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공무원#2가지 이야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힘든 공무원 시절>

1960년대 신참 공무원의 9시전 임무는 철끈 40개를 마는 일이었다고 한다. 미농지를 잘게 썰은 후 손가락으로 비벼서 서류를 꿰매는데 쓸 철끈을 만들에 계장 책상에 10개, 차석과 고참의 책상위에도 각각 10개를 상납(?)해야 하는 것이다.

 

 

업무가 시작되면 기안지에 기안을 하고 관련서류를 첨부해 철해야 하는데 이때 문서 왼쪽 위를 송곳으로 뚫고 신참이 준비해준 끈으로 서류를 꿰매는 것이다. 그리고 서류철에 쓰이는 송곳의 손잡이는 6.25이후 이곳저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탄피였으며 기관총 탄피기 제격이었다고 한다.

 

얼마 후 행정기관에 스태플러(세칭 : 호치키스)가 보급되면서 신참의 ‘끈말이’ 사역은 사라지게 된다. 그후 또다시 문명의 기기인 계산기가 주판의 기능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사과 상자만한 크기의 계산기가 있었지만 희소해서 한번 빌려 쓰려면 밤늦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복잡한 계산을 많이 하는 회계부서와 당시로서는 중요부서인 양정부서(쌀 관리)에 배정되었기 때문이다.

행정사무의 혁신적 기기는 복사기였다. 1970년대 후반에 읍면동에 목사기가 배치되면서 ‘인간복사기’를 대신하는 혁명이 발생했다.

 

당시에는 호적부의 법정분가가 자동으로 되지 않아서 호주가 신경쓰지 않으면 1건의 호적부에 30명 가까이 등재되었고 취업을 위해 호적등본을 발급받으려면 3-4일전에 미리 신청을 해야 했다.

호적주임도 먹지 4장을 대고 하루 가까이 작업을 해야 했고 10통을 발급하려면 시간은 배로 필요했던 것이다. 이 일을 당시로서는 구형이었던 복사기는 10분 안에 해결해 주었다. 요즘 복사기는 수십부를 자동으로 복사하고 원하는 위치에 스태플러를 찍어주기도 한다.

 

그 후 행정기관에 이상한 기계가 들어왔다. 컴퓨터라는 것인데 텔레비전같이 생긴 것이 타자기 같기도 한데 전기가 있어야 움직이는 기계였다. 처음에는 여러 부서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컴퓨터’가 계산전문이라는 명분을 살려 통계담당부서에 배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컴퓨터의 문서저장기능, 속도, 다양한 서체 등으로 인해 매년 컴퓨터 구입예산 편성이 늘어나더니 지금은 공무원 1인당 1대가 되었고 업무성격에 따라서는 1대 이상을 보유하기도 한다.

 

행정환경은 빠른 속도로 변한다. 앞에서 언급하지 않은 타자기도 수동에서 전동, 전자, 컴퓨터 키보드로 변했고 문서송신은 “텔렉스‘와 팩스로 인해 변혁을 가져오더니 이제는 전자메일시대다.

우표 붙여 보내면 국내에선 3일, 국제우편은 그 이상 소요되었지만 이제는 마우스 크릭으로 지구 반대편에 즉시 문서와 사진, 도면 등이 도착하는 E-메일 시대다.

 

더구나 인터넷은 정보의 홍수시대를 가져왔고 어느 정보와 자료를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그런데 50대 공무원들은 지난 30여년 공무원을 하면서 이 같은 변화를 모두 겪어왔다. 송곳으로 문서를 뚫고 종이끈으로 묶어 결재를 받던 공무원들이 마우스를 움직여 전자결재를 하고 있다.

1980년대 싸인펜 하나로 부서를 움직이던 과장님을 모시던 차석이 이제는 과장이 되어 마우스로 부서를 지휘하고 있다. 크게 인사하고 결재를 올리던 결재판과 부하직원은 온데 간데 없고 슬며시 전자결재 올려놓고 결재가 조금만 늦으면 전화로 결재를 독촉하는 부하만 있다.

