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 2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언론사와 광고]

언급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언론사의 광고는 곧 생명과 같습니다. 신문사나 방송사가 광고 없이는 운영이 어렵습니다. 광고가 없다면 운영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공영방송 KBS는 시청료를 받아 운영한다고 하지만 경영수지에 맞게 인상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 보입니다.

 

신문사는 매일 같이 수 십 건의 광고를 실어야 하는데 광고주는 신문사 광고국에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광고가 잘되는 신문사 광고부장은 광고주를 피해 다니고 광고가 잘 안 되는 신문사 광고부장은 광고주를 따라 다닌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영업이 잘되니 광고를 싣는 것인지 영업실적을 올리기 위해 광고를 내는 것인지가 모호한가 봅니다. 광고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 광고가 얼마만큼 매출에 효과를 올렸는지를 평가하기는 참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언론사는 늘 자신의 독자와 시청자를 자랑하지만 광고주는 그만큼 인정하는 눈치가 아닌 듯 보입니다.

 

그래서 광고를 내는 광고주가 나서기 보다는 광고매체인 신문사가 광고에 앞장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신문사에 광고를 내면 효과가 높다고 주장하십니다만 그것을 증명할 방법은 충분하지 못해 보입니다. 더구나 앞서 말한 대로 광고효과가 그 신문사의 파워인지를 상호간에 증명할 방법이 적습니다.

 

1999년 이전에는 공고를 내는 것이 행정기관의 광고의 전부였습니다. 신문사별로 돌아가면서 공고를 내는데 그 금액이 그때그때 다르므로 福不福(복불복)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공고 순서를 바꿔보자는 작은 꾀를 동원하기도 하였지만 정직한 공무원이 여기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요즘에는 신문광고 이외에 방송에도 나갑니다. 여기에는 광고가 아니라 협찬이나 협력사업으로 광고가 나가는 줄 알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 광고도 있습니다. 이후에는 인터넷 광고가 나왔습니다. 배너를 올려주면 이를 크릭 하여 자사의 홈페이지로 네티즌을 끌어오는 방식입니다.

 

[기사와 가십]

1988년경 중앙 언론이나 지방언론의 기자들은 기사보다 가십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가십(gossip)은 "잡담(雜談), 한담(閑談)"이란 뜻입니다. 기사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행사와 시책을 알리는 것으로서 보통의 업무라 할 것이고 가십은 도정 전반이나 도지사와 시장군수 그리고 간부들의 동향보고라 할 것이기에 관선 시절에는 모든 공무원과 정보기관의 큰 관심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1988년 초에는 이른바 1도1사로서 경인일보가 독점하였고 그해 8월부터 10월까지 3개 지방지가 창간되니 경인일보 경기일보 기호일보 인천일보가 4파전으로 경쟁을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창간 초부터 가십을 활용하기는 어려운 일이고 기호일보와 인천일보는 인천에 본사를 두고 경기권에는 작은 지국 수준의 사무실에 3-4명이 근무 하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경인일보 가십이 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매주 간부회의가 09:00에 열리면 발 빠르게 30분 안에 원고지 1매 200자 이내의 핵심을 정리하여 전화로 부르면 오후 2시경 도지사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이 게재되는 것에 큰 보람을 삼았던 것이다. 독자들이나 공무원들은 그 기사가 기자의 취재에 의한 것으로 알겠지만 사실은 보도자료 담당자가 상황실 옆 기계실에 들어가 오디오만으로 청취한 후 그 자리에서 전화를 통해 제보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중앙지 중 가십을 잘 쓰는 신문은 OO신문 OO일보이고 가끔은 OO일보가 아주 강력한 가십을 날려서 온통 경기도청 공보실을 쑥과 대나무 밭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억나는 대목은 OO신문의 골프장 가십입니다.

