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의 언론담당관, 그리고 남양주시청, 오산시청, 동두천시청에서 부시장으로 근무한 이강석 전 경기테크노파크원장이 언론 기고문 중 100개를 모아 편집한 본인의 세 번째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2020년 출간한 바 있다.
그는 경기도에서 42년간 재직한 공직자로 공보부서에서 11년 6개월간 근무하면서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도청 균형발전기획실장,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꾸준히 언론에 기고했다.
또한 경기도테크노파크 원장으로 공직을 마감하면서 ‘언론사의 도움을 받은 바 크다’면서 신문사에 퇴임 인사를 다녀간 친 언론공무원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임인사는 많이 오지만 퇴직자가 언론사를 방문한 예는 드물기 때문이다.
뉴스폼에 게재하는 '이강석의 세상만사'는 책 '보리차 냄새와 옥수수 향기'를 토대로 스마트 시대를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스토리텔링을 통한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코너다.
요즘 공직사회에서 퇴임식을 보기 어렵고 동시에 훈장을 전수하는 행사도 거의 열리지 않는다. 기관장은 바빠 훈장 전수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부단체장은 기관장의 눈치 보느라 퇴직 간부의 훈장을 전하는 행사를 주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명퇴하고 한두 달, 6개월이 지나면 또 다른 인사발령으로 그 부서의 서무담당, 주무팀장, 과장이 바뀌고 국장급 인사는 더 자주 발표되므로 막상 훈장을 받으러 근무한 기관이나 부서에 가기에도 쑥스럽다는 것이 퇴직 공무원 대부분의 공통적인 이야기다. 퇴직 공무원의 훈장 전수식 참석을 기피하는 것이 먼저인가, 기관에서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 참석하고 싶어도 못 가는 것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계란이 먼저인가’를 논하는 것과 같다. 헌법 제80조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훈장 기타의 영전을 수여한다’고 규정했다. 소중한 훈장은 퇴직후 6개월, 1년후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니 훈장이 명예가 아니라 서무 담당자에게는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공직자로 일한 분들이 헌법정신대로 예우를 다하는 가운데 자랑스럽게 훈장을 받도록 몇 가지 해야 할 일의 순서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행정안전부 담당 부서에서는 퇴
동경(東京) 동경(憧憬) 동경(銅鏡) / 2017-12-18 일본에 東京(동경)이 있다. 일본을 憧憬(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생애 처음으로 일본에 가보니 그동안 듣고 읽은 일본을 조금은 이해하고 동감하는 기회가 된다. 우선은 일본 동경시내 건물과 시설과 사람과 차량의 질서다.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 경적을 울리지 않는 차량이다. 동경시내를 조망해 보면 높이 올라간 것의 으뜸은 도쿄타워이고 도심 한가운데를 넓게 차지한 거목의 숲은 신궁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메이지 신궁은 1912년 제122대 왕인 무쓰히토(메이지)가 사망하고 1914년 왕비 쇼켄이 사망한 후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1915년 건설을 시작하여 1920년 11월1일 창건하였으며 신궁(神宮)은 역대 일본 왕을 기리는 신사로, 다른 신사보다 높게 친다고 한다. 동경타워는 1958년에 건립됐다. 프랑스 파리에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세워진 324m의 에펠탑을 모델로 하여 철강 4천t으로 333m 높이로 건설했다. 9천700t의 철강이 들어간 에펠탑보다 7m 높다. 70년의 시차와 기술의 향상으로 철강을 절반 이하로 쓰면서 더 높게 건설한 것이다. 1975년에 세워
[천자춘추] 해관 (2017-11-23) 지난해 말 39년 8개월 공직을 마감하게 되었을 때 마음속 흔들림과 당혹함이 적지 않았는데 어느 날 새벽 1시에 잠에서 깨어나 손에 잡은 책이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牧民心書(목민심서)’로 흔들림을 잡은 바 있습니다. 제도의 개혁 원리를 말하는 經世遺表(경세유표), 형법서 흠흠신서(欽欽新書), 그리고 목민관, 즉 현대의 공직자가 지켜야 할 지침을 밝히면서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인 목민심서를 ‘1표2서’라 하며 1762~1836년 74세 일생동안 심혈을 다하신 508권 茶山(다산) 선생님의 저서 중 壓卷(압권)입니다. 목민심서를 잡고 이리저리 방황을 하다가 만난 활자는 바로 ‘解官(해관)’이었습니다. ‘관직이 교체되어도 놀라지 마라. 수령직은 교체됨이 있는 것이니 교체되어도 놀라지 않고 관직을 잃어도 연연하지 않으면 백성이 그를 존경할 것이다. 평소에 문서와 장부를 정리해 두어서 청렴하고 명백하게 하여 후환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방행정 기관의 공무원에 대한 인사는 여건상 단기간에 진행됨이 현실이니 현재 공직에 몸담은 1962년생쯤 나이에서 다산 선생님의 ‘해관’을 생각하고 그 글을 읽으면서 공감해 봄 직하다 하
