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에 지인 선배를 마나서 둘이 5병을 마시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시절 공직에 입문하게되는 과정을 각자 소개, 자랑하고 이어서 퇴직 이후의 삶에 대한 소회를 풀어냈습니다.
어린시절 1958년생은 어르신들의 틈에서 성장했기에 가정이라는 공간속에서 자신의 존재범위를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아버지의 손자중 한명이었고 가족들이 모이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묶은 듯 여겼습니다. 밥상에서도 어머니의 손과 눈빛은 보이지 않는 태줄이 되어서 눈치를 보고 각별히 살폈습니다.
그런 공간적 관리와 그 무대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감힘을 늘 마음속에 담아두며 살았습니다.
밥상의 고기반찬 그릇을 슬며시 밀어서 제자식 앞으로 1cm라도 가까이 배치하는 며느리 3인의 보이지 않는 전쟁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에 며느리 3명이 한상을 받는 일은 설명절이나 추석모임뿐일 것입니다. 더러 부모가 큰 재산을 아직도 관리하는 집안의 경우에는 아버지, 어머니 생신날에 며느리 3명이 신랑을 잡아끌고 와서 손자손녀 자랑하면서 재롱잔치를 벌인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 돌아가신 다음날 상청에서 대판 논쟁을 벌였다며 큰 기사가 나기도 하고 어머니 마져 돌아가시면 다정하던 3동새 3며느리는 경쟁자가 되어서 변호사를 대고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각자의 주장을 펼치는 이론가가 된답니다.
거지부자가 밥을 얻으러 동네를 지나는데 초가집에 불이나서 주민들이 불을 끄느라 바삐 움직입니다.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붕위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들고온 물을 뿌려 불을 끄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불길이 잡히지 않고, 초가지붕 속으로 불이 스며들어서 꾸역꾸역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흰 연기가 오르더니 지붕속 참나무에 불이 붙자 노랑연기가 피어납니다. 낫으로 짚을 끊어내고 지붕속으로 물을 부어줍니다.
속으로 들어간 불길을 잡으려는 것입니다. 지붕의 기능은 폭우가 내려도 집을 보호하는 역할이니 그냥 위에 물을 뿌리면 비올때처럼 주르륵 흘러내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광경을 거지부자가 보고 있습니다. 세상에 구경중에 구경은 싸움구경, 불구경,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글로 적지 못하는 말인데 옛날 어르신들은 스스럼없이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거지부자는 부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거지입니다. 집이 없이 떠돌면서 밥을 얻어먹고 아무곳에서나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채로 구걸을 떠납니다.
그래서 거지입니다. 옛날에 젊은 거지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아이를 돌보기만 하면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다는 조건을 보고 '간단한 역할의 가정부'로 들어갔습니다.
아이가 울면 달래고 기저기를 갈아주고 배고프다면 먹여주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이 거지출신 가정부는 한나절만에 아이보기를 포기하고 구걸하는 깡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만큼 아이 돌보기가 어렵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거지는 처음 체면을 조금 구기지만 하루 이틀 해보면 나름 '해 볼 만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가 봅니다.
어려서 잔치집에 가보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같은 옷을 입은 거지 아저씨들이 모여있습니다.
손님들과는 거리를 두고 겨울에는 장작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면서 주인어른의 업무지시를 기다립니다. 거지중에 왕초, 리더가 있습니다. 주인은 왕초에게 멍석을 펴라 부탁을 하고 차일을 세워달라 말합니다.
왕초의 지휘에 따라서 거지들은 발빠르고 잔치를 위한 무대를 설치합니다. 요즘에는 동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마을회관에서 가져온 차일, 멍석 등 장비를 청년들이 펼쳐줍니다만 1960년대 상가의 첫날에는 청년들이 마을에 없습니다.
5명이 조를 짜서 근동의 유지들에게 부고장을 전달하러 갔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문중의 문장어르신이 부고장을 씁니다. 이 메모장을 들고 청년 두사람이 이웃동네 국민학고, 지금의 초등학교로 달려가서 소사아저씨에게 가리방을 부탁합니다. 가리방이 드디어 이 글의 문장에 올라왔습니다. 가리방은 일본어입니다.
