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우리사회에 널리 퍼진 고스톱은 운칠기삼이라고 했습니다. 실력은 30%정도이고 그날의 운이 70%를 좌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실제로 밤 늦은시각까지 아내의 기가를 독촉하는 전화를 받으면서 동료들과 어울린 젊은 날의 추억을 되집어보면 고스톱이 잘되는 날이 더러 있었지만 마이너스 기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초년시절 막판에 5광이 나서 저녁내내 잃은 놀음밑천을 다 회수할 기회가 왔지만 이내 판이 깨져서 원금을 회수할 기회를 놓친 경우도 두 번 이상 있었습니다. 지금도 75세에 이른 당시의 선배들을 만나면 막내가 돈을 많이 잃은 것은 알았지만 자신도 풍족하지는 않아서 판을 마감한 것 같다고 인정을 해 주십니다. 하지만 당시의 서글품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을 채우고 있습니다. 혹시 인생도 운칠기삼으로 사는 것인가 생각해 봅니다. 정치권을 보면 5번 도전하여 변호사가 된 분이 있고 젊은 날에 한방, 대학교 3학년 시절에 사법고시에 패스를 한 분도 있습니다. 역시 여러번 도전한 경우나 한 번에 합격한 경우나 운칠기삼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기관의 직원을 조선시대 음서제도처럼 채용했다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한국사 강사중에 유
한글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은 현대에 수필을 쓰거나 소설을 창작하는 분들에게는 획기적인 일이라 할 것입니다. 과거 천체물리학자들이 지수로그가 자신의 생애에 활용되었다면 우주에 대한 더 큰 연구성과를 올렸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우주속 행성간의 거리나 우주의 면적을 이야기할 때에 1억광년이라 말하거나 거리를 km로 표현하는 경우 1억km는 100,000,000으로 표기해야 했으므로 계산도 어렵고 연구활동 중에 동그라미(0)를 그리는데 많은 시간을 虛費(허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은 ‘10의 제곱’(10×10= 100)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는 지수로그함수가 나온 후 천문학자들은 연구가 수월해졌다는 것입니다. 빛으로 8분이 걸리는 지구와 태양간의 거리는 150,000,000km이고 빛의 속도는 300,000km/sec입니다. 그래서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8분20초(500초)입니다. 우리가 저녁에 보는 태양, 아침에 만나는 일출 장면은 8분20초 時差(시차)가 있습니다. 이미 8분20초전에 떠오른 태양을 나중에 보았고 이미 저버린 태양에서 달려오는 빛을 500초 후에도 감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우주에서는 이
방안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고 있는데 베란다에서 물소리가 납니다. 아내는 한의원에 진료차 나갔는데 세탁기를 작동시켜서 헹굼을 위한 물소리인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물소리가 일정하게 나무로 누수를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가보니 저쪽 벽면 아래에서 물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마치 산중에서 작은 폭포를 만났을 때 들은 그 정도의 물소리입니다. 잡동사니를 정리하고 살펴보니 바닥으로 물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아내가 집을 나가기 전에 오전내내 세탁기 배관이 얼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녹였다고 하던데 이제야 녹아내리면서 부품이 老朽(노후)되어 물이 새는 것으로 나름 진단했습니다. 몇가지 집히는 대로 장비를 챙겨서 수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오래 살아온 집이어서 무엇에 쓰는 물건인각 몰라도 살림살이가 빼곡합니다. 어렵게 장비를 들이대 보았으니 고장 상황이 부품을 교체하여야 하는 정도로 보였습니다. 곧바로 아파트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상황을 말하니 10분만에 전문가가 오셔서 외부업체에 공사를 하도록 하라는 진단을 하십니다. 현관에 나가서 수도권을 틀고 물이 새는 것을 보시고 내린 처방입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번호를 확인하여 2개업체 전화번호를 주십니
