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겁외사#정취암#수선사#성철스님 ▩
겁외사#정취암#수선사 2021. 1. 22 여행/ 성철스님은 고려시대 유명한 스님과 견주어 평가되는 불가는 물론 우리 역사에 높은 어르신입니다. 성철스님의 생가 바로 옆에 겁외사를 지었습니다.
[해설] 큰스님의 고향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성철스님의 대표적인 법문은 알듯 말듯 일반인들에게 다가온다. 1912년 산청군 묵상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25세인 1936년 해인사에서 승려의 계를 받은 이후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참선과 묵상으로 이어진 스님의 삶은 해방 이후 왜색으로 물들었던 불교와 사찰의 모습을 선풍운동으로 바로잡았고, 조계종의 종정으로 돈오돈수 사상을 내세워 불교계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한국불교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던 개혁가였고 사상가였으며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한국사회의 등대와도 같은 존재였다.
스님의 탄생지인 묵상마을에 위치한 겁외사는 스님을 추모하고 뜻을 기리는 사찰이다. 수없이 손질하여 누더기를 보는 듯한 승복 두루마기나 이면지를 모아 만든 메모장은 스님의 검소한 생활을 느끼게 하고 속명인 ‘이영주’라는 이름으로 묶인 젊은 날의 도서목록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였던 한 인간의 뜨거운 젊은 시절을 상상하게 한다. 겁외사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 선정되었다.
우선 성철스님의 생가 안채에는 어머니의 유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고 사랑채에는 아버지의 유품이 자리하고 있다. 정갈한 한옥의 여유로운 배치가 큰 인물의 탄생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 집터 앞자락에 겁외사를 지었다. 차분한 구성이고 멋진 건축이다.
자료실의 지난날 모습 중에 철도청장이 발행한 1981년 전후의 승차증명서가 눈에 들어온다. 조계종 총무원장으로서 잦은 서울 나들이를 하신 듯 보인다.
중앙에 자리한 동상은 그 풍모와 여유로움이 보이고 집안에 배치한 마지막 옷한벌은 검소한 성철스님의 멋스럼을 보여주는 듯 하다. 다만 사찰과 집 뒤편으로 지나가는 고가도로에서 차량의 굉음이 들리는 것이 안타깝다. 자료실은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았다.
점심은 맛집이다. 호박죽으로 시작해서 야채와 고기가 적정하게 배합된 약과 같은 식탁이다. 4식구가 맛있게 먹었다.
정취암은 기암 절벽위에 세워진 사찰이다. 진입로부터 구불구불하고 강원도길을 가듯이 S코스가 이어진다. 막다른 산중턱에는 차량 3대를 세울 뿐이다. 그래서 산청군 건설과장은 진입로 중간의 여유공간에 50대 분량의 주차장을 만들어 행사에 대비했다.
산 준턱에 버티고 서있는 바위 틈새에 건축을 했다. 그냥 바위가 허락하는 만큼만으로 불사를 완성했다. 욕심내지 않으신 스님들의 건축 설계가 멋지다.
수선사는 정원사찰이라 이름 짓고 싶다. 산계곡 맨 위에 자리한 사찰인데 아주 작고 소박하다. 연꽃지를 만들고 투박한 나무로 여유롭게 거닐며 자신을 돌아보는 산책길을 만들었다.
봄이되어 연의 잎이 피면 더욱 운치를 보탤 것이다. 한겨울 사위어버린 연꽃을 마음속에 피워서 작은 호수와 겹치게 편집해 보았다. 모습이 아름답고 형상이 단아하게 느껴진다.
위로 올라가면 작은 정원이 나오고 가운데에는 하트모양으로 돌을 쌓은 어항같은 공간이 나온다. 그 끝자락에 10평 안되는 원룸급의 사찰이 자리했다. 그냥 욕심내지 말고 평온, 평안하게 살라는 부처님의 말씀으로 보인다.
