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 자동차 안에서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자동 세차기에 라디오를 켠채 들어갔던 관계로 라디오 안테나가 부러진지 벌써 4년이 되었다. 자동차는 브레이크가 생명이라는 평소의 신조를 잘 지킨 탓인지 아직도 새 안테나를 달지 않아 라디오를 듣는데 다소 불편이 있다.

관심 있는 기사나 토크쇼를 듣는 중 방송이 잘 잡히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고 지인과 함께 차를 탈 때 안테나가 부러진 것을 보고는 게으름을 꼬집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는 날 아침 출근길에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자동차 윈도우 브러쉬가 올라올 때는 라디오가 잘 나오고 내려가면 칙칙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브러쉬를 고속으로 작동하였더니 라디오는 아주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윈도우 부러쉬가 라디오 안테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비가 와서 물에 젖어있는 브러쉬와 차량 외부가 도체가 되어서 전파를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예민한 전류로 생각되는 전파가 윈도우 브러쉬를 타고 들어와 자동차 라디오 음질을 아주 맑게 해주고 있다는 가정도 가능한 것이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처럼 보이지 않는 미미한 전파를 발산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상대방의 주파수에 맞는 초단파 전류를 보내 짜릿한 기쁨을 주는 이들이 있다.

 

삶의 활력소라 할까, 효소, 촉매역할을 하는 이들이다. 촛불이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보이지 않는 소금끼, 조미료가 밖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그 가치를 가슴으로 느낌을 주는 이가 있다.

하지만 살다보면 버스를 타고 중요한 뉴스를 관심있게 듣던 중 키워드가 나올 대목에서 “다음은 시청 앞, 시청 앞입니다.”라는 방송이 라디오 방송보다 2배이상 큰 볼륨으로 나와서 승객들을 놀라게 하고 관심있게 듣던 방송은 다음 뉴스로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있다.

 

같은 이슬도 사슴이 먹으면 녹용이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된다는 말처럼 같은 말, 비슷한 행동도 받아들이는 이의 상황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 우리사회의 소화력이다.

자동차 윈도우 브러쉬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하면서 라디오 안테나 역할까지 하는 이가 있고, 제 역할도 다하지 못하면서 핸들을 참견하다 위험한 비탈길에서 차를 세우지 못하는 못난 브레이크와 같은 사람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브러쉬가 안테나 역할을 하면 ‘네 일이나 잘하라’는 핀잔을 주는 것도 우리사회의 현실인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잘한 점을 칭찬하기 보다는 잘못을 나무라는데 익숙한 때문인가 생각한다.

 

자동차로 시작된 말이지 자동차 부품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앞에서 말한대로 핸들과 브레이크는 각각의 책임맡은 기능이 있다. 타이어도 그렇고 엔진도 그 역할이 있다.

그런데 자동차의 기본적인 목적은 이동수단이다. 뒷 유리의 커튼이나 시야를 가리는 휴지통은 자동차 본연의 기능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자신의 역할과 기능은 타이어인지 브레이크인지 핸들인지, 아니면 라디오 안테나인지 되새겨볼 일이다.

그리고 혹시 비오는 날 창을 닦으면서 동시에 안테나 역할을 하는 브러쉬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고, 또는, 자신이 봄부터 가을까지 차 트렁크 속에서 잠자고 있는 ‘스노우 체인’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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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