[골판지 골판지] # 이강석 # 채석강 검은 돌판처럼 차곡차곡 올려 쌓고는 골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삐그덕빠그덕 말똥구리가 소똥을 굴리듯 밀고가는 손수레 구르마 # 새벽 이슬 맞은 골판지 태양의 열기에 말리고 다시 그위에 황혼이슬 내리도록 인생 70년의 연륜처럼 켜켜이 쌓여 몸부림치는 골판지 # 유년의 골판지는 찌그러지고 중년의 골판지는 눌러붙고 노년의 골파지 텅텅 비어 찬바람 술술 # 골판지 한장을 눌러 10원짜리 종이돈 만들고 골판지 열장을 녹여서 100원짜리 동전 구워내고 새벽 이슬부터 저녁 노을까지 한켜 두켜 모으고 쌓아서 몇천원 만들어 손아귀에 쥐고 # 인생처럼 텅빈 수레를 담 울대에 세우고 굽은 허리 더 굽히고 들어선 나의 방 나의 집 # 오늘밤 찬바람이 시리다 오늘밤 칼바람이 서럽다 남은 골판지로 벽을 막고 찢어진 골판지로 바닥을 깔고 # 아마도 내일새벽부터는 골판지 뜻는 소리 골판지 쌓이는 소리 골판지가 연주하는 우리 인생의 교향곡이 다시 시작될게다 # 내일 새벽에도 채석강의 파도가 평온의 바다를 열고 우리 삶의 영혼들은 골판지속 대롱을 타고 단단해진 발뒤금치를 지나 가슴 가득하게 기쁨을 채워주리 이런 생각으로 시의 키워드를 카톡에 적어두었더랍니
불가에서는 인연을 강조합니다. 오늘 아침 찬 바닥에 108배를 올리는 인연은 아주 오래전에 예정된 일이라는 것으로 봅니다. 이미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인생 중 2022년 12월 18일 아침 5시50분에 기상하여 6시에 불교방송을 보면서 부처님 앞에 절을 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동안 불교방송을 틀지 않고 스스로 배를 올렸습니다. 아마도 우리집 케이블방송에서 채널을 대폭 조정한 이후에 불교방송 채널을 찾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운명이 불교방송을 보게 됩니다. 5시50분에 기상하고 절방석을 차린 후에 보니 마침 일요일이고 뉴스도 길지 않고 큰 내용도 없을 것 같아서 불교방송을 찾아가게 됩니다. 채널을 여러번 바꾸고 돌려서 233번에서 불교방송을 만났습니다. 불교방송 채널을 108번이나 888번으로 하면 좋을 것인데 쌩뚱, 233번입니다. 그래서 불교방송의 108배를 따라가되 2배속으로 절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해낸 인연은 2+3+3=8입니다. 108배의 마지막 8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감하는 분이 적을 줄 생각하지만 불자의 마음은 작은 화두를 잡고 그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갖는다고 봅니다. 그래야 할 것입니
인생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과정이라는 말을 합니다. 인생이 걸어온 길은 그 선택의 결과로 사거리에서 직진하기도 하고 삼거리에서 우회전 또는 좌회전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다시 넓은 길을 나와서 좁은 길, 비포장길, 자갈길을 서행하다가 또다시 넓은 길을 만나서 창문을 열고 시원하게 질주하기도 합니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신명나게 달린 구간도 있고 덜덜거리며 불편한 먼짓길을 불편하게 운행한 시절도 있습니다. 대구에서 젊은시절을 보낸 지인이 최근에 고향을 다녀왔는데 40년전보다 도로가 넓어지고 구간도 늘어나서 첨단의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목적지를 가기위해 운전을 하니 이처럼 다양한 경로가 생겨났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인생도 참으로 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한두번 실수로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치거나 조금 일찍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갑자기 남은 거리가 80km에서 120으로 늘어나는 순간에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만 잠시후에는 스스로 마음을 평온하게 잡아보기도 합니다. 그 이유와 핑계는 신의 뜻이라 가정합니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에 가는 길
아내는 경기도문화의 전당 홍보요원 격입니다. 직원은 아니고 인근에 살면서 자주 공연관람을 하다보니 전당의 직원들과 친해지고, 그래서 어느 해부터 관객을 채우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몇 년전에는 담당 본부장이 관객 유치에 수고한다고 명함을 새겨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아파트에 사는 분들을 관객으로 참여시켰는데 점차 인맥이 늘어나면서 초등학교 선생님, 중고 교사, 다른 아파트 주민도 참여합니다. 일주일에 두 번정도 문화의 전당에 가서 처음오는 분들을 안내하여 입장시켜줍니다. 초보자는 문화의 전당은 반드시 돈을 내야 하는 줄 아십니다만 잘 알아보면 수준높은 무료공연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도지사, 문광국장이 방문하시는 날에는 공연 담당자들은 관객이 적을까 해서 勞心焦思(노심초사)입니다. 여하튼 행사에는 참석 시민이 많아야 하는 것처럼 문화의 전당에서도 관객이 객석의 의자를 채우고 복도에 늘어서 앉아주기를 바랍니다. 공무원에게 있어서 시장님 참석하시는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시민이 다수 참여하고 시의원이 거의 다 오시는 만석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장님, 과장님은 시장님 참석 행사가 있으면 일찌감치 현장에 가서 시민들의 동태를 살피는 것입니다. ‘문화의 전
