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동장군이라는 칭호가 가능하겠습니다. 요즘에는 별 하나만 달면 장군이라 합니다만 우리가 통상 장군이라 칭하는 분들은 고려, 조선시대에 투구를 쓴 무장을 말하며 강감찬 장군, 김유신 장군, 이순신 장군 등이 떠오릅니다. 역사속에 한 획을 그어주신 장군님에 대한 짧은 지식이 있습니다만 동장군은 매년 오시는 분이고 그 얼굴이 일반적이지는 않고 투구를 쓴 모습도 아닙니다만 강력한 이미지를 풍기게 됩니다. 어제새벽, 낮, 저녁, 오늘 새벽까지 이어지는 동장군은 별이 5개정도 되는 오성동장군입니다. 전에는 삼성, 더러 가끔 4성 동장군이 왔다가 칼을 휘두르지 못하고 창을 써보지도 못하고 어느 날 저녁에 슬그머니 동장군 진지에서 철수하곤 했는데 2024년말 오성 동장군은 그 맹위를 강력하게 떨치고 있습니다. 우두득 할 정도의 추위로 모든 것이 얼었습니다. 자동차도 곧바로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잠시 ‘새새새’ 하면서 힘을 준 후에야 바르르 떨면서 시동이 걸렸습니다. 평소보다 길게 예열시간을 주었습니다. 화요일 새벽에도 동장군은 그 부하들과 진지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번 장군은 적극적이고 민주적인 동장군이어선지 장군이 직접 불침번을 서고 있습니다. 과거 얕거나 낮은 투
동지날에 팥죽을 쑤어먹는 좋은 전통은 사찰에서도 행해진다고 한다. 어느 해 동지에 신도들과 먹을 팥죽을 쑤었는데 그 솥이 아주 커서 나룻배를 타고 중간지점에 가서 경단이 익었는가를 확인하러 나가신 주방장 스님이 3년째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마치 손오공이 구름을 타고 내달려 도착한 곳에서 소변을 보다가 부처님 야단을 맞았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손오공은 나름 구름을 타고 멀리 날아갔지만 그 공간은 부처님 손바닥이었다는 것이다. 세상은 넓지만 그안에는 고수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이들 10살까지는 수수팥떡을 생일상에 올렸다. 수수와 팥은 보라색인데 좋은 귀신을 부르고 악귀는 쫓아내 준다고 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보라색 곡식으로 떡을 만들어 생일상에 올린 것이다. 기억해보면 시골마을 신랑신부 초례청 상위에는 팥이 한 사발 올려졌다. 원앙을 대신해서 살아있는 닭을 보자기에 싸서 쟁반위에 올리기도 했다. 원앙처럼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로 초례청에 등장하던 원앙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닭으로 이를 대신한 것이다. 그 중간에 꿩이 들어갈만도 하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초례청 혼례절차중 후반부에는 상위에 올린 팥은 신랑
화성시 제부도 해안절벽에 매달린 소나무를 보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래전에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수년후에 다시 그자리에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먼저번에 매달려있던 소나무는 추락하고 그 뒷편에 자리한 나무의 절벽 흙이 흘러내리면서 다시 절벽에 매달린 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를 화성시가 추진하는 보티닉가든의 테마로 삼자는 제안을 드립니다. 절벽에 매달린 채로 떼어내어 이식하고 그렇게 절벽을 타고 살아남아서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하는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되도록 하자는 의견입니다. 1,100년전에 신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양평 용산사의 은행나무는 정4품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세종대왕께서 내린 벼슬이라 하는데 요즘으로는 1급과 2급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양평 은행나무보다 더 벼슬이 높은 정2품송은 수고 15m에 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세조의 행차시에 어가에 걸린 가지를 들어올리는 충성으로 큰 벼슬을 받았다고 합니다. 예천군의 석속령은 세금내는 소나무로 유명한데 역시 600살로 추정하며 옆으로 크게 퍼져서 324평을 차지하고 있고 주변이 관광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장마에 떠내려온 어린 소나무 묘목을 길가던 나그네가 지금의
