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친구들이 모이는 수성고등학교 20회 정기 산행의 날입니다. 오늘은 강원도 대관령의 옛길, 산길 6.2km를 부드럽게 산행하는 일정입니다.
수원시청 정문 오른쪽에서 여러 명이 승차하고 장안구청 정문에서 우르르 승차한 후 막히는 서울 길을 달려서 사당역, 동천역에서 친구들이 승차하니 대한항공 비즈니스석 급의 28인승 좌석이 만석이랍니다.
滿席(만석)이란 ‘풀’이라는 말로 이해하기는 합니다만 한자사전에 나오지 않으므로 글자를 모아서 ‘만석’이라 표기하였고, 다시 대유평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는 만석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창조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짜깁기한 것임을 밝힘니다.
[인터넷 자료] 만석거(萬石渠)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조선후기에 축조된 저수지입니다. 수원시 북문 밖 공설운동장 북쪽에 위치하며, 수원지방에서는 조기정방죽, 조귀정방죽, 조개정방죽, 일왕저수지, 북지라고도 불립니다. 1795년(정조 19) 정조 때 축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용수원으로 이용되고 있고 길이는 387m, 높이는 4.8m, 저수면적은 24.7㏊, 몽리면적은 82.2㏊, 평균수심은 1.8m입니다.
정조는 화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개의 저수지를 축조하였는데, 북쪽에 조성한 것이 만석거(萬石渠)입니다. 지금의 한일타운 앞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서쪽에는 축만제가 있고 남쪽의 융건릉 인근에 만년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쪽에도 있었는데 지금의 지동 인근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원천유원지는 지금 광교호수공원으로 단장되어 있는데 정조대왕과 관련성은 없어 보이지만 아름다운 호수이니 시간이 되는 날 방문할 것을 권합니다. 이야기의 핸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서 다시 네비게이션을 따라서 대관령길로 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4곳을 경유하여 오늘의 멤머들이 28인승 버스를 만석으로 채운 가운데 신명나게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몇 사람은 졸고 다른 이들은 추억의 이야기로 말의 꽃을 피우는 즈음에 고속도로 길이 서서히 막혔습니다. 갓길로 경음을 울리며 달리는 차량은 레카차, 응급차, 구조차, 소방차, 경찰차입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였음을 알리는 징후들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버스는 부드럽게 느리게 가다서다를 반복하여 40여분 지체되었습니다.
결국 사고현장을 지나면서 살펴보니 대형트럭이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추돌하여 앞바퀴를 좌로 90도 꺾은 채 서 있고 도로공사 관계자들이 잔재물을 치우고 있습니다. 경찰차, 도로공사 짚차가 우리의 가는 길을 막고 있어서 교통이 지체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운전자와 동승자는 크게 다쳐서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인데 우리는 버스가 지체된 것을 불평하면서 사고는 남의 일 인양 생각하며 사고현장을 지나갔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서인가 사고로 인한 부상자의 아픔보다는 자신들의 여행일정이 遲滯(지체)된 것에 대한 불편을 더 많이 느끼는 것은 아니었나 반성하게 됩니다. 결국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도착한 대관령 어느 굽이의 한자락에서 “대관령 옛길”이라는 글자를 돌에 새긴 T본스테이크 모양의 비석을 배경으로 개인사진과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행은 일단 조심스럽게 시작하였습니다. 나이 들어 뼈가 단단하니 유연성이 떨어지므로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나 부상위험이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고등학교 앨범 30명 정원의 매 페이지마다 불은 색 ‘作故(작고)’라는 글자가 5개 내외로 새겨진 것을 보면 올해 65세, 66세로 살면서 지하철 무료교통카드를 받은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地空仙師(지공선사)란 65세부터 지하철을 무료로 탑승하는 나이 자격을 가진 분을 말합니다. 최근에 지하철 적자를 이유로 지공선사 나이를 70으로 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국민적 사회적 관심이 큰 제도의 개혁에는 대략, 평균 5년이 소요되므로 올해 65세의 지공선사는 5년후에 70세가되고 제도가 바뀌어도 지공선사의 자격을 얻게 될 것이기에 58년 우리 세대에게 있어서 지하철 무임승차 논쟁은 杞憂(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참고로 기우제를 잘 지내는 인디언 추장의 비결은 비가 내리는 날까지 제사를 지낸다는 끈기라고 합니다. 우리도 끈기있게 살아서 70세에 바뀌는 지공선사가 되고 80에도 90에도 독야청청하면서 고등학교 앨범속 作故(작고)의 붉은 글씨를 절대로 써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대관령 옛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오르고 내려간 사람들이 참으로 많고 많을 것입니다.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도 있을 것이고 시집가는 길, 장가들러 가는 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효석 선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과도 같은 길입니다. 장돌뱅이들이 등짐을 가득 동여맨 노새와 당나귀를 끌고 지나갔을 것 같은 길입니다. 암말과 수나귀가 만나면 노새가 태어나고 노새는 더 이상 번식을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메밀꽃 필무렵의 내용속에서 허생원과 동이가 왼손잡이라는 것으로 해서 그날 밤 물방앗간에서 울던 여인이 동이의 친모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마는 듯 합니다.
