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말까지 공무원들은 발령을 받으면 청사내 모든 사무실로 인사를 다녔다. 요즘에는 결재판 모양의 멋진 발령장을 받지만 당시에는 달랑 종이 한 장위에 임용사항을 적고 직인을 찍어주었다. 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청내의 모든 사무실을 돌았다. 문서실, 발간실, 자료실, 구내식당까지 찾아다니며 발령 인사를 했다. 발령장은 자신이 보이는 방향으로 들고 가서 180도 돌려 상대방이 보는 방향으로 보였다. 인사를 받는 간부들은 반드시 발령장을 받아들고 내용을 살펴본 후에 다시 받는 이의 시선에 맞게 되돌려 주었다. 1935년 전후에 태어나시고 1960년대에 공무원을 시작해서 1995년 전후에 퇴직하시고 이제는 85세 전후이신 어르신들은 발령 인사를 가면 반드시 발령장을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아들고 내용을 읽고,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바닥으로 발령장 위를 두바퀴 정도 쓰다듬었다. 선배들께 이 정황을 물으니 발령장을 주신 기관장의 氣(기)를 받으시는 의식이라 했다. 자신의 다음번 榮進(영진), 榮轉(영전)을 희원하는 것이었다. 영진은 승진이요, 영전은 좋은 자리, 원하는 부서로 이동한 것이다. 그래서 축전에서는 공통분모인 ‘축 영전’이라 보낸다. 오전 9시에 발령을 받고
농부 어른들이 신혼부부에게 ‘깨가 쏫아진다’고 부러워한다. 농민에게는 깨가 쏫아지는 수확의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장마와 폭염을 이겨낸 참깨밭에서 작은 타원형의 흰 깨알들이 한 줄로 들어찬 4칸짜리 초록 주머니가 회색으로 변할 즈음에 할머니는 검은 천과 지팡이를 들고 깨밭으로 가신다. 검은 천을 넓게 펼치고 소속입건(小束立乾, 볏단을 작게 묶어 세워서 건조함. 1970년대 농사행정 용어)한 참깨 묶음을 수평 이동시켜 검은천 한가운데 안착시킨 후 한 단씩 거꾸로 들고 탁탁탁 약하게 두드려준다. 가을 태양에 바삭하게 마른 씨방속에서 한 줄로 숨어있던 뽀얀색을 자랑하는 참깨알이 검정천 위에 소록소록 떨어져 쌓이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수확의 행복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또 신혼부부에게 아예 참기름 냄새가 난다는 직설적인 표현도 한다. 참깨를 털어서 볶아낸 후 기름틀에 넣어서 천천히 압력을 가해주면 기름틀 아래로 초콜릿색, 조청엿, 아카시아꿀 색을 자랑하는 참기름이 한 줄로 내려온다. 기름을 짜는 할머니는 무리하게 힘을 주지 않는다. 차분히 긴 시간동안 느슨하게 눌러준다. 급하게 누른다고 참기름이 좍하고 내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출가한 딸, 도시에
지인의 결혼식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사진을 찍자해서 마스크를 잠시 벗었다. 병원 진료실에서 마스크를 벗지 말라 한다. 버스에서 마스크없이 앉아있거나 서 있는 것은 안 될 일이 되었고 전철을 타려면 반드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공공장소에서는 기침 한 번으로 죄인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예민반응, 과민대응으로 누군가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거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기침을 하면 마음이 울컥한다. 혹시 누군가가 항의를 하고 이로 인해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한다. 최근 6개월 사이에 온 국민의 생활 속에 파고 들어와 떡하니 자리 잡은 것이다. 1970년대 전국에서 개최된 반상회날에 정말로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주민과 공무원이 동시에 참석했었다. 반상회 이후에 우리나라 역사속에서 마스크 착용처럼 단기간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예가 있을까. 새마을 쥐잡기에서도 더러 빠진 가구가 있었을 것이다. 가수 싸이의 말춤이 유행을 하고 유명가수의 음원이 1억뷰를 기록했다 해서 큰 관심을 받기도 했지만 온 국민이 이처럼 동시에 공감하고 일상화한 문화는 마스크 착용이 처음이고 최초인 듯 보인다. 예식장 7층을 걸어올라가니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1층 엘리베