충주시청의 홍보맨으로 유명한 김선태 주무관이 공직 7년만에 6급에 승진했다. 공무원 9급으로 공직에 들어와 6급에 승진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대략 15년이라는데 2016년 1월에 9급으로 입직한 김 주무관은 다른 공무원보다 6년빠른 7년만에 승진했다. 주사는 사무관 바로 다음 단계의 직위이다. 어린시절 마을에서는 50세 전후의 어르신을 주사라 호칭했다. 공직에 들어가니 50대 중후반의 선배공무원이 주사이고 부면장님도 6급 주사였다. 9급 공무원에서 1급 경기도지사에 이른 분이 있다. 임사빈 경기도지사이다. 1935년생이고 1999년8월에 63세로 별세했다. 1987. 12월부터~1990. 6월까지 제22대 경기도지사로 일했다. 88올림픽을 준비하고 전국체전에서 열무김치국수를 제안하여 도민들의 칭송을 들었다. 임두목이라는 이름으로 도 출신 도백으로서 인가가 높았다. 내무부 공보관으로 일할 때 기자와 친밀했는데 다른 부서로 승진하여 이동하니 그 기자들이 공보관을 버리고 임사빈 국장실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말술에 말씀도 잘하신 행정의 달인이고 뚝심있는 공무원이었고 국회의원을 하였으며 도지사 후보로 나선 바 있다. 당시 공보실에 근무하면서 임사빈 도지사의 인사기록을
▩ 김방남 통장님 영전에 ▩ 2023. 12. 28 1997년 지방행정사무관, 5급에 승진하여 시군교류로 동두천시 생연4동 동장으로 근무했습니다. 8급 서무, 7급 공보실 보도자료 담당자, 6급 인재개발원 교관, 도시개발과 차석, 예산부서 차석을 거쳐서 다시 인재개발원 5급요원 교관으로 근무 중에 문득 어느 날 동두천시청에 발령된 것입니다. 살고있는 수원집에서 동두천시청까지는 98km입니다. 쉽게 100km를 출퇴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대책없이 발령지로 달려가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동장 환영식 후 어두운 밤에 어딘가에 도착하여 짐을 들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텅 빈 방 한가운데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동사무소 동료들이 시청의 동의를 얻어 비어있는 관사를 숙소로 제공해 준 방인데, 시청 과장들이 비상근무시에 간헐적으로 쓰는 방으로 어찌보면 공가에 해당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매일 출퇴근하게 되면서 방 청소를 하고 집기도 정리정돈한 후 아침과 저녁을 챙겨 먹는 부엌까지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수원 사는 상수도사업소장, 군포사는 생연1동장이 들어오고 가끔 비상근무시에만 이용하던 부천에 사는 토목직 사무관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1호실은
"각목 버드나무" 이야기다. 수원시 영통구청과 삼성전자 중간을 지나는 원천천 돌다리 인근에 가로세로 20cm정도의 각목이 박혀있다. 수면 위로 90cm쯤 올라온 용도를 알 수 없는 각목위에 가녀린 버드나무 5줄기가 20cm정도 자라고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각목 좁은 자리에 구조헬기처럼 자리를 잡았거나, 어느 해 장마철에 상류에서 떠내려 온 버드나무 뿌리가 이 각목의 틈새에 끼어들무렵 수위가 낮아졌고 그 채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린 것으로도 보인다. 나무에 대해 비전문가이지만 뿌리가 걸려서 활착 된 것으로 버드나무가 자라고 있는 모습을 바탕으로 추정해 본다. 그래서 이 상황을 "각목 버드나무"로 명명하고, 국민신문고를 통해 수원시에 이식을 건의하였더니 물 흐름에 방해가 되어서 하천변 이식은 안 된다는 답변이 왔다. 그 하천 어디에 심자는 의견이라기 보다는 시민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수원시정의 따스함과 세밀함을 자랑할 기회를 만들자는 제안이었는데 단순건의로 평가한 것이 아쉽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의견을 보내면서 양평군 용문사의 은행나무 사례를 들었다. 대략 1,100년전에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 오산시 세마동29통 통장, 노인회 총무, 노인회장 - 바리스타, 제과제빵기술로 노인복지 향상에 기여 - (전)구리시부시장, (전)경제과학진흥원경영본부장 - 경기도 팔당본부장 시절 김문수 지사 신임 두터워 [뉴스폼=이강석 기자] 경기도청에서 존경받는 한 사람으로 평가받은 공무원이 퇴직 후 지역사회에서 알찬 활동을 통해 인생 2모작을 3모작으로 성장시키고 있어서 주변의 칭송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경기도청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뒤 구리부시장으로 공직을 마친 김태한(69) 전 부시장이 그 주인공. 그는 현재 오산시 세마동 29통 통장이고 바리스타, 제과제빵사, 그리고 노인회장을 맡고 있으며 경제과학진흥원 경영관리본부장, 구리시부시장을 역임했다. 1975년 공직사회에 첫 발을 들인 후 보건,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 그는 경기도청에서 팔당본부장으로 일하면서 수도권 시민의 생명수를 관리하는 중책을 수행했다.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구제역으로 수천마리 가축을 땅에 묻어야 하는 상황에서 회의때마다 김태한 본부장이 있어야 회의를 시작할 만큼 신임이 두터웠고 그래서 소관사항이 아닌 분야까지 열정으로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이 같은 공적으로 그는 구리부시장에 발탁됐고