장돌뱅이가 지나가고 산적도 스쳐가고 선비들이 시를 읊으면서 거닐었을 법한 그런 길을 일행은 왁자지껄 지난날의 추억을 나누며 걸었습니다. 2천만원짜리 에어콘을 설치하자마자 화재가 발생하여 크게 놀랐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경찰이 오고 기자가 와서 사고상황을 여러 번 물었다면서 나중에는 짜증이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화재가 나서 2천만원 기계가 못쓰게 된 상황에서, 식사하다가 사고소식을 듣고 달려온 이에게 경찰, 소방, 기자, 주변 사람들이 이리저리 질문을 해대니 속이 상할 법도 하겠습니다.
더구나 에어콘은 전압, 암페어, 전력량 등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 화재, 사고원인에 대해서는 역시 전문가가 조사하고 답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국과수에 보냈다고 합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화재가 나서 소실된 에어콘을 분석하여 사고원인을 잘 밝혀내고 보험처리가 되어서 큰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사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수원시청에서 출발직전이 일행 친구가 핸드폰을 분실하였다는 일이 떠올릅니다. 집에서 나올 때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었음을 확인하였답니다. 그리고 새로 입은 등산복의 매끄러운 재질로 인하여 주머니에서 버스 좌석으로 미끄러져서 의자에 안착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친구의 전화기를 빌려서 가족에서 전화기 분실상황을 알리고 전화가 오면 잘 받아서 전화기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조처를 했습니다.
잠시후, 1시간 후쯤에 버스회사에서 전화기 拾得(습득)을 알려왔고 가족이 회사로 찾으로 가는 길이라는 朗報(낭보)가 버스안에 전해졌습니다. 일행이 다행이라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사실 우리 靈魂(영혼)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핸드폰이 내 손에서 멀어지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放置(방치)되어 있다 생각하면 상상만으로도 아찔한 일입니다. 이는 마치 S자 강원도 도로에서 50톤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의 핸들을 놓은 격이며, 내달리는 버스의 브레이크가 작동을 하지 않는 상황 이상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크고 작은 사건사고를 뒤로하고 그렇게 저렇게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가는 대관령의 숲길은 원시림입니다.
버스를 내려 단체사진을 찍은 후 들어선 옛길에서 먼저 만난 감각은 후각으로 느끼는 원시림의 나무 냄새, 흙의 향기였습니다. 인간에게는 5감이 있으며 더러는 육감이 있다고 합니다만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입니다. 술을 마시는 과정을 보면 술을 눈으로 보고 술잔을 만지고 코로 향을 음미하며 미각으로 맛을 봅니다. 하지만 청각은 술 마시는데 관여하지 못합니다.
聽覺(청각)이 음주에서 소외되는 바를 지적하며 대책을 호소했습니다. 그리하여 4가지 감각들이 論意(논의)하고 熟議(숙의)한 결과 묘책을 제안했습니다. 이후 술을 마시는 경우 최소 첫 잔은 잔을 ‘쨍’하고 소리를 내서 술마시는 사실을 알리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첫 잔은 쨍하도록 하시되 다음 잔부터는 일일이 짠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상가에서는 절대로 잔을 들고 건배를 하지 말기를 청합니다. 한 시간 반 넘게 숲길, 자갈길을 내려가니 작은 공터가 나옵니다. 이미 6km를 걸어온 바입니다. ‘선두반보’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지휘자가 일행을 잘 끌고, 몰고 내려왔습니다.
이제 막걸리와 도토리묵입니다. 그런데 도토리묵을 다 먹고 막걸리 병이 동나도록 간장양념 소스는 도착하지 않습니다.군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메뉴가 돈까스였습니다. 부식차량 병사들이 실수로 1중대에는 돈까스를 모두 다 내려주고 40km 떨어져 있는 2중대에는 트럭에 남아있는 소스가 담긴 박스를 모두 다 내렸습니다. 1중대 병사들이 불평을 말합니다.