투박한 나무등걸이로 만든 물레방아가 계곡물의 무게에 맞춰서 수긍하면서 돌아간다. 그냥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서 부처님의 법어가 함께 하는 듯 보인다. 인간의 輪迴(윤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차 한잔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가졌다. 이 공간에서의 시간은 평생 동안 마음속에 남을 것 같다. 화장실은 비탈면에 기둥을 세워서 마련했다.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도록 했다. 사진을 찍고 싶은 화장실이다.
산청 전 구형왕릉을 관람했다. 검은 돌로 쌓은 왕릉이다. 1971년에 사적214호로 지정했다. 긴 세월을 간직한 모습이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기나긴 역사가 있는 것이다.
[해설]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今西面) 화계리(花溪里)에 있는 가락국(駕洛國) 제10대 구형왕의 돌무덤[石塚].
사적 제214호. 층단(層段)을 이루는 방형(方形)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경사면에 축조하였다. 전면은 7단을 이루고, 후면으로 갈수록 경사져서 층의 높이에 따라 체감되고 있다.
꼭대기는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전면 중앙에서의 전체 높이 7.15m이며, 제4단 동면에 너비 40cm 내외, 높이 40cm 내외, 깊이 68cm 내외의 감실이 개설되어 있다.
이 돌무덤을 중심으로 같은 잡석으로 높이 1m 내외의 담을 쌓고 전면 중앙에 〈가락국양왕릉(駕洛國讓王陵)〉이라고 새겨진 석비가 있다. 그 앞에 상돌과 장명등이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무인석·돌짐승이 1쌍씩 배치되어 있으나 이 석물들은 근래의 작품으로 돌무덤과 시대적 차가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1 산음현(山陰縣) 산천조(山川條)와 홍의영(洪儀泳:1750∼1815)의 《왕산심릉기(王山尋陵記)》에서 이것이 왕릉임을 밝혔고, 이 산 아래에는 그로부터 서쪽에 있던 왕산사(王山寺)에서 옮겨왔다는 구형왕과 왕비의 초상화가 봉안된 재실이 있다.
서기 521년 가야의 마지막 왕이시라니 2021년에 1,500년이 됩니다. 긴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고 앞으로 1,500년이 흘러도 역시 이 모습일 것입니다. 역사는 때로 길게 흘러도 그 모습이고 짧은 기간에 큰 변화를 보이기도 합니다.
인근에 유의태 약수터가 있습니다. 산청군의 자랑인 동의보감 허준 선생의 스승으로서 이분의 묘가 다음 방문지인 동의보감촌에 모셔져 있습니다.
남사예담촌을 방문했습니다. 돌담이 아름다운 전통주택이 자리한 작은 동네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유형 중에서 1호나 첫 번을 좋아합니다. 그 기준이야 다양하겠지만 정해준 것만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중간에 스스로 가치를 올리기 위한 노력이 보이기도 하고 전체 분위기에는 맞지 않는 신축 건물이 끼어든 경우도 있습니다. 사유재산이니 군에서도 정부에서도 관광공사에서도 마음대로 꾸미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촌 마을이기에 이 정도 보존되고 관람객을 끌어들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코로나19가 아니면 10여명 관람객이 있을 것인데 잠시 지나가는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 한 분을 만난 것 이외에 인적은 없었습니다.
좀 늦은 시각에 동의보감촌에 도착하여 우선 차로 투어를 하였습니다. 산자락 위로 올라가서 전망을 보고 약재를 구매했습니다. 텅빈 단지는 국비와 지방비를 참 많이 들였겠구나 하는 공무원적 직업의식이 더욱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저녁은 또 맛집입니다. 생선구이, 돼지고기, 그리고 나물과 쑥국이 어울립니다. 네 분 모두 쑥국의 맛에 반했습니다. 이제 올라오는 일만 남았습니다.
수원에서 화성, 평택, 안성, 충남, 전북, 경남으로 이어지는 한반도를 내리 달리는 코스입니다. 코로나19로 교통량은 적지만 장거리 운전이므로 안전을 위해 2번 쉬어서 올라왔습니다.
동탄에 도착하고 수원에 오니 11시가 되었습니다. 아침 6시반에 나가서 저녁 11시에 돌아왔습니다. 함께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