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안동 여행기

이강석 전 남양주시 부시장

▧ 제천·안동 탐방기

#무작정 집 나서기

20대초 청운의 뜻을 품었던 그 시절에 왜 그 건물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다시 말해 면사무소 건물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가슴속 앙금으로 남아있는데 오늘 또다시 지난날에 대한 회한에 젖는다.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본 그 건물은 참으로 오래된 초라한 건물인 뿐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면사무소 건물에서 근무한 것이 오늘이 있게 한 원천이고 뿌리의 일부이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동시에 27년이 지난 지금 그 건물보다 조금 큰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머물러 있는 자신을 돌이켜 보면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한다.

하지만 새장 안에 장시간 머무는 것만 같아서 오늘 무계획으로 일상을 탈피하여 세상속으로 나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가족들에게도 무전여행 비슷하게 어딘가를 훌적 다녀오겠다 전하고 출발한 나만의 여행이다.

 

#수원역과 청량리역을 지나 제천으로

눈발이 내리는 가운데 설 명절을 맞은 수원역에 무작정 들어서니 귀성객의 파도가 넘실대고 저마다 고향에 대한 소망을 담고 열차를 기다리고 아직도 표를 구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 말 그대로 ‘장사진(長蛇陣)’이다.

긴 뱀이 꼬리를 물고 늘어선 모습이다. 하지만 남행열차는 모두 매진이다. 입석도 팔지를 않으니 무작정 나오면서 생각한 여행지 부산은 갈 수가 없다.

 

귀성객들이 들고 있는 선물꾸러미가 지난해보다 작은 것 같다. 그리고 넓기만 하고 두께는 아주 얇다. 아마도 내용물을 가로로 펴서 면만 넓게 하고 깊이는 줄였기 때문인가 보다.

서울역 기차표를 샀다. 일단 북쪽으로 가자. 가서 청량리역에 가면 강원도 방면은 표가 있을 것이다. 강원도 인구가 많지 않으니 말이다. 표를 사고 나니 2시간이 남았다. 11시발이다. 저녁식사 시간을 이미 지낸 터라 우동 한 그릇을 먹기로 했다.

 

지난번 가족들과 정동진역 무박2일 여행갈 때 먹었던 그 식당이다. 오늘은 혼자 우동을 먹고 있다. 세월이 좋아지면 여러 식구가 이곳에서 우동국물에 김밥도 먹으면서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식사 후 역사에 들어서니 10시차 개찰을 한다. 난 11시표이지만 그냥 역무원에게 사정하기로 했다. 수십개 열차 속에 나 한사람 더 설 자리가 없을까.

 

역무원은 11시표로 10시차를 타는 것을 설명하는 나에게 자리가 불편할 것이라는 말만 하고 그냥 보내준다. 아마도 무수히 많은 이들이 나처럼 미리 승차했을 것이다.

빼곡히 들어찬 강원도 귀성객 틈새에 몸을 실었다. 강원도 행 열차는 그 무거운 쇳덩이만큼 무거운 귀성객의 마음을 싣고 서서히 출발했다. 창밖으로는 가벼운 겨울 눈이 무겁게 내린다.

 

11시경 양평역을 지난다. 1시간 동안 내린 눈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양평역에 거대한 열차가 도착하였지만 1분후 떠날 때 볼 수 있는 사람의 발자국은 10개가 안 되는 것 같다.

청량리에서 그 시간에 양평까지 기차를 타고 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은 그래서 인구 1천만의 경기도와 또 다른 1천만이 사는 서울시 주변 양평이 이처럼 인구이동이 없는 것이다. 조용하고 어두운 것이 양평의 심야 인상이다.

 

급히 출발하면서 준비한 것 중 가장 많은 것이 옷인데 여러겹 껴입은 까닭에 객차 안 열기로 인해 이마에 땀이 난다. 헬스클럽에 가서 15분을 힘내서 뛰어야 나는 땀인데 열차 안에선 그냥 서 있어도 땀이 흐른다.

엄동설한(嚴冬雪寒)에 더위를 피해 객차 끝 화장실 칸으로 나오니 서늘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추위가 엄습한다. 옆 칸은 또 다른 열차의 연결부다. 열차의 금속음이 윙윙거린다.

 

그리고 시베리아 철도처럼 벽 모두가 하얗게 눈바람이 남기고 간 흔적이 보인다. 열차 틈새를 타고 들어온 눈은 강한 바람에 서릿발이 되어 유리를 가리고 벽을 장식한다.

