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행정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보여주기 위해 신경쓰는 공무원들의 모습을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한다. 전시(戰時)행정이라면 을지연습 같은 전쟁상황을 가상한 행정훈련이겠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시(展示)행정이다.

사실 전시는 많은 이들이 미술품을 비롯한 작품을 보기에 편리하게 분류하고 눈높이에 맞추어 벽이나 공간에 걸어주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보기에만 좋게 자신들이 한일을 장황하게 자랑하기 위한 일들을 보고 전시행정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전시(展示)행정의 표본은 참으로 많다. 언론에서도 수없이 지적하는 시민회관, 공설운동장을 비롯한 각종의 회관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이들 시설도 시민과 군민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늘 재정을 이야기할 때 재정자립도가 낮아서 투자재원이 없다고 하면서 2-3년 내에 준공식 테이프를 자를 수 있는 시설들에 대한 투자는 선호의 대상이다. 2-3년이라는 기간과 단체장의 임기(4년)는 묘한 연관성을 갖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전시행정은 작은 시설에서도 볼 수 있다. 등산로 비탈길을 가노라면 나무모양의 계단을 오르게 된다. 그런데 무늬는 나무인데 실제로는 시멘트와 모래, 자갈의 덩어리다.

 

나무는 쉽게 썩기 때문에 튼튼하게 하려고 시멘트 구조물로 계단을 만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정말로 나무보다 시멘트 구조물이 더 오래가는지는 따져보는 일은 다음에 하고, 우선은 느낌이 크게 다르다.

실제로 나무계단을 오를 때에는 발도 편하고 기분도 상쾌한데 반해 무의만 나무인 시멘트 계단은 투박하다. 몸 전체에 전해오는 느낌도 나무계단은 자신의 거름을 느끼게 하는데 반해 시멘트 계단은 헛디딘 듯하다. 차라리 둥근 자갈을 깐 계단은 웬지 친근감을 준다.

 

보여주기 위한 행정과 유사한 것이 우리 농산물의 포장관행이다. 요즘같은 딸기철에는 투명비닐로 포장된 딸기에서도 전시상술을 볼 수 있다. 보이는 곳에는 탐스럽게 잘익은 딸기가 우리의 눈길을 끌지만 집에 가서 열어보면 바닥에는 잘고 못생긴 것들이 숨어있다.

 

대파를 보아도 그렇다. 희고 굵은 대파묶음을 풀러 보면 속에는 잔파들이 고개를 숙이고 짓눌려 있다가 한숨을 몰아쉬면서 겸연쩍게 우리를 쳐다본다.

우리는 혹시 끓는 물에 익어야 할 해물은 겉에 보이게 담고 살짝 데치는 정도로 먹어야 영양소 손실이 적은 야채를 물속에 푹 끓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보이기 위한 전시행정, 순간적으로 잘보여서 물건을 팔지만 더 이상 소비자의 발길을 스스로 거부하는 포장기술은 버려야 한다. 오히려 작은 딸기, 실파를 위에 올리고 크고 잘생긴 딸기, 굵고 흰 파를 속에 포장함으로써 소비자와 무언의 대화를 나는 동시에 주변의 다른 이들을 이끌고 다시 찾게 하는 신용을 키워야 한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등산길 계단공사를 할 때 재정사정이든 다른 이유에서든 나무로 설치할 수 없었다면 차라리 시멘트 벽돌모양으로 계단공사를 하여야 한다. 더구나 등산의 목적은 자연을 만나고 솔직한 산과 이야기하고 자신과의 대화를 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전시는 필요치 않다. 진리를 이야기하는 방에 장식이 필요치 않은 것처럼, 구태여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봄철 가장 먼저 피는 후박의 향기처럼 잘한 일에 대해서는 주민이 먼저 알고 언론이 앞 다투어 호평하게 될 것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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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