謄寫機 Mimeograph, Duplicating Machine
가리방(등사판의 일본어). 일본어인 '가리방(がり版ㆍかりばん)'은 우리말로 '줄판'을 뜻합니다. '줄판'이란 이름 역시 생소한데 이는 인쇄 작업을 위해 철필로 등사 원지를 긁을 때 밑에 받치는 홈이 팬 강철판을 말합니다.<조선일보, 그라운드 사투리, 가리방에서>
망사로 뜬 종이망의 양면에 파라핀을 입힌 등사용품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방이라는 철판위에 올려놓고 철필로 글씨를 쓰면 망은 남아있고 글씨부분의 파라핀이 긁혀나갑니다.
이를 등사원지라고 합니다. 독립선언문을 한장씩 수작업으로 복사하는 장면을 드라마에서 보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국민학교 소사아저씨가 가리방으로 訃音(부음)을 전하는 내용을 적은 후에 등사기 망에 원지를 올리고 그 위에 잉크를 바른 롤을 밀어줍니다.
처음 한장은 부분적으로 선명하지 않습니다. 잉크가 더 퍼지도록 여러번 문질러서 첫장 종이는 컴퓨터 글씨를 키운 것처럼 여러겹으로 글씨가 겹쳐보입니다.
이후 한 두장을 더 밀어내면 이제부터는 글씨가 제대로 찍혀나옵니다. 대략 300장을 밀어줍니다. 바닥에 50장 정도의 종이가 있으므로 나오는 인쇄물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나 몇장을 밀면 종이도 줄고 익숙해지면서 마음에 차는 출력물이 나옵니다.
이렇게 여러번 잉크를 보충하고 종이를 추가하면서 부고장 인쇄는 2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소사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청년은 마을로 돌아오고, 상가에 대기하고 있던 청년들은 노랑색 봉투에 인쇄해온 부고장을 담아서 가방에 담고 길을 떠납니다.
근동의 마을을 돌면서 대문앞 틈새에 부고장을 끼워넣습니다. 철없는 아이들은 얼결에 편지가 왔다면서 대문앞에서 발견한 부고장을 집안으로 가져옵니다.
어른들은 부고장을 집안에 들이지 말라면서 황급히 되돌려 놓습니다. 외출했다 돌아온 할아버지, 아버지는 이 부고장을 보고 근동의 어느 어르신이 별세하신 사실을 알게 됩니다.
부고장 전달을 마친 청년들이 다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상가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중견 어르신들이 돼지를 잡고 있습니다.
누가 지시를 한 것도 아닌데 망자가 어제까지 밥주면서 키운 돼지의 네다리를 묶어서 밖으로 냅니다. 어찌보면 역사속의 殉葬(순장)과도 같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두 분중 한분이 돌아가시면 그 돼지도 제삿날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먼저, 경험 많은 어른이 돼지의 멱을 땁니다. 큰 소리로 울거나 소리를 치면 "돼지 멱따는 소리 한다"고 말합니다.
돼지도 네다리를 묶여서 나오면 죽을 줄을 아는가 봅니다. 아주 큰 소리로 울어댑니다. 그 소리는 동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처음 듣는 고성입니다. 옥타브가 아주 높습니다.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다고 합니다. 돼지 멱따는 날에서야 하늘이 저렇게 높고 푸르구나 하는 사실을 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어린시절 어느 봄날 잔디에 누워서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를 봅니다.
비행기는 푸른 하늘에 구름 몇조각이 평온하게 자리한 가운데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잠시후에 그 배행길에는 흰 구름이 피어납니다. 아마도 저 높은 하늘로 거대한 비행기가 통과하면 구름이 생겨난다 상상했습니다.