하나로 연결된 열차 안에서도 인생의 격차가 보인다. 좌석에서는 포근하게 잠자는 연인들, 부부들, 그리고 신나게 떠들어 대는 아이들. 그 옆에는 시간이 없어 예약을 하지 못한 입석 승객들, 객차 사이에는 그래도 젊은 청년층, 학생들이 신문을 보고 바닥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원주를 지난 열차는 강원도의 비탈을 힘겹게 달린다. 지친 숨을 몰아쉬며 열차는 천천히 어둠속을 달린다. 눈은 아직도 내린다. 아마도 청량리를 출발한 열차를 따라오면서 눈발을 뿌리는가 보다. 열차는 이렇게 지친 모습으로 강릉역을 지나 정동진역을 향해 가는가 보다.

 

#제천은 강원도 아니고 충북

객차 안에 가면 뜨거운 공기와 빼곡한 신발로 해서 견디기 힘들고 입석 승객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홍익회원이다. 빼곡한 사람 틈 사이로 잘도 빠져다니면서 물건을 판다. 그리고 그것을 사먹는 이들은 대부분 좌석승객이다. 입석승객은 그냥 눈만 멀뚱멀뚱거리며 사먹는 이들을 바라볼 뿐이다.

더구나 입석 승객들에게 힘든 것이 추가되는데 미니슈퍼 홍익회 수레에서 간식을 사먹는 것을 보아야 하는 일이다. 아이들의 재롱도 그 부모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겠지만 입석객에게는 조금 힘든 일이다. 피곤한 초보 나그네에게 있어서는 이야기가 다른 일이기도 하다.

 

낮에 마신 술이 깨고 사람에 시달리고 다리도 아프다. 열차가 정차 할 때마다 내릴까 말까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내린 곳이 제천이다. 많이 들어본 지명으로 조금은 클 것이기 때문에 내리기로 했다.

사실 그전에 정차한 역은 다시 출발하면서 둘러보면 불빛이라곤 오직 역사(驛舍)의 창뿐이다. 그곳에 내렸다면 어느 민가에서 1박을 해야 했을 것이고 노숙자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제천은 조용한 산속의 도시다. 눈 내리는 겨울날 새벽 1시에 내린 나그네가 그 도시를 얼마나 파악하였겠냐 만은 제천은 큰 도시는 아닌 것 같다. 더구나 모든 산과 들에 많은 눈이 내렸으니 나그네의 눈에는 도시가 더욱 작아 보일 것이다.

아마도 여행은 이런 이유로 좋은가 보다. 눈 내리는 겨울여행, 신록의 여름여행, 단풍의 가을여행 모두가 각각의 특색이 있을 것이다.

 

황당한 것은 여행을 별로 다니지 않은 관계로 청량리를 출발하면 무조건 강원도인줄 알았는데 이곳 제천은 충청북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량리역에서 약간 남쪽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고요한 제천시는 도시계획이 반듯하다. 넓은 도로와 줄을 잘 맞추고 있는 건물이 보인다. 최근에 만들어진 신시가지인가 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눈에 들어오는 식당에 들어갔다.

 

40대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인데 새벽 3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한다. 내장탕을 주문하고 소주도 한 병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그러면서 이들 부부는 결혼 18년차이고 결혼이 순탄하지 못한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혼 초 시부모가 반대를 한 모양이다. 이제는 이해를 하시고 명절이 되면 일찍 문 닫고 오라고 하신단다. 요즘 장사가 안 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란다. 부인은 활달하니 빅마마 스타일이고 남편은 순진하고 착한 모습이다.

 

안주인은 나의 여행에 대해 듣고 대략 몇 가지 조언을 했다. 오늘 저녁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고 하니 가출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안주인의 아주 정형화된 조언이지만 순수함이 배어있는 말은 다음과 같다.

“가출은 잘한 것이 아니다. 설날이 다가오면 부모님은 자식을 기다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말하자 이번일로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한다.

 

아이들이 다 느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더 헤메는 여행을 하지 말고 새벽 3시에 청량리행 열차가 있으니 지금 가서 차표를 끊으라는 것이다.”

