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4일에 문화공보담당관실에 발령을 받았습니다. 공보계 보도계 문화재계 문화계 등 네 부서가 있는데 각각의 업무에 열중하는 가운데 보도계장님과 차석은 기자실을 사무실처럼 쓰시고 우리가 근무하는 사무실의 자리에 앉으시는 시간은 아침 점심 합쳐서 30분 정도 입니다. 공람문서에 싸인 하시고 회계문서에 결재하시는 시간 이외에는 늘 기자실입니다. 기자실에 사신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입니다.
젊은 직원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면 칼과 자를 전쟁터의 총칼처럼 꺼내들고 '경기도 記事(기사)'를 오리기 시작합니다. 스포츠면에 난 '競技(경기)'라는 한자만 보아도 깜짝 놀라 驚氣(경기)를 하던 시절입니다. 중앙지에 난 명함 크기의 기사도 잘라서 복사지에 여러 장을 첨부한 후 기사보다 큰 신문명 고무인을 찍고 (9)면이라고 적습니다.
지방지는 면톱의 경우 복사지를 넘게 차지하므로 밖으로 삐져 나가는 제목의 일부를 접어야 합니다. 그래서 스크랩하기 편하게 박스 처리한 기사가 참 좋습니다. 사설 2건이 행정 관련이면 편리합니다. 데스크 컬럼도 스크랩에 적합합니다. 공무원 간부들의 기고문도 환영입니다.
이런 기사가 사진과 함께 나는 과정은 쉽거나 재미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스크랩을 마치면 어제 현장에 다녀온 사진을 받습니다. 같은 행사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임사빈 도지사님이 촬영된 두 장의 사진과 그 행사와 내용을 설명하는 메모를 들고 현관으로 갑니다.
당시에는 공무원 자가용이 적어서 아침 8시 전후에 택시를 타고 오는 직원이 많으므로 쉽게 차를 타고 경인일보, 경기일보로 향합니다. 신문사 인근에서는 택시잡기가 어려웠으므로 신문사 인근에 택시를 대기시키고 헐레벌떡 뛰어갑니다. 편집국은 2층에 있습니다.
어느 기관 조직이나 브레인은 2층에 있습니다. 시장군수 도지사 등 기관장 방이 2층에 있는 이유는 집단민원이 오면 1차 막을 수 있고 뚫리면 창문으로 피신할 수 있다는 농담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임사빈 도지사께서 어느 군수님이 고추 흉년에 화난 농민들에게 구금 되었들 때 "공무원 어느 한 명이라도 2층 창을 열고 들어가 구해내야 했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신바 있습니다.
나중에 K대 학생들이 도지사실에 난입하였고 이를 윤세달 부지사님이 강력히 막아낸 이후 울산시장으로 승진하시고 나중에는 갈등 해결사로 더 큰 활약을 하신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도지사실 옆 상황실을 통해 일단 후퇴한 후 난입 학생들을 붙잡아 경찰에 인계하였지요.
이야기가 잠시 돌아갔습니다만, 신문사 2층에 올라가면 정치부가 있고 우리 출입 기자가 출근하였으면 직접 드리기도 하고 빈 책상위에 자료를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시 편집국을 내려와 다음 신문사로 대기한 택시를 타고 갑니다. 도착하면 택시비에 대기시간을 따져서 추가비용을 지불하고 내려 2층 편집국으로 향합니다.
친밀해진 출입 기자님은 농담을 섞은 표정으로 "경인일보 먼저 갔지요?"라고 물으며 수고했다는 표현을 합니다. 경기일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하루는 경인일보를 먼저가고 다음날에는 경기일보를 향해 달렸습니다.
이때부터 미미하게 느낀 언론사간의 경쟁심을 시간이 흐르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고 선의의 경쟁을 滿天下 (만천하)에 알린 '지방과장 테이블 유리 파손사건'으로 모든 공무원이 언론사간에 경쟁이 있음을 파악하게 됩니다.
[언론사간 경쟁에 대해 - S차장과 G기자]
당시 I신문사 S기자는 지방과에서 민원시책 관련 달라지는 내용을 받아 목요일자 1판을 짰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사를 취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자료를 준비한 H계장님은 G신문사 G기자를 만나 같은 자료를 건네며 기사로 써 달라 부탁을 합니다.
