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아는 혹은 한번쯤 들어본 사람들은 노래 제목을 ‘교복을 벗고’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래 제목을 다시 한번 알려주려는 건 아니다. 그만큼 노래 인트로의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를 소개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노래말처럼 90년대 학창 시절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은 교복을 벗으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대학을 가고, 회사에 취업하면 쳇바퀴처럼 돌던 학창 시절은 없을 거라고. 대학을 가면 연애도 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또 졸업을 해서 취업을 하면 결혼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 토끼같은 아이와 함께 내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건 당연한 것이라고.
그 시절 학창시절을 보냈던 많은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연한 꿈은 ‘허무맹랑’이었다는 걸 깨닫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내가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때는 지금보다도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물리적 시간이야 똑같겠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기다림을 즐길 줄 알았다. 아니 기다려야 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뭐든 순식간에 찾아내고 처리할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때는 직접 통화할 수 없어서 무선호출기인 ‘삐삐’에 음성 메시지를 남겨야 했고, 상대방이 확인해서 연락을 주기 전까지는 무조건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 기다림을 누군가는 ‘낭만’이라고 기억한다. 기다림과 낭만이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만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여유’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현 시대에 꿈과 낭만이 없지는 않겠지만, 꿈과 낭만을 찾기는 과거에 비해 어려워진 것 같다. 아마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며 생활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빨라지면서 한 번에 접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정보가 많으면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점도 동시에 존재한다.
특히 연예인과 셀럽들의 일상생활이 ‘뉴스’가 돼 버리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가끔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다. 며칠 전 한 연예인이 수백억원의 집을 샀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 집이 과거에 누가 살았고 지금은 얼마나 가격이 올랐는지는 덤으로 소개됐다. 축하할 일이지 않은가? 열심히 돈을 벌어서 집을 샀는데. 그런데 그 뉴스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다른 레벨의 사람의 선택을 마냥 부러워하거나 나와 다른 삶에 자괴감을 느껴야 하는건 뉴스를 접한 사람의 선택이겠지만, 아니러니하게도 요즈음에도 돈이 없어서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도 있는데 우리들의 삶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누구나 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삶은 정답이 없다. 다만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삶 속에서 여유를 찾았으면 좋겠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기억하자.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웃을 수 있으니까.
당신의 미소가 보고 싶은 '거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