각 다른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대웅전의 바로 뒤쪽에 통도사의 중심이 되는 금강계단 불사리탑 (佛舍利塔)이 있다. 여기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정골사리를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이로 인하여 통도사가 불보사찰의 칭호를 얻게 되었다. 부처님의 신골(身骨)인 사리를 봉안하였으므로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으며, 대신 정교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을 조성하여 부처님의 자리를 장엄하고 있다.
[명부전] 冥府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195호
지장전이라고도 불리며 다포식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법당 중앙에는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좌우에 각각 다섯 분씩 시왕탱(十王幀)을 봉안하였다.
[응진전] 應眞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196호
대웅전 바로 앞에 위치한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이다.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며 법당 중앙에는 매우 우수한 기법으로 섬세하게 조성된 석가여래좌상과 좌우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提華鞨羅菩薩)이 봉안되어 있다.
[구룡지] 九龍池
구룡신지(九龍神池)라고도 불리는, 통도사 창건 설화를 담고 있는 조그만 연못으로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돌기둥에는 '천장비계자장득시역문수부촉래(天藏秘界慈藏得是亦文殊付囑來)'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중로전] 中爐殿
대광명전光明殿 | 보물 제1827호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신인 비로자나를번역하면 광명변조(光明)라고 하는데 이로 인하여 비로자나 부처님을 모신 전각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용화전] 龍華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204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법당 내부에는 56억 7천만 년 후 용화수 아래서성불한다는 미래불인 미륵불이 2m 크기의 좌상으로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 觀音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251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는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손에 든 연꽃은 중생이 본래 가진 불성(佛性)을 상징한다.
개산조당(開山祖堂)과 해장보각(海藏寶閣)
개산조당은 해장보각의 조사문(祖師門)으로 해장보각에는 자장율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세존비각 世尊碑閣 (석가여래 영골사리 부도비) 경남 유형문화재 제544호
금강계단 축대 바로 아래에 있고, 적멸보궁 내력을 소개한 비석이 세워져 있다.
[불이문] 不二門 | 경남 유형문화재 제252호
'불이'라는 것은 너와 나의 구별 등 분별을 떠난 것을 뜻하며, 구전(口傳)되는 바로는 목수 한 사람이 도끼 하나로 쇠붙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봉발탑] 奉鉢塔 | 보물 제471호
불가에서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법(法)을 전함의 표시로 게송을 지어 준다든지 또는 가사나 발우를 전하는데 부처님의 의발(衣鉢)을 56억 7천만 년 뒤에 출현할 용화전의 주불인 미륵불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이다.
[하로전] 下爐殿
영산전 靈山殿 | 보물 제1826호
하로전(下爐殿)의 중심 건물로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석가여래의 일생을 여덟 가지 중요한 사실들로 정리하여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탱화(八相幁畵)가 봉인되어 있다. 또 내부의 벽에는 다보탑과 석씨원류응화사적도, 운룡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들 모두 보물 제17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약사전] 藥師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197호
정면 3칸 측면 단칸의 다포식 맞배지붕의 건물로 내부에는 중생의 병을 구제해 주는 약사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다.
[극락보전] 極樂寶殿 | 경남 유형문화재 제194호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만나게 되는 당우로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阿彌陀佛)과 그 좌우에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천왕문 天王門 | 유형문화재 제250호 경남
사천왕을 봉안한 문으로서 사찰 수호 기능을 담당하는 곳으로 목조 사천왕상이 각기 특징적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삼층석탑] 三層石塔 | 보물 제1471호
2중기단(二重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이룬 일반형 석탑이다. 탑신부(塔身部)는 탑신석과 옥개석이 각기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옥개받침은 각 층 4단씩이다. 기단부의 안상(眼象)과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신라 말, 고려 초의 탑으로 추정된다.
[일주문] 一柱門
일주문은 중심 기둥이 일직선상에 한 줄로 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된 말로 부처님 세계에 들어가는 첫 문임을 상징한다. ‘靈鷲山(영축산) 通度寺(통도사)’라는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며, 기둥 좌우의 '佛之宗家 國之大刹'은 해강 김규진의 글씨이다.