참으로 좋은 조언을 얻었다. 그래서 제천역에 가서 청량리행 열차 시간을 보니 3시다. 하지만 지금 청량리에 내리면 수원 가는 교통편이 있을까? 조금 기다리면 전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망설여지는 것은 일단 ‘돌출여행’을 나선 바에 지금 돌아가는 것은 자신이 너무 작아지는 것 같다. 다시 시내를 배회하다 숙소를 잡았다. 오늘은 깊은 잠을 자고 싶다.

 

#안동 하회마을

몇 번인가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들었다. 그리고 아침 9시에 일어나 사색에 잠겼다. 밖은 바람이 세고 추위가 느껴진다. 11시경 숙소를 나서 제천역으로 갔다. 가장 빠른 기차시간을 보니 안동이다. 12시6분차로 14:08에 도착한단다.

 

 

지금 속내는 이제라도 집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설날 아침에 식당밥 달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하회마을 사람들도 명절 준비하고 자손들도 찾아올 것이니 객이 가서 분위기를 깰 일도 아닌 것이다. 그분들의 분위기를 어색하게 하는 이방인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될 일이다. 하지만 기차는 달리고 있으니 안동에 가서 생각할 일이다.

 

12시경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보고 싶다고 했다. 정말 보고 싶다. 아이들도 잘 있는지. 속세를 떠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잠시 가출도 이렇게 생각이 많은데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출가(出家)는 얼마나 힘든 일 일까.

많이 버려야 더 많이 얻는다는 말이 있지만 40여 세월 중에 맺은 연의 끈과 실과 상흔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열차는 희망사역을 지나 터널을 지나 풍기역을 지난다. 인삼으로 유명한 풍기를 지나는데 인삼밭도 보인다. 안정역에서 대기하다가 영주역을 지나 안동에 도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차비 10만원에 옷, 치약 치솔을 준비해 주며 ‘머리 식히고 오라’는 아내가 고맙다. 사실 꿈속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갑자기 길을 나섰지만 막상 나오고 보니 길도 설고 불편하고 생각도 흔들리는 것이 오히려 피곤하다.

 

머리 식힌다고 오히려 이런저런 생각만 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세상사는 것이 생노병사(生老病死)과정 이라고 한다. 지금 生老에 이른 것 같다.

안동역에 내려 종합안내소에 들어갔다. 20대 여성이 혼자 근무하는데 모처럼 손님이 없던 차에 반가운 손님이 온 듯 아치 친절하다. 아니, 친절이 몸에 배인 것 같다. 아주 상세히 안내해주고 교통편까지 설명해주고 나서 더 물을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한다.

 

일단 금강산 식후경이라고 식당을 찾았다. 그리고 순대국밥을 주문하였는데 아침도 거른 차에 맛있게 먹었다. 4천원이면 적정한 가격인 것 같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화기를 켜는 순간 형 전화가 울린다. 이러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냥 사무실도 집도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노라 했다.

 

안동역 앞에서 점심을 먹고 하회마을로 향했다. 버스로 40분 걸리는 길이다. 낙동강이 감아 돌아가는 하구에 입지한 마을이다. 뒤편으로는 산들이 여러 겹이고 언덕처럼 붕긋이 올라온 위에 한옥들이 이리저리 서 있다.

민박집 주인은 67세인데 문중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광산에서도 일하고 지금은 서울에서 콩나물공장을 하다가 얼마 전에 장남에게 대물림하였다고 하는데 명절을 맞아 며칠 전에 고향에 내려왔다고 하신다.

 

민박집 류씨 문중 아저씨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이곳은 일월산맥과 태백산맥의 각각의 끝자락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을 앞 강둑 건너편의 산줄기가 각각 출발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 건너 절벽 위는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을을 잡아먹을 듯하여 선조들이 거북이의 눈에 해당하는 지점에 정자를 지어 기를 누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집을 지어도 좋다고 한다.

 

특히 하회마을에는 전쟁이 없었다고 한다. 6.25때도 전쟁이 없었고 그 전에도 난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회마을은 물이 돌아간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하회(河回)한다는 물이 되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래서 전쟁이 없었고 마을의 한옥과 전통이 대부분 보존되고 있는가 보다. 만약 적군이 들어왔다면 밖에서 지키고만 있으면 적을 이길 수 있는 요새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밤이 깊어간다. 안동 하회마을의 밤은 어린시절 고향집의 그것처럼 어둡게 드리운다. 중학교때까지 살았던 고향이 생각나고 그 이후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혼자 하는 이번여행에서 무슨 의미라도 주려고 했던 것일까.

