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1908년) 동양사(東洋史) 이야기

정겸 시인·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우리나라의 역사 중 개화기라 함은 통상적으로 1876년 2월 27일 일본과 맺은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라 칭하는 강화도 조약 이후 시기이다. 일명 병자수호조약(丙子修好條約)이라고도 말하며 외국과 체결한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라는 의미와 함께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독소조항도 있지만 을(乙)의 한계로 이를 받아드렸다.

 

사실상 이때부터 우리나라는 음으로 양으로 일본에게 우리 민족의 권익을 침해당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아 조선시대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 즉 양반과 중인 상인 천민으로 분류된 신분제도를 타파하고 근대적 사회로 바뀌어 갔다. 또한 이 시기에는 시대적 조류상 어쩔 수 없이 외국의 사상이나 문물이 밀려오며 한 사회의 사상과 풍속이 새롭게 바뀌었다는 사실에 일부 긍정적인 요인도 있었다. 요즘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개화기 시절 교과서를 판독한다. 한문과 일본어 그리고 한글 고어로 인쇄되어 읽기가 더디지만 그런대로 읽을 만하다.

 

그런데 지금 소개하는 개화기 시기의 동양사는 고종임금당시 대한제국이 탄생한지 2년차인 융희2년 즉 1908년도에 발간한 중등교과과정 교과서인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중의 하나인 임진왜란을 중점으로 소개하여 그 배경에 의심이 간다. 많은 조선의 역사 중 왜 하필이면 임진왜란시기의 기록을 서술했을까. 조선개국이래 전성기의 역사도 많았는데 8년간의 긴 전쟁으로 위정자들은 부패하고 나약했으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있었던 선조시대였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부를 소개하자면 동양사 138쪽을 보면 조선과 명(明)나라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가 나온다.

교과서에서 단군3910년경이라 나오는데 이때가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선조 때이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 시기 일본에는 풍신수길 즉 도요테미시대요시와 직전신장 즉 오다노부나가 가 일본의 남과 북에 거점을 두고 패권을 다투고 있던 중 둘 이 동맹을 맺고 중국 명나라를 치기 위해 우리나라 즉 조선에게 길을 터달라고 요구하고 응하지 않자 강제로 침입 의주 까지 침략 임진왜란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 임진전쟁의 합리화를 역설한 이야기다. 새롭게 출발한 대한제국이 그것도 왕에서 황제칭호를 한 고종이 일본을 우호적으로 받아들이다니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당시에는 말로만 대한제국이었고 껍데기만 가지고 있었으며 사실은 일본 지배하에 있었던 시기라 약소국가의 설음을 이해하고 시대적 환경에 나라의 운명을 맡긴 느낌이 들어 마음이 서글퍼진다.

 

 

1908년도에 발간한 중등교과과정 교과서

 

 

 

 

 

 

[약력]
-1957년 경기 화성(본명 정승렬)
-경기도청 근무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푸른경전, 공무원, 궁평항 등 출간
-2004년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수상
-2009년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행정자치부장관상, 경기시인상 수상 
-칼럼니스트와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