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에서 TV를 통해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있습니다. 우주선을 타고 먼 공간을 여행하는 이야기인데 과거와 현재를 혼용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가족이 보낸 멧시지를 수십년 후에 읽는 장면이 나오는데 딸의 메시지에서 아버지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떠날 때의 아빠 나이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는 딸의 이야기가 "이제는 더이상 연락이 닿지 아니하므로 아버지를 보내준다"고 합니다. 우주 공간에서 뒤늦게 딸이 보낸 메시지를 보면서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일부 우주인은 동면을 통해서 생체리듬을 느리게 하여 인간세상에서보다 더 길게 살면서 우주선을 운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구를 출발한 우주선이 화성에 착륙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과거 영화에서 이처럼 미래지향적인 내용의 스토리를 만들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냥 지구에서 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우주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인간의 두뇌구조에 대해 다시한번 깊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시간이 100년쯤 지나면 지금의 고뇌, 갈등, 어려움은 의미가 사라질 것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최근 LH부동산 투기사건으로 2명이 자살을 하였는데 뉴스에 의하면 두 사람 다 깊이 있게 투기에 관여된 것인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곡마단, 서커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아슬아슬합니다. 절차와 조직의 공적인 관계로 정치를 운영하기 보다는 개인 기업인 듯 자신의 SNS에 마구잡이로 글을 올리고 언론은 이를 받아 큰 활자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기사도 큰 활자로 보여주는 것이니 글자크기가 기사의 경중을 가리는 것에는 인터넷 시대에도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떠난 아버지는 젊은 모습이고 메시지로 전해진 딸은 아마도 나이가 많이 든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미래를 넘나드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SF영화를 만드는 데는 여러가지 사회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노벨상 중에 화학상, 물리학상을 받으려면 기초과학이 발전한 나라에서 연구하는 이에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류 발전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니 남들이 이룩한 이론위에서 어떤 과학적 발전을 이룩한 경우는 노벨상위원회에서 높이 평가하지 않는가 봅니다.
사실 스마트폰은 발명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총체, 종합된 기기라고 평가를 합니다. 정말로 전화기가 아니라 컴퓨터를 축소한 대단한 기계입니다. 전화를 걸고 받고 사진을 찍고 저장하고 보내고 받는 기능이 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메일을 주고 받습니다.
요즘에는 손목에 찬 채로 통화를 하고 손목위에서 문자를 보냅니다. 스마트폰이면 문 앞에 신선야채가 도착하고 야식을 주문하며 그 자리에서 요금을 지불합니다.
그러니까 20층 아파트 창문으로 피자를 받고 결재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시대에 살면서 젊은이는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신은 태어나서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으니 금수저가 아니라 스마트폰 세대입니다. 그러니 기능을 잘 알고 활용할 능력이 뛰어난 것을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들이 알지 못하는 분야를 잘 설명하고 이해하고 스스로 터득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공상 과학영화를보면서 우리의 이 사회가 이처럼 변하고 첨단으로 달리고 있음에 대해 알고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젊은이들을 따라갈 수 없으니 그들이 장년, 노년층에게 IT효도를 다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