G기자는 자료를 받아 다음날인 수요일에 신문 짝 만하게 기사를 올렸습니다. 목요일판에 기사를 내도록 준비한 최초 취재 S기자는 황당함을 넘어 기가 막혔습니다. 분명히 취재를 해서 기사를 쓰기로 한 것인데 취재원 측에서 다른 사에 자료를 넘기고 그것도 자사보다 하루 먼저 기사를 올린 것입니다.
S기자는 곧바로 H계장에게 찾아가서 항의를 했습니다. 나에게 제공한 자료를 다른 신문사 기자에게 또다시 주시면 아니 될 일이지요. 하지만 H계장은 당연한 듯 말합니다. S기자는 내일 내면되고 G기자의 신문에는 오늘 나온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입니까?
당시에 공무원 간부들조차 지방 신문사 기자들이 기사취재와 보도에서 경쟁을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입니다. 독점 취재의 묘미를 알지 못하고 낙종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였습니다. 오늘 기사가 나도 되고 다른 신문사에서는 내일 보도하면 된다는 행정적 판단이 앞서던 시절입니다.
당시 일부 게으른 공무원들은 민원서류 처리기한 일주일이면 7일이 되는 날 오후에 결재를 받아 발송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기자들은 다른 신문사는 모르는 사건이나 시책을 우리사만 보도하여야 한다는 독점, 특종의 아찔함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S기자는 과장실에 가서 2차 항의를 하다가 결국에 티-테이블 유리를 주먹으로 내리 쳤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지방과장은 일단 '사과'를 합니다. 앞으로 보도자료를 독점으로 제공하는 경우 보도되는 날까지 함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지방과장은 사과를 하였으니 깨진 유리 값을 내라 합니다. S기자는 즉석에서 유리 값을 지불합니다.
경기도청에서 지방언론사 기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모든 언론인들이 특종과 낙종의 외나무다리에서 오늘도 줄넘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널리 설파하신 이 사건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경기도청 대변인실 복도에서 회자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사무실에 돌아와 오전시간에 새로운 보도자료를 모으고 기사형태로 작성하고 내일아침 9시에 배포할 준비를 하면서 오후 2시를 기다립니다. 당시에는 석간신문이 많았기에 저녁 스크랩을 만들었는데 신문 오는 시간차가 있으므로 1-2명이 처리하였습니다. 아침에 택시비를 들여서 전달한 사진과 기사가 저녁신문 어느 면에 얼마의 크기로 보도 되었는가 궁금하겠지요. 늘 섭섭하지 않게 좋은 자리 3면에 3-5단 기사로 자리합니다. 늘 보람이 가득했습니다.
1988년 당시의 신문사의 차장님은 사장이시고 다른 많은 분들은 근무하던 언론사를 떠나 새로운 다른 언론사에서 기자로서 노익장을 과시하시며 일하십니다. 공무원 사회에서 언론을 어려워하지만 어려움 속에서 귀염 받으며 근무했습니다. 공직의 순간순간에 격려해 주신 150명쯤 되는 언론인들을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지금도 경기도청 시군청을 출입하시는 언론인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메일, 카톡, 인터넷이 없었던 오프라인 종이신문의 콩기름 냄새에 익숙하였던 스크랩 시대인 1990년을 지나 2011년 스크랩 프로그램이 보급되어 마우스로 찍으면 기사와 사진이 종이위에 내려오는 요즘의 스크랩을 보면서 당시에 신문 만들기에 열정적이신 언론인과 당시의 공보부서 공무원들을 추억해 봅니다.