1989년 경기도청 기자실. K기자는 100자 원고지에 살살 내려쓴 후 팩스 보내고 데스크에 전화하면 끝이다. 그날 송고해야 할 기사를 자리에서, 소파에서 구상한 후 이제다 싶으면 자리에 앉아 세로면 100자 원고지에 초서처럼 내려쓴 후 다시 읽어보지도 않고 팩스에 밀어 넣는다. 잠시후 본사 지방부에 전화를 해서 도착 여부만 확인하면 끝. 생각 2시간 기사작성 3분, 송고 2분이면 기사는 마무리다. 다른 사 L기자는 원고지 200자에 오전시간을 집중한다. 아침 10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하면 앞으로 자신에게는 8시반에 미리 달라는 주문을 하면서 기사작성에 들어가 제공된 보도자료 위에 검정색으로 수정 가필한 후 읽어본다. 다시 100자 원고지에 옮겨적고 붉은색으로 가필한 후 청색으로 고치고 검정색으로 추가한다. 원고지 위에 교통지도, 도로망도가 그려진듯 복잡하고 글씨도 둥글둥글하다. 늘 바쁘신 L기자님은 점심시간 맞추기도 어렵다. 송고하러 가면 늘 팩스는 늘 만원이다. 약국 앞 마스크구매 長蛇陣(장사진)이다. 소리소리 고래고래가 따로 없다. 전쟁이라도 터진듯한 분위기다. 왜 바쁜 판에 팩스를 쓰느냐! 기존에 보내던 자료를 빼내고 자신의 원고를 보낸다. 왜 이리도
1968년 초등학생들은 2장에 1원 하는 원고지 4장을 학교 앞 유일의 문방구에서 구매하여 국어시간에 연필로 글짓기를 했다. 띄어쓰기를 할 때마다 빈칸이 아까웠고, 그냥 종이에 쓰면 더 많이 글씨를 쓸 수 있는데 원고지는 비싸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200자 원고지인데 실제로 쓴 글자는 180자가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억지로 채우기 위해 마지막 글을 키워 다음 줄에 2자 정도 걸치게 문장을 늘렸던 기억이 난다. 1988년 경기도청 공보실에서 공무원 7급으로 잔심부름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100자 원고지를 기자실 창쪽에 수북히 쌓았다. 출입기자들이 원하는 만큼 원고지를 가져가서 기사를 쓰고 완성된 원고를 본사에 팩스로 보냈다. 지르륵 하면서 원고지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면 잠시후에 신문사 정치부에 원고 복사본이 도달하고 데스크 보는 선배 차장이 원고를 검토한 후 편집부로 넘기면 편집부에서 면을 잡아 기사를 완성한단다. ‘매킨토시’라고 미국 애플사가 개발한 프로그램으로 신문을 편집했던 시기다. 이전까지 문선공이 활자를 뽑아서 납판을 만들어 철판에 끼우고 나사로 조여서 인쇄를 하던 시절에 비할 바 아니지만 이 프로그램도 고급기술자들만이 운영할 수 있는 어려
先輩(선배)는 사회생활, 직장, 학교에서 나이가 더 많거나 입사 연도가 빠르거나 졸업 연도가 앞선 이를 호칭하는데 쓴다. 초등학교 3년 선배, 고등학교 1년 선배 등에 쓰인다. 아래한글 한자풀이에서 先輩(선배)를 클릭하면 학문, 연령, 경험 등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라 한다. 선배보다 조금 고급지게 쓰는 말로 元老(원로)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을 보니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해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을 원로라 한단다. 그래서 로마의 통치기구는 원로원이라 했다. 경험과 경륜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국정을 논의하는 ‘집단지성’적 협의체라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이 한 분 돌아가시면 부락의 도서관 하나가 불탄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문학계의 원로 선생님을 취재간 기자가 서재를 찍고 싶다 하니 이분께서 모든 책은 내 머릿속에 있으니 서재 사진이 필요하면 내 머리를 찍어가라는 농담을 하셨다고 한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한 노인, 즉 원로를 존중해야 한다. 선배와 원로가 중요하고 필요하다. 그래서인가 요즘에서야 20년 전 함께 근무했던 선배들을 만나면서 이분들의 경험과 경륜이 활용되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퇴임 후 10년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이다. 미국은 성조기, 영국은 Union Jack, Union Flag, 일본은 일장기, 독일은 분데스플라게(Bundesflagge)이다.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 등 국경일 아침 일찍 자랑스럽게 태극기를 게양한다. 아파트에 살면 베란다에 태극기를 내건다. 한옥에 살 때에는 대문에 태극기를 걸었다. 태극기를 걸면서 왜 아래로 늘어지게 다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가로막대에 국기를 달아서 바람이 불지 않아도 잘 보이도록 하고 있다. 깃발은 전장에서 앞으로 내달리면서 군인들에게 힘을 북돋우는 도구였을 것이다. 프랑스군의 맨 앞에서 전투를 지휘하는 잔다르크는 희고 긴 깃발을 들고 있다. 아마도 군대의 깃발은 지휘부가 앞으로 내달리니 병사들이여 따르라는 의미다. 평시에 깃발은 아래로 내려져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용감하게 앞으로 내달리는 힘에 의해 펄럭인다. 우리는 늘 태극기가 잘 보이도록 게양하는 방법으로 규정을 바꿨으면 한다. 경기도는 국경일 전후 수일간 건물 벽면에 대형 태극기를 게양하므로 그 앞에서 애국심을 느낀다. 이처럼 바람이 불지 않아도 태극기 전체가 보이도록 게양방법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태극기에 철심을 넣어 옆으로