비행기가 물을 뿌린 것은 아니고 시속 900km 속도로 하늘 공간을 뚫고 지나가면 공기의 휘오리가 발생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공기중에 숨어있던 습기가 작은 물방울이 되고 하나둘 합쳐지면 안개가 되고 이내 구름으로 뭉쳐져서 하늘위에 비행기의 바퀴자국을 만들어 낸다고 상상했습니다.
그렇게 하늘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하던 아이들은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면 우르르 몰려듭니다. 펠레, 차범근, 지단, 손흥민, 메시, 음바패, 박지성이 몰려듭니다. 이제 2002월드컵을 시작합니다.
동네 아저씨 3명이 달라붙어서 돼지를 잡습니다. 멱을 따서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돼지의 몸통에 물을 뿌리면서 털을 제거합니다.
칼과 호미로 긁어가면서 검정털을 뽑으면 뽀얀 돼지의 피부가 나옵니다. 본래 돼지는 검은 짐승이 아니었나 봅니다.
물을 끓인 후 10분정도 식힌 후에 주전자에 담아서 아저씨 한분이 살살 뿌리면 다른 아저씨의 손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뜨거운 물에 살짝 익힌 피부에서 검정털이 잘 뽑혀나옵니다만 나중에 몇가닥 남은 털은 호미로 문질러서 제거합니다. 그래도 남은 것은 예리한 칼로 밀어버립니다.
그리고 돼지의 배를 갈라서 창자를 꺼냅니다. 순대의 외피가 됩니다. 창자를 손질하여 한쪽을 묶고 다른 한쪽에 순대의 속재료를 채워줍니다.
순대의 속재료는 두부, 당면, 배추다짐, 고추가루, 쌀죽 등 다양합니다. 그냥 당면을 채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중에서 비닐포장으로 흔히 판매하는 순대는 식용비닐을 외피로 쓰기 때문에 돼지와는 무관합니다. 돼지순대를 모방한 당면식품입니다.
이를 먹으면서 순대를 먹었다고 하면 콩으로 만든 고기를 먹으면서 고기를 먹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돼지를 잡아서 그 부산물로 만든 순대가 진짜 순대입니다. 충청도 병천순대가 진짜 전통의 순대입니다.
그 속재료가 시중의 당면순대와는 다르고 썰어서 접시에 올리면 속재료가 탱탱거리면서 튕겨나오려 합니다. 당면순대는 덤덤하게 당면의 단면도를 보여줄 뿐입니다.
돼지의 내장으로 만든 순대는 5시간 후에나 볼 수 있고 동네 축구스타들에게는 돼지오줌보가 급합니다. 아저씨는 오줌보를 잘라내어 아들 축구팀 주장에게 건네줍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우르르 저편으로 몰려가서 남아있는 오줌을 버리고 볼펜 몸통을 통해 오줌보안에 공기를 불어줍니다.
팽팽하게 부풀어오르면 대략 핸드볼공 크기입니다. 입구를 실로 묶은 후 땅바닥에 던져지는 순간이 전반전 시작입니다. 검정옷을 입은 심판은 없습니다.
인원도 11명+11명=22명+심판 3명이 아닙니다. 유소년 축구처럼 나이 제한도 없습니다. 심판이 없으니 꼴대도 없고 선심 라인도 보이지 않습니다.
온동네가 축구장이 됩니다. 그냥 뻥축구입니다. 이리 차고 저리차면서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TV에 나오는 아프리카 흑인 청년들이 공하나를 향해 마구마구 뛰어다니는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1960년대 시골아이들은 그렇게 축구를 배웠습니다. 작은 공하나면 야구팀이 결성되었습니다. 파울을 빵울이라 해서 '빵울볼'친다고 했습니다.
야구에서 미국은 베이스볼이고 중국은 봉구이며 대한민국은 일본의 야구를 가져와서 야구라 합니다. 미국은 베이스를 중시하고 중국은 배트를 바라보며 우리는 일본과 함께 들판을 생각하면서 야구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동네에는 아이들 선행교육을 방해하는 이가 가끔 있었습니다. 돼지 한마리에 하나뿐인 오줌보를 꺼내자 마자 예리한 칼로 푹 한번 찌른 후에 버려지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참으로 나쁜 아저씨입니다.