[과하게 보도되는 사건에 대하여]
1970년대 뉴스의 중심은 '연탄가스 중독에 의한 일가족 사망'이었습니다. 더러는 연탄가스를 방안에 피워놓고 일가족아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는데 최근에는 차량 안에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하는 사건이 방송에 신문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번개탄을 판매하는 매장의 진열대를 입구쪽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구석진 곳의 번개탄은 쉽게 집어 들지만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매장입구의 번개탄은 눈치를 보면서 집어야 하므로 자살률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1988년경 중견 언론인에게 물었습니다. 연탄가스로 인한 사망사고가 자주 일어나는데 그 사고를 포함하여 교통사고 등 이른바 '사건사고'를 5단 6단 기사로 보도해야 하는 것인가요? 신문에서 이처름 큰 활자로 보도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잠시 망설이던 기자님은 국가와 지자체 등 이른바 국가기능이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를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다른 국민들에게 연탄가스 위험성을 알리는 임무를 언론이 수행하는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통사고를 크게 보도하는 것도 과속하거나 졸음운전,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임무가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 언론인이 며칠 전에 언론인 워크숍을 다녀오셨나 봅니다. 학문적이고 행정적인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에도 언론은 사건사고를 크게 보도하는데 전력하고 있습니다. 도민 모두에게 필요한 정보를 보도자료로 제공하여도 기사로 활용하지 않으면서 사건사고는 크게 나가는 것입니다. 언론이 해야 할 일중에 사건사고를 크게 알리는 것도 있다 하겠지만 다수의 국민이 알아야 하고 도움이 되는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보도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공정보도와 신속하고 정확한 알림이 중요하다 해도 살인사건의 경우 구체적인 방법까지 화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 잘하는 보도일까요. 이른바 모방범죄를 예방하여야 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유사하면서 애매한 경우는 화재사고의 경우 입니다. 화재사고의 경우 소방서 추산 2천만원이라 보도하는데 비 전문가가 보아도 저정도 화재이면 수억원의 재산이 연기로 날아간 것인데요. 그래서 소방관에게 물었습니다. 소방서 추산 피해액의 기준은 단순하게 건물의 면적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비단이 한가득 들어있는 10평까지 창고에 불이 나도 소방서 추산 피해액은 그 창고의 건축연도가 최근인가 오래전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세무부서의 과세시가표준액이 사고산정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창고안에 사무실에 들어있던 제품이나 회사의 중요 서류에 대해 소방관이 평가하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보험회사가 따로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비단이 들어있었다는 근거가 있고 보험 약관에 창고안의 제품까지 보상한다는 약관이 있으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창고 속 물품까지 보험금을 받으려면 매달 내야하는 보험료가 많이 아주 높아질 것 입니다.
화재사건의 경우에는 소방서추산 자료로만 보도하지 말고 언론사에서 나름의 평가 전문가를 채용하여 피해정도와 금액을 보도하도록 하여 모든 국민들이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것입니다. 방송에서 경찰은 사건의 원인을 조사 중이라고 보도합니다만 그 결과를 다시 알려주지는 않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건물주와 보험회사의 관심사인 것입니다.
[보도자료 작성법]
공무원들이 힘들어 하는 일중 하나가 보도(報道) 자료 작성입니다. 행사를 위한 연설문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정답이 없어서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쉽게 생각하면 이처럼 쉬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도 자료는 정말로 자료일 뿐 직접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요, 연설문(演說文)도 이야기할 소재를 나열하는 것이지 직접 청중 앞에서 본인이 스피치하는 것 아니니 말입니다.
그래서 주부가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듯이 보도 자료는 충분한 자료를 음식 재료처럼 준비하면 될 일이요, 연설자료 역시 그 행사에 쓰임직한 어휘와 단어 그리고 키워드를 제공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연설하시는 분의 평소 취향이나 스피치 스타일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음식을 준비할 때 그분의 식성을 알아두면 편리한 것과 같이 연설하시는 분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연설문과 보도자료를 위한 장보기를 할 때 계절적 상황을 추가하여야 합니다. 날씨가 추운지, 눈이와서 쌓여있는지, 신록이 우거진 여름인지, 수확의 계절 가을에 연설을 하시는가 등을 고려하면 좋습니다.
연설이나 요리나 기사나 모두에게 임펙트가 한 두개 있어야 한다. 오늘 연설에서 강조할 단어, 오늘의 요리 차림에서의 대표메뉴, 오늘 신문기사의 핵심 제목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코스 요리에도 메인디쉬(Main Dish)있듯이 기사의 중점방향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보도자료의 핵심 포인트가 제시되어야 합니다.
