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9급 공무원이라면, 9급 공무원을 준비중이라면 一瞥(일별)해 보기를 권하는 이야기다. 1981년 8월 8일 아침에는 팔탄면 구장리에서 퇴비증산 작업을 하고 마신 동동주에 살짝 취했다. 면사무소 회의실 장의자에서 널부러져 단잠을 자고 있는 나를 깨우는 이가 있다. 발로 뻥 차는 느낌이 들었다. 발령이 났단다. 순간 1년여 만에 나도 고향인 비봉면으로 가는구나 했다. 도청 발령은 생각하지 않은 터였다. 그런데 도청으로 발령이 났단다. 1981년 8월10일자로 도청으로 가기전에 군청에 들러 내무과장이 주시는 전출 발령장을 받았다. 요즘에도 가끔 연락하는 선배가 내무과에서 대기중인 나에게 다가와서는 큰 소리로 ‘이 서기 축하해요’ 한다. 이분이 팔탄면 출신인데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축하하는가 묻자 “몰랐나? 팔탄 출신 이 서기가 도청으로 간다네” 했다. 일어서서 수줍게 인사를 하였다. 비봉면 출신이지만 비봉면에 근무하고 방위 받고 팔탄면으로 복직 되었다. 누구나 我田引水(아전인수)에 익숙하다. 도청은 팔달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발령 받은 곳은 농민교육원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이가 별로 없었는데 선배에게 물으니 병점에서 2km 들어가면 농촌진흥
도청 7급은 실무자이고 시청과 군청의 7급은 차석입니다. 도청 계장은 사무관이고 시청 계장, 구청 계장, 동사무소 사무장은 주사 6급입니다. 영화 7급공무원에서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배우 김하늘과 남자 요원이 현장에서 충돌하는 내용이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정보기관 직원은 7급 공채를 하는가 봅니다. 7급 공채도 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9급에서 시작한 공무원이 7급이 되기까지 8급을 거치게 되면 10년 이상 공무원 밥을 먹게 됩니다. 따라서 7급 공무원은 중견입니다. 공직의 기능과 역할, 파워, 단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고개를 숙여야 하는지 바람 강하게 부는 바다 근처 넓은 강가를 따라 자라는 갈대의 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동차 운전 중 충돌하는 순간에도 사고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헬기나 전투기를 주택가를 피해 산으로 몰아 추돌하는 살신성인의 조종사 이야기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7급 공무원은 언론과 충돌할때 어느 지점이 부드러운 재질인가를 잘 파악하고 있으므로 '적땅껏' 대응하다 안 되면 작전상 후퇴를 하여야 합니다. 戰史(전사)에 정말로 작전상 후퇴가 있다고 합니다. 행정에서도 정말 안 되는 일은 작전상 기권하거나
2008년 8월에 경기도의회 부의장, 당대표, 상임위원장, 재선 이상 의원 40여명을 모시고 공무원 8명이 묵호항을 거쳐 울릉도와 독도를 방문하여 일본의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 주장한 것을 규탄하는 '독도수호 결의대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독도일정 방문에 있어서 이른바 '미스매칭'이 발생하였습니다. 도의회 의원단은 묵호항 1박, 울릉도 1박의 2박3일 일정을 잡았는데 여행사간 미스매칭으로 울릉도 2박으로 판단하여 금요일이 아닌 토요일 배표를 확보하였고 일행은 금요일에 다시 돌아오는 일정으로 알고 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도의회를 출발한 버스 2대에 도의원과 공무원이 탑승하였는데 1호차와 2호차에 공무원 4명씩 분승하기로 하였으나 1호차에 의원님이 다수 승차한 관계로 공무원은 저 혼자만 남게 되었고 공무원 7명은 2호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참을 달리자 생수를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고 물병과 휴지 등 이런저런 소품을 나르는 저에게 부의장님께서 "직원들도 함께 나르지"하시는데 "공무원 7명이 의원님께 자리 내드리고 2호차에 탑승하였습니다"라고 답했다. 계획상으로는 4명씩 분승예정이었으나 의원님들께서 1호차를 선호하시므로 혼자 남게 된 것입니다.