아이들에게 주면 전반 후반 45분에 휴식 10분을 계산하면 100분간 운동을 할 것인데 그 기회를 말살한 나쁜 인간입니다.
돼지 오줌보 축구는 공이 터지거나 누군가 넘어져서 코피가 터지면 종료됩니다. 심판의 종료휘슬도 없고 타이머 시계조차 없던 시절이지만 나름의 시간 체크방법은 있었습니다. 축구가 끊나고 다시 喪家(상가)로 돌아오면 대형 무쇠솥에서 선지국이 끓고 있습니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하늘로 퍼질때 돼지의 피는 그 아래 플라스틱 그릇으로 흘러내립니다.
金樽美酒千人血 금동이의 좋은 술은 천사람의 피요
玉盤佳肴萬姓膏 옥쟁반 위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燭淚落時民淚落 촛물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歌聲高處怨聲高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드높아라
출처 : 제주투데이(http://www.ijejutoday.com)
돼지 피를 응고시킨 후에 물이 끓고있는 무쇠솥에 살며시 부어줍니다. 뜨거운 물에 익으면서 선지가 됩니다. 무, 배추, 돼지의 비계, 내장 등이 들어간 선지국이 끓고 있습니다.
멍석위에 둘러앉은 아이들에게 김이 펄펄 피어오르는 순대국을 한사발씩 배식합니다. 모데미 밥이라고 양푼에 흰 밥을 가득 퍼서 가운데에 내어 줍니다.
축구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순대국에 이밥을 말아서 열흘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습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살았고 성장해서 이제 65세가 되었습니다. 10살의 기억이니 55년전 일인데 이렇게도 생생한 것은 '삶의 체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인에게는 참여식 교육이 중요하고 연세드신 어르신들에게는 명사의 강연보다는 레크리이션 강사의 율동이 필요합니다.
유년의 기억이 지워질지도 모르기에 하루하루 시간을 내서 글로 적어봅니다. 적어둡니다. 후대에 누군가가 이 글을 보면서 자신이 거치지 않은 그런 유년의 세계를 대신 느껴보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이 가진 유년의 기억은 동네 마켓, 식당, 놀이공원입니다. 하늘을 보려해도 빌딩이 가리고 있고 하늘을 보면 전기줄이 가득하여 푸른 하늘을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은 갈기갈기 찢겨져 보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할머니, 엄마가 본 봄날 아지랭이 들판과 하늘의 흰 구름, 그리고 그 곁을 소리없이 지나가면서 보일듯 말듯하는 비행기와 그 흔적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새털구름을 이 시대의 아이들은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보았던 당시에는 소중한줄 몰랐던 소중한 기억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모습을 촬영할 카메라도 없었고 동영상 장비는 더더욱 구형이었으며 찍었다해도 지금처럼 선명한 영상으로 복원할 방법도 어려워보이니 당시의 기억을 어찌하면 더 구체적으로 글로 표현할까를 고민합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낀 당시의 풍광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서 영상으로 표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아직까지 이같은 첨단기술의 흔적이 조금 보일뿐 마음을 읽어주거나 생각을 영상으로 보이도록 하는 수준에는 미달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니 아직은 당시의 기억과 추억과 영상을 이처럼 글로 쓰고 책으로 인쇄하고 파일을 공유해서 2023년의 아이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몇명이나 이 글을 보고 봄날의 하늘과 가을날의 풍광에 공감할 것인가는 미지수이고 알 수 없고 가능성은 희박한 일이지만 그래도 작은 노력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숫가락으로 파기 시작한 산기슭에 대형 버스가 오가는 터널이 생기는 것처럼, 양자강 물위에 모래 한알을 던지고 돌아서서 강이 얼마나 얕아졌을까 생각해보는 새 한마리의 날개짓처럼 오늘의 이런 글과 문장과 책의 내용이 누군가에게 도달해서 작은 물결로 일렁거리기를 기원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