 

즉 정부의 교통부에서 관장하던 골프장사업 승인을 경기도에 위임한 이후 도지사의 허가가 여기저기에 나가게 된다. 이미 교통부가 검토를 진행하다 내려 보낸 것이지만 언론은 도가 승인한 것으로 기사를 날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OO신문에서 도지사가 골프장 사업승인을 남발한다는 가십기사가 나가고 이어 만평에는 지구본 위에서 드라이버 샷을 날리니 골프공이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와서는 도지사 감투를 맞추고 그 감투가 땅에 떨어지는 그림이 보도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도청을 출입하는 대부분의 중앙지가 골프장 남발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냈고 마지막 OO일보의 역기사(데스크에서 기사를 보내라 해서 보내는) 송고를 잡고 실갱이를 하던 P사무관이 연말에 순직하는 사건에 이른 것입니다.

 

특히 일간지는 팩트에 중점을 두게 되고 전후좌우 배경과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 기사를 내는 터라 한 가지 사업에 수개월을 쓰며 일하는 공무원들을 곤혹스럽게 할 때가 많습니다. 2-3월에 기사를 쓰면서 실적이 30%라고 비판하기도 하고 11월 기사에서 실적이 80%이니 준수하다 평하기도 하니 말입니다.

 

골프장 기사나 골프장 가십도 교통부에서 이미 승인이 진행된 후에 경기도에 이관된 것이라는 내용을 강조했으면 그렇게 많은 기사와 가십이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 계장님이 쓰러져 돌아가지 않으시고 (순직하지 않으시고) 지금도 수원권에서 공직 친구들과 노후를 즐기실 것입니다. 재산도 좀 있는 분이시니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계장님 동기쯤 되시는 원로들을 만난 이후 P계장님의 모습이 성성히 떠오릅니다.

 

기사이든 가십이든 신문에 글로 기록되는 보도인데 그 종이 위에 인쇄된 글씨로 인해 누구는 기뻐하고 어떤 분은 괴로워하는 喜怒哀樂(희로애락)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이야기를 절감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기자와 취재원]

잘해보자고 언론인과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은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6시에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술 없이 먹고 7시에 헤어지는 경우와 좀 늦은 8시 반에 모여서 11시까지 술 한 잔 하면서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가능합니다. 본사에서 출입처에 오가는 기자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6시에 만나는 이유는 오후 편집회의를 마치고 잠시 새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본사 기자들은 오후 3시까지 출입처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돌아와 4-5시에 기사작성과 편집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6시경에 브레이크타임을 갖습니다. 간단히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8시 반까지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 화면과 씨름하고 취재원과 추가로 통화를 합니다. 취재원측에서 기사에 대한 설명을 하니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새로운 취재보다는 취재원측에서 해명과 설명을 하므로 이를 들어 주어야 하는 의무의 시간입니다. 취재의 기본은 양측의 입장을 들어 보고 그 내용을 기사에 실어주는 것입니다. 일방의 기사만 쓰면 완벽한 기사로 대접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사 말미에 당사자와 수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통화를 하지 못했다면서 당사자는 설명을 해주지 않아서 해명을 기사로 적지 못했다는 점을 밝히는 것입니다.

 

저녁 8시30분에 기자들을 만나는 경우는 좀 여유롭게 술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장차에 추진할 업무에 대한 사전 설명회의 기회를 갖습니다. 좋은 기사는 키우고 불편한 기사는 줄이거나 인터넷에서조차 내려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다가 기사의 강도를 낮추는 작업을 합니다. 나중에는 표현을 부드럽게 하기위해 단어 한 개를 놓고 밀당을 하기도 합니다.

 

기자는 행간의 의미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취재원은 공익의 기준과 잣대를 설파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한잔 두잔 늘어 가면 결국 인간적인 관계로 갑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전혀 어제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친밀해진 것은 확실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듯이, 매달마다 보험료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언론과 행정은 친밀해야 합니다. 행정은 보다 많이 홍보해야 하는 입장이고 언론은 가급적 비판적 기사에 비중을 두게 마련입니다. 친밀한 관계 속에서 좋은 기사는 늘리고 나쁜 기사는 줄여가는 것이 공보부서 근무자들의 행복스러운 일들입니다. 하지만 언론인들은 그 기관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래의 기능에 충실해야 데스크(본사)에 가서도 면이 섭니다.