청중들은 일상의 어제와 똑 같은 반복을 거부합니다. 식객(食客)은 늘 새로운 맛을 갈구합니다. 독자들은 어제와는 조금 다른 기사를 기대하면서 신문을 받아 펼쳐든다는 점을 생각하면 보도자료의 작성방향이 가늠될 것이고 기사제목이 이쯤으로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있습니다.
보도 자료는 간명(簡明)하여야 합니다. 서술적인 보도 자료를 제공하면서 첨부물로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공급자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보도 자료는 행정적으로 보기에는 잘된 듯 보이나 다양한 기사로 발전하지 못합니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기자들의 멋지고 전문가적인 필력(筆力)까지 구속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市場(시장)을 보는 이가 구체적인 메뉴를 정하는 것보다는 요리사의 판단에 맡기고 재료를 준비해 주어야 식탁에 올려 질 요리에 대한 기대치가 더 높아질 것입니다. 같은 키워드를 가지고도 연설자는 현장 분위기에 맞추어 좋은 연설을 설파할 수도 있고 전혀 맞지 않는 동문서답, 연목구어(緣木求魚)식 연설에 머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제 간명해졌습니다. 보도자료 준비에 고민하지 마시라. 가지고 있는 식재료를, 보도 자료를, 연설하실 내용을 큰 틀로 제공하고 나서 기다려 보시라. 당신이 정하고 결정한 것 이상으로 좋은 요리, 멋진 연설, 임펙트가 넘치는 신문기사가 나오고 안성맞춤 방송 멘트가 TV와 라디오 전파를 탈 것이다.
이제 확실한 것은 머리가 빠른 공보실 직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리가 부지런하여 이리저리 자료를 많이 모으는 발 빠른 홍보실 공무원(公務員)들을 노트북을 켠 기자(記者)들이 기자실과 편집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이신문과 인터넷 신문]
전에는 토요일자 지방신문이 나왔으므로 취재기자들은 금요일 오후까지 취재를 하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이후 행정부와 기업들이 토요일을 쉬게 되었지만 수년간은 신문 토요일 발행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4개 신문이 금요일까지만 발행하였고 1개사는 수개월 넘게 금요일 발행을 고수하다가 결국 현재처럼 월 화 수 목 금 발행으로 바뀌었습니다. 언론사주는 광고수입을 위해 토요일 발행을 강행한 것으로 보이고 취재기자들은 타사와의 형평성을 주장했을 것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2일간 지방지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부분은 중앙지 토요일자와 인터넷신문에 메웠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모바일을 통한 신문검색이 늘어나면서 종이신문의 설 자리가 줄어드는 듯했습니다만 독자들 중에는 종이신문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기에 매일아침 종이신문은 깔끔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종이신문은 끝까지 읽게 되고 활자 속에 숨어있는 이른바 행간의 의미를 읽기위해 독자들은 더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터넷기사는 제목위주, 중간에 끼어드는 광고 배너 등으로 인해 기사 전체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시로 업데이트 된다는 생각에 종이신문 만큼의 집중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른바 인터넷이 활성화될 즈음에 종이신문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했고 컴퓨터가 공무원 1인당 1대씩 보급되면서 사무실에서 종이는 사라질 것이라 했지만 아직도 사무실에 서류함은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일단 작성된 내용을 종이에 출력하여 최종 확인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종이에 인쇄된 글씨를 읽는 맛은 계속될 것입니다. 액정화면으로 흘러가는 글은 그림처럼 바라보는 일은 무게감이 적고 일시적인 시각 효과이기에 역시 종이위에 자리한 검은색 글씨가 우리에게 전하는 확실한 메시지를 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이신문은 보다 긴장해야 합니다. 읽는 신문에서 보는 신문의 시대로 전환되어가는 시점에서 보다 더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림 같은 글씨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스크랩하고 싶은 기사로 편집해야 합니다. 액정화면이 전하지 못하는 인쇄 잉크의 향기를 새롭게 개발하는 노력도 필요한 것입니다.
[언론인의 취재방법]
언론에서 결론을 내리고서 취재를 시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방향을 정하고 거기에 맞추는 상황 위주로만 자료를 모으는 것은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취재원의 반론권을 대략 마감하는 것도 정의롭지 못합니다.
