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끝없는 사랑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플라타너스 나무가 우거진 가로수에서 매미가 시원스럽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마도 팔월 끝자락에 접어들었으니 가는 여름이 아쉬운가 보다.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유난히 무덥고 아픔과 상처가 많았던 계절이다. 길고 긴 장마와 태풍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생명을 앗아 갔으며 많은 재산 피해를 주었다. 특히 전 세계를 대상으로 4년마다 열리는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보리 대회’의 파행 운영과 장소 이전 등 생각하면 할수록 어두운 그림자만 엄습해 온다. 이러한 기억하기조차 힘들었던 여름이 이제 서서히 물러가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는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가을을 재촉할 것이다.

 

요즘은 시간이 여유로워 고향집엘 자주 간다. 그 때마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몇 년 후면 칠순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이 참비름 나물을 좋아한다고 텃밭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그 정도의 세월을 겪었으면 지금까지 행한 자식의 행동이 효자인지 불효자인지 판가름 났을 법 한데 별로 효자 노릇도 못한 자식을 위해 내리쬐는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잡풀 무성한 고추 밭에서 참비름을 뜯는다. 전통시장에 가면 몇 푼 안주고 살 수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만류를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호미자루를 거머쥐고 나물 캐는데 여념이 없다. 세월을 햇볕에 말린 지 한 세기가 다 돼 가는데 자식이 뭐라고, 왜 그렇게 희생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아직까지 모르니 나는 아마도 철이 덜 든 것 같다.

 

 

어머니의 끝없는 희생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진부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세대가 경험한 어머니는 오직 가족만을 위한 인생이었다.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을 보면 집안에 사위가 오면 닭을 잡는다. 그것도 종자로 아끼는 씨암탉을 잡는다. 사위는 집안에서 가장 어렵고 귀한 백년손님이요 백년지객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릴 때 시골에서 이런 풍습을 체험하고 자란 세대이다. 당시 어머니는 고모부가 오면 영락없이 닭을 잡았다. 여자로서 살생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그것도 항상 집 근처에서 알짱대며 알을 낳아주고 하루의 반찬거리를 공급해주는 닭, 두 눈을 멀뚱거리며 다니는 순하디 순한 닭을 잡을 때마다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 그럼에도 어머니는 귀한 손님에 대한 예우와 가족의 건강을 위해 두 눈을 질끈 감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맷돌을 올려놓았다. 마지막까지 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날갯짓하며 발버둥치는 닭을 보며 어머니는 애써 외면했다. 여자의 신분으로 닭 한 마리 잡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법한데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오늘날까지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어머니는 가난했던 삶과 싸우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고아가 되어 홀로 늙어가고 외롭게 진흙길을 걸어 온 것이다. 지금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꽃다운 청춘도 다 지나가고 세상의 멋을 한껏 뽐낼 나이에 희락(喜樂)조차 느끼지 못한 채, 젊음의 시간은 이미 멀리 도망가 버렸는데 말이다. ​

 

삶에 있어 나이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나이를 먹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어머니를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생각된다. 특히 우리의 가슴을 울림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끝도 없이 베푸는 휴머니즘적 철학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는 나이가 필요 없다. 병환에 시달리면서도 제 한 몸 챙기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자식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아마도 저승에 가서라도 오로지 자식 걱정만 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주었을까? 반성해 본다. 도심과 고향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떨어져 살고 있는 지금, 지난 한 달 동안 어머니를 몇 번이나 찾아갔을까. 만약 찾아간 기억이 아련하다면 이번 주 토요일 찾아뵙고 문안 인사드리며 따뜻한 저녁상 올리는 것은 어떠한지 묻고 싶은 시간이다. 또한 “유난히 무덥고 지루 했던 여름, 여러 가지 말 못할 고통을 잘 이겨내신 우리들의 어머니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약력]
-1957년 경기 화성(본명 정승렬)
-경기도청 근무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등 출간
-2004년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수상
-2009년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