무임 교통카드 이야기입니다. 지패스, 즉 "경기도 우대용 교통카드"입니다. 이 카드로 전철을 무료로 타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배중에 생일이 지나서 무료교통카드를 받을 수 있는데도 발급신청을 하지 않은 분이 몇 명 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나이 든 것을 틀켜 버릴까봐 카드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카드를 쓰면 전철 개찰구 주변에서 만나는 알지 못하는 분들이 "저분은 나이가 드셨구나!" 정도로 알아차릴 것이지만 서로 누구인가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러니 우대용교통카드를 이용하여 전철을 타고 내려도 그분에 대하여 나이가 60대 70대초인 것을 나중에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아는이를 만나면 다른 이야기로 교통카드 음향을 듣지 못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 이는 마치 산 정상에 올라 "야호!" 소리를 쳐도 주변의 등산객들은 이분이 누구인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이 누구인지를 알 것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지만 말하지 안고 아는 체도 하지 않으며 다른 식물이나 동물에게 그 말을 전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사랑합니다. 인간보다 자연을 좋아합니다. 자신에 대
큰형 '이재율' 부지사와 맏형 '재율'이 형 그냥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이재율 부지사님이 퇴임하신단다. 그냥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었다. 이 부지사님은 퇴임하지 않을 줄 믿었다. 늘 경기도정의 중심에서 일할 줄로만 생각했다. 축구 경기로 말하면 풀백과 링커였다. 행정이 어려우면 풀백이 되고 도정이 느슨하면 센터포워드로 뛰었다. 숱한 기자들의 표현대로 ‘뼛속까지 경기맨’ 이재율 부지사가 퇴임을 한단다. 50년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재율 ‘데자뷰’처럼 어린 9살 소년의 마음속에 그런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흰 브라우스에 검은 스커트를 입은 우리의 여선생님을 처음 보았다. 동네 누나들과는 다른 의상이었고 얼굴도 달랐다. 그래서 여자 선생님은 화장실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 선생님은 매운 고추장, 시큼한 된장을 먹지 않을 거라 짐작했다. 설악산 사슴이 이슬만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처럼 선생님은 그냥 흰 쌀밥, 시금치나물, 순두부 등 예쁘고 흰 음식만 먹을거라 상상했었다. 그래서 이재율 부지사도 어려서 만난 초등학교 ‘사슴 여선생님’처럼 절대로 나이 들지 않고 퇴직하지 않고 경기도청에서 아주 오래도록 일할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말이 있지만 행정자치부 혁신인력개발원에서 만난 10인의 강사진은 모두가 나의 스승(我師)이었다. 혁신에 대한 설명은 간명했다. 묵은 제도와 방식을 고쳐 새롭게 하는 것이 혁신이며 창조적 파괴나 문제의식을 갖고 새롭게 바꾸는 것이 혁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실질적인 혁신의 의미는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득음·득도의 심정이었다. 1, 2년 안에 같은 경력의 공무원 봉급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총액인건비제도가 활성화되면 고참 공무원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한다. '젊은 공무원 2명을 쓰는 것이 낫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라는 질문에 선뜻 답을 준비하지 못했다. 대기업 삼성이 일본 기업보다 우수한 초인류 기업이 된 힘은 바로 ‘혁신’에서 나왔다는 대목에서 허리를 고추세우게 되었다. 혁신은 참여정부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정부에서도 지속될 것이라는 것이 강사진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리고 혁신의 주체는 공무원이며 중앙정부에 비해 지자체의 혁신은 조금 뒤져있다는 지적에 공감했다. 사실 지방행정은 중앙보다 혁신이 자리잡을 공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혁신은 권위를 떨쳐버리자는 것이 아니라 일상 업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