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육영수 /독립기념관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옥천 육영수/이지당/ 정지용생가/독립기념관 ▩

2021. 5. 29 / 안성휴게소에서 우동 두 그릇, 안성국밥 2개를 주문했습니다. 국밥을 덜어주시므로 결국 우동에 국밥을 먹은 것이지요.

예천읍을 향해 달려가서 다시 용암사로 네비를 변경하여 산 중턱 비탈진 면에 자리한 사찰에 가서 마침 10:00예불을 올리시는 스님 옆에서 절하고 참선을 하였습니다.

 

사찰에서 스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마침 예불 시간에 동참하니 의미가 크겠습니다.

육영수 여사의 생가는 조선시대 서기 1600년에 김정승, 송정승, 민정승 3정승이 살았던 곳이고 교동집이라 불리는 옥천 명가의 집으로 1918년에 육여사 부친 육종관씨가 매입하여 사시고 1925년 11. 29에 육 여사가 태어난 생가이고 1950년 결혼하실 때까지 사셨던 집입니다.

1969년에 개보수를 하면서 원형이 훼손되었고 1999년에 철거되었다가 2010년에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1년 5월 11일에 육영수 여사 생가로 복원되었습니다. 뒤편에는 鄕校(향교)가 있고 그 언덕 중턱을 울타리 삼고 평지에 지어진 집입니다.

 

집 건너편에는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고 바로 아래에는 문화마을이 조성되었고 그 안에 예약한 식당에서 점심을 고급스럽게 먹었습니다. 버섯 중심의 메뉴로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진미였습니다.

그 아래에 자리한 정지용 시인의 생가를 방문했습니다. ‘현대시의 시성’으로 불리우는 정지용 시인의 생가와 140편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문학관입니다. 정지용 시인상을 받으신 분들의 면면이 우리나라 문학의 역사입니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5월15일 옥천군 옥천면에서 태어났습니다. 1918년 17살에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939년 <문장>지 창간과 함께 시부문 심사위원이 되어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종한 등을 등단시켰습니다. 지용시집, 백록담, 지용시선, 문학독본, 산문 등을 출간했습니다.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이지당을 방문했습니다. 방송에서 이지당을 보고 예천 방문일정을 잡았던 바이지요. 1977년 12월 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되었다가 2020년 12월 28일 보물 제2107호로 승격 지정되었습니다.

 

[설명자료] 조선시대 중엽 옥천읍 옥각리에 사는 금(金), 이(李), 조(趙), 안(安)의 4문중이 합작해서 세운 서당이다. 당초에는 각신동(覺新洞)이라는 마을 앞에 있었으므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후학을 가르쳤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조헌(趙憲:1544~1592)의 친필로 된 ‘각신서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처음에는 각신동(覺新洞)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각신서당(覺新書堂)이라 하였으나, 뒤에 송시열이 《시전 詩傳》의 “고산앙지경행행지(高山仰止景行行止”라는 문구에서 二止堂이라 하였다. 해설 : 산이 높으면 우러러보지 않을 수 없고, 큰 행실은 그칠 수 없다.

 

독립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자주와 독립의 정신으로 지켜온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역사를 만나는 곳이라고 설명해 줍니다. 전시실을 일일이 돌면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이 독립을 위해 노력했고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에 올랐습니다. 첨두라 해서 과거 중앙청 건물의 돔 위에 뽀족하게 올라가 있던 구조물을 반지하에 배치했습니다. 참으로 멋진 기획이라는 공감을 합니다.

이런 기획을 한 공무원이 누구이고 이를 결재한 간부 공무원도 확인해서 늦었지만 훈장을 드렸스면 합니다. 역사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좌우합니다. 역사를 배우고 익히는 민족은 승하고 역사를 모르는 무리는 멸한다고 했습니다.

 

조선총독부 철거 자재를 배치한 현장을 살펴보면 마치 그리스 로마의 유적지를 보는 느낌입니다. 서양식 돌 장식품들이 많이 여러 개가 함께 자리잡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의 하나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중앙청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국민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일본의 잔재를 청산하였다는 후련함이 있었고 아픈 역사도 역사라는 주장도 함께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왕궁의 입구를 막아서도록 설계되고 건축된 이 건물을 철거한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헝가리의 민족 지도자들은 정복자가 만든 석탑의 기단 아래 돌에 백성들이 짓밟히는 조각을 추가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사는 아픈 역사도 기억해야 하고 좋은 역사도 간직해야 하는 것이라는 신념이 있는 듯 보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선서문]

나는 참된 정성으로 우리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일본의 장교를 처단하기로 맹세합니다.

 

 

대한민국 14년4월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윤봉길 의사의 선서문은 보물 제568호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생일 및 일본군 상하이 전승 축하 기념행사가 열리는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결행하기에 앞서 윤봉길 의사가 3일 전에 자필로 쓴 선서문입니다. ‘조국과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독립기념관에서 8km거리 천안시의 병천순대 거리가 있습니다. 달려가서 순대 한 접시, 순대국을 주문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정말로 맛있는 순대국입니다. 식사 중에 재료가 소진되어 문을 닫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했던 공터의 땅 주인이 주차해도 좋다는 충청도 양반다운 인사말씀을 행복하게 들으며 달리고 달려서 돌아왔습니다. 교통이 편하고 맛있는 맛집이 통하고 올라올 때 편안한 옥천여행입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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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