방송국에 가면 드라마 이산(정조대왕)의 사진이 걸려 있고 효의 도시 수원에는 화성이 있습니다. 그 화성의 4대문은 장안문, 팔달문, 화서문, 창룡문이고 그 중심 행궁안에 함께한 화령전에는 정조대왕의 어진이 모셔져 있습니다. 화령전은 1801년에 건립되었고 왕의 親祭(친제)가 17번 열렸는데 순조 10번, 헌종 2번, 철종 3번, 고종 2번입니다. 2017년 10월 28일 14:00에 華寧殿(화령전)에서 제265돌 정조대왕 탄신茶禮(다례)가 열렸습니다. 다례는 ‘차를 끓여 신이나 영혼 또는 사람에게 예를 갖추어 대접하는 법식’으로 순조는 선대왕의 탄신일에 39번 다례를 올린 최고기록을 보유한 임금이십니다. (㈔수원화성禮茶교육원 강성금 원장의 자료 참고) 정조대왕 탄신 다례에서 강성금 원장은 조선시대 이래 끊겼던 의례를 문헌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탄신다례를 올린 것은 매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고 정조의 효사상을 실천하는 우리의 독창적인 祭禮(제례) 문화라고 평가했습니다. 탄신다례는 참신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헌다례 등으로 이어졌으며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대표와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수원화성예다교육원 주관으로 열린 행사로 경기문화재단, 수원문
[기고] 자화자찬(自畫自讚) (2017-05-24) 지난 5월16일은 공무원 초임 9급 서기보시보 발령을 받은 지 꼭 40년이 되는 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보람된 날이어서 초임 발령장 사진과 함께 소감문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동기 한 분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습니다. 40년 전 19살 까까머리에 면바지, T-셔츠를 입고 발령받으러 가서 복장불량으로 화성군청 행정계장님의 면박을 받고 웃옷을 빌려입고 군수님 발령장을 받아 시작한 公職(공직)의 시작은 硬直(경직)의 출발이었습니다. 그리고 40년 동안 발령장 43장을 받으면서 한 번도 긴장을 푼 일이 없습니다. 발령대상자 인원에 관계없이 줄을 세우고 늦게 오면 야단맞고 일찍 온 공무원 모두에게도 숨이 멈출 것 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인사계 군기’는 어느 기관에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10초 안에 끝나는 발령장 받기 의전을 위해 30분, 50분을 긴장한 채 대기하였으므로 결재판처럼 뻣뻣한 발령장을 들고 회의실을 나서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습니다. 1990년경까지는 오전에 발령받고 오후까지 이 과(課) 저 부서(部署)를 돌면서 인사를 하고 선배 공무원들은 인사 오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시면서 늘 반갑게 발령장을
[기고] 공직에서 사무실과 자리 (2015-04-21) 직장동료와 회식을 가면 서로 마주 보며 머뭇거린다. 자리를 잡는데 1분 이상이 걸린다. 내 자리가 어디쯤이면 적정할까 빠른 속도로 CD를 돌려 선곡을 하듯이 자리를 스캔하고 참석자를 분석한 후 자신의 서열을 4∼5번쯤으로 정한 후 그 자리를 잡는다. 이어서 오늘의 좌장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나서 서로서로 상석을 권하며 한 자리씩 물러났다가 다시 빈자리가 생기면 우두머리의 측근 자리로 한 발짝씩 다가선다. 그리하여 과장이 자리하고 앞에는 주무계장, 좌우에 2, 3번 계장이 착석하고 그 언저리는 차석의 차지이니 말석은 문 앞이나 방구석 끝자리다. 하지만, 이 경우는 대단히 불합리한 좌석배치다. 더구나 삼겹살을 먹는 경우 2번 계장은 연신 고기를 굽고 가위로 잘라가며 후배들의 소주잔을 받고 다시 권하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오늘 모임의 취지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 채 술에 취하고 만다. 그렇다고 과장과 주무계장 자리에 서무담당을 배치하기도 어렵다. 이른바 급별로 배치되는 경우 대화의 내용은 4그룹 4색이다. 각기 서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그래서 자리배치 추첨표를 만들었다. 오늘 참석자