1996년 9월1 1일 우리 가족 앞에 나타난 승용차 번호는 경기 30 라6085입니다. 크레도스(기아) 1996년식입니다. 대형은 아니고 중형으로서는 좀 크다할 1998cc 차량으로 오토메틱 기어 전륜 구동식입니다. 처음에는 경차를 마련하려 했는데 당시 6살이던 아들 현재가 우리도 외삼촌과 같은 차를 사자고 졸라서 크레도스 중형으로 결정했습니다. 지금도 당시의 상황을 가족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6년은 경기도인재개발원에서 사무관 승진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4월 3일에 교재연구담당관실에 배속되어 근무 중인데 승진교육 대상자가 넘쳐나서 교육대상자 선발 기준을 3월말로 정하는 바람에 6개월을 더 기다려 11월23일에 교육 마치고 사무관 승진 발령을 받았습니다. 6085 크레도스를 구입과 등록, 제세 납부 등에 대략 2천만원 정도를 지출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2월13일에 동두천시 생연4동장이 되면서 만 2년 동안 크레도스는 매주 토요일에 수원으로 왔다가 월요일 새벽에 98km를 달려 동두천시청에 도착하여 방제환 시장님 주재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동두천시에 근무하던 1998년에 큰 수해가 발생했습니다. 그 날은 휴가 3일차로서 내일은 어디를 갈까
필요하면 찾게 됩니다. 화성군 팔탄면사무소에서 회계업무를 보다가 경기도농민교육원으로 전근되어 또다시 서무회계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이런저런 구매가 있고 강사님 수당을 드리기 위해서는 경기은행에서 공금수표를 현금으로 찾아와야 합니다. 철물점도 가야하고 약국에서 구매할 것도 있습니다. 식품은 매일매일 배달차가 와서 신선한 야채와 곡식, 육류, 생선 등을 가져옵니다. 매일 오전에 한번 시장과 은행에 가야하고 가끔은 경기도청 총무과 회계과 지방과에 들러야 하는데 차량은 4대, 운전하시는 분은 3명으로서 통근버스 운전자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임무를 받지 않았으니 매번 부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극적인 자세를 가진 공무원은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지만 서무 회계와 달리 운전업무는 늘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니 우리 공직의 업무구조상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는 참 어렵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거나 오히려 과거보다 현재에는 불필요한 책임소재로 인해 조직의 창의력을 발휘하는데 걸림돌이 더 많아 보입니다. 교관들은 운전면허가 있으므로 급할때 부탁을 하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3년 6개월을 근무한 사업소 생활 내내 가능
핸드폰 없던 시절에 사무실은 전화벨소리로 일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전화가 오고 전화를 통화하고 그런 소란스러움으로 행정을 무르익어갔습니다. 과장님(4급)이 출장이거나 부재중이면 차석(6급)들은 일상의 업무를 했습니다. 그런데 과장님이 재실중이시면 시군청에 전화를 해서 업무독촉을 했습니다. 당시, 1985년경 경기도청의 모든과에서는 과장님 출장일을 無頭日(무두일)이라 했습니다. 작은 5촉짜리 불을 켜는 무드등이 아니라 머리가 없는 날이니, 즉 과장님이 출타중이시니 신나게 놀 수 있는 날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무관 계장들은 한잔하러 가고 6급 차석들도 자신들만의 대화를 위해 족발집으로 갔습니다. 그리되면 7급이하들은 쩜모임이라면서 좋아하는 식당에서 한 잔 하면서 계장, 과장을 식탁에 올려 안주로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과장이 在室(재실)중이면 6급들은 자신의 5급 승진권을 쥐고 있는 과장님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시군을 통할하는 업무를 열심히 추진한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전화를 통화했습니다. 큰 소리로 시군 공무원을 야단치는 차석이 일 잘하는 직원으로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과장님이 6급 차석 4명의 점수 순서를 매겨서 국장에게 넘기면 4개국을 총괄하시는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