“돈까스 소스를 주셔야 하지 말 입니다.”
중대장이 답합니다.
“배달차 병사들의 실수가 있어서 이리 된 것이다.”
이어서 말합니다.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해라. 2중대 병사들은 지금 돈까스 소스만을 드링크하고 있단다.”
사실 도토리묵에 간장을 찍어 먹어야 한다는 것은 습관일 수 있습니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묵은 맨으로 먹을 때 그 풍미를 깊이있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로 나이들어 만나니 반갑고 그래서 새롭게 65세의 세월을 멋지게 시작하는 것인가 생각합니다. 그 맛갈스러운 소스없는 도토리묵을 안주삼아 막걸리 3컵을 마신 후에 우리의 대표가 제기를 꺼내들었습니다. 어린시절의 실력을 바탕으로 3번, 5번에 도전하더니 결국 선수한명이 11번 제기차기에 성공합니다. 1등입니다. 1등에게는 제기차기 신동이라는 칭호가 주어집니다.
함께 먹은 빈 술병과 안주 포장재를 둘둘 말아 두 손에 쥐고 다시 대관령 박물관길을 갑니다. 정말로 박물관에 보관될 법한 길을 따라갑니다. 비탈길을 중국 ‘차마고도’처럼 깎아 만든 길을 걸어가면서 그 왼쪽을 지나가는 흰돌이 가득한 하천을 바라봅니다.
가끔은 하천을 건너고 그 맑고 차가운 물에 손을 담그면서 오늘 여행의 행복을 滿喫(만끽)합니다. 담배를 피우면 喫煙(끽연)이라더니 만끽하는 끽이 같은 한자임을 검색을 통해 알겠습니다. 기분 짱입니다. 전반에 걸어온 대관령 옛길 만큰의 거리를 대관령 박물관 가는 길을 통해 걸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박물관 앞에서 잠시 쉬는 동안에 박물관 관계자의 대화를 마주합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버스 타고 와서 내려서 걸어서 왔습니다.”
관계자는 어떻게 왔는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하지 않을 분들이 막아선 것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그냥 ‘조금 저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하면 될 법한데 참으로 어렵게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차분하게 여유롭게 버스에 올라서 식당으로 향합니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서 “대관령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집에 도착했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꽃밭양지길 51-18. 033-335-9292.
다음에 대관령 인근을 지나는 날에 반드시 한번 더 방문해야 할 식당입니다. 식초, 설탕, 김치 등 재료배합이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룬 듯 합니다. 미각에 맞고 후각에도 좋습니다. 막걸리 한컵이 豐味(풍미)를 더하는 맛의 향연입니다.
사실 평생을 먹고 매일 3번이상 식사를 하지만 매번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수성고등학교 2학년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처음 먹은 전복죽을 기억합니다. 초등학생 5학년경 처음 입에서 녹여본 탕수육의 ‘겉바속초’의 부먹을 추억합니다. 공직초기 선배가 술 먹은 다음날 데려간 복국집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관령의 삽교리 동치미 막국수를 앞으로 더 기억하겠습니다. 그 맛에 고등학교 동창들의 우정을 담아냈기에 그 풍미가 최고조에 이른 듯 생각합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신입회원이니 인사를 하랍니다. 동문 체육행사에는 여러번 참석하였만, 동기동창 등산은 처음입니다.
동창중에는 등산과 체육행사를 편식하는 이가 많은가 봅니다. 체육행사에는 참석하지 못한다는 동창이 여러명입니다. 수성고등학교 20회 졸업생이고 수성고 출신인 것이 늘 자랑이고 직장에서 늘 고마운 대우를 받았노라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러했고 지금도 수성고 출신의 자긍심으로 공직, 언론, 기업 등 사회 여러분야에서 일하는 후배들이 가득합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기념으로 만들어준 ‘수성고등학교 20회’라는 글자가 선명한 스포츠 수건을 자랑스럽게 목에 걸고 버스안에서 졸다가 깨다가를 반복하니 어느새 수원권에 입성합니다. 광교역 인근에서 하차하고 수원시청 그 자리에서 내리고 버스는 가벼운 몸체를 흔들며 사당으로 향했습니다. 고마운 친구들의 우정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17,000보 13km 풍부한 운동량을 자랑하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지난날의 사진을 보니 조금은 세월이 흘렀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이제는 더 나이 먹지 않고 세월에 밀리지 않고 건강하게 멋지게 살고자 합니다. 친구들의 우정을 간직하면서 그렇게 차분하게 멋지게 살렵니다. 고마운 친구들의 우정을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수성고등학교 20회 졸업생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