[기고] ‘烏山’에는 없는 ‘O-san 비행장’ (2015-03-23) 칼국수에 칼이 들어가면 절대 안 될 일이고, 붕어빵에 붕어 없고 국화빵에 국화 피어나지 않듯이 오산에는 ‘오산비행장’이 없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성남시 관내에 서 있는 톨게이트에 ‘서울’이라는 전광판이 반짝이고 성남에 자리한 공항은 ‘서울공항’이라 부르며 옹진군청은 인천에 있습니다. 수도권 외곽 순환도로의 역할은 경기도 내 수원-성남-구리-하남-의정부-파주-고양-김포-부천-군포-의왕-안양-수원을 연결하므로 동그란(○) 원웨이 이거나 하나의 도로, 즉 One Way라 불렀으면 합니다. 수원에 화성역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이는 과거 화성군청이 수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화성군청은 수원에 20년, 오산에 30년, 현재의 화성 남양동에 16년 자리하였습니다. 화성군청이 오산에 자리하였던 그 터에는 대형 매장이 입주했습니다. 1989년 시로 승격한 오산시 청사는 2001년 8월에 준공하여 현재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면 오산비행장의 지명 유래를 오산향토문화연구소 자료를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 여의도에는 일본군의 비행장이 생겼고 오산에 두 번째, 김포에 세 번째로 비행장이 건설되었으나
오산 궐리사, 춘기 석전대제 봉행 (2014-05-12) 전통문화 계승 발전과 공자의 학덕과 유풍을 기리기 위한 춘기 석전대제가 오산 궐리사 춘계 석전대제가 지난 11일 궐리사 성묘에서 봉행됐다. 이날 춘기 석전대제에는 오산시장 권한대행 이강석 부시장, 제42대 도유사 유관진 전 오산시장을 비롯해 곡부공씨 종중회원, 일반 관람객 등 150여 명 참석했다. 이날 석전의 봉행은 초헌관이 분향하고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로 시작해 초헌관이 첫 잔을 올리고 대축이 축문을 읽는 초헌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례,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례와 같은 헌작례가 차례로 진행됐다. 이어 초헌관이 음복위에서 음복 잔을 마시는 음복례가 끝나고 제기와 희생을 치우고 난 뒤, 초헌관이 폐백과 축문을 불사르고 땅에 묻는 망료례를 끝으로 석전의 모든 의식 절차가 완료됐다. 한편, 궐리사는 조선 중종 때 문신이자 공자의 64대손인 공서린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1792년에 정조가 옛터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중국의 공자가 살던 곳의 이름과 같이 지명을 고쳐 지금의 궐리가 됐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없어졌다가 1900년에 사당이 중건됐고 이듬해 강당이
[기고] 궐리사는 왕립학교 (2014-05-21) 화성궐리사(華城闕里祠誌) 연혁에 보면 오산시 궐동에 소재한 ‘화성궐리사’는 정조 16년 (1792년) 칙령으로 창건된 공자의 사당이다. 정조가 왕권강화책으로 신도시를 화성에 추진하는 시기에 수원지역의 고적을 탐사하던 중 중종대에 경기감사와 대사헌을 역임한 공서린 선생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던 임이 확인되었다. 이 같은 역사를 확인한 정조는 수원부사에게 명하여 사당을 건립하게 하고 공자의 유상을 보내 봉안하도록 하였으며 ‘궐리사(闕里祠)’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봄가을에는 국왕의 이름으로 제사를 올리고 국왕이 친히 축문과 이름을 써서 지방관에게 주어 초헌하도록 명하였고 공씨 후손 중에 행실이 높은 자를 아헌, 종헌으로 삼았다. 궐리사는 서원이다. 궐리란 중국 곡부(산둥성)의 지명으로 공자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 서원이 사립학교라면 궐리사는 왕립(국립)학교다. 다시 말하자면 요즈음의 공립 중고등학교라 할 수 있다. 십수 년 전부터 궐리사에서는 교육사업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서예, 경전, 민요, 다도, 우리 춤, 사군자, 대금반이 요일별로 운영된다. 학생교육도 준비되어 있다.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60명
“두 아이 키운 육아일기가 우리집 보물이죠” 경기도청 이강석씨 부부, 20년간 작성한 육아일기 ‘끼네스’ 등재 신청 (2010-06-14) 지난 20여년간 육아일기를 작성해 온 부부가 세계 또는 국내 최초, 최고, 최대, 최다 등의 가치를 가진 경기도 자랑거리를 모으는 끼네스 등재를 신청해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경기도청 체육진흥과에 근무하는 이강석 과장 부부로, 이씨와 아내 최경화씨는 쌍둥이 아이가 태어나기 전인 1991년 2월부터 육아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씨 부부는 “처음에는 그냥 몇 가지 소품을 기념으로 간직하기 위해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쌍둥이를 키우면서 병원 방문, 약 먹이기, 똥싸기 등 다양한 육아를 위해 노트 몇장을 찢어서 적어둔 것이 고작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부부는 아이들의 예방접종, 변비, 약 투여 등이 착오없이 되도록 각각의 칸을 그리는 등 자체적으로 형식을 만들었고, 이들 부부가 만든 육아일기 형식은 현재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난 산부인과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후 이씨 부부는 육아일기장에 월별로 제목을 부여하고, 봄, 자전거, 용인시 승격 등 당시의 계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