 

행정의 전산화 초기의 간부들은 남몰래 전자결재 방법을 배워야 했고 전자속에 들어있는 문서 하나를 종이 문서에 출력해 놓고 혼자 대견스러워했던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50대 공무원들은 힘들다. 대학시절 리포터를 컴퓨터로 작성한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는 40대 50대 공무원들은 힘들다. 그러므로 젊은 인터넷세대 공무원들은 선배들의 고충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수년 안에 인터넷과 컴퓨터와 관련해 선배 공무원들이 답답해 보이는 것 이상으로 행정환경의 변화가 그들 앞에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회가 그러하듯이 행정도 역시 최종적인 결정과 판단은 사람이 하는 것이지 기계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찬 공무원 시절>

1960년대 유행어중 하나는 ‘하다못해 면서기’, ‘알아야 면장을 하지’이다. ‘하다못.......’은 당시 공직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함께 면서기도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기에 하는 말인가 싶다.

대졸 실업자가 많았던 당시에는 공무원은 공채가 아닌 특채이어서 면장이나 총무계장, 군청 내무과장을 통하면 요즘의 ‘비정규직’인 임시직 공무원이 될 수 있었고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원이 되었으며 경력을 쌓으면 군청 과장도 되고 몇몇 분들은 군수가 되기도 했으니 말이다.

 

 

‘알아야 면장.....’은 당시 군청 내무과장을 통하거나 지역내 정치조직의 후원을 받아 면장이 임명되었으므로 처음에 면장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디에 결재를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나온 말인가 싶다. 그리고 공무원들도 면장의 위상에 대해 그냥 싸인만 하는 분으로 생각했나 싶다.

신규 공무원이 ‘면장님! 요기에 싸인 좀 해 주세요!“하면서 결재판을 내밀자 면장님 왈 ”내가 조용필이냐? 싸인을 해달라게!“라고 응수했다.

그분은 면장 10년차의 베테랑이었고 지역에서 존경받는 분이었는데 젊은 공무원의 실수를 가볍게 넘겨준 좋은 예로 평가된다.

 

여하튼 1970년대 공무원들은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 지금도 거의 모든 공무원들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의 공무원에 대한 신뢰는 지금의 사랑과는 좀 다르다. 당시 공무원의 말은 법이요 진리였기 때문이다. 특히 농어촌, 산촌지역에서의 공무원은 더더욱 권위가 높았을 것이다.

그 이후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쳐 온 우리의 용감한 50대 공무원들은 이제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에 적응하고 급할 때는 즉응하면서 일하고 있다. 위에서 밀고 아래에서 치받치면서도 자신들의 좁지만 단단한 틈새시장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서 지난날 경험과 경륜을 발휘하고 있다.

 

빠르지는 않지만 중용이 있고 느린 가운데 미래를 준비하고 살피는 이들이 50대이다. 흔히 듣고 있는 ‘챙긴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의미는 약방의 감초와 같이 어느 곳 무슨 상황이 벌어져도 통용되는 말이요 행정의 힘을 발휘하는 원천이다.

행정이란 것이 늘 상대적이어서 일방의 생각을 들어보면 모든 것이 정의이고 옳은 것 같지만 크던 작던 ‘상대성’이 있기에 이 ‘챙긴다’는 것은 행정의 모든 분야에서 늘 마지막 상황에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안전장치이다.

마치 보험과도 같은 것이다. 사실 보험금을 탈 정도의 사고가 나기보다는 보험료만 내더라도 사고를 당하지 않는 편이 나은 것 아니겠는가.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때로는 고개를 숙인 듯 하지만 가슴속 공무원의 신조와 자세만큼은 흐트러지지 않고 반듯한 50대 선배공무원에게 존경의 향기를 보낸다.

그리고 그분들의 향기가 우리 모두에게 퍼져서 모든 공무원들이 공직에 대한 자부심과 명예로움이 요즘의 폭염처럼 이글거리기를 바란다.

 

누구나 모두가, 안경을 쓰든 안 쓰든,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곱슬머리든 돼지머리든 모두에게는 50대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에게 50대가 반드시 온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겠는가? (2005)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