 

본사에서도 이름을 올리고 취재원측 기관에서도 존경은 아니어도 인정을 받는 취재기자, 출입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정치적, 경영적인 고민이 필요하고 이성적인 판단과 감성을 관리하는 끝없는 구도자의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면 칼은 칼집 속에 있으므로 그 권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뽑는 순간 시퍼런 칼날이 빛을 내면 벌의 침이 1회용인 것처럼 언론인과 출입기자로서의 권위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쯤에서 중요합니다.

 

[1988년 세로쓰기 신문]

1988년에는 신문은 대부분 세로쓰기가 기본이었고 일부 가로쓰기가 竝用(병용)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세로쓰기는 비판기사이고 가로쓰기는 홍보기사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실제로 홍보기사 제목에는 비단 무늬가 들어갔고 비판이 실리는 경우 제목은 그냥 흑백의 흰 글씨 이거나 반대의 검은 글씨였습니다.

 

즉 가슴에 강하게 느껴지는 기사 제목은 검은 글씨가 아니라 흰 글씨를 부각시키는 배경의 검은색 면이었습니다. 신문에 도배를 하였다는 말은 바로 비판기사의 글씨가 흰색이고 나머지를 검은색으로 칠한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검은 페인트로 칠하듯 검은 종이를 벽에 붙이듯 도배를 하였다는 표현이 아주 실감나는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신문의 생명은 편집기술에서 태어납니다. 현장 취재기자의 원고는 제목 없이 들어와 엄청난 크기의 글씨로 제목을 달고 새 생명을 얻어 지면에서 탄생의 고고한 목소리를 울립니다. 신문기사의 輕重(경중)은 제목 作名(작명)의 기술에 의해 결정 됩니다.

 

좋은 기사는 제목이 강하지 못합니다. 반면 비판기사의 제목은 날카롭고 무겁고 차갑습니다. 어쩌면 편집부 기자들은 같은 사안을 보고도 이렇게 상반된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요.

 

흔히 말하듯 소주가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과 반병씩이나 들어있다는 말은 물리적, 수학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데도 사회적으로는 엄청난 무게감이 있습니다. 50%에도 미치지 못하였다와 절반의 성공이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말수가 많은 이를 보고도 시원시원하다와 수다스럽다는 표현이 가능합니다. 말수가 적은 이에게도 답답하다 비판 할 수 있고 과묵하다 호평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개인의 판단이고 호불호에 따라 절반이니 반절이니 표현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편집부 기자는 평이하게 표현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독자들 대부분이 그런 쪽으로 이해하였다면 이는 일종의 편집 의도가 내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신문 편집이 수작업이 아니라 전산으로 가다보니 세로쓰기는 사라지고 가로쓰기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어떤 기사가 세로쓰기로 제목을 잡는다면 독자들에게 강한 느낌을 전달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광고에서는 더러 세로쓰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행정을 하면서 유심히 살펴볼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늘 판에 박힌 절차와 방법으로만 일하지 않고 작든 크든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A코스로 걸어갔다면 내일은 C노선을 택하자는 이야기입니다.

 

1980년대 도지사님이 시군청을 순시하는데 첫 번 군청에서 설렁탕으로 점심을 준비했다 하니 그다음 순번의 군청과 시청에서도 먼저 행사를 마친 시군의 사례를 참고하여 동일한 점심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도지사와 수행원들은 5번 연속으로 설렁탕 점심을 먹게 되었고 결국 도지사는 담당 과장에게 간청을 해서 메뉴가 변경 되었습니다.

 

점심 메뉴조차 기관장에게 물어보거나 취향을 문의하는 것은 과거의 방식인 것이고 저렴하지만 특별한 식단,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반찬과 밥을 준비하는 여유롭고 의미있는 행사준비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강석 (李岡錫)

출생 : 1958년 화성 비봉

경력 : 경기도청 홍보팀장, 경기도청 공보과장

         동두천·오산시 부시장 / 경기도균형발전기획실장

         남양주시부시장 /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현직 :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저서 : '공무원의길 차마고도', '기자#공무원 밀고#당기는 홍보#이야기' 등 수필집 53권 발간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오산#남양주 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