전후사정을 파악하지 않고 기작 본 것만으로 예단하는 것은 혹시 큰 착오를 일으킬 수 있으며 당사자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을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가게를 파는 사람 중에는 가게를 새롭게 하려고 오는 이가 가게 구경을 오는 시간에 맞춰서 일가친척을 불러모아 물건을 사게 하고 차를 마시게 하여 손님이 많은 것으로 보이도록 한다고 합니다. 가게의 경우의 반대 상황으로 혹시 언론의 취재방향에 맞도록 행정 시책 상 인적이 드문 새벽이나 점심 후의 시간을 정해 취재하고 100명 목표에 20명이 다녀갔을 뿐이라고 기사를 쓰면 아니 될 것입니다.
취재상황에서 당사자는 담백한 답변이 필요합니다. 역시나 예상해서 대답하는 것은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취재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 입니다. 객관적인 근거자료를 확보하였을 것이고 사진도 있을 수 있으며 관계자들의 증언을 확보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기사내용 중 시민 김모씨(45세)는 김씨인지 실제 인물인지 확인이 어렵습니다.
취재기자의 생각과 판단을 시민 김모씨의 주장으로 기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시민들 다수가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언론에도 갑이 있으니 언론인으로서는 그 갑의 칼을 쓰는 일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는 마치 공무원이 그 업무와 관련하여 독점을 하고 있기에 청렴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민원인에게 친절해야 하는 공무원처럼 언론인은 취재원에게 담담하게 다가서야 합니다. 예단하고 마음속으로 기사제목까지 결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는 취재를 하면 아니 될 것입니다.
취재과정에서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언어구사에 대해서는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언론인으로서 취재처에서 시민, 주민을 대상으로 적정하게 취재 했나 반성해야 합니다. 취재하면 하는 것이고 안하면 마음대로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새벽 1시까지 기사를 교정하고 사진을 점검하고 다시 다음 날 아침에 오늘의 취재계획을 구상하느라 스트레스가 축적되어 암 환자가 많다는 모 신문사 언론인 질병통계에 동참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냥 멋지게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말들을 던지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취재에 응하는 공무원도 정직하고 확실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기사가 나가지 않는 것이 목적도 아닙니다. 취재 과정에서의 갑론을박이 있는 것이고 기사에서도 이쪽의 주장과 저편의 인식이 경쟁하는 것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추정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확인된 내용이 기사로 올라가야 합니다.
동일한 내용에 대한 판단과 견해가 극명한 것이 일부 언론의 기사입니다. 달라도 이렇게 크게 다른 것입니다. 웃는 이의 사진이 찡그린 모습으로 올라갈 수 있고 우는 중에도 웃는 표정이 순간 포착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회적 公器(공기=공적기구), 부패를 막아주는 소금, 미래를 향한 木鐸(목탁)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언론이 그 기능을 다 하도록 모든 이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론인과 공무원의 상반된 입장]
언론인과 식사를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과거사를 이야기 하고 언론인과 힘들게 지냈던 공직 상황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언론의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도 받아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만 제 경우는 일단 지난날 공직 중 언론인과 연결된 업무를 한 기간이 새로운 평가를 받습니다.
그래서 단골 멘트는 공무원이 언론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언론을 활용하는 역량을 키워야 하고 언론인도 어느 정도는 공무원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공무원에게 "복지부동, 복지안동"이라고 합니다만 공직 구조상 일단 주변의 정황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급하게 결정하고 조급하게 추진하면 그 시책은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기획을 바탕으로 하되 주변 부서의 입장, 언론의 방향 잡아주기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실 언론인은 비판적인 시각으로 행정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행정의 모든 속내를 파악하기에는 기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합니다.