[호혈석] 虎血石
응진전 옆과 극락보전 옆에 약간 솟아나온 널찍한 돌로서 나물 캐던 처녀와 백운암 젊은 스님 간의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니 사찰의 규모나 그 시설의 가치가 높을 것이라는 예상은 합니다만 통도사는 역사와 불교와 보물이 연이어지는 거대한 박물관이고 문화의 집대성이었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찰이 대한민국은 물론 외국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의 사리가 그렇게나 많을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부처님의 사리는 증과, 분과한다고 합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종교적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양주오봉산 석굴암에서도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적멸보궁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니 불상은 없습니다. 그래서인가 부처님은 마음속에 모신다고 합니다.
부처님과 불교 이야기를 나눈 후 지인 5명은 주법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주법이 참으로 중요하다면서 또다른 지인 아들의 면접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필기시험에 합격하였고 면접을 실시한다기에 회사에 도착하니 일행을 데리고 삼겹살집으로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술한잔 하면서 면접을 마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합격했습니다.
이 수험생은 평소 부자가 술잔을 권하고 받는 멋진 집안의 아들입니다. 술잔을 주고받음을 수작이라 합니다. 그래서 '수작을 건다'라는 말이 나왔나 봅니다. 그런데 술잔을 드리고 받음에는 아주 고도의 예의범절이 연결됩니다.
절대로 술잔과 병을 왼손으로 잡는 것을 금합니다. 요즘에는 술잔을 돌리는 것이 금기시되었습니다만 과거에는 상사에게 술한잔 올리는 것이 중요한 업무중 하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과장님은 신입의 부족한 주법을 실전으로 가르쳤습니다.
신입이가 얼결에 왼손에 잔을 들고 오른손으로 과장님에게 술을 올립니다. 과장님 주변의 계장과 차석들의 술잔속에서 자신의 기회를 보는 것은 줄넘기 7명이 뛰는 중간에 타이밍과 공간을 확보해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입이는 얼결에 왼손술잔, 오른손 술병을 잡고 과장님 앞으로 도전합니다. 불쑥 들어온 신입의 왼손에 과장님은 잠시 놀랐지만 주법에 맞지 않으므로 신입이를 '투명인간'으로 취급합니다. 전혀 못 본척하며 다른 이들과의 주석을 이어갑니다.
이를 본 주무차석이 달려와서 신입의 자세를 바로 잡아줍니다. 신입은 술병을 슬하, 무릎앞에 놓고 오른손에 술잔을 잡고 두손으로 과장님께 잔을 드립니다. 이에 과장님은 화색을 하면서 술잔을 받습니다.
"아~~!!! 우리 김주사, 고생이 많구먼"
호쾌한 응원가와 함께 과장님이 술잔을 받으시고 신입은 정성스럽게 잔을 채워드립니다. 우리 이상윤 새마을지도과장님은 절대로 잔을 위로 올리는 분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상사들도 술을 조금 받기위해 술잔으로 병을 올려서 조금만 따르게 합니다만 과장님은 평평하게 잔을 들고 가득 받으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잔 드리기에 성공하자 신입은 그 옆에서 잠시 기다립니다. 이미 과장님 앞에는 5개 이상의 술잔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받은 술잔을 마신 과장님은 곧바로 신입에게 잔을 주었고 가득 따라받은 후 한모금 마시고 그 술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신입은 과장님과의 술좌석에 입문한 것입니다. 골프에서 처음 출전하는 경우에 '머리를 올린다'고 합니만 이는 어린 기생이 정식으로 기생이 되었다는 의미여서 자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여하튼 술잔을 드리고 받는 일은 업무이상으로 어렵고 중요한 일이었던 시절을 말하고 있습니다. 1984~1988년경의 스토리입니다.