약간의 통증이 있지만 뼈나 연골을 다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윗몸일으키기를 108번 빠르게 진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윗몸일으키기를 할 때마다 허리에 오는 통증은 아마도 근육이 놀랐기 때문이고 척추나 다른 부분에는 이상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찾아오는 중간정도의 통증은 근육통으로 느껴집니다. 드드득 짐질방 바닥과 온탕을 이루는 경계의 모서리에 긁힌 부위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말하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아주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습니다. 발바닥이 미끄러지면서 몸이 붕 떠올랐다가 수직으로 추락하였다면 척추의 한 두개 부분이 심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그 경우라면 척수속의 신경계에까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해 집니다. 허리가 아프거나 마비되는 정황도 상상해 봅니다. 그래서 천만다행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동두천시 동장으로 근무중에 수해를 만났고 그 당시에 생연4동의 노랑집에 살고 있었던 김**씨의 경우 건장한 청년으로 직장야유회에서 비탈길을 내달리다가 넘어지면서 몸이 붕~ 떠올랐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돌맹이 위에 척추가 충격을 받으면서 하반신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수해가 나서 신천변이 물에 차올랐던 새벽 3시경에 그를
2년간 근무한 오산시와의 인연속에 당시 시장으로 일하신 곽상욱 국회의원 예비후보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습니다. 공무원일 때는 근처에도 못가는 정치인의 활동이지만 이제는 야인이 되어서 편안하게 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교통카드를 받았으므로 수원시청역에서 승차하여 수원역에서 환승하고 서동탄역으로 가는 기차이므로 세류역에서 다시 바꿔타고 오산역에 하차했습니다. 추억이 서린 오산역에서 걸어서 오색전통시장을 지나 행사장에 도착했습니다. 환승하고 기다리고 걷고하다보니 행사시각 2시를 지났고 도착하니 참석자 소개순서입니다. 지역유지로 활약하시는 전 시장, 전 국회의원의 경력을 가지신 분이 인사말을 하시는데 현직 국회의원이 오시지 않았다는 언급과 경쟁하는 도의원출신의 예비후보가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씀으로 정치적 중립을 이어가십니다. 사실 출판기념회는 정치활동이지만 선관위에서는 절대로 정치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규율한다 합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는 홍길동은 '호부호형을 허나노라'는 대감마님, 아버지의 말씀에도 마지막으로 '대감마님 호부호형을 허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는 취지의 인사를 하고 새벽길을 떠나서 전국구 홍길동이 됩니다. 아버지
주광덕 시장님께 드립니다! 저는 2016#2017년에 남양주시청에서 이석우 시장님을 모시고 공무원으로 근무한 이강석입니다. 공무원으로 근무한 2016년에 동안 영화 덕혜옹주가 개봉되었는데, 간부들과 영화를 관람하고 소감문을 모아서 영화사 허진호 감독 등 관계자, 출연배우 손예진님, 라미란님, 박해일님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당시 공보과 용석만 과장의 노력으로 감독과 영화투자자가 시청을 방문하여 이석우 시장님께 감사인사를 했습니다. 당시 560만 관객은 큰 성과이고 남양주시 공무원이 기여한 바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청을 방문한 영화사 일행을 덕혜옹주 묘역으로 안내하여 인사를 드렸습니다. 영화사 관계자가 모역을 방문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에 대한 홍보효과가 있었으며 언론홍보를 통해 알려지면서 덕혜옹주 묘역을 단체관람이 늘었습니다. 이에 구리시 소재 왕릉관리사무소에서 27분 조선왕의 왕릉사진을 전시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네스코유산 등록자료를 공개해 주었습니다. 시민은 물론 인근의 학생들이 관람했습니다.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나비효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공무원들의 적극행정으로 남양주시의 홍유릉이 알려지고 덕혜옹주의 스토리가 전파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