기자는 이른바 '키워드'가 중요합니다. 행정이 어찌어찌 하겠다고 하고나서 용두사미가 되는 것을 비판하여야 합니다. 아예 일하지 않은 것은 비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모난 돌에 정 맞고 일하는 부서가 감사를 많이 받습니다. 일하지 않으면 감사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공무원들은 언론이 일하지 않는 부서를 비판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경우 비판의 키워드가 부족합니다. 법에서 그렇게 하도록 한일이지만 예산이 편성되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략 해도 될 부서의 어느 공무원은 적극적으로 일하고 그로 인해 비판 기사를 맞기도 합니다만 이는 적극 권장할 일이라고 봅니다. 열심히 일하고 언론의 비판도 받으면서 좋은 기사도 나오면 좋습니다. 언론이 늘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한번 비판하고 나서 행정이 비판을 수용하고 정책에 언론기사를 반영하면 이 또한 언론인의 보람인 것이고 그러니 다시 홍보기사를 쓰게 되는 것이 人之常情(인지 상정)입니다.
주향천리 인향만리라는 건배사가 있습니다만 언론인의 향기 또한 일만오천리를 갑니다. 늘 잘못만을 지적하여야 하는 숙명이 언론인의 팔자소관이라지만 언론인 중에는 공무원이 정말로 잘한 짓이 보이면 이를 기사로 써서 데스크에 넘기려 합니다. 데스크에서 다 받아주지 않으니 독자 앞에까지 기사가 오는데 힘든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오늘도 좋은 기사 쓰려 애쓰시는 일선기자를 위하여 건배!!!!!!
[언론인에게 있어서 선배란?]
잘 아시는 바이지만 언론사 기자들 사이에서 편집국장을 '국장'이라 부르거나 아예 '선배'라고 호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장님, 국장님, 차장님이라 하지 않고 선배라고 부른답니다. 그러니 편집국장에게 '국장님'이라고 호칭한다는 것은 선배로 모시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지도자가 있듯이 조직에는 리더가 있고 신문사에는 선배와 후배가 상존합니다. 그래서 조직은 개미굴처럼 보이지만 일개미, 헌병개미, 초병개미, 왕개미가 있듯이 신문사 안에도 국장, 부국장, 부장, 차장, 기자가 있고 취재기자와 편집기자, 사진기자가 있는 것입니다. 정치부, 경제부, 국제부, 사회부, 제2사회부가 있어서 본사와 지사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론사에서 수 십 년 일하면서 항상 선후배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가 어려울 것인데 늘 존경을 받으며 일하고 맺고 끊음조차 정확하여 어느 시점에서 또다른 사회로 나와 사막 같은 광야에서 눈보라, 모래바람을 맞고 있는 언론인이 있습니다. 현역에서 존경받았듯이 퇴임 이후에도 선배로 멋진 언론인으로 추앙받는 이유를 최근에 알았습니다.
95세 모친을 떠나보내는 심경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댓글이 그렇게 많이 매달린 페북을 본일이 없습니다. 상업광고에 전력적으로 낚시질 하려고 댓글과 좋아요를 매다는 경우는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혹시 누군가가 상사(喪事)를 알리는 경우에는 '좋아요'가 아니라 '삼가 명복을 빕니다'라는 멘트를 보너스로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갖는 바입니다. 이 선배의 상사에 가보니 또한 조문객의 분포도가 사회 전반입니다.
그래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니 이분 선배의 이 같은 성공적 사회생활의 힘의 원천은 바로 효라고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95세 어머니에게 과육을 숟가락으로 긁어서 입에 넣어 드리면서 마치 아버지가 3살 아들에게 하듯 하는 표정입니다. 이런 사진이 신문과 방송에 많이 보도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후배 기자들이 이 페이스북 사진을 보았다면 얼른 받아 내려서 본사에 송고하셔야 할 것입니다. 언론의 기능이 누군가를 비판하고 야단치고 불법부당한 일들을 고발하는 당연한 일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만 가끔은 反哺之孝 (반포지효)의 아름다운 모습을 또한 조명하고 밝혀서 어두운 사회의 일면에 더더욱 밝은 빛이 되어야 합니다.
언론의 선배를 넘어 사회의 선배가 되기에 충분한 선배이기에 그렇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노인은 많지만 원로가 없는 사회, 5급은 많은데 사무관은 귀한 조직, 기자는 많은데 선배가 없는 언론사가 아니라 모든 이가 원로가 되고 모든 이가 일꾼이 되며 모든 기자가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되는 그런 사회를 원하는 것입니다. 선배가 선배다운 그런 세상을 希願(희원)합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