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족#소통#사랑

이강석 전 남양주시부시장

 

 

냉장고의 냉동칸과 냉장박스에 들어가면 "모든 식품이 영구히 안전하다"는 타성에 젖은 우리는 음식을 만들어서 그릇에 담아 냉장칸에 넣고 하루, 이틀, 사흘동안 꺼내어 먹고 다시 넣고 다시 꺼내는 셔틀냉장을 이어갑니다. 어느집 냉동칸은 음식을 담은 비닐이 흰 벽을 구성하고 있기도 합니다.

 

식재료마다, 음식과 반찬마다에는 나름의 유효기간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냥 냉장에 넣으면 보름은 가고 냉동에 넣으면 다시 한해가 바뀌어 그날이 다시와도 탱탱 얼어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위생당국에서는 유효기간과 유통기간을 정하고 단속을 합니다만 이는 편의점 등 오픈된 장소에서는 수시로 행해지는 행정지도단속이지만 정작 식품을 만드는 큰 공장에서의 위생에 대해서 편의점만큼 알뜰하게 관리하는가에 대한 확신은 부족하다 봅니다.

 

대형공장에서 제조일자, 유통기한, 유효기간의 일자를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부위에 흐릇하게 찍어내어 마트, 편의점 등에 공급하고 소비자들은 그 날짜를 확인하면서 작은 두뇌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유통기한 만료일이 임박한 제품은 진열대 앞에 놓고 조금 여유있는 물건은 뒷편의 꺼내기 어려운 곳에 전시합니다.

 

이에 소비자들은 일단 구매할 제품을 정하면 앞부분의 것은 밀어내고 뒷쪽으로 손을 뻗어서 원하는 제품을 잡아채고는 앞부분의 제품보다 유통기한이 하루정도 늦은 것을 잡아낸 것에 대해 희열을 느끼게 됩니다. 작은 기쁨입니다.

 

이는 두뇌게임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이틀정도 지나면 폐기될 제품을 유통기한 임박해서 팔아버린 종업원은 나름의 승리자이고 진열대 뒷편에서 유통기한 하루 더 긴 제품을 발견한 것은 소비자의 기쁨입니다.

 

가정이 냉장고에는 식재료와 식품, 반찬이 혼재한 가운데 열심히 만들어 넣으면 열심히 꺼내어 먹습니다. 문제는 식재료 상태로 있는 경우에는 신선도나 위생적인 면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지만 열을 가하고 양념을 넣어서 버무린 반찬은 신선도를 가늠하기 어렵다는데 있습니다.

 

더구나 며칠간의 숙성이 필요하고 숙성후에도 장기간 저장한채 먹을 수 있는 김치류는 기간이 경과해도 그 성분에 문제가 없고 식품으로서의 가치가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만 찌게나 나물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날 수록 신선함이 떨어지고 맛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양의 찌게를 끓이고 식히고 냉장하고 다시 온도를 가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역시 찌게는 여러번 끓여야 제맛이 난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 찌게는 여러가지 재료가 섞이고 열을 가해서 완성하는 반찬이므로 처음에는 맛이 나지 않다가 여러가지가 섞이고 융합하면 제맛을 내게되고 다시 물을 추가해서 묽어지면 적당량의 고추장, 된장을 넣고 대파를 넣으면 새맛을 내게 됩니다. 그리고 식당에서 내주는 된장찌게는 그 탁배기에 끓인 것이 아니고 대형 솥에서 충분히 조미료를 조절하여 맛을 낸 후 적당량을 찌게그릇에 담아서 바르르 끓여낸 것이랍니다.