공직에서 마음이 통하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수 많은 선배들을 만나고 지금도 더러 연락을 주고 받는 분이 있습니다만 2008년 1월부터 2009년 7월까지 18개월간 근무한 경기도의회 공보담당관실에서의 추억은 몇 가지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선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하던 공보담당관실은 몇 사람만 마음을 합하면 큰 일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도의원들이 언론의 힘을 알고 홍보의 맛을 느끼는 기회가 자주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노인학대예방조례를 제정한 후 이를 적극 홍보하자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실무팀 회의를 거쳐 몇가지 기획안을 만들었습니다. 우선은 의회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형 의사봉을 만들었습니다. 플라스틱 통 2개를 연결하여 의사봉 머리를 만들고 긴 손잡이를 붙인 후에 초콜릿 색 페인트를 뿌려서 1.5m 크기의 의사봉을 만들었습니다. 노인학대를 하면 벌을 받는다, 불효자를 징벌한다는 컨셉에 맞춰서 "불효자"라는 목걸이를 매단 직원을 의장, 의원, 노인회장이 대형 의사봉으로 머리를 내려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습니다. 언론은 늘 새로움을 추구합니다. 의사봉은 안건을 의결할때 3타 두드리는 나무 방망이로만 생각했는데 불효자를 징벌하고
과거 경기도청, 시·군청 인사에 대한 이른바 [하마평]은 종이신문 언론의 독점이었습니다. 1988년경 실국장, 시장군수 인사에 대한 하마평은 백발백중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1980년대 후반기에는 지방 언론사가 4개사였고 이들 언론사의 출입기자들은 내무국장, 부지사, 기획관리실장 등 인사관련한 간부들을 쉽게 접촉하고 장시간 대화를 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간부들은 언론에 늘 관심을 가지고 예민하게 대응하던 터라 출입기자들이 사무실을 방문하면 자랑스럽게 인사관련하여 몇가지 정보를 꺼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내무부(행정안전부)에 보낸 인사관련 추천자료 내용이 언론사 기자들에게 공유되면 어떤 언론인은 20명 중 공무원 한두명의 인사발령 자리를 바꾸거나 조금 변형해서 쓰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전합니다. 언론에 하마평으로 보도된 내용과 100% 일치하는 것을 피함으로써 언론의 취재력을 높게 평가받으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요즘의 하마평은 출입기자의 의지를 담아 인사천거를 하는 듯한 분위기를 주기도 하지만 그 내용이 기관장, 특히 민선 단체장에게 영향을 주는가는 모를 일이라 게 퇴직 공무원의 전언입니다. 그래도 하마평은 늘 관심이 가는 일이고 인사발령이
도청#시청#읍면동의 과장#동장#소장의 역할 공무원의 꽃은 사무관입니다. 사무관은 지방행정사무관, 행정사무관이 있습니다만 이는 지방직과 국가직을 구분하는 것이고 두 자리 모두 5급입니다. 5급 공무원은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임용된 사무관이 있고 6급 공무원중 사무관 요원을 선발하여 연수를 받도록 한 후에 승진임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970년대에는 시군청에 과장 직무대리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승진시험을 합격한 후에 지방행정사무관에 임용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당 시군의 다른 6급 고참계장과 직무대리 과장이 시험으로 경쟁을 하였기에 이로 인한 부작용이 극심했습니다. 정부는 이 같은 논란이 많은 사무관 승진시험제도에 대한 부단한 개선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고 주관식 시험, 객관식 시험제도를 거친 후에 1995년경에 승진시험 제도를 폐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사평가를 통해 승진대상자를 심사로 결정하고 행정안전부의 교육을 받도록 한 후에 5급에 임용하였습니다. 그래서 한때에는 주관식 사무관, 객관식 사무관, 공익사무관이라는 별칭이 붙여진 바가 있습니다. 가장 어렵고 힘들다는 주관식 논술시험을 거친 사무관의 자존심에서 나온 명칭일 것입니다. 그러니 주관식과 객관식간
부단체장의 위치와 역할을 설명해 주는 공직 선배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홀로 터득해야 하는 참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부단체장의 자리에서 행해야 할 역할이 어렵습니다. 우선 부단체장은 말 그대로 부기관장입니다. 부시장은 도 자원의 부단체장 요원을 도지사가 전출 발령하고 시장님과 군수님이 임명합니다. 도와 시군간의 협의를 통해 인사교류를 합니다. 도의 국장이 시청으로 가고 시청 부시장이 도의 국장으로 전보됩니다. <부단체장이란> 경기도청에는 행정1부지사, 행정2부지사, 경제부지사가 있습니다. 행정1부지사는 행정안전부 자원으로 임명합니다. 행정2부지사와 평화부지사는 도지사가 행정안전부의 승인을 받아 임명합니다. 부지사 발령을 승인하기 위해 행정안전부장관이 대통령의 재가(결재)를 받는 줄 압니다. 정부에서 행정1부지사가 임명을 받아 경기도에 근무하듯이 도내 시군 부단체장을 도지사가 관리하는 것은 도에서 보내진 부단체장이 시군 행정을 총괄하고 관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봅니다. 그러니 때로는 시군의 공무원들이 기관장에게 “NO”라고 말하지 못 하는 경우에 부단체장이 나서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쳐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강의를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런