 

#안동 간고등어

새벽은 하회마을에도 온다. 7시20분 첫버스를 타러 나갔다. 밤샘추위보다 더 심한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온통 어둠에 덥힌 하회마을 벌판에 서 있자니 바람이 없는데도 추위가 심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약수터의 물은 미지근하다. 밤샘 추위에 시달린 어깨며 무릎을 펴기 위해 이리저리 걷고 물도 마시고 줄넘기하듯 뛰어보기도 했다.

 

20분 정도를 기다리자 어디선가 버스 클랙션 소리가 들린다. 좌석버스가 온 것이다. 시내버스보다 요금이 비싸지만 자리는 편하다. 기사와 단둘이 타고 얼마를 달리니 중간에 자그마한 여성 2명이 승차하더니 10분정도 가다가 내린다.

안동시내에 들어서니 날이 밝는다. 그리고 버스터미널 앞에 내렸다. 얼마전에 안동에서 수원가는 버스노선이 신설되었나 보다. 프랑카드에 자랑스럽게 써놓은 글이 선명하고 천도 깨끗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새벽 추위속에도 많은 이들이 버스를 타기위해 기다리고 있다. 난로를 둘러싼 젊은이들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두 여성은 쉴새 없이 단어들을 꺼내고 있다.

아침을 먹기 위해 국밥집에 들어갔으나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는단다. 그렇다. 어제 새벽 2시 제천식당 여주인이 말 한 대로 명절날 아침에 밥 달라는 격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묵고치 2개를 먹었다. 그리고 간고등어 1봉지를 샀다.

 

터미널 사무실에 가서 시간을 보니 5분이 남았으므로 어묵 한 개를 더 먹었다. 간고등어를 구입하였기 때문인지 그냥 하나 더 먹으란다. 추위에 얼굴이 불그레한 시골 아주머니의 인심이 고맙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 화장실에 다녀오니 시간이 임박하다. 8시5분차가 출발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승객이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하회마을에서 거의 혼자 타고 온 좌석버스처럼 수원행 고속버스의 유일한 승객이 되었다. 버스기사님 장거리 운전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안동에서 올라오는 길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문막을 지나 여주, 이천을 지나는 영동고속도로 상하행선에는 차량이 많이 보인다. 수도권에 인구가 많다.

20일 밤 시작된 여행 중 밥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저녁은 어묵으로, 21일 새벽에 내장탕, 아침은 거르고 점심은 안동에서 순대국을 먹었다. 저녁은 하회마을에서 막걸리와 파전. 22일 아침은 어묵 4개, 점심은 라면으로 먹었다.

 

#여행이 나에게 준 것

무엇을 얻고 어떤 것을 잃었나? 15만원을 쓰고 왔다. 2박3일을 쓰고 왔다.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였고 글도 많이 쓰고 왔다. 무작정 나서는 여행이었고 닥치는 대로 가는 여정이었다. 이것은 혼자서만 가능한 여행이다. 일행이 있으면 논의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정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혼자 가는 여행의 묘미도 있다. 그냥 가서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가면 되는 것이다. 다른 여행객에게 신경 쓸 일도 없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오면 함께 대화를 나누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고생을 했다. 추위에 고생하고 외로움과 그리움에 고생했다.

 

그리고 일상을 억누르던 걱정거리가 무조건 여행을 한다고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모조리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힘든 일들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되돌아보는 기회는 되는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생각도 그렇고 부모형제와의 관계도 어떤 계기가 되면 노출되고 나타나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오늘 이후에는 생각과 행동에 조금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하회마을에서의 추위를 겪으면서 집의 중요함을 알고 입석 만원 열차에서 의자의 중요성과 내 자리의 필요성을 인식하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제천이나 하회마을 말고도 꽤 있어 보인다.

 

오늘 15만원의 비용이 나의 인생에 큰 밀알이 되고 밑거름이 되어서 더 발전하는 40대가 되기를 바란다. 이번 돌출 여행을 후원해준 아내와 아이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고맙소! 당신.

 

 

[약력]
-1958년 화성 비봉 출생
-경기도청 홍보팀장, 공보과장
-동두천·오산·남양주시 부시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화성시 시민옴부즈만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이강석 기자

공직 42년, 동두천, 오산, 남양주부시장, 경기도 실장,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역임// (현) 화성시시민옴부즈만, 행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