 

실력이 출중한 요리사도 그 작은 탁배기에 몇가지 재료를 조금씩 넣어서 그 맛을 내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부들이 된장찌게를 끓이는 경우 애호박, 김치, 기타 재료를 썰어서 넣다보면 그릇이 작은 듯 보이고 큰 그릇으로 바꾼 후에는 남은 재료를 다 넣어버리니 그 양이 늘고 다시 된장과 고추장을 추가하면서 점점더 일이 커지고 결국에는 대형냄비에 한강수를 한가득 채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냄비의 찌게재료를 국자로 작은 냄비에 옮기고 다시 끓여서 식탁에 올리게 됩니다. 그러니 처음에는 두끼정도 된장찌게를 준비할까 마음먹었지만 결국에는 6일 내내 된장찌게를 먹어야 하는 안타까운 신혼부부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아니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방문 손잡이 부근이 지저분하다며 손질을 하다보니 보이는 곳을 모두다 도배를 하게되고 천정의 못자국이 보기 불편하다며 결국 10만원 상당의 접착식 도배지를 인터넷으로 구매하여 초저녁에 시작하여 밤 12시가 넘도록 오리고 잘라서 천정도매를 하게 됩니다.

 

미켈란젤로가 천정에 그림을 그리느라 곱추가 되었다는 말처럼 벽면을 붙이는 일보다 천정작업은 두세배 어렵습니다. 머리를 젓히려니 목이 아프고 매번마다 의자를 이동하면서 천정을 어루만져서 도배지를 붙여 나가야 합니다. 형광등이나 화재경보기 부근은 동글게, 네모로 잘라서 도배지를 맞춰야하고 특히 무의가 있는 도배지의 경우에는 방향과 문양의 어울림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앞으로 냉장고에는 식재료만 보관하는 칸과 완성된 반찬을 보존하는 칸을 따로 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예 제조사에서 냉장 2칸, 냉동 2칸을 만들고 각각의 칸에는 식재료를 보관하는 곳과 반찬을 보존하는 칸으로 구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음료수등 동그란 병이 들어가기에 편리하도록 칸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오래전에 냉장고에 대한 글을 쓰면서 그 속의 식재료 이야기를 한 바가 있는데 오늘은 그 재료로 만들어진 반찬을 어찌하면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맛나게 제때에 식사를 할까하는 점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일단 된장찌게를 시작하는 신혼부부들은 소량으로 시작하되 한 번 정도 큰 그릇으로 이동하는 정도는 재량으로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세번, 네번 그릇을 크게 바꾸는 것은 인정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분수를 배우고 적정량을 넣어서 맛있는 찌게를 만드는 요령을 터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부부가 냉장고를 통해서 말없이도 소통하는 날을 빨리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어느정도 세월이 가고 시간이 흐르면 말하지 않아도 냉장고의 식품배치와 음식의 진열을 통해서 부부가 대화하고 소통하게 됩니다. 남편은 요리는 아니어도 조리를 배우고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꺼내어 데치고 전자렌지에 데워서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요령을 터득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사실 말하지 않아도 마마보이가 오히려 더 잘하게 됩니다. 엄마 이상으로 아내를 사랑하게 되면 아내의 손에 물이 묻는 것조차 안타까워하면서 스스로 설거지를 하고 양복입은 신사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마마보이는 엄마가 만들기도 하고 스스로가 자청하기도 합니다만 제아무리 쎈급의 마마보이라도 아내의 사랑앞에서는 선각자가 되고 의사가 되고 열사가 됩니다. 난방열사에 이어 음식쓰레기 열사, 재활용 의사, 세탁의 전문가, 장인이 된다는 말입니다. 

 

냉장고는 부부 공유의 공간이고 소통과 대화의 칸이며 칸칸이 막힌 것 같지만 냉동과 냉장, 야채실과 고기실이 조화를 이루는 행복한 가정의 창문이 된다는 점을 거듭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오늘아침에는 부부가 함께 냉장고를 열어보고, 혹시 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칸막이를 한것은 아닌가 반성하고 부부가 공유하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이들이 참여하는 행복의 공간으로 우리집 행복의 원천이 되는 의미있는 냉장고를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