이약동(李約東, 1416~1493) 선생은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인 하로촌(賀老村)에서 금오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절개가 곧았으며 김종직, 조위 등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1441년 진사가 되었으며 36세가 되던 1451년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사헌부감찰을 거쳐 외직에 나가 선정을 베풀면서 청백리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약동 선생은 1470년에 제주목사가 되었습니다. 부임하여 행정을 살피던 중 백록담 산신제를 지내는 산천단이 한라산 정상 부근에 있으므로 추운 겨울에 제기와 제물을 짊어진 백성들이 어렵게 산을 오르다가 미끄러져서 다치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약동 목사는 한라산 중턱 이라동으로 제사 장소를 이동하였고 그 자리에는 지금도 백성을 사랑하는 목사님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습니다. 이약동 선생이 청백리로 불리는 여러 가지 스토리텔링 중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궤편암과 투갑연입니다. 먼저 궤편암(掛鞭岩)은 말채찍을 반납한 바위 위에 새겨진 이야기입니다. 1474년에 경상좌도군절도사가 되어 제주도를 떠날 때 평소 착용하던 의복과 기물을 그대로
수원시의 문화사업으로 카톡방에 시를 소개하는 이색 프로그램에 접속되었습니다. 시에서 보내준 파일에 연결하니 숲의 파티 수원, 수원시립미술관, 아쿠아플라넷 광교, 오산버드파크, 의왕레일바이크를 소개하는 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수원박물관, 수원화성박물관, 수원광교박물관을 소개하는 글을 보고 부부가 날을 잡아 1일 3박물관을 방문하였습니다. 사실 세계적인 박물관은 6개월을 다녀도 관람이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수원시 3개 박물관을 하루에 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료관람이니 서둘러서 하루동안에 일단 돌아보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차분하고 정중하게 관람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수원박물관 수원박물관은 경기남부경찰청과 경기대학교 기숙사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탈면 입구를 올라가면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드넓은 초록의 공간이 나옵니다. 수원시의 역사와 문화, 한국의 서예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수원 행정책임자의 공적을 기념하는 선정비 27기가 한 줄로 서서 방문객에게 인사를 합니다. 어린이 체험실과 자료실, 북카페 '여민동락'이 어린이 시민을 반기고 있습니다. 역사관에는 1960년대 수원의 거리가 재현되어 있습니
공직사회의 권위주의가 어느 정도 살아 있던 시절에 "아첨도 능력"이라는 당시 부지사님의 공개 글에 도청 공무원 모두가 화들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기도 이천이 고향인 고시출신의 강직한 고위공무원이 후배, 동료 공무원이 보는 게시글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게시글에 대한 해명, 해석이 附椽(부연)된 기억도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정조대왕의 '무취불귀'와 비견되었습니다. "옛사람의 말에 술로 취하게 하고 그의 덕을 살펴본다고 했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취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다'(無醉不歸)는 뜻을 생각하고 각자 양껏 마셔라. 그런데 ‘무취불귀'란 말은 실제로 취해서 돌아가라고 한 말이 아니라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들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술에 흠뻑 취할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리더라면 정조처럼’이라는 책에서 김준혁 교수가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화두는 ‘과공은 결례’입니다. 손님을 초대한 주부가 음식을 가득 차려놓고는 ‘차린 것이 한 개도 없다’라고 말하고, 손님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라 치하의 말을 합니다. 그동안 보아온 상다리는 튼튼해서 상위에 음식을 제아무리 많이 올려도 휘거나 부