2008년경에 의회사무처에서 박신흥 처장님의 말씀을 集大成(집대성)하여 의회근무하는 만큼 '폭탄주제조및음용에관한조례'를 만들어 스스로 공포한 일도 있고 이 글이 주간지 경제저널에도 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퇴직해서는 술먹고 죽을뻔한 이야기만 모은 수필집 한권을 출간하는 쾌거를 이룩하였고, 술은 환경오염, 화석연료처럼 총량제가 적용받는 부문에 올랐던바, 음주를 줄이고 운동을 늘리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술을 덜 먹으니 몸도 가볍고 소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을 알았고 특히 장 건강에는 금주만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참석자들은 자신의 근황을 말하면서 자화자찬을 하기도 하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누룽지로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낸 후 수정과로 저녁식사, 만찬을 마무리했습니다. 고마운 인사를 드리고 각자의 차를 타고 귀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화성시의 시골길이니 네비양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여성에게는 삼종지도가 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따르며 나이들어서는 자식을 따른다고 하지요. 하지만 근대에 남성들은 3명의 여성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려서는 어머니 말씀을 잘 듣고, 결혼해서는 아내의 이야기를 따르고 운전할 때는 네비양의 말대로 운행하라고 합니다. 세분 여성의 말씀대로 따르지 않으면 처음에는 호쾌함이 있어 보이지만 종국에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래서 초행길에서는 네비양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합니다만, 점점 복잡해지는 도로 사정으로 인해서 네비양의 AI기능이 약해졌는데 그대로 따라가니 영 이상한 길로 안내하고 시간도 멀고 거리는 더더욱 많이 돌아돌아 가는 듯 보입니다.
실제로 남양에서 봉담을 거쳐서 오산으로 안내하는 네비양을 적극 신뢰한 결과 시간도 늦었고 서쪽에서 바라보던 동탄의 타워팰리스 4개동을 강원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방향에서 다시 타워팰리스를 바라보면서 오산에서 동탄방면으로 차를 몰아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이 집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차에서 꺼내주신 작품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너의 미래가 늘 빛나길"입니다. 아들의 이삿집에 걸어주면 아들의 미래가 늘 빛날 것으로 생각한답니다. 아내는 이미 작가님이 작품을 정하라 하실 때 도록을 보고 이 작품을 점찍어둔 바 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평군청 김영태 부시장이 전화를 했습니다. 정용암, 김태훈 국장과 쭉꾸미집에서 만나잡니다. 빙빙 돌아오느라 7시50분 예상시각에서 벗어나 8시반경에나 도착하기에 음주를 포기하고 차를 몰아 식당앞에 주차했습니다.
이미 여러병을 마신 취객 2명과 오늘 사정으로 술을 마시지 않는 김태훈 국장과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동료 현직 부시장 3인이 영통에서 한잔하는데 이들 모두가 내년 상반기에 공직을 나와야 하는 1964년생입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만 일할 만하면 퇴직하라는 공직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집이 가장 먼 김태훈 국장을 아파트 앞에 태워다주고 9시경에 아트센터로 갔습니다. 아내가 지금 공연을 관람하고 있으므로 전화를 걸지 않고 문자를 보내서 공연 끝나면 같이 집으로 가자했습니다. 차 시트의 온기가 사라지고 추위가 엄습해올 즈음에야 공연이 끝나고 아내가 전화를 했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이런저런 짐을 정리했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이지만 밤길, 추운 겨울날의 낮은 시각이기에 차로 태워왔습니다. 아내는 추위를 무서워하고 밤을 싫어합니다.
밤이 되면 집으로 가야한다는 사명감이 타오릅니다. 그래서 차로 데려오기를 잘했다 생각합니다. 아내가 훗날에라도 이 부분의 글을 읽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새벽 한국축구가 2022년 월드컵 16강에 올라간 것 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 아내가 이 책을 읽게되는 경우입니다. 제목 정도는 보겠지만 이 부분까지 아내가 읽는다면 한국 축구는 우승후보라는 브라질을 이기고 8강에 올라가서 일본과 대결하는 시나리오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보람도 있고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 모든 일들이 겨울날 이른 노을이 번지는 신화목장에서 소나무 몇그루를 겹쳐서 바라본 서해 하늘의 동양화같은 풍광을 그려보면서 큰 보람을 얻습니다.
동탄으로 오는 길에는 아파트의 불빛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입니다. 낮에 안과 진료를 위해 동공이 커지게 하는 약을 넣은 것이 저녁까지 영향을 주어서 더더욱 경치가 아름다웠나봅니다.
시선도 불편하고 원근도 맞지 않아서 아파트 주차장 경계석에 차량 앞부분 바닥이 긁히는 경미한 사고도 있었습니다만 차량 운행이나 미관에는 문제가 없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맞이할 모든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힘든 곳에는 사랑을 보태고 기쁜 일에는 공감으로 맞이하는 나날이 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